현장법사께서도 임종시 약간 병고가 있어 자신이 번역한 불경에 혹시 잘못이 있지나 않나 의심하였다. 이때 어떤 보살께서 나타나서 그를 위로하시길, “그대가 지닌 겁에 지은 죄에 대한 과보가 이 작은 고통으로부터 모두 사라질 것이니, 어떤 의심도 품지 말라!” 말씀하셨다.
그대는 마땅히 이 이야기로 그대 어머니를 위로하여 중병에도 환희심을 내고 원망하는 마음을 내지 말라고 권해야 한다. 그러면 반드시 부처님의 가피를 입을 수 있어 수명이 다하지 않으면 병이 빨리 나을 것이고 수명이 다하였으면 왕생할 것이다.
【역주】 병이 낫지 않음은 「무거운 과보. 나중의 과보가 현재의 과보. 가벼운 과보로 바뀐」 까닭이다.
인광대사께서는 (주맹유의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대의 어머니가 병이 낫지 않는 이유는 숙업宿業의 탓으로 무거운 과보. 나중의 과보가 현재의 과보. 가벼운 과보로 바뀌었기 때문이다”라고 답하셨다. 당신의 모친이 이 병에서 호전을 보이지 않는 것은 과거의 숙업 탓으로 과거의 악업이 지금 나타날 때 마땅히 「무거운 과보. 나중의 과보가 현재의 과보. 가벼운 과보로 바뀌었다」고 믿어야 한다. 이를 나누어 말하면 무거운 과보가 가벼운 과보로 바뀌었고, 나중의 과보가 현재의 과보로 바뀌었다는 것이 그 함의이다.
이런 과보는 필연적이다. 우리는 이를 어떻게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가?
염불하는 사람은 마땅히 정확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
나중의 과보가 현재의 과보로 바뀌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예컨대 마땅히 축생이나 아귀에 떨어져야 하는데, 염불하여 업이 사라짐으로 인해 바로 축생과 아귀에 떨어지지 않고, 단지 이번 생을 사는 동안 재난이 출현하고, 거스르는 인연(違緣)이 출현하며, 큰 병이 출현하면 이를 「나중의 과보가 현재의 과보로 바뀌었다」 말한다.
명종에 임할 때 악한 과보가 나타나는 것은 젊은 시절에 과보를 갚는 것만 못하다.
과보는 반드시 갚아야 하는데, 염불을 통하여 무거운 과보를 가벼운 과보로 전환시킬 수 있다. 예컨대 염불하여 극락세계에 태어나길 구하면 가장 좋은 것으로 이것도 무거운 과보가 가벼운 과보로 바뀐 것이다. 또한 마땅히 아귀에 떨어져야 하는데, 다시 윤회하여 사람이 되면 당연히 이것도 무거운 과보가 가벼운 과보로 바뀐 것이다. 또한 마땅히 목숨을 잃을 지도 모르는 재난이 발생하여야 하는데, 단지 다리만 부러지고 팔만 부러졌다면 이것도 무거운 과보가 가벼운 과보가 된 것이다. 또한 마땅히 대단히 큰일이 일어나고 암과 같은 불치병에 걸려야 하는데, 단지 염증만 생기고 작은 혹만 생겼다면 이것도 마찬가지이다.
마땅히 2,3년을 치료하여도 병이 낫지 않아야 하는데, 2,3주에 병이 나으면 이것도 무거운 과보가 가벼운 과보로 바뀐 것이다.
수행인의 경우 이 두 가지는 절대로 존재한다. 그래서 인광대사께서는 이 단락에서 현장법사의 이야기를 말씀하셨다. “현장법사께서도 임종시 약간 병고가 있어 자신이 번역한 불경에 혹시 잘못이 있지나 않나 의심하였다. 이때 어떤 보살께서 나타나서 그를 위로하시길, 그대가 지난 겁에 지은 죄에 대한 과보가 이 작은 고통으로부터 모두 사라질 것이니, 어떤 의심도 품지 말라! 말씀하셨다.” ㅡ인청仁淸법사, 《인광법사문초 정토법요》
[보충] 현장법사의 스승 계현논사께서도 수년간 병을 앓으셨다.
염불하는 사람에게는 삼보의 가피와 팔부신중과 용천의 보우가 있다.
이는 필연적인 이치이다. 그러나 「무거운 과보. 나중의 과보가 현재의 과보. 가벼운 과보로 바뀌는」이치를 아직 또렷이 알 수 없는 까닭에 이러한 불합리한 의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옛날 서역의 계현 논사는 덕이 일세에 드높아 도가 사천축국에 떨쳤다. 숙업으로 말미암아 잘 낫지 않은 고질병에 걸려 그 고통이 매우 혹독하여 견딜 수가 없어 자진하려고 하였다.
마침 문수. 보현. 관세음 세 분 보살께서 내려오시어 이르시길, “그대는 지난 겁에 국왕이 되어 중생을 괴롭히고 해친 적이 많아 마땅히 오래도록 악도에 덜어져야 하겠지만, 그대가 불법을 크게 선양한 까닭에 이 인간세계의 작은 고통으로써 오랜 겁에 겪어야 할 지옥계의 고통을 소멸시켰으니, 그대는 마땅히 견뎌낼지라. 당나라에 현장이라 이름하는 한 스님이 있으니, 마땅히 3년을 지내면 여기에 와서 법을 받으리라” 하셨다.
계현 논사가 이 말을 듣고 마침내 고통을 견디면서 참회하고, 오래 지나 마침내 치료되었다. 3년이 이른 후 현장법사가 그곳에 이르러 계현 논사는 제자에게 그 병고의 상황을 말해주었다. 그 고통을 말하는 사람이 목이 메어 눈물을 흘리니,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었다. 숙세의 인을 밝히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계현 논사가 도를 얻은 고승이 아니라고 말하였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대수행인조차도 참혹한 병에 걸렸으니, 불법에 무슨 영감과 이익이 있겠는가?” 말하였을 것이다.
그대들은 마음속에 아는 것이 적은 까닭에 잠깐이라도 다른 모습을 보면 곧 놀라며 의심할 것이다. 선근이 없는 사람은 곧 도심에서 물러날 것이다. 악을 지은 사람조차 현재 복보를 얻는데, 또 다시 이와 같이 사견의 마음이 일어날 것이다. 모두 이전의 인과 나중의 과 및 「무거운 과보. 나중의 과보가 현재의 과보. 가벼운 과보로 바뀜」 및 「현재의 과보. 가벼운 과보가 나중의 과보. 무거운 과보로 바뀜」 등 갖가지로 복잡하여 제도하지 못하는 줄 아는 까닭이다.
【역주】 많은 왕생전기를 보면 몇몇 염불인은 왕생하기 전에 우연히 작은 병에 걸리는 경우가 많고, 임종시 고통스러워하며 왕생하는 대덕거사가 확실히 적지 않다. 인광대사께서 상술한 법문은 도리에 부합한다.
그러나 (민간신앙에서 말하는 ) 「마장의 시험魔考」이란 각도에서 해석할 수도 있다. 역경과 시련이 없으면 진심을 내지 않고, 언제나 순경이면 오히려 오만불손해진다. 재난을 피하고 전화위복이 되는 등 모두 염불공덕이 수승한 줄 알아야 한다.
만약 염불정진하면서 오히려 병에 걸리거나 천재인화를 만나면 염불인은 어떤 마음을 내어야 하는가? 부끄러워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 의심하는 마음? 어떤 마음을 내든 각자 수행의 층차를 여실하게 반영한 것으로 진짜인지 가짜인지 시험해보면 곧 알 수 있다.
마장의 시험을 통과하지 않았어도 다른 사람을 탓해서는 안 된다. 게다가 염불인이 선정을 얻는 경우는 결코 많아 보이지 않지만, 진정으로 관행위의 초품에 이르도록, 최소한 미혹을 조복한 사일심불란에 이르도록 염불하여야 정선을 닦을 수 있고, 정선을 닦으면 숙세의 매우 무거운 정업도 없앨 수 있다.
이런 부류의 염불인이어야 비로소 더 이상 천재나 인화, 고질병과 횡사 등 정업을 겪지 않을 수 있다. 이를 제외하고 그밖에 산란한 마음으로 염불하는 사람은 비록 여러 해 염불하였을지라도 천재나 인화를 만나고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
산선으로는 정업을 없애기 어려운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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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하는 사람에게는 삼보의 가피와 팔부신중과 용천의 보우가 있다.
이는 필연적인 이치이다. 그러나 「무거운 과보. 나중의 과보가 현재의 과보. 가벼운 과보로 바뀌는」이치를 아직 또렷이 알 수 없는 까닭에 이러한 불합리한 의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자신의 숙업의 깊이 자신이 만든 것이다 하여 감사하게 생각 해야하는데 ㅜㅜ 감사합니다 무량공덕이 되소서 수고하셨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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