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장하준
제목: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출판사: 부키
출판일: 2023.03.30.
경제 지식이 전무하고 경제를 떠올릴 때 두려움이 앞섰던 저는 가장 먼저 천천히 스며들어 읽을 수 있는 책을 찾기로 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한 다음부터는 제목과 구성이 가장 와닿을 수 있을 책을 골랐습니다. 요리를 잘하거나, 요리에 특별한 관심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중 ‘경제학 레시피’라는 생소한 키워드가 제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습니다. 개인의 요리 능력과 관계없이 누구나 먹고 살기 위한 생존수단으로 요리를 하고 사는 것처럼, 경제를 아는 것 역시 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 생존수단이자 필수라고 생각할 수 있기에 두 단어의 연관 범주를 제 마음대로 단정짓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씩 읽다 보니 제목을 통해 떠올린 제 생각이 얼추 들어맞는다는 것에 호기심을 느끼며 하나 둘 책장을 넘겼습니다. 그러다 보니 경제학개론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님 말씀 중 경제학을 이론이 아닌 사회의 한 흐름이자 우리의 일상으로 입체적으로 생각할 때 더 와닿는다는 사실이 문득 체감되기 시작했습니다. ‘경제학 레시피’는 도토리, 새우, 소고기 등과 같이 우리 일상에서 늘 존재하는 음식의 작은 재료들이 각 목차의 소제목으로 들어서 있는데, 재료와 관련한 저자의 사담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경제와 얽혀 설명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가령 머리말을 장식하고 있는 ‘마늘’을 주제로 이야기할 때면, 저자 본인의 영국 유학 시절을 떠올리며 유학 당시 한국에서 소울푸드로 작용하는 마늘을 영국에서는 금기시했다는 점을 기반으로 음식 문화뿐만 아니라 외국 문물에 매우 보수적이었던 영국 사회를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영국에서 음식 혁명, 즉 폭넓은 문화적 다양성을 수용한 후부터는 현재 그 어느 곳보다도 다채롭게 세계 각국 음식이나 음식 재료를 구매할 수 있는 곳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영국의 수용적 태도로의 변모와는 역행해 경제는 오히려 과거의 다양한 경제학파가 현재 하나의 신고전학파로 가지치기되었다는 점에서 문제점이 시작됩니다. 저자는 경제학은 동시대인들이 무엇을 가장 중요한 '인간의 본질'로 생각하는지 영향을 준다고 언급하는데, 신고전학파 경제학은 인간을 이기적 존재라 추정하기 때문에 이로 인해 지난 몇십 년 동안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이 정상적으로 받아들여졌다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신고전학파 경제학만이 사회에 남게 된 현상을 저자는 경제학의 ‘단일 경작’이라고 일컬었는데 우리, 그리고 우리 사회에 항상 경제학이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감안했을 때 결국 유전자 풀을 좁히는 위 문제점에 대해 못마땅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의 첫 시작이자 가장 큰 임팩트를 주었던 ‘마늘’에 대한 이야기 외에도 유교나 이슬람 문화를 예시로 들어 문화에 대한 강한 고정관념이 주는 위험함을 시사하는 ‘도토리’, 19세기 중반 페루의 경제적 번영을 이끌었지만, 남아메리카 태평양 전쟁으로 잠시 침체되었다가 놀랍게도 기술 혁신으로 다시금 자원의 한계를 극복한 ‘멸치’ 등 음식의 소재료들과 밀접하고도 촘촘히 연관된 국제 경제의 사연을 들어볼 수 있습니다. 특히 저에게는 이 가운데 '탈산업화'를 주제로 이른바 부자 나라에서 제조업은 작아지고 서비스 부문이 커지며 나타난다는 담론을 담은 17장 '초콜릿'의 내용이 인상 깊었습니다. 사실 고생산성 서비스에서 제조업은 필수불가결한 존재이기에, 소위 서비스 부문에 특화되어 있다는 스위스를 롤 모델로 제시하는 탈산업 사회는 오히려 실물 경제에 큰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위 개념은 되려 강한 제조업이 뒷받침되어 있는 상태의 국가들에 대한 무지에서 나타나는 것이므로 함부로 단정지어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해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수십 가지의 음식과 식재료를 거론하며 각 식재료와 음식의 생물학적 특징, 계통, 지리학적 근원과 확산 경위, 그를 둘러싼 경제적 ∙ 사회적 역사와 정치적 상징성 그리고 여기에 더불어 저자의 개인적인 관계를 설명하고 있어 다소 경제에 대한 갈피를 잡기에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걸 뛰어넘어 일반적인 상식보다는 조금 더 깊은, 때론 우리에게 친숙한 '요리'라는 키워드와 '경제'를 조합해서 낼 수 있는 시너지를 축적해 담은 책이었기 때문에 경제와 조금이나마 가까워졌다고 생각해 만족합니다.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는 음식이나 소재료들에 대한 작가의 소소한 경험담으로 풀어나가 부담없이 국제 경제 시사를 알아가고자 하거나, 경제 상식을 음식의 역사와 같이 문화적 측면에 연관지어 알아가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