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독서일지 (2024.06.04~06.25)*
-1일차 : 6월 4일 화요일
도서관은 집, 집은 책 읽는 학교
1
조그만 빨간 배낭을 어깨에 메고 도서관에 가기 위해 화창한 아파트 단지를 걸어가는데 자신을 다섯 살이라고 손바닥을 벌린 꼬마가 어디 나들이를 가는지 같이 걸어오던 가족 앞으로 갑자기 뛰어나오며 나에게 외친다.
-가방 메고 어디를 그렇게 가는 거야?
빙그레 웃을 수밖에 없다. 그 애는 한 아파트에 같이 사는 줄은 이제 짐작하지만 사실 생판 모르는 낯선 아이였기 때문이다. 순수하다는 건 저런 것을 말할 게다 싶어 다시 한 번 꼬마를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손을 들어 반갑게 흔들어 주었다.
2
도서관은 맑고 화창한 날씨에 걸맞게 1층 현관을 지나 있는 깨끗하고 조그만 로비부터 환하고 밝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누구나 자리에 앉아 조용히 독서에 빠지고 싶게 모두를 늘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번 달에는 조금 욕심을 부려 많은 책을 빌려본다. 4권의 시집을 필두로 주섬주섬 가방에 책을 담다보니 어느새 17권이다. 빌려오면 늘 같이 읽는 아내도 배려해야 한다.
빌려온 책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60조각의 비가》, 이선영
-《뿌리에 관한 비망록》, 손종호
-《지구 특파원 보고서》, 손나래
-《캣콜링》, 이소호
-《찻집》 라오서
-《태엽 감는 새 연대기 1, 2》, 무라카미 하루키
-《검은 책 1, 2》, 오르한 파묵
-《앙리 브륄라르의 생애》, 스탕달
-《부적 1, 2》, 스티븐 킹 & 피터 스트라우브
-《쾌락독서》, 문유석
-《보부아르, 여성의 탄생》, 케이트 커크패트릭
-《미치도록 잡고 싶다》, 정락인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 주영하
-《먹보 여왕》, 애니 그레이
3주 안에 빌려온 책 17권 모두를 읽지는 못할 것이다. 대신 낚시를 하듯 손맛에 이끌리는 대로 책을 집어 읽을 예정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듯 3주 후면 어느 정도 읽었는지 수확이 나올 것이다.
그 수확의 질과 양은 그 때 그 때 기록되는 독서일지(수확일지?)를 통해서 파악될 수 있겠다. 독서일지를 적는 이유는 자신과 일상에서 어느 정도 긴장을 유지할 필요성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그 무엇보다도 시간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은 신념이 더 강하겠다.
이제 나도 내일 모레면 육십이다. 어릴 적 성장과 공부에 여념이 없던 소년과 청소년기, 결혼해서 가족을 이루고 생활에 매진했던 중, 장년을 거쳐 이제 인생의 수확이 한창일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만할 노년으로 입성하게 된다.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는 내 남은 시간동안 내 스스로가 하고 싶어 하고, 원하는 일이나 취미에 남은 열정을 바치며 향유하고 싶다.
책을 빌려서는 한편으로는 배낭에 넣고, 넘칠 경우 필요할 것 같아 추가로 들고 간 하얀 장바구니에 몇 권의 책을 넣어 한편으로 메고, 한편으로는 손에 덜렁거리며 들고 오다보니 오후 운동 길에 흔히 보게 되는 배낭과 신발주머니를 들고 털레털레 집으로 돌아오는 꼭 초등학생 같은 모습이다.
해서 앞으로 한 3주간 집은 책 읽는 학교가 될 것이다.
긴 실업기간 중 오랜만에
맥주와 튀긴 통닭을 먹는 오후
1
오전에 장모님이 진지하게 다녀가신 후
아내는 얼마 전 저녁 운동 중 진지하게 생각했던 치맥을
통 크게 서둘러 추진 한다
2
얼른 카드를 받아들고
먼저 가장 싼 병맥주를 두 병 사고
브랜드 있는 비싼 닭 대신
그 값으로 근처 통닭 두 마리를 튀기고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전혀 진지하지 않다
3
이것으로 저녁을 대신하겠다는 선언에
원래 두었다가 내일 먹으려 했던
한 마리마저 게눈 감추 듯 먹어치우고
안주와 균형이 맞지 않아 남았던
싸구려 맥주마저 깨끗하게 순식간에 다 비우자
세계에는 갑자기 종말이 찾아온다
4
원래는 무료했을 오후
저녁 어둠 속으로 사라지며
세계는 적막 속으로 한없이 침잠하고
새삼
낮 동안의 그 모든 번잡스러움에
그만 종말을 느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