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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순교성지
홍인과 그의 부친 홍교만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2014년 8월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습니다.
이를 계기로 춘천교구는 같은 해 9월 홍인 레오의 순교터를 순교성지로 선포했다.
포천 성당은 순교터인 한내천변에 부지를 마련해
2015년 복자 홍인 레오의 순교 정신을 기리는 순교현양비를 건립해
축복식을 갖고 포천 순교성지를 조성했다.
복자 홍인 레오의 집안은 본래 한양의 이름 있는 집안이었다.
그의 부친인 복자 홍교만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경기도 포천으로 이주했기 때문에 그곳에서 성장했다.
1801년 서소문에서 순교한 홍교만 프란치스코가 천주교 신앙을 접하게 된 것은
1781년 양근에 살던 고종사촌 권일신으로부터 교리를 배우면서였다.
홍인 레오는 부친에게 교리를 배웠는데, 오히려 부친보다 먼저
천주교 신앙을 진리로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천주교에 입교한 후 홍인 레오는 세속의 꿈을 모두 버리고
하느님을 섬기고 교리를 전하는 데만 열중했다.
그러면서 효성을 다하는 길은 부친을 신앙으로 인도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해
부친을 설득해 1784년 말 주문모 신부가 입국한 후
함께 찾아가서 세례를 받고 미사에 참석했다.
1801년 부친과 함께 체포되었으나 당시 부자를 함께 처형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홍인 레오는 포천으로 이감되어 약 10개월 뒤인 1802년 1월 30일
포천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저잣거리에서 순교하였다.
부친인 홍교만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이미 1801년 4월 8일
동료들과 함께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순교한 뒤였다.
[출처] 춘천교구-포천 순교 성지
구 포천성당
포천 성당 경내에 들어서면 사제관 앞 언덕을 둔중하게 두른 거대한 축대 위에
지붕은 온데간데 없고 벽체만 을씨년스럽게 서있는 석조건물 ‘성 가브리엘 성당’이 있다.
1955년 경 당시 육군 6군단 군단장이었던 이한림(가브리엘) 장군이
군의 원조를 받아 지은 고딕 양식이 가미된 장방형 평면의 강당형 석조 건물이다.
1950년대엔 유난히 석조 건물을 많이 지었는데 포천 성당은
군부대가 직접 세운 것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성당이다.
1990년 사업에 실패한 전직 경찰 출신이 성당 안 제의실에서
촛불을 켜놓고 잠을 자다가 불을 내는 바람에 벽체만 남긴 채
지붕이며 제대, 성물이 모두 소실되어 지금의 모습으로 남게 됐다.
불이 난 뒤 지역 신자들이 건물 붕괴를 우려해 성당을 헐어 새로 짓자고 했지만
문화재의 가치가 크다고 판단한 춘천교구장 장익 주교와 포천 성당 신부,
학자들의 주장으로 등록문화재 목록에 올랐고,
2006년 9월 19일 등록문화재 제271호로 지정되었다.
비록 성당안 구조물은 모두 소실됐지만 서쪽 벽에 뚜렷하게 남은 감실과
제의 때 신부들이 감실을 오르내리던 계단은 신자들을 숙연하게 만든다.
제대가 놓여 있던 제단이 두개의 층으로 구분된 것도 흥미롭다.
건물 정면 중앙에 종탑을 두고, 벽체가 60~65cm 정도로 두꺼우며,
건축물을 외부에서 지탱해주는 버트레스 장치를 했다.
화강석 조적구법, 단일 홀로 구성된 강당형 평면, 종탑과 뾰족한 아치 창호 등
6.25 전쟁 전후 석조 건축의 전형적인 특징을 나타낸다.
종교사적·건축사적으로 가치 있는 건축물이다.
1950년대 중반 군부대에 의해 지어져 역사는 그다지 오래지 않지만
훼손된 뒤 복원의 손길을 타지 않은 채 남아 있는 희귀한 문화유산이다.
포천 지방은 1801년 신유박해 때 홍교만 프란치스코 사베리오와
그의 아들 홍인 레오의 순교에서 알 수 있듯이 그 믿음의 뿌리가 깊은 곳이다.
신유박해 이후 박해를 피해 다른 지방의 신자들이 포천 지방으로 옮겨와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1900년 초 포천군 포천읍 선단리 해룡마을에 포천 지방 최초의 공소가 설치된 이후
내촌, 맑은 데미, 송우리, 고일리, 오가리, 새묵이 등지에 공소가 설정되었다고 한다.
포천 지방은 1921년경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에서 전교 활동을 하고 있던
손성재 야고보 신부에 의해 사목되다가 그 후 1930년 개성 본당,
1931년부터 1935년까지 행주 본당,
1935년부터 덕정리 본당(현 의정부 주교좌본당)의 관할 지역에 속하였다.
1956년 포천 본당이 설립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포천 일대에 주둔한
6군단 군단장 이한림(가브리엘) 장군의 도움이 컸다.
독실한 신자였던 이한림 장군은 익명의 독지가가 기증한 1,000여 평 대지에
공병 부대의 도움을 받아 성당 건축을 추진하였다.
1955년 11월 60평의 석조 건물로 된 성당과 사제관 20평을 완공하였고,
12월에 춘천 대목구장 퀸란(T. Quinlan, 具仁蘭) 주교의 주례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성당 건축을 전후로 잠시 6군단 조상익(趙相益) 베드로 군종 신부가
포천 신자들의 사목을 담당하다가 1956년 2월 김진하(金瑨河) 요한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함으로써 포천 본당이 설립되었다.
김진하 신부는 곳곳에 흩어져 있는 공소들을 방문하면서 사목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는 한편,
미국 가톨릭 복지협의회 산하 전쟁 구호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한국 전쟁 직후 기아에 허덕이는 주민들의 구제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본당의 발전을 논의하기 위해 사목위원회를 구성하였고,
뒤이어 신심 단체인 성모 성심회를 조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