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핵심을 보다 확실히 하기 위해 '문제제기'와 '반론'의 형식을 취했습니다. 참고로 이 글은 '수원시청 전자게시판'에 올랐던 글임을 밝힙니다.
문제제기자 : 무명 반론자 : 김해영
문제제기 : 한 십 년 전부터 문인들의 작품소개 약력란에 학력 사항이 서서히 없어지기 시작했다. 문학단체 입회원서에도 학력 기재란이 없어져가고 있다. 지금은 개인 작품집을 발간할 때도 저자 약력에 거의 학력을 넣지 않는다. 시인이 시를, 소설가가 소설을, 수필가가 수필을, 동화작가가 동화를 잘 쓰면 됐지 굳이 학력소개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풍조때문이다. 짜장 사실이 그렇다.
반론 : 작가가 자신의 학력을 밝히지 않는 것은 그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창작의 세계에서 어떤 대학의 어떤 과를 졸업한다는 것은 오히려 악재가 된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지적되어 왔던 사항입니다. 따라서 요즘의 작가들은 저마다 자신의 세계관을 가지고 작품을 하려 하기 때문에 굳이 학력을 기재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기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문제제기 : 어느 때고 다 그랬었지만 새 국회가 시작되면 새 ‘국회수첩’이 나온다. 시·도의회, 시·군의회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들의 이력이 소상히 담겨 있는 국회수첩은 소위 오피니언 리더들에게는 필수품으로 통한다. 수첩에는 의원들마다 최대한 학력을 높이느라 적어낸 대학원 수료가 수두룩하다. ‘억지 명예박사’도 많다. 물론 개인의 학력이 많아서 나쁠 건 조금도 없다.
반론 : 정치의 경우는 위의 작가들과는 사정이 다른 것이 사실입니다. 중앙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기존보다 더욱 학력사항에 대해 엄격히 한 것은 우리가 보다 세심하게 살펴야 할 사안입니다. 특히 정치와 관련하여서는 무엇보다도 다양한 체험과 학습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학력이 결코 낮아선 곤란합니다. 최근 유권자의 마음을 사서 당선만 되면 모든 것이 되는 줄 알고 까부는 인사들이 많은데, 이 때문에 정치가 개판이 되는 것입니다. 정치는 타이틀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뭘 알고 까불어야 하는데 개뿔도 모르고 까부니까 나라가 이처럼 혼란한 것입니다.
문제제기 : 얼마 전 청와대 인사수석비서관이 공무원 신규 채용 시 지원서의 학력란을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었다. 참여정부의 인재 등용은 학력, 연령에 얽매이지 않고 사람을 발탁하는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앞으로는 학력차별 없는 인재 등용 정책을 더욱 발전시킬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공무원채용 시험에서 학력제한은 없어진 지 오래다.
반론 : 고래로부터 인사는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추천방식의 등용을 이미 조광조 선생이 시행해 보았지만 결국 오래가지 못했고, 조선시대 500년 동안에 가장 난제로 지적할 수 있는 것도 다름이 아닌 '인사문제'였을 정도니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같은 학자들간에 동인과 서인으로 나누어지고 동인이 다시 남인 북인으로, 서인이 노론 소론으로 나누어진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 '인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인사의 구조가 이런데 학력란을 없앤다고 능력있는 인사가 발탁될 수 있을지, 아니면 학력과 관계없이 능력있는 인사를 등용시킬 수 있는 발상이 과연 성립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공무원시험에서 학력제한이 없다고 하셨는데 정말 없는지 묻고 싶습니다. 진실로 학력제한이 없다고 주장하려면 9급 시험은 고졸수준, 7급은 전문대졸 수준, 고등고시인 5급은 4년제 졸업 수준으로 출제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무학력자가 고등고시를 보고 합격한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존재한다면 제가 흔쾌히 승복하겠습니다. 외부적으로 학력을 기재하지 않을 뿐이지 실재는 엄존하고 있는 것이 바로 학력입니다. 특수한 부분을 가지고 일반화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제기 : 어쨌거나 이런 계획은 한국사회에서 학벌과 학력에 의한 차별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학력란 폐지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다. 그 사람의 인격과 학식을 중요시하지 않고 배경과 학력을 우선 따지는 한국사회에서 학력란을 폐지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의미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반론 : 학력과 학벌을 혼동하는 사람이 많은데, 분명한 것은 학력은 높을수록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하고 학벌은 지양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학력과 학벌을 같은 선상으로 보고 싸잡아 비판하는 태도는 문제의 핵심을 빗나가도 한참 빗나간 것입니다. 왜 학력이 문제가 되야 합니까? 만일 학력이 문제가 된다면 지금 당장 정부가 국민의 학력을 높이기 위해서 수를 헤아리기조차 힘들만큼 막대한 투자를 하는 것 자체를 그만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수원시에서 집행하고 있는 온갖 학력에 대한 비용을 모두 끊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만 학벌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데에는 저도 동의하는 입장입니다. 알게 모르게 학벌을 가지고 농간을 부리는 작자들이 우리 주변 도처에 존재하다보니 정말 욕이 나오는군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에 정리해서 따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문제제기 : 대학을 나왔어도 중·고교 졸업자에 못 미치는 학식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학이나 초등학교 졸업자가 대학, 대학원 졸업자 보다 훨씬 학식이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많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17대 ‘국회 수첩’에 ‘무학’이라고 적은 장향숙 의원을 누가 실력없다고 말 할 수 있겠는가.
반론 : 위에서도 언급이 약간 있었지만 특수한 부분을 가지고 일반화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입니다. 일반적으로 중, 고등학교 나온 사람이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공부한 사람을 따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장향숙 의원의 경우 내가 직접 만나보진 않았지만 그 분을 잘 아는 사람의 귀뜸에 의하면 문사철 포함하여 일만 여권을 섭렵했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그 분의 세계관이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그러나 잠시 그 분을 돌이켜보면 그 분이 쉽게 의정생활을 한다고 듣고 있지 않습니다.(그 분의 지금까지의 평가와는 관계없이) 이는 독학의 결과가 어떤지를 제가 몸으로 체득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어려움을 알고 있습니다.
문제제기 : 예컨대 노무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노 대통령을 ‘고졸 대통령’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상고 졸업자가 사법고시에 합격했다면 정규 법대 졸업자 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할 건 하나도 없는데 굳이 ‘고졸 대통령’이라고 강조하는 데는 동의하기 어렵다.
반론 : 제가 국민학교 졸업수준으로 자격증과 면허증을 매우 많이 취득했었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고등학교 수준의 자격증도 있고 대학수준의 자격증도 일부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국민학교 졸업학력으로 제가 자격증이나 면허증 취득할 때 함께 공부했던 사람들 대다수가 고등학교, 전문대학 심지어는 대학교 졸업한 사람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나는 합격할 때, 그 학력 높은 사람들이 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이들보다 낫다는 얘기인가요? 분명한 것은 국졸은 국졸수준의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갈 뿐이고 고졸은 고졸의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갈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저도 독학으로 법학을 공부해 보았지만 학교에서 습득하는 학력과 법학지식은 별개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두고자 합니다. 간단하게 답하면 국졸로 사법시험 합격하여 판사를 거쳐 국회 법사위원장까지 한 박헌기 선생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대통령이 고졸 대통령은 사실로서의 학력일 뿐이지, 그것을 일반화하여 정규대학을 졸업한 사람보다 낫다라는 식의 주장이야말로 어불성설이요 언어도단인 것입니다.
문제제기 : 이상락 전 의원이 17대 총선 예비후보자 등록 때 학력을 허위기재 했다는 이유로 국회의원직을 박탈당한 것도 모자라 구속 수감된 것은 애석한 일이다. 최종 학력이 초등학교인 그는 사반세기 가까이 빈민운동에 헌신했다. 학력이 아닌 그의 헌신적인 활동이 국회의원 당선을 가능케 했다. 하지만 국회의원 후보로서 학력을 당당하게 밝히고 유권자의 심판을 받았어야 했다는 지적은 백번 옳다. 이상락 전 의원은 24세 때 구로공단의 생산직 노동자로 취직했다. 능력을 인정한 공장장이 사무직으로 전환해 줬는데 한달 만에 학력이 낮다는 이유로 다시 생산직으로 발령 났다. 학력차별의 직접 피해자인 그는 성남에서 노점상·목수로 일했고 포장마차를 끌었지만 초대 성남시의원이 됐고 경기도의원을 세 번이나 역임했다. 빈민운동을 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거지’들에게 “고향인 충남 서천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다”고 속인 게 주워담을 수 없는 말이 되었고, 시의원·도의원 출마 때도 고졸이라고 등록했다. 그는 구로공단 시절 학력 때문에 사무직에서 밀려나자 그 후 내내 학력 콤플렉스에 시달렸다고 한다. 어느 학교를 다녔다는 경력만으로 사람이 평가받거나 불이익을 받는 것은 분명히 문제다. 최근 휴대전화를 이용한 수능시험 부정행위가 우리 사회를 뒤흔든 것도 학력차별의 병폐가 주원인이다. 바라건대 문인들처럼 학력을 내세우지 않고 좋은 글을 쓰면 통하듯이 학력은 적어도 학식과 실력이 있으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하루 빨리 찾아와야 한다.
반론 : 역으로 왜 이렇게 '학력'에 관해 목을 메는 것인가요? 모두들 그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조용한 마음으로 잘 살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불교의 신수대장경의 한 구절을 보면 '止觀(지관)'이란 얘기가 나옵니다. 지관이란 물을 바라보아 자신의 얼굴이 반사되게 보이려면 물이 잔잔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실입니다. 출렁 출렁 흔들리는 물에선 도저히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도 이와 같다고 합니다. 물욕에 흔들려 가지고는 자신의 본 마음을 볼 수 없다고 합니다.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버리고 자신을 바라볼 때 자신의 본 마음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자 조용히 살펴봅시다. 학력이 낮은 것이 사회문제입니까. 아닙니다. 자신의 문제일 뿐입니다. 결코 사회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사람들은 어떤 약점이라도 되는 양 이를 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학력과 관계없이 각자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면 되는 것이지, 이것이 마치 사회적으로 자신을 매장시키는 것처럼 해서는 곤란한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확실히 해야 할 것은 이상락 전의원의 경우 거짓말로 인해서 처벌을 받은 것이 아닌 허위학력을 위해 '공문서를 위조'했다는 것이 문제가 되어 처벌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국회의원이 거짓말을 해서 처벌받은 것이 아니며 학력이 낮은데도 불구하고 고졸로 거짓말을 해서도 아닙니다. 어느 누구든지 '공문서를 위조'하면 당연히 처벌을 받는 그런 사안인 것입니다. 정치인의 거짓말은 단지 도덕성에서 흠결이 될 뿐이지 제도적으로 처벌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입니다.
얘기가 좀 길어졌는데 우리 사회에 문제가 수없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뭐 하나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없을 만큼 문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우리 세대에서 문제를 하나 하나 풀어가지 않을 수 없는 형국입니다. 일신 우일신 한다고 배우고 또 배울 수밖에 없다고 하겠습니다. 좋던 싫던 교학상장하는 마음으로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어려움을 함께 헤쳐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건승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