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반드시 옵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송인수 대표]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사교육비를 다소 줄여보자는 운동이 아니라 선진국과 제 3세계 모든 국가가 이미 누리고 있는 입시고통없는세상,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만들어 보자는 운동입니다.
그런데 그런 세상이 과연 올까요? 그 세상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의 확신입니다. 그리고 그 확신이 어느 정도 강하냐하면, 그 확신에 제 인생과 가족의 삶을 건 것입니다. 제가 미친 사람이 아니라면, 그 이유가 분명히 있지 않을까요?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렇게 복잡한 원인이 난마처럼 얽혀있는데, 제도와 사람의 의식과 환경이 얽히고 섥혀서 도무지 풀 수 없는 괴물과 같은 모순의 핵심이 사교육 문제인데, 어떻게 그것이 풀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오겠냐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다는 것이 내 확신입니다. 그 근거가 무엇이냐구요? 지금부터 짧은 시간 동안 그 이야기를 풀겠습니다.
나는 13년간 현직 교사생활을 하고 13년간 좋은교사운동을 책임져왔습니다. 좋은교사운동은 잃어버린 국민의 신뢰를 교직사회가 회복하며 동시에 교사들이 교사로서의 보람과 긍지를 경험하자는, 일종의 교사를 바꾸는 운동입니다. 2000년 좋은교사운동을 시작했고, 넘치는 일 때문에 2003년 정든 학교를 그만 두고 5년 임기로 40세에 이 운동에 전념했습니다. 우리 운동은 교사를 바꾸는 운동으로서 한가지 우리가 포기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입시 경쟁 구조의 문제는 우리가 어쩔 수 없는 문제이니 포기하겠고, 우리가 풀 수 있는 문제를 중심으로 운동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원평가제도, 사립학교법 개정, 네이스 중재안 타결, 교장공모제 합의안 도출 중재안 제시 등 굵직한 교육계 현안에 기여했습니다. 그리고 약속된 5년이 끝나기 1년 전, 2007년 이사회는 저에게 좋은교사운동 대표를 그만 두면 무엇을 하겠느냐 물었습니다. 저는 출판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출판은 참으로 재미있는 일입니다. 이사회는 반대했습니다. 출판은 너무 정적인 운동이고, 당신의 나이와 운동의 이력에 맞지 않다, 좋은교사운동보다 더 강력한 운동을 하라, 그렇게 주문했습니다. 좋은교사운동보다 더 강력한 운동, 그것은 딱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처음부터 포기했던 ‘입시 문제’를 붙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 일은 아무리 힘써도 성과가 나오지 않는 일이요, 남은 내 인생에 그 일에 삶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2007년 5월 어느 주일, 우리 교회 중고등부 예배 때 저는 선생으로 앉아서 아이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었지요. 아이들은 5월 시험 준비로 피곤에 찌든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중고등부 담당 목사님이 그날 설교 주제로 ‘비전’을 선택하면서, 아이들에게 묻습니다. “얘들아, 공부와 시험 때문에 너희들 힘들지? 잠도 못자고 쉬지도 못하고... 우리나라 입시 문제, 왜 해결이 안되는지 아니? 그분의 질문에 나는 갑자기 속에서 반발이 올라왔습니다. “당신이 무엇을 안다고 15년간 교육운동을 해온 나도 해결 못한 것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하십니까?”
그런데 그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얘들아, 그것은 그 문제를 자신의 것으로 끌어안고 자기 인생을 하나님께 드린 사람이 대한민국 역사상 한명도 없기 때문이야.” 그 말씀이 비수같이 저를 파고 들어왔습니다. 나는 제도의 해법을 찾고 있었는데, 그분은 사람을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나는 사람의 길에 대해 생각했는데, 그분은 하나님의 길을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마음으로부터 동의가 되었습니다. 그분 말대로, 대한민국에서 그런 일을 감당하는 사람과 기관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음 속으로 다른 질문이 하나 더 들어왔습니다. ‘왜 그 사람이 저입니까?’ 그 증거를 주십시오. 그러면 힘들더라도 내가 이 일에 내 인생을 바치겠습니다. 그 증거는 무엇이어야하겠습니까? ‘내일 아침 한끼 식사를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라는 증거는 너무 응답이 쉬운 증거라 안됩니다. 어려운 증거, 들어줄 것 같지 않은 증거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요구했습니다. “저에게 법 하나만 바꾸어주십시오. 휴직제도가 없어서 제가 퇴직했는데 제 후배들이 좋은교사운동을 위해 계속 퇴직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남은 기간이 얼마 되지 않지만 국회를 흔들어 법을 바꾸어 주십시오.” 그렇게 요구하니 개운했습니다.
그러나 2007년 6월은 17대 국회를 6,7개월 남겨둔 시간이었습니다. 대선과 총선으로 하반기 국회는 그 미래를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대선을 위해 의원실을 비우고 의원들이 지방에 내려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그렇게 해는 바뀌어 1월 하반기 어느 날, 저는 어느 교사모임에 강의를 하러 내려가던 길이었습니다. 입시제도 문제 등의 해법을 이야기해달라는 것이었지요. 저는 아직 하늘의 답이 없는 가운데 그 주제를 소화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강의 일정은 잡혔고 그곳으로 내려가는 길, 심야 우등 고속버스에 앉아 강의 제목을 다듬다가 ‘증거 없이도 가야할 길’이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없어도 입시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내 인생을 쏟아붓고 싶다는 마음이 깊었습니다. 그러나 증거가 없으니 얼마나 쓸쓸할까 생각했고, 그 수많은 고통의 세월 동안 나는 어떻게 힘겨운 수고를 버틸까 생각하니 아득했습니다. 그런데 밤 10시 경, 갑자기 제 핸펀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국회 법안심사소위에서 ‘휴직제 개정안 통과!’. 그 길로 일사 천리, 드디어 2008년 2월 18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 법이 통과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 법의 적용을 받고 제 후배가 사무실에 나와 2년 동안 상근을 했습니다. 이분을 보면서 저는 ‘당신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이땅에 허락하겠다는 하늘의 증거’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2008년 6월 12일, 드디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라는 단체가 출범했습니다. 도무지 이땅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운동, 생각만 하면 마음만 아픈 우리 부모들의 소망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단체의 이름으로 표방한 단체가 출범한 것입니다. 저는, 이 단체가 출범했다는 것을 이렇게 말합니다. 마치 400년 이집트 노예생활을 하다가 모세를 통해 이집트에서 해방된 히브리 노예들처럼, 50년간 입시 고통으로 노예생활을 하던 우리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해방을 허락하겠다는 하늘의 선언이라고 말입니다. 저는 그 믿음을 붙들고 일을 시작했고 운동의 힘겹고 어려운 고비 때마다 그 약속을 붙듭니다. 내 힘으로 도무지 풀 수 없는 일이라 낙심할 때 그 약속을 회상하며 힘을 내고, 내 힘을 넘는 위대한 개입이 있을 것이라 낙관하며 살아갑니다.
입시 고통의 문제를 자기 문제로 끌어안고 자기 인생을 던진 그 한 사람이 있음으로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입시 경쟁을 인정해도 불필요하고 해로운 사교육이 있고, 그것을 학원이 가르쳐주지 않기에 우리가 조사해서 알리기 위해 소책자를 제작해서 85만명의 국민들이 받아봤습니다. 외고 입시 고통으로 수많은 아이들이 고액 영어학원을 다녔는데, 외고 입시 정책 대안을 제시하여, 특목고 대비 학원이 무너지는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학원법을 개정하여, 학원비의 부당과다 징수를 막고 투명한 학원을 운영할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사교육 걱정에 휘둘리지 않고 2만명의 시민들이 카페로, 1600명의 시민들이 후원자로 모여 함께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한 사람이 나타나기 전에는 없던 일입니다. 그 한 사람이 있음으로 변화가 생겼습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더 위대한 변화, 더 큰 변화, 종국에는 우리 기성세대가 입시고통, 사교육걱정의 문제를 더 이상 우리 다음세대의 짐으로 넘기지 않고, 우리 세대에 이 불행과 모순의 고리를 끊어내어, 다음 세대에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유산으로 넘겨줄 것을 나는 꿈꾸고 있습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꼭 옵니다. 이것은 약속이 있는 일이며, 그 약속을 증거로 받은 사람이 자기 인생을 던져 일을 하기 때문에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과 확신은 더 확산되고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이야기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제 자랑을 하는 것입니까? 세상의 문제가 풀리는 데는 아이디어와 대안이 아니라,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남북 분단의 문제, 부동산의 문제, 지역 감정과 양극화의 문제.. 왜 풀리지 않습니까? 제도를 바꾸기 어려워서요? 정치가가 나서지 않아서요? 아닙니다. 그 문제를 나의 문제로 끌어안고 내 인생을 던진 사람들이 나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내 삶의 영역에서 우리 시대 모순의 문제, 나의 마음을 괴롭히는 문제를 붙들고 어떤 식이든 내가 대답하라는 것입니다.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 서서 그들의 눈물을 씻어주며, 그 아픔을 함께 하겠다는 결심으로, 나의 복리를 추구하지 않고, 세상의 고통에 답이 되는 인생을 살겠다는 사람을 역사와 세상이 찾고 있습니다. 좋은 강의를 듣고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지금 당신이 깨달은 대로 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