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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임란의사추모백일장 대상,장원수상작품(2017. 6. 3).hwp
◼ 대상 운문부문 국방부장관상 이 세 은 (선덕여자고등학교 제2학년 5반)
하늘
비가 내린다.
나무에 남아있던
잎들의 눈물 바람에
빗소리는 더욱 거세진다.
나는 섬이 된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세상에
떠 있는 섬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에 내가 있다.
나는 새가 된다.
조국을 지키려
하늘 어디든 날아다니는
님 이 원하면 나는 어디든 간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누가 부르지 않아도 서로 달려 나갔던 그 날
하늘 아래 살육만이 가득한 그 들판에서
빨간 꽃이 되어버린 의병들.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고
귓속을 채우는 함성 소리
하늘 가득 빗소리에 묻혀 있다.
◼ 대상 산문부문 전쟁기념관장상 김 수 지 (경산 사동고등학교 제1학년 3반)
삶
‘사는 일, 또는 살아있음.’, ‘목숨 또는 생명.’. 이런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있는 가치 그대로의 삶이란 무엇인가라고 내게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아직 삶이 무엇인지는 감히 말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나는 물처럼 투명한 삶을 살고 싶다. 나는 차별이 정말 싫다. 같은 사람으로 태어나 모두는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이다. 결코 어떤 사람도 누군가를 부당하게 대우할 권리는 없다.
나는 오래된 벽시계 같은 삶을 살고 싶다. 할머니 댁의 30년 된 벽시계는 한 치의 틀림도 없이 한결같게 똑딱똑딱 흘러간다. 부와 명예를 가지게 되거나 혹은 잃게 된다 하더라도 평소처럼 한결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민들레 씨 같은 삶을 살고 싶다. 무언가 하나에 얽매여있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늘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언제든지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간혹 슬퍼 울고 싶을 때는 참지 않고 펑펑 울어도 되는 삶을 살고 싶다.
나는 동화 속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삶을 살고 싶다. 삶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고 늘 아빠가 말했다. 이웃과 맛있는 깻잎 반찬을 나눠먹고, 길을 가다 우는 아이가 있으면 내가 먹으려던 사탕을 아이의 손에 꼭 쥐어 주고 싶다. 그리고 내가 나중에 늙어서 혹은 어떻게든 죽게 된다면, 나의 몸 전부를 기증하고 싶다. 어린아이의 심장이 되어주고, 눈 먼 화가의 눈이 되어주고, 누군가의 아빠의 새로운 간이 되어주고 싶다. 그래서 나는 죽어서도 살아서 지내고 싶다. 죽어서도 잊혀 지지 않고 누군가의 일부로 살아가고 싶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은 큰 것을 바라는 삶이 아니다. 소소한 일상에서 찾는 작은 행복을 모아서 많은 사람들에게 그 행복을 나누어 주며 내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다.
마지막에 나의 삶을 되돌아보았을 때, 내가 소망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 초등,저학년 운문부문 장원 이동호 (동천초등 2/3)
꽃
빨간 아기 볼 같은
진달래꽃
노란 병아리 닮은
민들레
강남 간 제비를 기다리는
제비꽃
하루 종일 해를 따라 다니는
해바라기
매일 엄마 그림자 따라 다니는
나는 엄마 껌 딱지 꽃
❘. 초등,고학년 운문부문 장원 권도현 (금장초등 6/3)
해
추모탑에 비친 해가
처절했던 그날의
뜨거운 충절만큼
눈부시다.
해는 추모탑에 비추어
작은 그늘을 만들어
그분들이 쉬어갈 곳을
만든다.
해가 만든 그늘에
바람이 추모탑을 돌며
살포시 천천히 위로하며
날아간다.
나라를 지킨 의사님들께
그 뜨거운 충절은
빛나는 해와 같았다고
충심을 담는다.
눈부신 해는
나의 감사의 마음을
뜨겁고 따뜻하게 비추며
전한다.
❘. 중등 운문부문 장원 윤현진 (화랑중 3/7)
풀
흙 한 줌 되어 묻히신
나의 할아버지
성묘 가는 길
좁은 샛길 사이 피어난
이슬 머금은 풀들
자꾸 나의 바짓가랑이를 적신다.
할아버지 보고 싶어
풀에게 말을 건다,
잘려 나갈지라도
또 그 자리
여태 그랬던 것처럼
할아버지 옷이 되어
바람 머금고
햇살 품어서
다시 돋아나거라
❘. 고등 운문부문 장원 채송우 (신라공고 3/9)
하늘
하늘이 내게로 온다.
그 푸른빛이 너무 좋아
창가에서 올려다본
나의 하늘,
번개소리 너무 무서워
나무 아래 바라본
나의 하늘,
나의 하늘 너무 그리워
멍하니 바라본
나의 하늘,
나의 하늘을 따라
나의 집은 하늘이 된다.
❘. 대학,일반 운문부문 장원 전진욱 (경주시 현곡면)
조상
별들도 쪽잠을 자던
임진년, 조상들은 꽃이 되었다.
짓밟히고 신음하던 이 땅에도 봄이 왔다고
진달래가 온몸 불 질러 분신 항거중이다.
개나리도 거리마다 쏟아져 노란 횃불을 든다..
농기구를 든 선한 눈빛의 사내들이
우물에서 벌컥벌컥 하늘을 들이키고 있다.
그들은 패랭이꽃, 제비꽃, 별꽃들로
풀잎에 섞여 살다가
분통 터지듯 꽃망울 터뜨리며 일어섰다.
가만 보면 꽃들은 저만의 색으로 횃불을 든다.
빨강, 분홍, 보라색 횃불이
만장처럼 날린다.
일촉즉발의 시간, 꽃들이 살고 있는
산들이 일어서고 들판이 일어섰다.
배불리 한 끼 들고 가라고
이팝 꽃은 제 몸 훌훌 털어
눈물 닮은 쌀알을 쏟아 붓는데
일편단심 백일홍 활활 타오르는 밤
당신들은 분연히 길을 떠난다.
망설임도 미련도 없이
고개를 꺾는 백의의 목련이 되어.
❘. 초등,저학년 산문부문 장원 조민서 (황성초등 2/5)
산
우리 집에는 커다란 산이 우뚝 서 있다. 백두산처럼 높은 산도 아니고, 남산처럼 보물이 많은 산도 아니다. 내가 몸이 아파서 열이 나고 밥도 못 먹고 있으면 밤새 물수건을 이마에 올려 주시기도 하고 따뜻한 꿀물도 만들어 주시는 우리 아빠산이다. 개구쟁이 동생과 놀이터에서 뛰어 놀다가 넘어지기도 하면 번개맨 처럼 나타나서 일으켜 주기도 하시고 내가 잘못하거나 말썽을 피우면 따끔하게 야단도 치신다. 항상 커다란 산이 되어주시는 아빠가 며 칠전 내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왔는데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침대에 누워 계셨다. 난 깜짝 놀라서 “아빠, 어디 아파요?” 하고 물었더니 아빠는 괜찮다고만 하셨다. 나는 아빠의 어깨도 주물러 드리고 아빠 이마에 수건도 올려 드렸다. 항상 우뚝 서있던 아빠가 아프니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다음날 아침 항상 우리를 지켜주시던 번개맨 아빠로 돌아오셨다. 우리들에게 아낌없이 주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는 산처럼 우리가족에게는 새까만 얼굴에 힘센 우리 아빠가 멋진 산인 것 같다. 아빠, 사랑해요!
❘. 초등,고학년 산문부문 장원 변서영 (금장초등 5/3)
옷
드르륵 드르륵
12시가 넘었는데도 우리 엄마는 바쁩니다. 다들 잠든 시간 자르고 다림질하고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리고, ‘엄마는 뭐가 저리 재밌을까? 잠도 안 자고’ 생각하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듭니다.
다음 날 아침 겨우겨우 눈을 뜬 나에게 엄마는 신이 나서 외칩니다.
“이리 와서 빨리 입어봐. ” 자랑스럽게 내민 엄마 손에는 예쁜 원피스가 들려 있습니다. 학교가야 되는데, 귀찮기도 합니다. 그냥 사면 될 텐데... ...
투덜거리며 새 옷을 입는 내 모습을 보고 엄마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 “우리 딸 정말 예쁘네” 나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입니다.
“어제 밤에 만든 거야?” “그럼, 예쁜 옷 빨리 입혀 주고 싶어서 밤새 만들었지”
우리 엄마는 가끔 내 옷을 만들어 주십니다. 예쁜 천을 고르고 이리저리 내 몸에 줄자도 둘러보고, “벌써 이렇게 컸어?” 놀라기도 하면서... ...
내가 귀찮을 텐데 그냥 사 주세요 라고 말하면 엄마는 항상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엄마표 옷을 만들어 주고 싶어.”
오늘도 교실에 들어서니 친구들이 옷 예쁘다고 난리입니다. 자랑스러움에 내 목소리가 커지고.
“이거 우리 엄마가 만들어 준 거야!”
엄마의 사랑으로 온 몸이 따뜻해집니다.
❘. 중등 산문부문 장원 이나영 (서라벌여중 3/2)
소나무
우리는 성품이 올곧고 우직한 사람을 ‘소나무 같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래서인지 내 초등학교의 교목도 소나무였으며 교장선생님께서 연설하실 때도 소나무가 꼭 들어갔다. 그러나 마땅히 ‘소나무’라는 칭호를 받아야 할 사람은 따로 있다. 우리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하신 용사들, 그분들이야말로 진정한 우리나라의 소나무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하고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이것은 기본적인 인간의 생존욕구이다. 그러나 우리의 조상들은 조국을 위해 본능을 이겨내고 목숨을 바쳤다. 조국을 어머니처럼 여기는 마음이 본능을 이기게 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 사람들은 각자를 위하게 되었다. 그중 몇몇은 국가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욕을 하기도 한다. 옛 선조들과 달리 조국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안타깝다.
오늘은 6월3일, 곧 6월6일 현충일이 다가온다. 지금 우리를 이 자리에 있게 한 용사들께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는 백 마디의 말보다 애국정신을 가져보자.
❘. 고등 산문부문 장원 이미래 (의령 의령여고 3/2)
삶
삶, 이런 말은 친구들 끼리 있을 때만 조심스럽게 하는 말이다. 만약 조심성 없게 실수로 어른들이 있는 곳에서 “ 제 삶이란 말이죠....”라고 말했다간 그 순간부터 삶은 끝나버리는 것이다. 나는 어쩐지 좀 억울했다. 열아홉 살, 십 구년의 세월도 아직은 삶을 논하기에 어리다는 것인가? 삶이란 건 사십이 넘으신 학교 선생님이나,
그것보다 더한 칠십 팔세의 우리 할머니쯤은 돼야 쓸 수 있는 말인가 보다. 불공평했다. 물론 나도 나보다 한참 어린 다섯 살 꼬맹이가 아이스크림을 한입 베어 먹고는 “삶은 단게 아닐까?” 라고 하면 쬐끄만게! 하고 꿀밤을 먹여줄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우리는 조금씩, 몰래 삶에 대해 말한다. 어는 날은 친구들과 놀다가 갑자기 삶과 인생에 대한 토론을 한 적이 있었다. 모두 꽤나 오래 산 사람처럼 삶, 생명 더 나아가 죽음까지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한 친구가 소녀들의 삶에 대한 뜨거운 이야기들에 찬물을 끼얹었다.
“삶은 계란이 아닐까? 삶은 계란! 하하하” 모두 그게 뭐냐며 불같이 화를 냈지만, 나는 농담 같은 이 말에 농담을 한 친구보다 더 크게 웃어버렸다. 묵직한 삶, 결코 쉽지 않은 삶들이 점점 부정적이고, 답답하다고 느껴질 때쯤에 터져버린 농담 같은 삶은 정말 ‘나이스 타이밍!’이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로 적절하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고꾸라지며 웃는 우리를 보며 이상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상관없다. 저런 계란을 즐기지 못하는 것들. 다시 진지해질 수 없는 토론에 다들 헤어지고 나는 집으로 왔다. 집에는 아무도 없이 쪽지 한 장만 식탁 위에 놓여 져 있었다.
엄마 동생들이랑 외갓집에 다녀올게.
문단속 잘하고... 이런... 자유다! 나는 쪽지와 함께 다이빙하듯 침대 위로 날아들어 출렁하며 누웠다. 싱글벙글 어쩔 줄을 모르다가 허기에 벌떡 일어나서는 냉장고를 뒤져 굽다 남은 김치부침개 반죽을 꺼냈다. 다 구워진 김치부침개를 생각하니 배는 더 고파졌다. 나는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김치부침개를 굽기 시작했다. 프라이팬에 반죽을 붓고 뒤집으려는데 이상하게 프라이팬에 딱 붙어서는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뒤집개로 지저분하게 긁고 나서야 부침개는 검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완전히 실패라고 말할 수 있는 결과물이었다. 나는 탄내를
없애기 위해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고, 검은 부침개를 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바보도 그런 바보가 없지만, 그때의 난 기름의 용도를 알지 못했었다. 부침개의 탄내를 모두 내보내고,
나는 배고픔과 더불어 요리 공포증까지 생겼다. 더 이상 굽는다는 건 상상도하기 싫었다. 그 순간 왜 인지 삶은 계란이 떠올랐다. 굽는 게 아니라 물을 끓여 삶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다시 가스 불을 켰다. 인터넷에서 찾아 본대로 소금을 넣고 기다렸다. 마침내 물은 끓고 멈췄던 내 요리에 대한 삶도 다시 끓었다. 뒷일은 쉬웠다. 계란이 알아서 끓어줄 것이었다. 계란을 끓는 물속에 넣고 뚜껑을 덮은 나는 한숨을 돌리며 삶이 김치부침개가 아닌 삶은 계란이면 조금 수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몇 분 뒤 계란을 살펴보기 위해 하나를 골라 도마 위에 올려놓고 반으로 잘랐다. 하얗고 단순한 결과는 달리 속은 진하고 노란 노른자가 김치부침개의 검은 색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아름다웠다. 잘 익은 삶은 계란 반쪽을 입 속에 넣으며 나는 따뜻하고 고소한 어떤 느낌에 눈물이 글썽거려졌다. 그때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삶은 계란. 그 말은 정말이지 맞는 말인 듯싶었다. 삶은 계란이었다. 차갑게 식은 결과는 다르게 따뜻한 속 같은 것. 누가 보면 단순 할 듯싶으나 사실은 아름답고, 배가 너무 고픈 순간 고소함으로 배불리 채워주는 삶은 계란 같은 것. 삶은 완전히 계란 같은 것이었다.
❘. 대학,일반 산문부문 장원 윤정혜 (경주시 백률로)
우리 민족
나는 경주시에 있는 한국초등학교 4학년 1반에 다니는 대한이다. 나는 친구들보다 얼굴이 좀 검은 편이다. 그래서 친구들은 나를 ‘튀기’ 혹은 ‘잡종’이라고 부른다.
나의 어머니 고향은 베트남 사이공(호치민)이다. 우리나라처럼 남쪽은 자유주의 진영인 월남과 북쪽은 공산주의 진영인 월맹으로 나눠져 오랫동안 전쟁을 하였는데 미군이 월남전쟁에서 철수하고 난 1975년 4월 30일에 월남이 월맹에 함락당하고 말았다. 그래서 월남의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찾아서 자신이 살던 고국과 고향을 버리고 표류하게 되었다. 그 난민들을 보트피플이라고 불렀다. 그 때 나의 어머니는 할머니의 등에 업혀서 대한민국으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나의 할아버지는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귀신도 때려잡는다는 맹호부대 소속으로 월남전에 참전하셨다. 고엽제 환자로 대구에 있는 보훈병원에 입원해 계시거나 집에서는 항상 누워 계시는 일이 많다.
나는 학교 가기가 정말 싫다. 친구들이 자기들과 피부색이 다르다고 같이 놀아주지도 않고 놀리기만 하니까 항상 나 혼자서 책상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일과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방과 후 집에 와 할아버지께서 병원에 가시고 안 계시면 항상 혼자서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일과이다. 왜 나만 친구들과 다를까? 친구들처럼 피부색이 같아서 함께 공차기도 하고 그네도 타고 놀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나는 내가 싫고 내 집이 싫고 학교도 싫고 친구들도 싫기만 하다.
6월 첫째 일요일 날 여느 때처럼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할아버지께서 황성공원에 가 보자고 하셨다. 항상 누워 계셨는데 지팡이를 짚고 마당에 서 계시는 모습이 여느 때 보다 건강해 보였다.
황성공원 입구 임란의사 추모탑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묵념을 드리시기에 은연중에 나도 따라서 했다. 1592년 4월 14일 왜군이 쳐들어 와 관군도 속수무책으로 밀려서 도성이 함락되고 국왕이 국경으로 몽진하는 위기가 있었는데 그 때 경주성이 함락되자, 이웃 12개 고을 130여개 의사들이 6월9일 반월성 문천가에 모여 죽음으로 적을 물리치자고 결의하여 경주 땅을 지킴은 물론,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전국 각지에서 의병, 승병들이 들고 일어나서 우리의 영토를 지켰는데 이 때 희생한 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해서 이 탑을 세웠다고 하셨다. 우리 민족, 고조선의 건국이념은 홍익인간, 제세이화이며 이는 널리 이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정신이며, 고구려의 다물정신, 신라의 화랑정신, 고려의 팔관회, 조선의 선비 정신이 조상 대대로 뿌리 깊게 흘러내리고 있다. 너의 피 속에는 네 아버지 쪽의 이러한 정신과 엄마 쪽의 자유와 평화를 갈망하는 정신이 함께 어우러져 농축되어 흐르고 있을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있는데 현재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야 나아갈 방향을 알 수 있을 것이고, 자신의 현재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려면 지난 과거 즉, 우리민족의 역사와 자신의 뿌리인 조상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과 목표를 설정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라는 말씀을 해 주셨다.
할아버지가 정말 훌륭하시다고 느꼈고 항상 불만스러웠던 우리 집이 자랑스러웠다. 모든 것이 싫었던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다. 내 별명 ‘튀기’, ‘잡종’이라는 낱말에는 용맹과 화합과 사랑 그리고 평화, 자유가 함축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할아버지를 비롯한 훌륭하신 조상님들의 피를 물려받았으니까 ‘나는 할 수 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할아버지께 약속했다.
서산마루에 붉게 물든 저녁노을이 오늘따라 유난히 곱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