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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조 이성계로 강력히 예상되시는...티무르제국의 황제 아무르 티무르(이랭 티무르)...
페르샤 사람들은... 뿌리깊은 적계심 때문에...그를 이랭 티무르라 했답니다. 절름발이 티무르라 비하해서 호칭했단 거지여...
티무르의 어릴적 얘기는 별반 밝혀진게 없습니다. 이성계가 고려 조정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며...사실상의 고려 황제역활을 할 시기의 행적도 중앙아에선 별반 없습니다.
이를 보면... 티무르는...어릴적엔 서아시아엔 없었던 사람이란 예측이 가능해 지고... 그러나 그의 고향은 중앙아 야인 여진과 홍건적(오구태한국)자리인 몽고령 함길도 자리가 맞는 듣 하고... 알타이서북부 인근에서 차가타이 한국과 대원의 분열을 기회로 세력을 키웠으며... 후엔 재기하는 고려(탕구트?)에 귀화해...대 제국의 토대를 마련한 인물임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티무르의 출생지는...알타이 인근이지만... 그의 아비가 몽골과 타타르계에 쫒겨...고려의 영내로 귀화한게...몽고령 쌍성총관부인 듯하고...
우리가 아는 몽골의 쌍성총관부는...고려와 원나라의 중간 경계라기 보단... 고려영토 깊숙한 지대의 총독부를 의미하며...
고려의 원조 황도인 천산일대를 제압한 원나라가... 현 사천성과 운남성 금사강 일대까지 깊숙히내려와 설치한게 쌍성총관부 같으며... 그 지명은 당나라 때부터 이어온...운남성 보이부(普이府) 전통지명인 "시쌍반납(西雙伴納)"과 관련니 있는듯 하며... 서쌍반납의 서남아어 뜻인...시싼(12..혹은..13 ?)에 유래하며...백제의 분국인 십제(十濟)와 관련이 깊은 듯 도 합니다.
티무르는... 그 후손들이란 우즈벡인들도 모르는 젊어서의 부상으로 살짝 절름발이가 됐답니다.
사스탄(시스탄)전투에서 화살을 맞아 후유증이 생긴 거라 했답니다. 나이와 그 행적이 판박이인 이성계도 그 때 쯤 다리에 화살을 맞습니다.
티무르가 어떻게 화살을 맞게 됐는지...아무런 궤적 설명이 없으니... 이성계의 다리부상 원인인...그 유명한 왜장 아지발도와의 전투인...황산(況山)대첩때의 부상이 그게 아닐까 유추해 봅니다.
사스탄(시스탄)전투인데...어떻게 황산(黃山)과 연결이 돼냐고여...?
황산은...현 산동 부근의 그 황산만이 아닙니다. 왜노들과의 전투기록에 나오는 그 황산(黃山)은...운남성이 있답니다.
현재의 한반도 황산(荒山)전투 유적지는... 실록에 나오던 그 황산(黃山)과는 글자 자체도 틀리고...그 기후나 위치정황도 맞지 않습니다. 너무 무성의한... 엄벙덤벙한 지명 옮기기란 말이 되지여...
운남 사천(四川)을 흐르는...양자강의 동남아 줄기인 금사강(金沙江)...금사강이 사스탄(시스탄)였던 거로 보입니다.
사천성(四川)의 지명은...泗川"으로 나옵니다....沙川"의 오기라는 대목도 가끔 있답니다.
사천(泗川)성을 흐르는...사천(沙川)이...사사천(泗沙川)일 수 있는 것이고... 십제(十濟)의 자리인 시싼판납지역의 "시현(十縣)"을 흐르는 강이였기에...시사천(十沙川)일 수도 있어 보입니다.
뭐로 해석하든... 모래나 자갈이 많은 깊고 높은 골자기를 흐르는...물줄기(川)을 이릅니다.
이성계가 화살을 다리에 맞았던...전투인...사근내역(沙斤乃驛)전투의 "사근내"도... 그"沙"자는 뻔한 것이고... 내(乃)"자 까지도...노젖는 소리 "애"자라고 쓰이기도 한다니... 한자들이 모래가 깔린 강줄기 인 면에선 모두 같을까 합니다....
고구려 시대의 발음으론... 시내(沙乃)는 시내(川)의 음차글 이고...새내...라고도 발음이 되고...원 발음이 "새 노르"라 하니... 고구려말은...몽골어족의 노르(물,바다,나라)와 어원이 통했던 거로 보입니다.
금사천(金沙천)이라 하면... 금이 많이 나는 모래가 깔린 골짜기 물...이 되는데... 사실 이 금사강에선..애들이 사금으로 공기놀이 했을 정도로 고대 사금채취가 번성했었단 얘기도 있고...
저의 전의 "금촌(새말)"의 지명유래 글에서도 얘기했듯...금(金)을 옥새"들의 "새"로도 발음하는 예도 있으니... 금사천은...낭방계 방언으론 새사천...사스천..."시스탄"으로 발음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겠습니다.
짬뽕시켜서 재 해석해 보면...
티무르 제국의 티무르는...젊어서 투란속사니아(고려?)의 새스탄(금사강=쇠스천)에 와 왜구들을 치다 왼쪽 다리에 화살을 맞았으나...치료도 않 하고 계속 싸워 승리를 일군 후... 그 상처가 도져 다리를 살짝 저는 후유증을 평생 얻었을 거란 겁니다.
이성계(티무르?)는 이후, 중원과 한반도를 지배하던 집안의 태조이기에 이런 불경스런 황제의 다리저는 얘기는...후손들이 궂이 실록에 기록하질 않았을 뿐으로 보이고여...
전주이씨의 고향은...알타이 근처의 함길도 이지만...
이성계의 부친이 벼슬을 받았던 쌍성총관부는...시쌍반납지인...새사천(금사강=사스탄)금사강 같으며... 줄이면...금강(金江)...금천(金川)...이 될까 합니다.
계백의 황산벌 전투도 금강...왜구들의 거의 유일한 대륙침략 루트도...금강...신라의 금성도 이 부근 사천이나 성도... 이게 아닐지 싶습니다.
이자춘이 알타이 인근에서 쫒겨 고려에 귀화해 왔던 지대가 현 사천 일대고...
고려와 원의 전쟁 때...원의 총독부인 쌍성총관에서...이자춘과 이성계가 반란을 일으켜 고려의 쌍성지역 회복의 일등공신이 된 이후 전주이씨의 고려내에서의 정식 출범지가 되는 이치이며...
이 유래로...현 사천성 주변 호남의 지명였던 "전주부"의 지명을 딴...전주이씨가 아닐지도 싶습니다.
전주이씨는...함길도의 몽골군벌인 이성계 집안을 한반도 전주로 옮긴 엉터리 위작이 아니였던 겁니다.
함길도의 몽골군벌 이자춘이...뭔가의 말썽으로 고려의 전주부 근처 있는 몽골령 쌍성총관부로 귀화했다... 공민왕의 반원정책을 기화로...쌍성에서 반란을 일으켜 고려에 바치게 된 공로로... 그 쌍성 근처의 지명인 전라지역 전주부가 이조선의 본격적 출범지가 됐단 예기로 해석하면 될 뿐이라 예상됩니다.
역시,구한말엔 사서를 죄다 조작한게 아니라... 사서를 일부러 엉뚱하게 해석했을 뿐이란 얘기가 됩니다.
금사강(金沙江)=새(쇠)사천(金沙川)=사스탄...의 사진을 펌 합니다.
저 정도의 낭떨어지는 되야...티무르(이성계)가....왜놈들을 낭떨어지서 던져 처형해서...개천이 일주일간 씨뻘갯을 조건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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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러고 보니
금사강은 모택동과도 관련이 꽤 깊은 지역이었던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