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향해 던진 물음을 '무엇'에서 '어떻게;로 넓혀가게 된 근세 전기 인식론적 반성이 신하계에 미친 영향을 실로 지대하다. '무엇'이라는 물음에만 충성하던 고전시대에는 있음을 뿌리로 하는 합리주의 전통이나 없음을 꿰뚫어보는 신비주의 전통을 막론하고 오로지 신(神)만이 관건이었다.
그러나 이제, '어떻게'라는 물음으로 '참' 추구의 지평을 넓히게 되면서 그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등장한 앎/모름의 주체로서의 인간이 '참'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지 의미와 비중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기독교 신학에서는 신과 인간의 관계를 규명할 것을 요구하는 데로 이어졌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서방교회 안에서 일어난 교회분열 또는 종교개혁이란 바로 이러한 전환에 의해 촉발된 사건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이제 이러한 사상사적·교회사적 사건을 통해 인간은 앎과 믿음의 주체로 부상하게 되었고, 이로써 새로운 형태의 신학이 도모되었는바 근세 신학의 고백적 신앙관이란 바로 이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종교개혁에 의한 근세 신학은 고전 신학으로부터 '무엇' 물음의 끝자락에서 추려진 합리주의·의지주의·신비주의라는 삼각구도를 유산으로 물려받았는데, 이제 이처럼 근세를 열어준 '어떻게'로의 전환은 그렇게 세 갈래로 엮어내었던 인간의 정신요소들인 지성·의지·감정을 본격적으로 전면에 등장시켰다.
따라서 '어떻게'에 의해 추동된 종교개혁 신학이 그런 세 요소를 반영하는 구호들을 기치로 내걸었던 것은 당연하다.
루터
종교개혁의 선두주자인 마르틴 루터(1483-1548)는 신관과 인간관에서 스코투스와 오캄에 이어지는 의지주의적 성향을 표방한다.
중세기 스콜라주의가 하나님을 철학적으로 이성적으로써 이해하려고 했다면 루터는 말씀과 신앙으로 이해하려 했고, 전자가 신이해의 길을 하나님의 본질 구명에 두었다면 루터는 하나님의 뜻의 파악에 두었다.
하나님이 신앙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철학적 탐구의 지적 호기심의 대상이 되는 것을 일삼는 인간 이성의 영광의 신학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을 통해서 나타난 역리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역사(役事)를 믿는 십자가 신학을 주장한 것이었다.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숨으신 곳은 어둠이니 첫째 이유는 그는 신앙의 수수께끼와 어둠 속에 계시기 때문이요, 둘째 이유는, 그는 가까이 할 수 없는 빛 속에 계시기 때문이다'고 했다.
이렇듯 루터에게는 부가지론적인 소극적 신학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거룩한 것들에 대하여 논란과 단언(斷言)을 담대하게 일삼는 당시의 신학자들의 떠드는 소리와는 대조가 되는 말씀으로써 대주재 하나님 앞에서 취하는 침묵을 권장하였다.
그는 황홀한 신비경에 들어간 모양으로 최대의 침묵과 정심(靜心)으로 신학을 하나는 사람이 진정한 신학자이며 그의 신학자격증은 어떤 대학에서 주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둔스 스코투스(1266-1308)와 스콜라주의자들이 하나님의 심리를 캐내려는 사색적 노력을 공격했다. 루터가, 자연의 계시, 곧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 안에 계신다 할 때 그것은 범신론과 가까워 보이나 루터의 소위 하나님의 편재성이 범신론과 다른 것은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시고 또 어디에도 안 계신다는 역설적인 하나님의 편재를 그가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은 범신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자연물 안에 갇혀서 제한되어 계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오직 말씀 없이는 그를 붙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 계시고 또 믿음이 있는 곳에 그는 베일 속으로 나타나시며 또 그는 스스로 나타나시고자 하시는 곳 즉 그가 역사하시는 곳에 나타나 계시는 것을 말한다.
그가 계시지만 숨어 계시고 나타나실 때는 나타나시는 것이므로 말씀과 신앙이 없는 곳에도 하나님은 어디서는 계신다고 말 할 수 없고 또 설혹 아무데나 계신다 할지라도 말씀과 신앙이 없는 곳에는 그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실제로 하나님은 그런 곳에 계시지 않는 바와 다름이 없다.
하나님은 권세를 가지고 계시지만 단순히 그의 권세를 아무데나 행사하시는 분이 아니며 그의 권세도 말씀과 신앙이 없는 곳에서는 바로 알 길이 없어 그가 권세 행사의 방법으로 임재하심을 알 길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디 계시며 어디에 계시기를 원하실까? 루터의 사상은 하나님의 편재를 시인하면서도 편재를 부인하는 것인데 이 시인과 부인은 곧 특수한 장소에 하나님이 나타나시고 그 특수한 장소는 어디서든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결국 말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특수한 장소는 객체로서의 하나님의 일방적 임재와 현현의 장소라기보다는 그를 찾는 인간의 주체적 태도와 관련되는 것이다. 칼빈에게 있어서도 그러하지만 루터에게도 하나님의 계시가 순전히 객관적인 사건이 다 되는 것이 아니다.
루터는 중세 스콜라주의 합리적인 사색적 신학과 도덕적 경건과 신비주의의 교훈들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본연적인 발휘를 막고 그 결과는 신 중심의 종교를 인간 중심의 종교로 만들고 하나님의 받으실 영광을 인간이 절취하게 되었다고 했다.
스콜라 철학 뿐만아니라 문예부흥을 주도하는 인문주의자들에게 대해서 루터는 단호하게 대처한다.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1466-1536)는 이렇게 말한다.
'자연법이 있었는데 이는 곧 고전시대였었다. 또 행위의 법이 있었는데 이는 곧 모세의 법이었다. 이제는 은혜의 법이 있는데 이는 곧 그리스도 아래서다. 이와같은 역사의 단계를 거쳐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완전으로 이끄셨었다'
에라스무스는 이 완전을 인간의 자유의지로 인하여 달성된다고 했다. 그는 말하기를, '성경은 전반적으로 자유의지를 확인한다. 특히 구약은 우리가 잘못했을 때 진노하시고 우리가 회개할 때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상벌을 말한다. 그런데 사람이 만일 필연적으로 죄를 짓는 다면 하나님께서 벌하실 리가 만무하다. 또 계명을 사람이 지킬 수 있다면 계명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복음은 우리를 불러 힘쓰고 조심하도록 말씀한다. 그런데 만일 우리의 행동이 불가피적으로 되는 것이라면 어떻게 우리는 심판을 받을 것인가? 자연이나 필연성에서는 것은 공로라 부를 수 없다. '
이와같이 에라스무스는 결정론이나 숙명론을 배격하고 생과 종교의 의의를 자유의지에 두었다. 여기에 대해서 루터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하나님의 전능은 인간측의 모든 선택을 배격하며 하나님의 전지는 근본적인 것이라고 본다. 영원부터 하나님은 극히 작은 일까지라도 미리 아시고 그 일을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하나님의 섭리가 있을진대 인간의 자유의지는 없다. 만일 자유의지가 있다면 섭리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성경이 증명하는 바이며 아무도 피하거나 혹은 고칠 수 없는 전능하신 힘으로써 하나님은 창조셨고 움직이시고 또한 앞으로 나가도록 강요하신다. 그리하여 사람은 다 하나님이 주신 힘에 따라 그에게 복종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의 구원문제에 있어서 이성도 무력하다. 사람의 의인(義認)에 있어서 사람의 역할을 전혀 없다. 오직 믿음으로만 된다. 하나님 나라에 머물러 살기 위해서 사람이 할 일이나 꾀할 일은 전혀 없고 오직 그것은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이 우리를 새롭게 하고 보존하는 것이므로 자유의지가 할 몫은 없다. 하나님은 누구보다도 강하시기 때문에 악마나 대적들이 자기를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아 낼 수가 없다'고 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광만이'를 내세우고 '나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일을 가르친다. 즉 나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돌리고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돌리지 않는다. 내 교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만을 내세우고 가르치는 것이며 또 구원 문제에 있어서 내 교리는 사람의 의와 지혜를 정죄한다'고 했다.
스콜라주의자들도 신의 영광을 말했으나 그들은 신을 최고의 축복으로 알고 그 축복을 얻으려는 행복주의의 동기에서 말한 것이다. 그러면 루터는 무엇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 하는가? 그것은, '믿음만으로 혹은 은혜만으로 구원을 받는' 교리가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했다.
하나님은 오직 자신의 영광을 만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통하여 죄인을 구원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기 힘으로 하나님을 찾으며 구원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를 막는 일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결과가 된다.
루터는 회심 이전에 금욕주의적인 그 방법은 결국 스콜라주의자들이 긍정하던 자기애의 그릇된 노력임을 후에 고백한다. "내가 구하면 구할수록 그리하여 하나님에게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나는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이었다. 아니 하나님은 그런 방법으로 우리가 그를 찾도록 허락하지 않으신다."
구약의 율법은 적극적인 의인 반면에 신약의 복음은 피동적인 의로 보았다. 율법은 죄인을 보복하시는 정의이고 복음은 죄인을 용서하시는 의이다.
루터는, 인간의 믿음 자체도 죄의 용서를 받을 만한 토대, 즉 공적이 되지 못하고 다만 경로(經路)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의인(義認)은 믿음으로 얻지만 구극적인 구원은 은혜로 그저 얻는 것이다.
루터의 예정론은 칼빈의 예정론과 심한 대조를 이루는데, 루터는 그리스도 중심의 예정론이라면 칼빈은 하나님 중심의 예정론을 이야기하고 있다. 루터가 그리스도 중심의 예정론을 말하는 이유는, 구원의 예정을 믿고 개인의 행동이 어떻게해도 상관없다는 방종적 태도를 경계하기 위해서였다.
루터는 예정의 사실은 하나님의 계시의 은폐성에 속하는 것과 예정의 유일한 확증은 예수 그리스도임을 밝히면서 인간 이성의 제한으로서 예정론을 소개하고 있다.
칼빈(1509-1564)의 실질적인 원리는 하나님의 영예였는데 칼빈은 이것을 단순히 주관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모든 존재가 다 그것에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 원리에 준해서 그는 항상 성화와 경건의 실천을 권하고 있다.
이와같이 이념과 실제가 변증법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가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이란 실은 정의 실현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즉 하나님의 영광은 선택된 자를 구원하시고 버림받은 자를 멸망케 하시는 그의 정의에 있으면 이런 정의로움이 곧 하나님의 영광의 열쇠라고 보았다.
칼빈의 신론은 그리스도 중심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자 삼위일체 하나님에서부터 시작한다. 즉 하나님 의식이 그의 신학의 전편에 깔려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인간의 세상에 '적응'(Accommodation)하시는 형식으로 일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쪽에서 먼저 자신을 낮추시어 자신을 알리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기를 알려 할 때, 먼저 자기가 하나님 안에 살고 또 움직이는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는 자기의 실존을 바로 이해 할 수 없다. 이러한 신지식과 인간 지식 사이에서 칼빈은 구원론을 펼친다..
신에 관한 지식은 인간에 관한 지식과 관련이 있는데, 즉 인간의 비참한 타락상과 죄악상을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거룩성과 영원성과 완전하심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인간과 유사한 모습으로 연결시키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실존과는 상반되는 모습의 이해하므로서 중세 신학과 차별화했다.
이런 신론에 입각해서 그는 자연신학을 전개한다. 인문주의적 색채가 강한 칼빈은 자연세계에 나타난 하나님에 영광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게 된다. 즉 루터의 '신의 은폐성'을 택하기 보다는 자신는 자연세계의 나타난 '신의 주권성'을 택했다.
그 이유는, 자연에 나타난 신지식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아니라 일단 신앙을 가지고 구원된 자들에게는 피조물로서 마땅히 자연을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외면할 수 없는 입장에 놓여 있음을 분명히 일러주려 하기 때문이다.
칼빈에게 있어 '섭리'라는 것은 단순히 예지하시거나 허락하신다는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일이 생기게 해서 반드시 그의 목적대로 성취되게 하시는 활동으로 보았다. 즉 섭리는 예정하신 것의 실현을 위한 활동이다.
따라서 우발적 사변(accident)이나 운명 같은 것은 섭리의 뜻과는 반대되는 것이라고 했다. 칼빈은 스토아주의 철학에서 말하는 운명개념을 설명하기를, 그것은 자연 안에 포함된 영구적인 연쇄와 인과(因果)의 복잡한 연쇄에서 일어나는 한 필연성을 두고 말할 뿐이라고 한다.
그런데 스토아주의가 말하는 운명과 칼빈이 말하는 섭리가 그것을 받는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실제로 다른 점이 무엇인지 문제가 된다. 칼빈은 하나님 섭리라 할지라도 그것에 좌우되는 인간에게 있어 그 섭리가 운명적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운명을 설명하여 말하기를 운명은 세계와 인류를 지배하거나 모든 것을 아무렇게나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 이론은 섭리와 운명의 구별을 말하기보다는 단전으로 운명이란 것은 없다는 운명 부정론을 말하는 것이라 하겠다.
실제로 칼빈의 섭리론을 보면, 운명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으니 그 첫째 이유는 그는 우연과 운명을 동의어로 간주하게 때문이다. 그의 생각에는 우연이란 것은 없으니 운명이 있을 수 없다.
둘째, 그는 자연의 인과적인 필연을 즉 '자연의 맹목적인 본능'을 부인하기 때문이다. 즉 그는 자연의 법칙이 기계적으로 각 부분마다 작용해서 운동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늘 새롭게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운행된다고 생각한다.
자연의 모든 존재는 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혜택을 주시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데 하나님은 그 도구들에게 다 맡기시고 방임하시지 않으신다는 말이다. 이것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섭리론과 동일하다.
이런 의미에서 악(惡) 자체도 하나님의 섭리의 원외(員外)에서 자전(自轉)할 수 없다는 것이 칼빈의 생각이다. 그는 말하기를, '무능한 그리스도가 무참한 사형을 받는 것은 인간이 저지른 악행인데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었느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악한 의지들을 조성시키시지 않고 다만 그가 원하는 대로 그 악한 의지를 이용하신다'고 했다.
루터에 비해서 칼빈은, 인간은 누구나 의지의 자유 즉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자유의지는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선행과 악행을 의지의 힘으로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는 교부들을 따라서 자유의지를 세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는 필연으로부터의 자유, 둘째, 죄로부터 자유, 셋째는 불행으로부터의 자유라고 한다. 첫째 것은 사람의 본성에 내재한 것이므로 결코 빼앗을 수 없다. 그러나 다른 두 가지는 죄로 인해 잃어 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필연과 강제를 혼동해서는 안된다 고 말한다. 인간 의지의 자유는 필연적 악에서 떠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은 그것을 불가능하게 했다. 이 때문에 인간의 의지는 부자유하다.
사람은 자유의지를 악용해서 자기와 및 자기의 의지 모두를 잃어 버렸다. 결국 자유의지는 노예가 되어서 더 이상 의를 행할 수 없게 되었다. 의지의 자유가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해방을 기다리는 노예의지 상태로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율법으로부터 자유로 주어지는 내면적 자유는, 율법의 멍에를 벗은 양심이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의지의 자유가 되었다. 그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그 분이 인도하는 대로 뒤를 따른다.
그리고 하나님의 법을 지키기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고 보았다. 이점이 칼빈의 자유가 율법폐기론자들의 주장과 다른 점이다. 즉 자발적 순종에 이르는 자유가 율법으로부터 자유 다음에 오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율법을 지킬 수 있는 힘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칼빈은 그 다음으로 외면적 자유를 말하는데, 외면적 자유는 영적 삶보다는 지상의 삶에 속한 것으로 그 자체로는 선하지도 악하지 않은 것들과 관련한다.
외면적 자유에는 섭리와 아디아포라 αδι αφορα(무해무익한 중립적인 것)에서의 자유가 있다. 성경에서 금하거나 명백하게 명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자유인데 이런 가치중립적인 일에 있어서 자유하게 능력을 알아서 쓸데없이 미신에 빠지는 일을 방지하고 균형 잡힌 중용적 성격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자율적인 행동보다 앞선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삶을 결정론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섭리를 통해 모든 행동에서 내면적 자유를 경험할 수 있게 되는 원리로 보았다.
칼빈에게 있어 성도의 자유의 목적은 하나님과 화목하고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또 질서를 세우고 유지하기 위해 주어졌다고 보았다. 즉 자유를 얻었다고 해서 하나님이 세우신 이 세상 질서를 파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칼빈의 예정론은 영생과 영멸의 이중(二重)으로 된 것이다. 이것을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예지와 무리하게 일치시켜려 하는 과오를 범한다. 예지와 예정은 반드시 병행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에게는 과거도 미래도 없고 다만 현재만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미래에 될 것의 예지란 무의미한 것이다.
칼빈은 잠언 16:4에 나오는 말씀을 인용한다. "여호와께서는 온갖 것을 그 용도에 따라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칼빈의 구원론에게 있어 중보자의 기능보다, 중보자 되시는 예수님의 본질을 토대로 하고 있다.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 이 양성의 연합을 중요시한다. 니사의 그레고리의 신학대로, '속성의 상통'으로서 인성과 신성을 설명한다.
즉 칼빈은, 예수님의 육신 됨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인간 됨에 관심을 구원론을 전개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을 이기고 승리한 것을 성령의 도움으로 보지 않고 그의 신성의 결과라고 보고 있다.
이는 중보자는 불순종한 아담의 자리에서, 순종을 통해 공의만족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인간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발언은 중세의 안셀무스의 발언까지 그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인간의 구원된 상태란, 타락한 것을 원상태로 회복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그분이 우리 성도를 바닥차원에서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린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칼빈이 말하는 예수님의 인성이란 아담이 타락 전 몸인가 아니면 타락 후의 몸인가?
칼빈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죽음 앞에서 매우 불안해했고,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를 두려워하고 있음을 보면서, 타락 후 몸인 것을 인정한다. 이런 이유에서 그는 예수님이 타락 전의 몸을 입고 왔다고 주장하는 오시안더의 신학에 반대하는 것이다.
칼빈시대의 논적 오시안더에 의하면, 아담은 비록 타락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리스도는 오셔야만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담이 첫 아담이 아니라 예수님이 첫아담이 된다는 주장을 하여서 칼빈의 공격을 받았다.
하지만 칼빈은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날 때는 오염되지 않는 타락전 몸을 언급한다. 어쨌거나 그의 관심은 예수님의 신성에 가있다.
칼빈의 교회론은 '두 왕국론'로 기초로 전개된다. 그리고 그의 두 왕국론은, 예수님의 삼중직(왕직, 제사장, 선지자직) 중에서 왕직을 제일 우선으로 간주함을 전제로 한다. 이 왕국론으로 인해 그는 신정정치(神政政治를 실시하고자 한다. 이 신정정치를 함으로서 성도들이 이 땅에서 이원론에 빠지지 않는다고 보았다.
칼빈에 의하면, 하나님의 형상이란 영혼 안에 들어있는데, 이는 실체적(實體的)인 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와 그리고 자연과의 바른 관계를 의미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 말은 하나님의 형상이 곧 사람의 영혼이라는 말과 다르다. 칼빈은 하나님의 형상을 우연한(偶然)한 축복이라고도 하였는데 고귀한 신상이 인간의 소유물이 되어 인간의 교만의 재료가 될 수 없음을 말한다.
또 칼빈은 신상(神像)을 내적인 축복이라고 말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영혼이 자기의 영광을 반사할 수 있는 거울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조성하셨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신상은 영혼의 일종의 미적 장식품이나 혹은 부여(附與)물과 같은 모양으로 영혼이 소유할 수 있지 본래적으로 영혼의 일부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영혼이 반사하는 것은 초자연적인 은사이며 그것은 하나님과의 교통에서 온 것이라고 보았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이란 영혼처럼 언제나 인간 안에 보유되고 있는 고정적인 것이 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다.
칼빈의 칭의는, 그 칭의, 즉 그리스도의 의(義)의 전가보다, 경건한 삶에 대한 적용에 더 관심을 갖고 그 의가 인간 안에서 일으키는 변화에 더 관심을 둔 칭의개념이다.
그렇다고해서 칼빈은 성화를 칭의 결과로 보지 않았다. 성화는 칭의가 흘러 나오게 그 원천에서 흘러나온다고 했다. 즉 성화의 원천이 칭의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 원천은 곧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칼빈은, 칭의와 성화를 놓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시각이 상호 다른데, 칭의를 말할 때는, 죄인이 그리스도의 의(義)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의롭다고 선언받는다고 할 때 보는 그리스도인 반면에, 성화를 말할 때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부활하신 분으로, 곧 육을 죽이시고 중생시키는 분으로서 그리스도를 본다.
칼빈은 성화와 관련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는데,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아지는 것을, 파괴된 하나님 형상을 회복하는 것으로 여기는 동시에 그렇게 되는 것을 성화의 목표로 보기 때문이다.
칼빈은 칭의와 성화는 본래 다 신앙에서 생기는 것으므로 이 두 가지는 시간적으로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믿음으로 거저 의롭다 함을 받을 때에 동시에 거룩한 생활 없이 되는 것이 아니고 이 둘은 내적으로 나눌 수 없이 연결되어 있으므로 이 둘을 나누려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찢어 나누려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 둘 중의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고 또 아주 별개의 것으로 독립할 수도 없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곳에는 그에게서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얻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그와 연합될 때 우리가 완전하게 의로워지거나 또는 완전하게 거룩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통회와 회개와 정화를 통한 투쟁이다. 그리고 말하기를, 성화가 진행되면 될 수록 더욱 완전한 의에 이르기 어려움을 깨닫고 하나님의 순수한 자비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칼빈은 성화를 위한 투쟁과 노력이 불필요하다고는 말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인 노력을 요망한다.
성례에 대한 종교개혁자들의 각 견해
현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성례론은 여전히 트렌트 공의회(1544-1563)의 주장을 간직하고 있다. 트렌트 공의회는 일곱 가지 성례(세례, 견진, 성찬, 고해, 종부. 임직, 혼배)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제정되었고 새 율법(신약)의 성례로 받아들여지며, 구원에 필수적인 것임을 밝힌다.
인간은 이 성례들을 통해 의인의 은총을 받으며, 성례 자체의 능력과 힘을 방해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은총은 언제든지 수여된다고 주장한다.
이미 어거스틴은 성례란 말을 다양한 의미로 사용했고, 특히 거룩한 것의 표식으로 이해했다. 어거스틴은 이러한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표식을, '보이지 않는 거룩한 것의 형상'으로 수용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계시적인 성격'을 강조했다.
성례전은 그리스도의 사역 자체이며 집례자에 의해 베풀어지지만 집례자 자신과는 무관하게 그 효력을 발휘한다. 이런 점에서 어거스틴은 영적 자격이 없는 집례자에 의해 베풀어진 성례의 무효를 부르짖던 도나티스트를 정죄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어거스틴의 입장을 받아들이고 더 발전시켰다. 그의 시도는 일차적으로 무엇이 이러한 외적 표식을 성례로 만드는가에 집중된다.
그에 따르면 성육신은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나오게 하는 수단이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죽음, 부활, 승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예전을 통해 계속되며, 성례의 효력을 발휘할 뿐 만아니라 효과를 일으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세례의 행위(산출 효과)로부터, 세례는 은총을 진정으로 그리고 실제로 일으킨다. 성례에 의해 야기되는 은총으로부터 덕과 영적 은사가 영혼에 주입되기 시작하며, 여기서 영혼의 본질은 완전하게 되어 간다.
아퀴나스의 성례전적 신학의 입장을 세 가지 차원에서 정리해 본다면, 첫째, 성례는 이전에 지나간 것,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역사적 수난을 회상하게 하며, 둘째, 성례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통해 발생된 것을 제시해주는 기능을 가진다.
마지막으로 성례는 미래의 영광을 예견하는 예언적인 기능이 있는데, 그리스도는 그분의 수난을 통해 우리를 죄로부터 해방시키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향한 봉헌과 희생을 통해 기독교 예전을 시작하고 완성한다.
그런데 루터의 생각은 다르다. 루터는 카톨릭의 입장, 즉 '성례를 방해하지 않는 자들에게 성례은 은총을 수여한다'라는 주장을 반박하면서 자신의 성례전적 신학을 펼친다.
루터에게서 성례란 인간에 의해 집례되는 업적이 아니라 복음으로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 신 은총의 선물이다.
인간의 신앙이 나의 노력이나 업적이 아니라, 성령의 선물이라는 점에서, 참된 믿음은 은총의 선물을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받아들일 때만 의미가 있다. 즉 성례 자체가 은총을 야기한다기보다는 하나님 자신이 성령을 통해, 성례를 인간의 구원을 위한 약속의 선물로 효과있게 한다는 것이다.
루터의 종교개혁의 출발점은 토마스 아퀴나스 이후 루터 당시 심하게 왜곡되고 변질된 스콜라주의 신학의 마술적인 성례신앙을 비판하고, 다른 한편 하나님의 약속으로서 성례의 의미와 가치를 무시한 츠빙글리-재침례파적 '인간신앙중심주의자들'과의 대결로 요약될 수 있다.
로마 카톨릭의 성례 교의에 의하면, 오직 믿음으로 은혜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행해짐의 행함'으로만 은혜가 주어진다고 한다. 이 '행해짐의 행함 ex opere operato'은 성례의 객관적 효험을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낸 용어이다. 종교개혁자들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떨어뜨린다고 믿는 것에 비해서, 이들은 완전한 성례 의식의 능력으로 은혜를 조성해 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즉 성례는 은혜의 상징만이 아니라 은혜의 원인이라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성례없이 믿음으로 은혜나 의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에게는 단호하게 파문을 내려야 마땅하다고 보고 있다.
루터의 입장을 정해 보면, 루터는 우선 스콜라신학의 성만찬 이해를 반박하면서, '성만찬이 아니라 믿음이 성만찬을 정당화한다'고 있다. 예를 들어 스콜라주의의 핵심교리인 '완료된 은총의 업적'은 성례란 은총의 효력을 일으키는 표식으로서 집례자에 의해 집행된 예전의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은총을 중재한다.
루터에게는 집례자의 영적 상태와는 무관하게 은총을 야기하는 신약의 성례나, 그런가하면 집례자의 영적 상태에 좌우되고 비례하는 구약의 성례는 공허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보았다. 루터는 신앙을 인간의 업적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신앙은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에 속한다. 만일 신앙이 인간의 업적으로 이해된다면 더 나아가 신앙과 성례와의 관계가 하나님의 행동에 속한다는 사실을 간과해 버린다면 루터의 종교개혁의 핵심인 '믿음으로만'이라는 인의론은 루터가 평생에 걸쳐 투쟁한 공적주의의 한 항목으로 전락해 버릴 수 있다.
루터는 스콜라적인 성례를 이단적인 것으로 비판했다. 루터가 이해한 신앙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동인 성례와의 연관에서만 구체화된다. 재침례파들과의 논쟁에서도 이 사실을 명료화했다.
이들은 신앙을 어떤 인간적인 영적 노력으로 파악함으로써, 성례 안에 와 계신 하나님의 약속을 무시했을 때, 루터는 신앙을 '영적주의화'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성례전화' 하려고 했다.
루터에게서 신앙의 인간적이고 주관적인 측면은, 그것이 신앙의 객관적이며 성례전적 측면과의 만남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루터는 재침례파들과의 논쟁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것이 아무리 외형적인 것이라고 할지라도, 여기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이 들어 있고, 이 말씀과 명령이 세례를 제정하고 수립하고 확인한다. 하나님이 제정하시고 명령하신 것은 무용하지 않다. 그것은 심지어 외관상 지푸라기처럼 보일지라도 매우 소중한 것이다'고 말이다.
루터의 관심은 성례를 복음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데 있었다. 그리스도가 임재하시고 신앙과 사랑이 성령을 통해 가능하게 되는 것처럼, 성령은 특별히 말씀의 선포와 두 가지 성례(세례와 성만찬)에서 그리스도를 드러낸다.
성례는 루터에게서 율법이냐, 복음이냐, 또는 업적이냐 신앙이냐 하는 문제와 맞물려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적인 형식과 질료의 개념이 아니라 루터에게서 성례의 말씀은 약속으로서 복음 자체다.
모든 성례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그 중심에 서 있고, 이 약속이 성례를 성례되게 하며 신앙은 따라서 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전적인 순종이요 신뢰를 말한다.
'약속-신앙'의 연관성은 세례와 성만찬을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성의 한 부분으로 확인해 주며, 이것은 믿음으로 받는 자에게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믿지 않고 거부하는 자들에게 심판을 가져온다.
떡과 포도주 아래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와의 실제적인 연합은 세례받은 자, 즉 세례 속에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연합된 자들에게 주어진다. 약속을 근거로 그리스도의 몸의 편재성이 가능해진다.
루터가 보기에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단순한 영적 참여를 말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에 실제적인 참여를 말했다고 했다. '이것이 나의 몸'이라는 표현은 그리스도가 직접 하신 말씀이다.
누구도 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가감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츠빙글리의 입장은 루터에 의하면 431년 에베소 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된 네스토리안주의에 불과하다고 했다.
네스토리우스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적 요소가 그의 인간적 본성 가운데서 발견될 수 없으며, 그리스도에게 신적 요소가 나타났던 것은 오로지 로고스가 자신을 다윗의 자손과 연합시켰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는 이 연합이 비록 그리스도의 탄생 시에 발생했어도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어머니'라고 당대의 신학을 비판하였다.
이렇게하여 그는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은 아폴리나리우스나 아리우스와 같인 혼합되더어슨 안 된다고 믿었다. 인간 마리아에서 난 것은 인간이며 신성은 아니지만 신성과 결합되어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당시 알렉산드리아의 학자들은 네스토리우스가 마리아의 위상을 손상시킬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인성을 강조하고 신성을 부인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양성을 불가피하게 두 인격으로 분리할 수 밖에 없었다.
루터는 자신의 속성의 교류를 다음처럼 말한다. '신성과 인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인격이다. 성경은 인격적인 본체의 연합을 근거로 인성에 있는 모든 것이 신성에 있으며 그 역도 마찬가지임을 말한다'고.
그리스도의 실재적 임재에 관한 한 루터와 칼빈의 차이점은 지나치게 강조되어 왔다. 일반적으로 루터란들은 칼빈의 성만찬 신학을 취리히 합의성를 통해 이해해왔다. 칼빈 역시 칼케돈 신조의 입장을 고수하면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통일성을 주장한다.
츠빙글리와는 달리, 칼빈은 속성의 교류 자체를 부인한 적이 없다. 그리스도의 인성을 지나치게 강조했던 유티케스Eutyches(5세기 사람)주의자들을 비판하면서, 칼빈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성으로부터 보존하려고 했다.
유티케스는 성육하신 하나님의 로고스의 한 성품에 기초하여 그리스도께서 인격의 통일을 위해 친히 인간이 되신 후로는 오직 하나의 본성만을 가지졌다고 주장했다. 물론 성육신 이 전의 그리스도 안에는 두 본성이 있었다고 보았다. 즉 인성을 신성에 흡수시킨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그리스도가 진정한 인간도 아니요 신도 아닌 일종의 제3의 존재로 신인 혼합의 단일성 뿐임을 말하는 것이다.
칼빈에게 있어,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는 여전히 영원한 아들로서 선재하신다. 선재의 그리스도와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가 서로 다른 로고스를 말하지는 않지만, 그리스도의 신성은 성육신에도 불구하고 제한되지 않는다.
이른바 이후 개혁교회의 기독론의 대명사로 불리워지는 '유한한 무한을 포용하지 못한다'는 명제는 칼빈의 성령론을 간과한 나머지 지나친 하나님의 초월성과 주권성으로 해석되어온 감이 있다.
물론 루터는 칼빈과는 달리 1528년 '성만찬 고백'에서 유티케스주의자라는 혐의를 받을 정도로 그리스도의 한 인격 안에서 신성와 인성의 통일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칼빈의 기독론을 주의 깊게 살펴볼 때 이런 질문이 제기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본체적 연합(선재의 그리스도와 성육신한 그리스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성령의 활동이다. 칼빈이 속성의 교류를-루터와 교회 교부들과는 달리- 존재론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성령론적으로 통합시킨 것은 세르베투스와의 논쟁을 거치면서였다.
칼빈의 '유한은 무한을 포용하지 못한다'라는 명제는 츠빙글리의 영향을 받은 이후이 개혁교회의 주장처럼,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엄격한 분리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과 보혈에 실제로 참여하게 하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다. 이것은 단순한 영적 임재가 아니라 성령이 우리의 마음을 들어 올려 신비하게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에게 연합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칼빈은 츠빙글리의 지나친 신앙의 주관적인 측면을 비판했고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했다. 칼빈은 루터와 마찬가지로 신앙을 성령의 선물로 보았고, 이 신앙은 말씀과 성례를 지향한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이라면, 우리는 성례를 거절할 권리가 없다. 단순한 영적 임재만을 인정하는 재침례파들과 논쟁을 거치면서 칼빈은 성만찬의 교제에서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영뿐만 아니라 그분의 몸과 보혈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사실 칼빈은 그리스도의 임재에 대한 실재주의적 견해를 포기한 적이 없다. 고린도전서 11:24절을 주석하면서 칼빈은 다음처럼 강조한 바가 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한 희생이라는 사실을 믿을 때 우리는 그분을 소유한다. 그런가 하면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주하시고 우리와 하나가 되며, 또한 우리가 그분의 지체가 될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소유한다. 간단히 말해 그것은 그리스도의 삶과 본체 안에서 구분과 통합될 때 그러하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그분의 죽음과 부활의 유익함을 줄 뿐만 아니라 그분이 고난 당하시고 부활하신 자신의 육체를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의 몸이 우리에게 실제로 주어진다고 결론을 내린다. 다시 말해 그것은 참된 것이며 우리의 영혼에 건강한 영적 음식이다'라고 했다.
이러한 칼빈의 진술에서 우리는 쉽게 루터와의 친화력을 감지할 수 있다. 적어도 칼빈은 주의 만찬의 신비에 관한 한 츠빙글리가 아니라 루터와의 동일선상에 서 있다.
루터와 칼빈의 차이는 특히 떡과 포도주의 임재하는 방식에 근거한다. 루터에게는 문자적 이해방식- 이것은 나의 몸-은 칼빈의 성례전적 방식에 비해 두드러진다. 문제는 '성만찬의 내용이 아니라 이해의 방식'이었다.
칼빈의 성례전적 방식의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만찬 요소와의 동일성을 넘어 간다. 그리스도의 몸이 떡이라면, 떡은 곧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칼빈은 루터란과는 달리 이러한 동일성을 거절한다.
예를 들어 비둘기는 성령의 임재에 대한 확실한 표식이 될 수 있지만 그러나 비둘기 자체가 성령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루터란들의 공격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루터란들은 몸의 본체가 곧 질료의 본질과 동일시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성만찬의 외적 요소는 그리스도의 본체와 동일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회관에 있어 루터와 칼빈의 교회관의 차이는, 루터는 창조적 정신을 가졌고, 칼빈은 조직적 정신을 가졌다는데 있다. 뿐만아니라 루터는 불가견적인 교회로 그리스도와의 통일을 모색한 것에 비해서 칼빈은 가견적인 교회를 강조해서 기강을 잡으려고 했다.
하나님이 자기의 성전 곧 교회를 인정하시는 곳은 자기의 말씀이 선포되어 들리며 그 말씀을 지키는 곳이다. 그곳에만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신다.
하나님이 계시는 교회가 사람이나 장소에 붙어 있거나 혹은 외부적인 의식의 집행에 국한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터무니 없는 가상이다 고 칼빈은 말하고 있다.
어디든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들리는 그곳에 하나님의 교회가 있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했다. 칼빈이 말씀과 교회를 결부시키고 그 교회의 표지로서의 말씀의 강조는 루터와 마찬가지다. 또한 루터와 같이 말씀과 성령을 결부시킨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너희 자신의 경험을 살려서 말씀 없이 성령을 자랑하는 일이 불합리한 것은, 성령없이 말씀만 내세우는 일이 어리석은 것과 마찬가지임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제도적인 교회 권위를 강조하는 칼빈은 성례전이나 목회직과 마찬가지로 말씀도 교회에 속한다고 말한다는 것은 루터와의 다른 점이다. 그것은, 참된 성경과 거짓 성경을 구분하는 권한과 권위가 교회에 속했으며 또한 교회는 성경을 해석하며 성경에서 교리를 탐구하며 들추려는 권한과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또한 그리스도가 사도들을 통하고 감독들의 손을 통하여 내려온 전통들을 교회가 가지고 있는데 유아 세례를 그 중의 하나라고 말함으로써 전통과 그 전통을 보존하고 있는 교회의 권위를 말했다.
또 지상에서 맬 수도 있고 풀 수도 있는 열쇠의 권한도 교회에 속하며 그것이 교회의 권위를 형성시키며 또 교회가 재판 할 수 있는 권한도 가지며 성령의 지시에 따르는 합법적인 회의도 교회의 권위에 속한다고 말한다.
그는 성직자의 선택의 방법으로서 교회 회중 또는 성직자들 혹은 어떤 개인의 권위에 의하는 세 가지 길을 말하고 누구든지 합당한 사람이 선택되고 또 회중의 동의를 얻으면 합적인 성직자가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선거에 있어서 다른 목사들이 반드시 주관하여 대중이 온당치 못한 일을 못하도록 감시할 것을 말한다. 이것은 그의 귀족주의적 과두 정치의 공화국 정치 사상과도 상통하는 교회 정치론이다. 이것은 만인성직론을 토대로 하여 교회 회중의 권한을 강조한 루터의 견해와 차이가 있다.
칼빈은 목사직의 계급적 구별을 정죄하지 않고 오히려 필요한 것으로 말한다. 중세의 교황 제도의 실패는 교인들과 교회의 머리되는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그르친 데 있었다. 즉 목회자가 그리스도의 자리를 빼앗으려 하지 않고 온당한 관계를 보존하는 한 그는 그리스도의 권위를 부여받는 것으로 보았다.
칼빈은 초대 교회의 교회 직분을 설명하여 사도가 제일 높은 자리에, 그 아래 예언자, 전도자 그리고 교사가 제일 낮은 것으로 말하였다. 그런데 이제 칼빈은 모사를 사도의 자리에 두고, 교사, 장로, 집사의 순서로 교회 직분의 계급을 정하였다.
교사를 초대교회의 예언자에 비한다. 칼빈처럼 교회학에 있어 목사직을 크게 높은 사람이 없다. 하늘의 교리의 선포가 목사에게 맡겨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비해서 루터는, 세례 받은 크리스천은 차별 없이 다 성직자이어서 그리스도의 사역자며 하나님의 신비한 은혜를 나눠 주는 자들로서, 하나님의 말씀과 모든 성례전에 관하여 다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성직자란 것은 말씀의 사역자, 즉 율법이 아니라 복음의 사역자 이외는 다른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루터는 한편으로 교회의 사제직을 인정한다. 그리고 이 사제직은 평신도와 구별되는 것으로서 말씀을 선포하며 교인들의 영적 지도와 보호를 위하여 전적으로 몸 바친 주의 종으로서 사제직 곧 목사의 직으로 그는 인정한다.
사제(priest)란 말은 희랍어 'Presbyteros', 즉 연장자라는 말, 즉 장로라는 어원을 가진 것으로 해석하고, 루터는 젊은이보다는 연노자가 교회를 보다 더 잘 다스린다고 말한다.
그리고 감독과 장로를 동의어로 해석한다. 그러면서도 사제는 어원상 연령을 암시하는 말이지 계급을 암시하는 명칭이 아니며 이 명칭이 사람을 신령하게 만들거나 또는 목사를 만는 것이 아니라 말한다. 그러나 설교나 성례전 집행은 목사에게 일임해야 한다고 한다.
루터는 교회의 제도상 목사의 직을 인정하면서도 중세적인 성직자 우월성을 철저히 부인하려고 한다. 목사가 평신도보다 더 신령하다거나 구원의 보장이 더 확실하다는 영적계급 사상을 철폐하는 것이다. 목사도 교회나 신도들을 섬기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종인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있는 곳에는 어디나 하나님의 백성이 있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츠빙글리(1484-1531)의 신학 이론은 무엇인가?
흔히 츠빙글리는 그의 '섭리론'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스콜라주의적으로 사고한다는 비판적 평가를 받아 왔다. 그의 사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철학적 논리와 범신론적인 방식으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츠빙글리의 사고를 관통하는 것은 루터처럼 하나님의 계시인 그리스도론에서 출발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초월성과 섭리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한다. 다시 말해, '예정과 자유의지와 공로의 전반적인 운영은 섭리에 의존한다'
루터 역시 예정론을 거절하진 않지만, 그의 예정의 문제를 십자가 신학을 통해 해결하려고했다. 그러나 츠빙글리는 하나님의 섭리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했고, 섭리와 예정을 다루는 방식에서 그는 성경 이외에도 스콜라주의와 인문주의적 개념들을 사용한다.
이러한 점이 츠빙글리가 존재의 유비에 접근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즉 하나님의 초월성과 섭리를 다루는 데 있어 성경 이외에 어거스틴과 세네카를 중요하게 이용한다.
1526년 이후부터 예정론은 츠빙글리 사고에 중요하게 나타난다. '하나님의 섭리는 예정 그 자체의 모체이다'고 했다. 그는 예정의 교리를 유아세례 논쟁에 도입했다. 그는 이방인들과 세례받지 못한 유아들이 저주를 받을 것일이라는 견해를 비난했다.
신앙보다 하나님의 예정이 앞서기 때문에, 만일 하나님이 유아들을 예정하셨다면 세례 받지 않았다고 해서 이들이 저주받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예정의 교리는 츠빙글리가 재침례파들의 입장을 공격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야곱은 믿기 전에 예정되었다. 츠빙글리는 예정을 다룰 때 유기라는 말보다는 선택이라는 말을 선호했다. 선택은 하나님에게 속한 일이며 인간들의 업적과는 무관하다. 츠빙글리는 이후 개혁교회나 청교도들 간에 논의된 예정의 확신에 대한 물음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의 관심은 구원이란 하나님으로부터만 오며, 우리의 신앙이나 자비와는 무관하다는 데 있다. 이런 예정론에 근거하여 츠빙글리는 구원을 행위에 의존하는 모든 시도들을 논박했다.
이런 점에서 칼바르트의 예정론은-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된 자와 유기된 자를 동일시하는 사고-종교개혁적 전통에서 이어지는 예정의 문제를 심화하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츠빙글리는 더 담대하게 하늘나라에는 성경의 족장들과 예언자들 그리고 사도들 외에도 프앙스의 선임 왕들과 비기독교인들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츠빙글리의 보편주의는 종교다원주의적 이해에 기초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성에 근거된다.
그래서 츠빙글리는 교황의 운명보다 세네카나 소크라테스의 운명을 택하겠다고 말한다. 물론耖 츠빙글리에게 그리스도는 구원의 근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섭리와 예정에 대한 사고는 루터와는 달리 츠빙글리를 그리스도와 성례에 대한 다른 이해와 강조로 나가게 한다.
츠빙글리는 어거스틴 이해로 서구신학의 지배적인 전통이 되어온 예정의 문제를 섭리와의 관련에서 파악했다. 칼빈에게서 예정은 섭리론이 아니라 구원론과 교회론의 맥락에서 다루짐으로써 예정론에 대한 운명론적 사별을 봉쇄하는 데 진일보하게 된다.
그러나 츠빙글리는 섭리를 '예정의 어머니'로 파악함으로써 섭리론에 구원론적이며 기독론적인 성격을 간과하지 않았다. 고전적인 예정론은 인간이 죄를 범함으로써 타락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이 아담의 타락을 미리 했거나 허락한 데 있었다. 어거스틴에게서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공의로우시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기 때문에 타락한 자를 구원하실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타락하지 않은 자를 심판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어거스틴은 예정을 인간의 타락 이후에 생긴 하나님의 자비로운 행동-타락 후 예정-으로 이해했다. 그 때문에 어거스틴에게서 예정은 하나님의 구원의 행동에만 관련된다.
칼빈에 따르면 인간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타락했지만, 그러나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고 했다. 그리고 예정은 선결정론적이나 운명론적으로 하나님의 본성에서 추론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사건을 체험하는 신앙의 영적측면에 근거되어 있다.
더욱이 칼빈의 성령의 비밀스런 사역은 여전히 유기된 자들에게 역사하기 때문에-칼빈 자신이 선택된 자와 유기된 자를 구분한다고 해도- 그의 타락 전 예정은 구원의 보편주의적 성격을 함축한다.
그러나 츠빙글리에게서 예정은 신론에 속한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에서부터 예정을 추론했다. 하나님의 지고선으로서 그의 신론의 출발점을 이룬다. 하나님의 지고선(至高善)은 플라톤의 저작을 통해 기독교에 도입된 것이며, 특히 어거스틴에 의해 신학적으로 수용되었다.
츠빙글리는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은혜의 긴장을 잘 알고 있었다. 비록 그는 바울이나 루터의 십자가 신학을 근거로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를 이해하려고 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그때그때 우발적인 섭리론이나 예정론을 말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안셀무스의 만족설을 수용하면서 츠빙글리는 적어도 하나님의 공의가 하나님의 은혜에 종속되며,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더불어 하나님의 은혜가 충분히 실현되었다고 보았다.
츠빙글리는 타락 전 예정과 그리고 타락 후 예정에 말한다. 인간의 타락과 비참함 속에 이미 하나님의 정의가 계시된다. 그리고 이것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희생을 통해 인간에게 주어졌다.
그러므로 인간의 업적이나 대리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이 구원의, 기초가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희생없이 선택은 불가능하다. 그리스도의 계시 안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결정은 실현된다. 인간의 선택은 명백히 그리스도의 구속에 관련되며, 그리스도에 의해 살려진다. 이것이 츠빙글리가 타락 전 예정에 국한되지 않고, 타락 후 예정을 기독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후대의 칼빈주의자들은 그리스도는 '오직 선택된 자들만을 위해서 죽었다'는 교리를 통해 일면적인 타락 전 예정론으로 흘러갔지만, 츠빙글리에게는 여전히 두 예정론의 긴장이 있다. 그러므로 츠빙글리는 엄격하게 선택된 자와 유기된 자를 구분지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여전히 예정론을 하나님의 본성에서 추론함으로써 선결정론적 약점이 여전히 숨겨져 있다.
그의 예정론의 특징은 구원의 문제를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에 근거지음으로써, 그리스도의 희생의 보편주의는 경건한 이방인들을 향해 확장된다. 선택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역경의 순간에 하나님을 버리지 않는 사람은 진정으로 선택된 자 가운데 있다고 보았다.
구원으로 예정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악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유기된 자 가운데 있을 가능성이 더 크다. 고대의 이교들과 아직까지 복음을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들은 다른 기준에 따라 심판을 받기 때문에 선택된 자들 가운데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만일 그리스도가 아담의 죄에만 종속된다면, 그리스도의 구속은 죄의 타락에 비해 그 영역이 너무 좁다. 그리스도의 구원의 능력 때문에, 하나님의 선택의 자유와 만유회복을 근거로 영원한 타락에 속했던 자들에게도 구원이 허락될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선택은 신앙의 귀결이 아니라 신앙이 선택의 귀결'이라고 간주하면서 선택되지 않은 자들은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신앙은 선물이 신앙의 선행은 인간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열매를 맺는다.
츠빙글리의 기독론의 특징은 훗날 루터와의 성만찬 논쟁에서 재현된다. 그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육신적인 몸은 주의 만찬에 임재할 수 없다. 편재라는 것은 그분의 신성이다. 그러나 루터의 강조점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일치에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신성이 있는 곳에 그분의 인간적인 몸이 같이 임재한다.
루터와는 달리 츠빙글리에게서 그리스도의 인간성은 신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 때문에 뒷전으로 밀려난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우리가 좇아야 할 모범으로 더 의미가 있다.
성경의 말씀이 신앙의 문제에 관한 유일한 권위와 규범을 갖는다고 해도 성령은 교회나 문자에 구속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성경을 이해 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의 역사 때문이다.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인간은 쉽게 이성과 육신적인 생각에 이끌릴 수가 있다.
츠빙글리는 루터처럼' 말씀과 성령'의 순서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성령과 말씀'의 순서로 이해했다. 특히 그에게는 성령은 외적인 수단(예를 들면 세례나 성만찬)과 동일시되지 않는다. 그러나 츠빙글리는 성령과 외적수단을 급진주의자들처럼 과격하게 분리시키려고 하지는 않았다.
성령은 말씀을 통해 역사하지만 그러나 말씀에 매이지 않는 독자적인 창조적인 사역이 있다. 성령은 말씀과 성례에 구속되지 않는다. 오히려 성령은 말씀과 성례를 통해 역사하며, 만일 성령의 자유와 주권성이 상실 될 때 구원은 인간의 처분에 맡겨져 버린다.
즉 말씀을 듣고, 세례를 받고 성찬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구원이 보증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름의 선포와 성례들의 집행이 없이 구원을 보증할 수도 없다. 설교자가 아무리 훌륭한 설교를 하더라도 듣는 자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무익하다.
성령이 말씀과 성례로부터 구분된다고 또한 관련된다. '구분되지만, 분리되지 않는다'는 츠빙글리의 해석학적 원칙은 칼빈을 통해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의 특징을 이룬다.
츠빙글리의 영향은, 청교도들에게는 '내적 확신', 다시 말해 '성령의 확신 교리'로 이어진다.
청교도들은 성경의 명령에 따른 경건한 도덕생활을 준수했고 사치와 허례허식을 반대했다.
특히 이들은 주교제도에 극단적인 반대를 표시했고, 장로제대가 성경에 가장 부합한 제도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장로교적 경향을 가진 사람들은 영국 교회 자체를 부정하려고 하지 않았고, 교회 체제의 향상과 개혁을 위해 활동했다.
이들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참된 복음을 설교하는 한, 영국 교회를 자신들의 교회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대륙의 재침례파의 영향을 받은 그룹들은 성인침례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들은 회중교회주의를 대변했는데 교회 정치적 권위가 성직의 위계체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인 회중에게서 온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회중주의의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본 사람들은 분리주의자로 떨어져나갔는데, 이들은 영국 교회를 포기하고 숨어서 예배드렸다.
1620년 뉴일글랜드에서 플리머스를 세운 사람들은-이들은 최초로 미대륙 이주자로서 필그림으로 불렀는데- 분리주의자들이었다.
청교도는 어떤 면에서 영국 교회의 화려한 예전과 로마주의적 복권적 경향을 반대하고 나섰던 다양한 그룹들로 볼 수 있고, 이들 가운데는 칼빈, 츠빙글리 그리고 유럽의 복음적 재침례파적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청교도는 복음주의적 영성을 근거로 모인 초교파적 운동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궁극적 권위를 성경에 둠으로써 교회와 정치, 사회의 문제를 개혁하려고 했던 개혁주의 영성을 잇는 운동으로 불 수 있다.
청교도의 영성의 특징과 목적은 세상에 대한 진지함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망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히브리서 11:6)을 향한 순례의 길에서도 그들은 중세의 수도원적 피안성을 거절했다.
비록 이들이 광야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지만, 그들은 하늘의 삶을 세상 속에 심어가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런 점에서 이들은 칼빈의 정신을 따르고 있었다.
이들은 부지런한 사람들이었고, 노동을 이웃에 대한 의무로 여겼고, 태만을 죄로 여겼다. 수도승과 수녀 그리고 구걸하는 탁발승 등은 노동을 등한시하고 비생산적인 태만 속에 살아가는 자로 여겼다.
특별히 청교도들은 가정의 경건을 매우 중요시했다. 가족 농장과 가족 작업장은 귀족의 가정과 수도원이 중세 사회에서 했던 역할을 초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신했다. 가장은 자녀와 하인들에게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했다.
죄악된 세상을 지니 하늘의 예루살렘을 향한 길목에서 이들은 양심의 성찰과 기도를 매우 중요시 여겼다. 어거스틴과 칼빈을 좇아 이들은 인간의 죄악성과 하나님의 은총을 강조했다.
리차드 박스터는 선언하기를,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삶이 은총 안에서 자라게 하고, 그들의 영혼 안에 그리스도의 일을 강화하고 증진시키며, 육체의 일을 정복해야 한다'고 했다.
은총만이 사람을 신앙과 죄에 대한 회개로 인도하며 구원의, 길로 안내한다. 청교도는 거듭남의 체험, 또는 변화된 의지의 확신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이들에게 회심의 체험은 그 영성이 중심에 서 있었다.
회심은 성령의 사역이며, 인간의 도움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을 향한 기도와 명상은 청교도로 하여금 인간의 내적인 마음을 강조하게 했다.
이런 청교도적인 은총의 주도성에 의한 내적 확신 현상과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영적 추구는
존 웨슬리(1703-1791)에게도 나타난다.
웨슬리는 원죄의 교리를 받아들이면서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 그러나 그는 극단적으로 인간이 도덕적 책임성까지 상실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는 운명론적인 전적 타락을 거부한다.
그는 인간의 보편적 양심을 성령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여겼다. 모든 사람 안에서 그리고 모든 사람을 위해 자유롭게 활동하는 선행은총은 인간을 회개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회개는 급진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자기 죄의 상태를 깨닫고 뉘우치는 제 1회개로서의 율법적 회개와 제 2의 회개로서의 복음적 회개로 구분한다. 복음적 회개란 마음의 변화와 성결의 삶을 위해 노력을 경주하는 상태를 뜻한다.
구원의 과정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합력성이라는 측면에서 다룬다. 칭의에 대해서 웨슬리는 실제적으로 의롭게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칭의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베풀어준 죄의 용서를 의미한다. 이러한 은총의 행동을 통해 신자들은 죄책으로부터 벗어나고 구원의 중요 부분-전체 부분이 아니라 -을 형성한다. 칭의의 조건은 믿음에 앞서 회개를 먼저 설정해 놓는다.
신앙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그는 말한다. 하나는 기초적인 단계에서 복음의 진리에 대한 이성적인 동의이다. 그 다음의 단계는 그리스도에 대한 마음으로부터의 신뢰를 말한다. 이 단계에서 잠재적이며 신비한 변화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신앙은 한편에서 신자가 칭의를 얻는 수단이며, 다른 한편에서 중생을 얻는 은총의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중생에 관여하는 성령의 활동은 초기성화로 언급한다. 중생이 인간의 영혼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총의 사역이긴 하지만, 그것은 구원의 온전성을 말하지 않는다. 신앙에 의해 의롭다함을 입은 자들의 마음은 완전히 정화되지 않는다.
여기에 제 2의 축복을 받아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이것은 웨슬리는 '온전한 구원'. 또는 '기독교인의 완전'이라고 불렀다. 이 제 2의 축복이란 겸손한 회개를 뜻한다.
웨슬리에 의하면, 사랑 안에 나타나는 기독교의 완전은 여전히 유혹에 열려 있다. 모든 오류와 죄에서부터 해방된 완벽한 완전함은 이 세상에서 가능하지 않다. 칭의와 중생을 체험한 기독교인은 끊임없이 성장해야 한다.
기독교의 완전은 정적으로 한 지점에 도달된 상태를 말하지 않고 역동적인 과정을 말하는데, 이것은 완전하기 위해 전진하는 완전성을 의미한다.
즉 웨슬리에게서는 칭의를 얻기 위해서 회개와 인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인간의 응답은 성령의 선행은총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칭의의 유일한 조건은 성령의 내적 증거를 통한 신앙이다.
마찬가지로 완전 성화에 이르는 길에서 복음적 회개와 인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완전 성화를 위한 유일한 조건 역시 성령을 통한 신앙이었다.
웨슬리의 구원의 질서에서 성령은 인간의 회개와 신앙의 두 가치 차원에 포괄적으로 관여한다.
그러나 웨슬리는 경건주의와는 다르다. 그는 인간의 성화를 둘러싼 이해에서 경건주의자 진젠도르프의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진젠도르프의 주장은 의롭게 되는 순간 인간은 철저히 성화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과 성화의 진보에서 인간은 더 거룩하거나 덜 거룩하지가 않다. 성화는 칭의와 동일시 되기 때문이다.
물론 진젠도르프에게서 기독교의 완전은 웨슬리와는 달리 그리스도에게만 존재한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완전은 외부에서 전가된 것이지, 우리 안에 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는 '항상 의인'으로서 완전하지만, 우리 자신 안에서는 '항상 죄인'으로서 완전하지 않다.
루터의 칭의론에는 죄의 용서가 그 중심에 서 있고, 칭의의 근거로서 십자가의 신학이 있다. 루터의 성화론는 자신의 죽음과 매일의 참회를 강조하며 동시에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신화(神化)론적 측면, 즉 '영 안에서의 살아남'이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웨슬리에게 죄란 치료되어야 할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죄인의 칭의 문제를 재판과 관계된 법정적인 개념들을 통해 이해하기 보다는 '다시 태어남'의 개념에 따라 이해한다.
이 웨슬리의 다시 태어남의 영적 진보의 차원과 윤리적 갱신을 루터란의 전통 안에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1605년 독일 팔라티네이트에서 개혁파 교회는 모든 프로테스탄트을 결성하기 위해 총의회를 개최하였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야곱 알미니우스(Armius)는 네델란드에서 동일한 청원을 하였다. 독일인들과는 달리 알미니우스는 주류파들이 (예를 들면, 네델란드의 전통 개혁파처럼) 비주류파들에게 자신의 견해를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는 조건을 덧붙였다.
알미니안들은 믿음보다 삶을 강조하였다. 그들은 진실하게 올바른 교리를 믿는다는 면에서 믿음이 거룩한 삶을 살도록 동기부여를 시킨다는 루터파들과 개혁파들과 동의하지 않았다. 후기 알미니안들은 기독교인의 삶의 보상으로서 구원을 받게 된다고 보았는데 이런 사상이 칼빈에게 미움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알미나안 주의의 다섯 가지 요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비록 인간의 본성이 아담의 범법으로 인해 타락해서 신중히 영향을 받았을지라도 인간이 영적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태에 남아 있게 되지는 않았다.
하나님께서 모든 죄인들이 회개하여 믿게 하실 수는 있으나 그분이 인간의 자유를 간섭하지는 않는다. 각 죄인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그의 영원한 운명은 그가 자기 자유의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렸다.
인간의 자유는 영적으로 악보다 선을 택할 수 있는 능력에 있는 것이다. 즉 인간의 의지는 그의 죄를 짓는 본성에 노예화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죄인은 하나님의 성령에 동조(협조)하여 재생할 수 있는 권능이 있고 또 하나님의 은사를 거절하여 멸망될 수 있는 권능도 소유하고 있다.
타락된 죄인은 성령의 도움이 필요하나 그가 믿기 전 에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신앙이란 인간이 행한 것이며 다시 태어나기 이 전에 신앙이 있어야 되기 때문이다. 신앙은 죄인 하나님께 드리는 선물이며, 그것은 곧 인간이 구원의 길에 이바지한 셈이 되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이 개인을 선택하셔서 구원을 받게 함은 인간이 하나님의 부름에 순응하리라는 그 분의 예견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거리낌없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만을 선택하셨다.
따라서 '선택'이란 사람이 하는 바에 따라서 결정된다. 하나님이 미리 아시는 신앙과 그로부터 하나님의 선택이 기초를 두고 계신 신앙은 하나님이 죄인에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인간의 자유의지에서 초래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을 알고 구원받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각 인간에게 달려 있다.
인간의 자유의지로 그리스도를 선택하는 자를 하나님은 선택하신다. 따라서 궁극적인 구원은 하나님이 죄인을 선택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 그리스도를 선택함으로 이루어진다.
셋째, 그리스도의 속죄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나 실제로 어떤 사람의 구원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그리스도가 만인을 위하여 죽음을 당하셨으나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만이 구원받는다.
인간들이 그분을 믿는 조건 하에서 예수의 대속으로 하나님이 죄인을 용서하실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죄가 실제로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복음을 받아들이기로 선택할 때만 그리스도의 대속은 효과를 보게 된다.
넷째, 성령은, 인간들의 복음 초대에 의하여 외면으로 불려오는 모든 자들을 내면으로 불러들인다. 그분은 모든 죄인이 구원받기 위하여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그러나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성령의 부름에 저항할 수 가 있다.
성령은 죄인이 믿을 때까지 그를 중생 시킬 수 없다. 새로이 탄생되기 전에 신앙이 있게되며 신앙으로 새로운 탄생이 가능하게 된다. 이와 같이 인간의 자유의지는 그리스도의 구조작업에 있어 성사의 역할을 제한시킨다. 성령만이 하나님에게 동조하는 자를 그리스도에게 이끌 수 있다.
죄인이 순응할 때까지 성령은 생명을 줄 수 없다. 따라서 하나님은 은사는 정복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은사는 인간이 저버릴 수도 있고 왜곡시킬 수도 있다.
다섯째, 믿고 구원받기로 된 사람들로 신앙을 잃으면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 모든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이점에 있어 의견을 일치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에게서 영원히 보증받는다고 주장한다. 즉 죄인이 다시 태어나면 반드시 구원받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에게 순응하는 것이 그 결정적 요소가 되므로 주도력을 쥐고 계신 하나님과 하나님에 순응하는 인간과의 공동노력을 통하여 구원이 이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도록 하나님께서 그 길을 예비하여 놓으셨으나 구원이란 곧 인간의 자유의지로서 하나님의 은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과 협력하기로 선택한 사람들에게만 그 효과를 보게 된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그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 그 핵심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구원의 은사를 받아들이는 힘은 하나님이 아니고 곧 인간의 힘이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은 1610년 이것을 채택하여 주도록 네델란드 교회에 제출하였지만 성경 말씀과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1619년 돌트 종교회의에서는 거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