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하나님의 생명이 불어넣어진 영적 존재였으나 죄를 짓고 타락한 후에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 하나님을 드러내는 영적존재에서 스스로 인식하고 만족을 누려야 하는 육적존재로
타락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인간의 마음은 늘 두렵고 무가치하고 공허하고 결핍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타락한 인간의 삶이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허무하고 공허한 느낌을 지우기 위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 마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상적이고 물리적이 것들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그것을 인식함으로써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하고 사람을 만나고 시간을 보내고 돈을 모으고 건강을 돌보며 자신을 유지 시키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나' 와 연결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존재방식입니다.
또 행위로서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자신의 진정한 존재를 알지
못한 채 , 자신의 오감으로 인식되는 모든 것을 가지고 '제한된 동일시' 를 시도합니다.
제한된 동일시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후 자신의 몸이나 마음을 자기의식과 동일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제한된 동일시를 통해 '자아' 가 형성되고 그 결과 '세상' 이라는 외부와 자신을 구분합니다.
즉 오감에 의해 제한된 의식의 흐름을 '자아'라고 부르지만, 이는 '거짓자아' (겉사람)일 뿐이고
우리 마음이 만든 허상일 뿐입니다. 누군가 말한 것 처럼 에고(ego)sms 'eding God out'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몰아내는 거짓존재입니다. 성경은 구원받은 후, 즉 옛 본성이 죽고 새 본성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거짓자아에 끌려가는 현실적 존재를 '육신' 또는 '육체' 라고 부릅니다.
안타깝게도 구워받은 그리스도인 들 중에도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 채, 옛 본서응ㄹ 지닌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육체에 속한 삶을 사는 이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려는 목적으로 세상과 관계하며 자기 존재를 입증하는 삶을 멈춰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새로운 피조물(속사람)입니다.
우리는 'human-doing' 이 아니라 ' human-being'(존재하는 인간) 입니다.
나 자신이 누구인가를 나타내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영생을 지닌 자로서 주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이 땅에서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는 존재입니다.
당신의 거짓자아를 만족시키기 위한 모든 행동을 멈추고,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자아가 누리는 평강과
희락을 느껴보십시오. 그리고 주 안에서 안식하십시오.
서평: 사람은 무엇인가 자신의 낡은 고정관념이 깨어질때 '충격' 을 받는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나보다 더 자신의 자아에 묶여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서 나한테 넣어놓고
있었나 보다. 심리학적 용어를 적용을 했기에 저자의 글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그 심리학적인 용어에
내포된 의미들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해 줄때 통쾌함을 넘어선다. 에고에 대한 새로운 대화도 놀랍지만
과거 한 매우 윤리적인 기독교인으로 부터 들었던 말들이 조각처럼 부숴져서 더 놀랍다.
그분은 늘 우리는 '공사중' 입니다. 이런 말을 많이 썼다. 맞다고 좋은 표현이라고 긍정하는것 뒤에
그 말을 하신분에 대한 이미지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참 곧은 분이야. 참 죄 안짓고 사는 분이야.
참 겸손한 분이야...이렇게, 그러나 오늘 글을 읽고 보니 그것이 얼마나 교만한 발언인지
참된 겸손의 왕 예수님의 자리를 뺏는 말인지 알겠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인해서
'존재하는 인간' 이라는 그 사실 즉, 되어진 존재라는 그 사실을 잊지 말자. 공사중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