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균이는 계란을 정말 좋아합니다. 계란으로 만드는 요리는 무엇이든 잘 먹습니다. 계란찜, 계란말이, 계란후라이 등등 즉석떡볶이를 먹을 때도, 비빔국수나 냉면을 먹을 때도 삶은 계란 몇 개쯤은 필수입니다. 엄마일 도와주는 것은 별로 없지만 계란까기는 아주 잘해줍니다.
물론 음식 중에 계란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태균이가 보이는 식재료에 대한 강박은 계란에 크게 작동됩니다. 무슨 연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냉장고에 계란이 10개쯤 남았을 때 이를 더 채워놓지 않으면 엄마를 향한 닦달이 시작됩니다.
사실 계란 10개쯤 남긴 상황에서 엄마를 닦달할 필요없이 보통은 함께 슈퍼마켓에 가곤하니까 본인이 알아서 계란을 장바구니에 넣으니 저는 태균이의 계란원칙을 크게 신경쓰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슈퍼마켓가면 거의 매번 계란 10개짜리를 사기에 나름 자기만의 쇼핑 선호목록이 생긴 것이라 생각하고 넘어갔는데...
어제는 아이들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다 저녁까지 먹고 돌아오니 시간이 꽤 지났는데 임시거처 가까이오니 태균이가 자꾸 휴대폰에 뭔가를 써서 엄마에게 보여주려 노력합니다. 휴대폰에 쓰여있는 단어는 계란... 그럼에도 냉장고에 아직 계란이 꽤 있는 것으로 생각되서 그냥 집으로 들어왔더니...
옷도 못벗게하면서 계란을 사와야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강요합니다. 엄마가 나서지않으면 결코 계란을 사올 수가 없는 환경임을 잘 알기에 냉장고를 열어 계란수를 확인하더니 태균이의 초조함은 점점 커져만 갑니다. 다시 운전하고 다녀와야히는 상황이 하도 버거워서 내일 사오자고 여러번 이야기해도 설득이 되지않습니다.
엄마 옆에 찰싹붙어 옷도 안벗고 계란을 사러가자는 재촉은 이제 엄마가 무얼해도 졸졸 따라다니는 집착형으로 바뀌어갑니다. 태균이의 계란 원칙을 이제서야 알게되었다는 것이 그동안엔 스스로 때맞춰 잘도 해결해왔음을 깨닫게 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슈퍼마켓에 갔을 때 태균이가 얌전히 차 안에서 기다릴 때가 있고 엄마따라 슈퍼 안으로 가는 때가 있었는데, 그 기준이 이제와 생각하니 계란의 숫자와 관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늦은 시각은 아니지만 낮이 짧아지니 8시가 다된 시각은 마치 한밤중같은 분위기입니다. 시골동네의 밤은 더욱 썰렁합니다. 차를 몰아 어느정도 거리에 있는 하나로마트를 다녀오면서. 기어코 따라와서는 계란구매를 확인합니다. 차를 몰고가면서 다음에는 집에 닿기 전에 의사를 확실하게 해달라고 은근 짜증을 내면서 볼멘소리를 했더니 알아듣는 듯, 마치 다음에는 그리하겠노라고 응대하는 듯 합니다.
엄마를 닦달해서 사온 계란을 냉장고에 정리하며 그제서야 편안하고 만족한 표정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니 나름의 원칙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음은 보게됩니다. 매일 어딘가 산책이나 등산하기, 샤워하기, 아침밥먹고 보충제와 약챙기기 (이제는 준이것까지 꼭 자기가 챙겨줍니다) 등등 이런 일상이 하나라도 지켜지지 않으면 다음 일정이 진행이 안되는 상황입니다.
각 시간들과 그에 따른 활동에의 결정은 태균이에게는 절대적 가치이자 삶의 방식입니다. 각 활동에 성실함을 보태는 것도 참으로 좋은 장점이지만 24시간 매니저인 엄마는 때로 너무 피곤합니다.
어제도 저녁을 두끼떡볶이 식당에서 해결하는데 다소 매콤하게 떡볶이를 만들어주었더니 두 녀석들이 맛있게 먹으면서도 어찌나 물을 많이 마셔대는지, 컵에 물받아오느라 열 번이상은 왔다갔다 한 것 같습니다. 뷔페형 식당이라 큰 통에 물을 담아올 수가 없으니 참으로 저녁먹으면서도 그 이상의 노동을 해야만 합니다.
물심양면을 넘어 강도높은 노동까지 제공해야 아이들과의 관계유지가 가능해지니 참으로 엄마는 건강해야만 합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그렇습니다. 거기다 요즘은 자기주장이 제법 생기니 이를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 판단이 흐려집니다.
첫댓글 그림이도 몇가지 있는데, 날이 갈수록 새로운 것이 첨가되고 고집도 쎄 지고 반항까지 하니 힘들어 지네요. 어떤 경우도 안된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귀청이 찢어져라 고함을 지르곤 하네요. 속수무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