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보충수업비나 문제집을 사야한다는 구실로 얼마의 비용을 전용한 것이겠지만 고교시절, 어떻게 하루도 빠짐없이 음반을 살 수 있었는지 아무리 셈을 해봐도 방 한 구석에 수북이 쌓여 있는 음반의 출처를 설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록음악을 처음 들었던 그때, 나를 사로잡았던 그 매혹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고 그것이 세속의 셈법과 불화하는 것이었는지도 알지 못했다. ‘메탈리카(Metallica)’로부터, 혹은 ‘딥퍼플(Deep purple)’을 거쳐, 아니 ‘라디오헤드(Radiohead)’와 함께 음악적 계보도를 나름의 방식으로 그려가던 그 시절, 내가 의지할 수 있었던 정보는 <핫뮤직>이나 <GMV>와 같은 음악 잡지 몇 권이 전부였다. 새로 출시된 음반 소개 기사 하나까지 꼼꼼하게 읽었던 탓에 새로운 잡지가 나오는 한 달이라는 주기가 내겐 너무도 짧았다. 더군다나 넉넉하지 못했던 주머니 사정으로 늘 Tape 형태로 된 음반만을 산 터라 음악을 듣는 속도 역시 새로 출시되는 음반들을 따라가기엔 역부족이었다. ‘빨리감기’라는 기능은 Tape이 늘어날 수도 있다는 위험 탓에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한 음반을 다 듣기 전에는 새 음반을 사지 못했다. 먼 나라의 고딕 메탈 밴드의 새음반 출시 기사까지 빼놓지 않고 읽었던 그 시절, 듣기평가 Tape은 빨리 감되 음반 Tape만큼은 결코 빨리감기를 하지 않았던 그 안간힘과 함께 ‘취향’이라는 것이 형성되어 갔던 것이다. 무릇 ‘취향’이란 셈법이 불가능한 것!
새삼 이 궁색한 취향의 출처를 톺아본 것은 ‘아이팟(ipod)’이라는 기기를 사용하면서 느낀 소회 때문이다. 소장하고 있는 음원 파일을 다 넣어도 여유 공간이 남아 있는 이 광대한 기기를 호주머니 속에 간편히 넣고 다니며 음악 듣는 동안 나는 생각지도 못한 괴로움과 늘 대면해야만 했다. 그 괴로움이란 익숙해지지 않는 작동법과 같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흥미롭게도 ‘아이팟’의 가장 큰 이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출처로 한다. 이 작은 기기 안에 너무 많은 음원이 들어가 있는 탓에 무엇을 들을 것인지 선택하기가 너무 어려워졌다는 것!
지금 내가 가진 ‘아이팟’ 안에는 6천곡이 넘는 음악이 들어가 있다. 문제는 이 많은 음악을 언제 어디에서라도 선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지금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100곡 남짓한 음원이 겨우 들어가던 낡은 mp3 기기를 들고 다닐 때는 한곡을 새로 넣거나 뺄 때조차 얼마간을 고심 하곤 했는데, 그 별 볼일 없는 궁색한 고심은 내가 어떤 음악을 소장하고 있는지, 그 중에서 지금 어떤 음악을 듣고 싶은지 ‘선택’할 수 있는 동력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팟’이라는 기기를 사용하다보니 그 궁색한 고심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 아울러 ‘선택’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새삼 자각하게 된다.
음원을 ‘선택’ 하기 위해 아티스트 항목이나 앨범 항목을 한참 뒤져본 후 눈에 띄는 음원을 선택하여 플레이를 누르지만 그리 만족스럽지가 못하다. 좀 더 좋은 음원이 ‘아이팟’ 속 어딘가에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기 때문이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기에 나는 음악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 곡을 선곡하기에 여념이 없다. ‘듣기’가 빠지고 ‘선택’을 위한 행위만이 남아 있는 꼴이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건 랜덤 모드(random mode)로의 전환이다. 선택하는 것이 너무 힘겹기에 그 결정을 기기에게 떠맡긴 것이다.
랜덤 플레이로 음악을 들으니 마음이 한결 편하다. 선곡은 내 의지가 아니기에 듣고 싶지 않은 음악이 나오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다음 곡을 선곡하면 되고 조금이라도 좋은 음악이 나오면 그 우연성에 기뻐할 수 있으니 랜덤 플레이도 그리 나쁘지 않다. 랜덤 플레이의 편리함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이 형식이 새삼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불현듯 자각하게 된다. 가령, 우리가 매일 되뇌는 ‘뭐먹을까?’라는 물음 또한 랜덤 플레이적인 구조로부터 비롯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뭐먹을까’라는 물음이 ‘아무거나’라는 대답과 짝을 이룬다는 점을 상기해볼 때 이 일상적인 물음이야말로 선택할 것이 너무 많은 환경 혹은 구조로부터 재생산되는 고민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 ‘아무거나’라는 ‘선택’은 실은 그 무엇도 선택하지 않는, 혹은 선택할 수 없는 ‘무기력’을 의미한다. 선택할 것이 너무 많기에 외려 그 무엇도 선택하지 못하는 무기력증을 ‘무선택의 선택’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랜덤’에는 선택의 피로감이 묻어 있다. ‘아무거나’라는 무선택의 선택이야말로 ‘랜덤’이라는 ‘풍요’가 실은 너무 많은 정보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선택이라는 결정권을 박탈당한 채 무한히 증식되는 정보들을 꾸역꾸역 삼켜야만 하는 우리들의 곤궁한 처지를 가리킨다. 그러니 ‘랜덤’이라는 선택의 피로감은 자본제적 체계의 피로감이라 바꿔 불러도 좋을 것이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선택, 이 ‘무선택의 선택’ 속에 ‘차이’를 통해 무한 증식하는 자본주의 체계의 알짬이 숨어 있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을 때 그 결정권을 체제에 맡겨버리는 것. 랜덤(random)이라는 형용사 뒤에 흔히 플레이(play)라는 동사가 붙는 이유를 이러한 맥락에서 숙고해야 한다. 랜덤 플레이라는 조어는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는 ‘무선택의 선택’이 마치 선택인 것처럼, 주체적인 결정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랜덤 플레이라는 조어야말로 체계에 되먹히는 개별자들의 군상을 적확하게 담지한다고 하겠다.
‘랜덤’이라는 형식과 ‘아무거나’라는 일상적 용법은 얼핏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둘이 모종의 연관 속에서 긴밀한 관계를 밎고 있다는 점을 알아차릴 필요가 있다. ‘아무거나’라는 무한 포용의 제스처 속에는 상대의 의견을 통하지 않고는 그 무엇도 선택할 수 없다는 무기력이 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랜덤 플레이가 주관하는 구조 속에서 우리는 상대가 무언가를 제시하기 전까지는 그 무엇도 선택하지 않으며, 또 선택하지 못한다. ‘아무거나’라는 시쳇말이 ‘차이’를 밑절미로 하는 자본주의 체계로부터 나온 것임을 상기할 때 이 용어가 일상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개별자들의 행동 양식, 혹은 습관과도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아무거나’라는 진술과 그 위에 얹혀져 운신하는 자본주의 체계에 결박당한 개별자들은 오늘도 ‘무선택의 선택’을 자신의 특권인 것인 냥 마음껏 낭비한다. 비록 한정된 정보이지만 그것들을 아끼며 좋아하는 것들의 목록을 작성하고 하나하나 실행해 가면서 더디게 구축해갔던, 셈법이 통하지 않는 ‘취향’이 단 몇 달 쓴 ‘아이팟’의 무한 용량에, ‘랜덤 플레이’라는 체계에 되먹히며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다.
첫댓글 아, 핫뮤직!! 맞아 맞아 저 잡지가 있었지!! 하고 무릎을 탁 쳤습니다.
때로는 선정적이고 손이 오그라드는 표현들이 여기저기에 산적해 있는 잡지이지요. 그 과도한 표현들이 저는 좋았습니다.
핫뮤직 오랜만이네요. ^^ 동네 전철역 음반 가게 청년(?)이 추천해 주던 음반을 가게에서 듣던 것도 기억나구요. 당시의 '랜덤'은 가게 주인장이 하필 어떤 취향을 가진 양반인지, 혹은 입소문만 들은 채로 음반을 사버리는 문제였던 것 같아요. 고민하다가 일단 지르고, 집으로 돌아와 포장 뜯어 듣기까지 설레던 때가 그립습니다.
'그 음반 가게 청년!' '담배 가게 처자'들과 함께 뭐 하는지 궁금해지는 이들입니다. 120분짜리 녹음 테잎에 가지고 있는 음반에서 골라낸 음악들을 하나하나 녹음하던 그 '괴이한 열정'의 정체가 사뭇 궁금해집니다.
흥미롭습니다. 레코드 판이나 씨디, DVD와 같은 '사물'이 아니라 '파일'로 비물질화되고, 인터넷을 통해 언제든지, 거의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게 된 음악, 영화들... 그 '사물'로서의 물질성으로 인해, 그를 통해, 그를 경과해 내게 다가오던 음악과 영화가 물질적인 내 육체의 움직임과 결부되어 있던 시절의 '선택'에도 물론 '우연'이 작용하고 있었겠지요. 그런데, 그 우연이란 우리의 삶이 마침, 여기, 이곳의 물질적 조건 속에서 이루어짐으로써 생겨나는 우연일 것입니다. 이러한 물질적 조건에서 우릴 해방시킨 (혹은 그를 약속하는) 디지털화된 음악, 영화는 그를통해 우리의 '선택'의 물질적 우연성을, 순수한 '선택'에 가깝게
확장시켰지만, 그를통해 생겨나게된 상황 - 종업원님이 잘 묘사하셨던 - 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 '기계의 선택'에, 그래서 우리에게는 다시 우연에 다름아닌, Random에 의존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이 '랜덤'의 원리가 함축하고 있는 전제, 취향의 무차별성,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함이 없는 취향의 니힐리즘은, 우리가 사는 시대의 문화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겠지요. 잘 읽었습니다.
일전에도 제가 쓴 글보다 더 좋은 코멘트를 해주셨는데, 이번에도 미처 짚어내지 못한 부분에 대한 정확한 언급과 함께 별 볼 일 없는 이 글에 유의미한 물꼬를 터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네키드', '문학청년', '록키드'와 같은 '애를 쓰는 이'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고민해보고 싶었습니다. 좀 더 개념적인 방식으로 접근하고 싶었는데, 마감(!)에 쫓겨 일상에서 건진 생각 하나만을 진술하는 데 그쳐버렸지요. 암튼 김남시 님의 논평이 꽤 많은 자극이 되었습니다.
아이팟을 갖고 다니면서 듣고 싶을 때 곡을 듣습니다. 저는 종업원님의 글을 읽고서 비로소 '랜덤 듣기'를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 님의 글을 읽어나가면서 블로그나 홈피의 '랜덤파도타기'와 개념이 겹쳐서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경우, 그리고 다른 분들도 그렇게 하시지 않을까싶은 게 있는데요. 아이팟에 저장된 곡을 '랜덤 듣기' 하기 이전에 CD든 파일내려받기든 아이팟으로 옮기는 곡 선택 과정이 있고 거기에서 사용자가 이미 취향이 이끈 곡 선별 과정을 가진 것이 아이팟에 저장된 곡들이 아닐까하는 문제가 생겼어요. 아이팟의 랜덤듣기는 블로그(나 홈피)의 랜덤타기와는 다르다는 문제가 생겨난 것이지요.
저 역시 처음엔 별다른 불편함이 없었는데, 아이팟을 쓰다보니 훨씬 더 많은 음반(음원!)들을 다운 받게 되더군요. 그 음원들은 제가 선별한 것들이지만 '선별'이라는 감각자체가 바뀐듯합니다. 아이팟에 담을 수 있는 음원의 용량이 너무 커서일까요. 무차별적으로 다운 받아 아이팟 안에 넣어둡니다. 요즘 p2p사이트에 가면 <xx전집(3기가)>나 <팝 모음(2기가)>, <재즈힙합모음(4기가)> 등과 같은 '파일뭉치'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아는 노래도 있고 모르는 노래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퀄리티가 좋아보이면 다운 받아서 아이팟에 넣어두지요. 그 파일 뭉치들을 다운 받아 들으며 취향이라는 것이 다른 의미를 가지거나 전통적인 취향이
무너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원을 유통하는 방식 또한 많이 달라진 듯합니다. (다소 부도덕 하긴 하지만) p2p 사이트에 올라오는 파일 형태도 앨범이 아니라 뮤지션의 전집이나 비슷한 스타일의 컴필 앨범(2-3기가)형태로, 무작위적인 방식으로 교환되고 있습니다. 뮤지션의 이름이나 곡명, 앨범 명 등등의 중요성이 점점 더 희박해져가는 듯합니다. 20대 친구들에게 듣고 있는 음악에 대해 물어봐도 아는 게 별로 없더군요. <록키드>들이 사라지고 있는 게지요. <스쿨 오브 락>에서 잭 블랙이 칠판을 가득 채워 설명하던 그 계보가 저 파일뭉치 앞에서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하는 겁니다.
랜덤 파도 타기 또한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도 있겠네요. 랜덤 파도타기는 많은 이들을 무작위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능이지만 '관계'를 맺기 보단 훔쳐보고 엿보는 데 익숙해지는 건 아닌가, 하여 그 기능이 외려 자족적이고 폐쇄적인 '관심1촌관계'를 더욱 강화하게 만드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블로그의 랜덤타기 개념은 우연하게 제게 들어와 난 데 없는 저의 선입견이 될 수 있겠는데요. 아이팟에 플레이스트, 아티스트, 곡, 앨범, 콤포서, 장르 선택분류가 자동으로 저장되고 검색창 까지 장치되어 있어서 제가 아마도 종업원님이 말씀하신 사용자의 불편을 불만으로 여기지 않고 있었기 때문일까요. 전 핫뮤직 이라는 잡지를 몰랐는데요, 글을 읽으면서 고2 때 그러니까 돌아보니 정말 친한 학교친구 생각이 났습니다. 제가 그 친구하고 같이 처음 스테어웨이투헤븐 홀로타러브 이미그런트송 같은 록음악을 그친구네 여의도아파트에서 쏘니 테이프레코더로 듣습니다 여의도에 아파트라곤 그친구네 아파트뿐이던 그 때네요.
음악에 빠져 잡지를 구독하던 때의 '의지'가 지금은 많이 약해졌지요.
음악을 '감상'한다기 보다는 그저 '듣는'거지요. music이 아닌 muzak을 들리는데로 받아들이는...
그나저나 핫뮤직은 ....살았는지 죽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