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생

[강신구]

동창생

초등학교 5, 6학년 때에 두 학급으로 나뉜 걸 기억한다. 전학을 와서 학생 수가 늘어났나 보다. 5, 60여 명은 가능해도 80여 명을 한 반으로 하기에는 어려웠다. 이 마을 저 동네 이골 저 골짝에서 튀어나와 오록 중앙 물야초등학교 운동장에 뛰놀며 6년간을 함께 보냈다. 배우고 시험 치고 봄가을 소풍도 가며 옹기종기 살아온 긴 시간이다.

일본인이 지은 비늘 판자 목조 건물이다. 낡아빠져 삐거덕거려도 쓸고 닦아 반질반질하다. 솔잎과 밀초로 박박 문질러서이다. 수시로 학습은 뒷전이고 돌담 쌓기와 진흙을 밟아 터지고 무너진 곳을 때웠다. 봉선화와 백일홍, 분꽃, 채송화 등 화단을 만드는 데도 공을 들였다. 장작을 져 날라 겨울 방학 전후 난로를 지폈다.

도시락을 데우는데 밑엣것은 누르다간 탄다. 된장과 고추장, 저린 나물 반찬이 냄새를 막 풍긴다. 점심은 물도 없이 퍼먹곤 우물로 가서 두레박을 올려 벌컥벌컥 마셨다. 쌀밥은 뽀얀 게 표가 난다. 드물다 보리밥과 좁쌀밥, 감자, 옥수수이다. 소풍 갈 땐 거기다 달걀을 덮으면 최고였다. 맨날 배고파 껄떡거렸다. 허기진 데다 춥고 더웠다. 감기와 설사는 달고 살았다. 누런 코가 들랑날랑하고 옷자락은 닦아서 번들거렸다.

찔레순과 야생시금치를 따 먹었다. 유월 더울 땐 목욕하고 나면 시장해서 감자를 캐 날 것으로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불에 그슬려 밀 싸리를 비벼 털어 넣으면 달콤했다. 덜 익은 밀알은 곱씹으면 껌도 됐다. 너나없이 얼굴과 입은 황칠로 시꺼멓다. 서로 쳐다보며 뭣이 좋아 깔깔 웃으며 지났다. 옥수수도 생것을 질겅질겅 씹으면 달짝지근하다.

강물 돌을 들쳐서 누런 꺽지알을 훑어 먹었다. 구수한 게 맛나다. 밭 가운데 심은 뽕나무의 오디와 떨어져 삭아지는 떫은 감도 수없이 주워 먹었다. 어디 먹을 게 있나 살피니 참을 수가 없었나 보다. 울산에 사는 동창은 하교 때 고개를 넘어가는데 산골짝 밭 가장자리에 누런 호박이 보여 따 먹었단다. 얼마나 비린지 지금도 입에서 그 냄새가 풍긴단다.

여름날 홍수가 지면 하천 다리가 떠내려가서 뻔히 쳐다보면서도 건너지 못했다. 학교 주위 마을은 가깝다. 먼 곳은 십 리 이십 리이다. 쑥밭과 샘실, 두문, 무양, 압동, 절단, 서리, 옻밭골, 밤마 등은 멀다. 보자기에 싸서 등에 질끈 매고 추우나 더우나 냅다 뛰어야 제시간에 간다. 비 올 땐 모두 젖어 엉망이다. 필통의 연필은 부러져 자주 깎다 보니 언제나 몽당이다.

졸업하고 수십 년이 지나서 모임을 만들었다. 보고 싶고 어찌 사나 생각이 들었다. 다 결혼하고 자식 키우며 고향 지키는 친구와 객지에 나가 있는 동기생이다. 그 짓거리를 치며 살았던 게 아련히 그리워져서이다. 다 건강하고 걱정 없이 살아야 할 텐데 염려가 앞선다. 초등학교 졸업인데 어디 노역장에서 일하며 고생 고생은 하지 않을까.

서울과 부산이 먼저 생겼다. 살기 바빠 헤매다가 어쩌다 만나면 그리 반가울 수 없다. 흩어진 같은 반원을 찾아 나서서 물어물어 만나게 됐다. 잘 된 사람 못된 사람 관계없이 그저 어릴 때 모습으로 봤다. 형제가 이리 좋을까. 헤어지기 싫었다. 얼굴이 변하고 생각도 달라졌는데 그 시절 티는 벗을 수 없다. “야 너 임마 새끼 문딩이 ---” 등 험한 말을 맘대로 해댔다. 빙긋이 웃고 무슨 말을 해도 받아넘기는 허물없는 사이다.

그러다 고향에도 생겼다. 물야와 봉화, 영주, 안동 등 주위 친구들이 다 모였다. 다들 보자 소리쳐 불렀다. 다덕약수에서 만나 성대히 시작하니 그 시절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서울과 대구, 부산 등지에서도 축하해 주기 위해 달려갔다. 덩실덩실 춤추는 친구도 있다. 다 40대이니 피둥피둥할 때이다. 자금도 있어야 하므로 스스럼없이 서로 내어 모아뒀다.

몇 번 만나다가 전국 곳곳 사는 곳에서 부르면 달려갔다. 춘천 소양강이 내려다보이는 데서 찍은 사진은 볼 때마다 정겹기만 하다. 용문사 마의태자의 은행나무를 어루만지며 가까운 산속 개울에서 점심 먹던 게 선하다. 부산 해운대 백사장을 걷고 다대포 노래하는 분수에서 오색 물보라를 보던 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고성 통일전망대가 어디라고 그 먼 데를 다 갔다. 교육관에서 현장 영상을 보고 얘길 들은 뒤 전방으로 들어갈 때는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괜히 긴장됐다. 저 멀리 가물거리는 북녘땅 해금강을 바라보던 게 엊그저께만 같다. 대구 산속 호텔에서 밤늦도록 오순도순 주고받았던 얘기가 그 얼마였던가.

그렇게 만나면서 주름이 하나하나 늘어갔다. 꾀죄죄하던 어린 시절의 모습이 어언 스르르 늙어가면서 주글주글하다. 서울과 부산의 동창 모임이 없어졌다. 교통과 통신이 좋아져서 언제나 쉽게 통화되고 오다가다 만나니 따로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물야초등학교 동창회는 이어갔다. 든든하게 중심을 잘 잡았다.

한 바퀴 돌아서 회장 할 사람이 없다. 여자들이 거듭 맡아 근근이 살아간다. 하나둘 아파 누워서 참석이 어려운 친구가 나타난다. 세상 떠난 동창도 여럿이다. 거기다 몇 해를 못 만난 채 코로나 역병으로 숨죽이며 살았다. 뜸할 때 한여름 농한기여서 전염병에 걸리진 않았나 연락하니 여기저기 늙어 아프단다. 팔순에 이르러 성한 데가 없다.

봉화 인하원에서 만났다. 한 친구는 ‘난 오늘 보고 안 나올 거야.’구차하다 하고 다른 동기도 ‘아내가 아파 도와야 해’ 한다. 회장 총무도 뇌경색과 당뇨로 고생하니 맡을 사람도 없고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하릴없자 헤어지면서 다시 만날 기약이 없다.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나게나. 손잡고 흔들었다.

[박호]

그렇습니다
모두들 회장총무 안 맡을려고 꽁무니 ...
초등동기들 이제 몇 번 만나게 될는지요
그래도 사는데 까지 건강유지하며 친구들 만나야겠죠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성a도mom]

어릴때 맛있게 먹었던 그 맛이 돌아와주면 좋겠는데..요. 서울 애들은 한강변에 나가서 수영도 하고 놀았다 그러더라구요.
초등학교 동창생들은 코를리개때부터 같이 자라와서 남다르게 진한 우정같은게 남아있습니다. 남자동창들이 남자로 보이지도 않고...ㅋ
백세시대라고 해도 건강하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거 같아서 벌써부터 걱정이 조금 있습니다.
즐겁게 보내시고 오신듯해서 저도 즐겁습니다.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쌤!!

[강신구]

박회장님 카페 관리를 잘 줘서 고맙습니다.
여기는 늘 들어오고 싶고 만나 보고픈 자리입니다.
다 박회장님 덕분입니다.
성도님 찾아주셔서 고마워요. 말씁이 정겹습니다.
초등 동창들은 남다른 데가 있는데 같이 늙어서 비실비실합니다.
학교에 들어가 둘러보고 앉았다가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