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살 연산군은 중정반정 후 반정 후 강화도귀향가서 2개월 후 죽습니다, 그러나 연산군부인은 죽이지 않았기에 31년 뒤 61살에 죽습니다,
연산군과 폐비신씨에서 낳은 자식으로 아들로는 폐세자(1498~1506.10)와 창녕대군(1500~1506.10)이 있으며 딸로는 휘순공주(1491~?)가 있었습니다, 두아들은 중정반정때 사사가 되며 휘순공주는 폐서인이 되었으나 언제 죽었는지는 모릅니다,
이 휘순공주는 세종의 여덟 번째 아들 영응대군의 사위 구수영의 아들 구문경에게 시집을 가서 1남을 두었는데, 중정반정 이후 공신의 편이 된 시아버지 구수영의 청으로 이혼당했으나, 중종반정 2년 뒤인 1508년, 유순 등의 의견에 따라 중종은 공주를 다시 남편 구문경과 재결합시키고 집을 내리게 하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