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천삼백리를 걷다. 정선에서 영월까지
4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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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고교동기들 모임이 있어 충주호 레이크호텔에 묵었다. 아침에 일곱시에 서둘러 호텔을 나섰다. 호텔에서 조식을 할까 했는데 중국인 여행객들이 줄을 서 있어 차례를 기다리려면 이십여분을 기다려야할 것 같아 포기를 했다. 정선읍까지 지도상으로 어림해보니 60키로는 넘어 보이는 거리였다. 충북 제천에서 도계를 넘어 강원도 영월을 거쳐서 정선읍까지의 만만치 않은 거리였다. 택시를 불렀다. 중간 휴게소에 들려 어묵과 감자떡으로 요기를 했다. 여덟시 좀 넘어서 일행과 만나기로 약속했던 정선 버스 정류소에 도착했다. 정류소 마당에 버스가 한 대도 없었다. 터미널이라고 부르기가 민망할 정도로 사람의 움직임이 없는 시골의 한적한 정류소였다.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일행을 태운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는 산길을 올라갔다. 정선읍을 가로질러 왔던 강물은 저 아래로 휘돌아 흘러가고 우리는 산을 넘는 고갯길을 가로 질러간다. 뱅뱅이재 정상에서 차를 내렸다. 뱅뱅이 재는 귤암리에 살았던 사람들이 정선 장을 보러 다녔던 길이었다. 안개에 쌓여 전망을 볼 수 없었다. 전에 한번 와본 기억이 있다. 강물이 휘돌아 내려가 한반도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가는 곳이었고, 그 배경에 줄서서 인물 사진을 찍었던 명소였다. 그 경치를 즐기면서 내려가도록 짚라인이 설치되어 있는 데, 그날 아침은 모든 것이 안개 속에 묻혀있었다. 가파른 오솔길을 따라 내려갔다. 참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등의 활엽수의 낙엽이 쌓여 발목을 덮었다. 삼십여분 내려오니 강물소리가 들렸다. 그 사이 안개가 걷혔고, 기온은 풀렸다. 외투를 벗어 배낭에 챙겨넣고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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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 할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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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따라 밭이 있고, 집이 들어서 있다. 귤암리에 도착했다. 정선의 문화 해설사 한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막걸리와 배추전을 내 놓으셨고, 정선 아리랑 공연이 있었다. 오늘 정선5일장 공연이 있는데 목 풀이로 두 분의 명창이 십오분 공연을 선보였다. 노래 못지않게 고우셨다. 강물과 나발봉을 배경으로 꾸며진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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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물이 깊고야 깊다고 하지만 우리님 속은 한강보다 더 깊네
비가 올라나 눈이 놀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어둔산천에 어둠이 막몰려오네
....... .........
여러분들 오셨는데 앞앞이 인사 못드리고 정선아리랑 한가락으로 인사드립니다.
하면서 노래를 마쳤다.
오전 기행을 마치고 정선장으로 향했다. 점심때가 다 되어 군것질하는 것도 마땅치 않았고, 지난 번 기행 때 들렸기 때문에 별로 흥미가 없었다. 식당으로 향했다. 곤드레 비빔밥을 먹고 이동하여 오후 기행을 시작했다.
어제까지 비가 내려서 강물은 풍성했고, 초목은 푸르렀다. 햇볕은 따스했고, 강바람은 포근했다. 차량왕래가 별로 없는 한적한 강변길을 걷는 것은 신이 나는 일이었다. 한 시간여 걸어 내려가 가수리에 도착했다. 강물은 가수리에서 지장천을 받아 들였다. 지장천은 민둥산(1,118M)에서 흘러내려온 물이다. 여기까지 조양강이고 다음부터는 동강이다. 가수리는 한 때 제법 큰 동네였음을 알 수 있었다. 초등학교 분교자리가 있고, 700년이 넘는 느티나무와 수백년이 된 노송이 있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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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더 내려가 수동쉼터에서 쉬었다. 쉼터로서 여러 가지를 갖추고 있다. 정자가 있고, 화장실이 있고, 너른 공간이 있는 곳이다. 여기부터는 신동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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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시에 나리소에 도착했다. 강물이 암벽에 부딪쳐 휘돌아가는 곳에 깊은 소가 만들어졌다. 물색이 시퍼렇다. 두려움을 느끼는 아름다움이다. 물 건너 모래사장이 사람의 흔적이 전혀 없는 처녀지로 보였다.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높은 전망대에서 내려 보는 것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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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소
다섯시반에 고성산성 입구에서 일정을 마쳤다.
4월 28일
아침에 차에서 내려 고성산성으로 향했다. 사십분 넘게 산성으로 향하는 길을 올랐다. 숨이 턱에 차오를 정도의 가파른 경사였다. 성에 오르니 사방이 한 눈에 들어왔다. 한강의 물줄기도 ,앞에 보이는 평창군의 백운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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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서 내려와 강을 따라 내려가다 다리를 건넜다. 여기는 정선군 신동읍 제장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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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안길로 들어섰다. 사과 과수원을 돌아서 산길로 접어들었다. 칠족령을 넘어서 평창군 미탄면 문희마을까지 가는 길이다. 칠족령은 백운산 6개봉 중의 하나다. 아래서 올려볼 때 설마 저 봉우리는 아닐 것이라 생각했던, 가장 날카로운 바위산을 타고 올라갔다. 중간에 두 번 쉬었다. 한 시간 넘게 비지땀을 흘리며 올랐다. 좌우로 강물이 깎아지르듯 암벽을 만들었고, 사행천의 비경이었다. 물길이 구불구불 마치 뱀이 지나간 것처럼 요동치듯 흘러 간다해서 사행천이라 부른다. 값진 땀의 보상이었을까. 천하 비경이 눈에 들어왔다. 칠족령의 전망대에 올라서 탄성을 지르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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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능선을 경계로 정선군 신동읍에서 평창군 미탄면으로 넘어간다. 숨을 편안하게 고르며 바위길 능선을 따라갔다. 수백 미터 되는 벼랑에 참나무들이 아슬아슬하게 옷을 입혀주었다. 산이 높아서 벼랑이 험난해서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저 아래서 흐르는 강물이 여울에 부딪쳐 재갈재갈 소리를 내며 흘러갈 뿐이었다. 미탄면 문희마을에 도착했다. 험난한 재를 넘어오니 여유로움이 생겼던지 배낭에 있는 비상식량 다 털어서 나눴다. 몇 사람이 문희 마을 슈퍼에서 간식거리를 사서 날렀다. 이때 통 큰 기부자가 나왔다. 닉네임 소양사랑 이선생님이 도반들 전원에게 아이스크림을 쐈다. 구십 개도 넘었을 것이다. 예쁜 분이 마음씨도 고울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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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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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길을 따라 내려간다. 한 시간 쯤 내려가 점심도시락 운반하는 차를 만났다. 점심도시락을 받아서 들고 길바닥에 앉아서 허기를 때웠다. 대한민국의 오지 산간지방에 왔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십 년 전에 도시락 식사를 했던 기억이 있다. 낙동강 기행 중, 봉화군을 지날 때였다.
점심식사를 하고 바로 길을 나서자마자 내를 건너야했다. 미탄면에서 흘러내려오는 창리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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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을 배낭에 잡아매고 바지를 걷고 물을 건넜다. 발은 시렸고, 물은 허벅지까지 차올랐다. 물을 닦아내고 신발을 고쳐 신고 다시 길을 나섰다. 강 건너에 빈집이 서너 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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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이편에 넘어와 경작을 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보리가 키를 다투며 자랐고, 뽕나무와 꾸지뽕나무가 잎을 틔우고 있었고, 갯버들이 꽃가루를 날리고 있었다. 보리를 밟고, 뽕나무를 헤치고, 꾸지뽕나무 가시에 찔려가며 길을 해쳐나갔다. 이번 기행에 이렇게 강 자락을 해쳐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곳곳에 홍수 때 떠내려온 퇴적물이 수북했다. 비닐, 페트병, 스치로폼에다 축구공, 농구공도 있었다. 가장 많은 것은 강변에서 자라던 갈대였다. 대형덤프트럭으로 가득차고 남을 갈대더미가 가는 곳마다 수북히 쌓여 있었다. 그 위를 걸을 때 푹신푹신했다.
벼랑을 만났다. 강쪽으로는 깊어서 넘어갈 수가 없었다. 여기에서 체증이 생겼다. 앞에서 벼랑위로 올라간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서 있다. 마지막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치기도 하였거니와 약간 긴장하는 얼굴 빛도 역력했다. 그때 어떤 도반이 노래를 신청했다. 그러자 동시에 여기저기서 노래 신청이 쏟아졌다. 사양할 수 없었다.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곡목은 이미 정해졌다. “떠나가는 배”였다.
저기 떠나가는 배 거친 바다 외로이
겨울비에 젖은 돛에 가득 찬바람을 안고서
언제 다시 오마는 허튼 맹세도 없이
봄날 꿈같이 따사로운 저 평화의 땅을 찾아
가는 배여 가는 배여 그 곳이 어디메뇨
강남 길로 해남 길로 바람에 돛을 맡겨
물결 너머로 어둠 속으로 저기멀리 떠나가는 배
강물은 도도히 흘렀고, 모든 도반들은 노래에 빠져들어 갔다. 벼랑위에 순서를 기다렸던 이들이나 내 뒤에 있었던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감동의 순간이었다. 스스로 말하기가 쑥스럽지만 오래 기억에 남을 명장면이었다.
순서가 되어 벼랑에 올라가 줄을 서서 기다렸다. 10 미터 되는 벼랑을 PP로프에 매달려 내려가는 길이었다. 경사가 그리 급하지는 않았다. 남자들이라면 수월했을 것인데, 여자 도반들의 공포가 상당했다. 그 벼랑을 벗어나니 몽돌강변이었다. 갯버들 꽃가루가 어지러이 날렸다. 갯버들 숲을 헤치고 나가니 강가에 미꾸라지 통발을 터는 어부가 있었다. 하루에 십 키로 정도 잡는 데, 일 년에 지금 한 철 열흘 동안 잡힌다고 했다. 영월추어탕에 미꾸라지를 납품한다는데, 영월추어탕의 재료는 믿어도 되겠다.
한 시간 반 만에 강변을 벗어나 너른 길에 올라섰다. 바람 잔잔하고, 물소리 담숙해졌다. 녹음방초 향기 가득한 길을 간다. 드디어 포장도로에 이르렀다. 마지막 고빗사위를 넘어간다. 언덕 빼기에 올라서니 아름다운 강촌의 정경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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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하루 종일 아름다운 강변길을 눈이 시리도록 즐기고 간다. 문산교에서 일정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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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하여간..
그저 부러울뿐..
카페지기님 손님도 없는 빈집을 지키시느라 애쓰네.
내 친구 중에 김초 출신이 있는데
내 글을 보고 싶어 우리 카페에 들어왔고,
댓글을 달라하니 자격이 없다고 바람을 맞았다고 해
그냥 회원등록해주면 어떻겠나.
이렇게 카페가 있으니 조금 으쓱해지네
명문초등학교의 자부심도 생기고
이 모든 것 자네가 애써서 만들었고 잘 가꿔온 덕 아닌가
글 잘 읽고 구경도 잘했네...
글쎄 카페지기 권한으로 가입 가능 하겠지만 혹시 다른 친구들이 알며는 반역죄로 다스릴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