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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호정[서울 남산 전통 활쏘기 국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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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사람과 사람들]`아차산 산신령` 김민수 향토사학자 남한 최초의 고구려 보루성 발견
석호정.호미 추천 0 조회 61 11.06.03 06:4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이사람]'아차산 산신령' 김민수 향토사학자 남한 최초의 고구려 보루성 발견

 

1500년 침묵을 깨다

 

1977년 발굴된 구의동 보루는 처음에는 백제 고분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1988년 몽촌토성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고구려 유물들과 동일한 계통의 것임이 확인되어. 90년대에 이르러서야 고구려유적으로 밝혀졌다. 이 로써 한강 일대의 고구려 유적이 주목받게 되었고, 90년대 초반 지표조사를 통해 아차산 일대에 고구려 성곽이 조재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1997년 아차산 4보루 발굴조사를 시작으로 최근까지 홍련봉 1-2보루(2004~2005). 용마산 2보루, 아차산 3보루, 아차산 4보루, 시루봉 보루 등을 발굴조사하게 되었다. 그 결과 다양한 고구려 토기, 연꽃무늬 와당, 투구 및 각종 무기류와 농공구류 등의 철제 유물과 함께 온돌이 설치된 건물지와 저수시설 및 대장간 시설 등이 확인되었다. 이로써 고구려가 한강 일대를 확보하고 있던 시기 고구려군의 편제와 산성축조방식 등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아차산 자락 아래 마을에 살면서 우연한 기회에 아차산과 인연이 되어 20여년간 아차산의 역사와 유물을 발견하고 민간 토착신앙과 무속신앙도 연구하는 아차산 산신령인 김민수 향토 사학자를 만나러 간 곳은 아차산 입구에 작은 사무실 몇 평 밖에 되지 않는 좁은 공간, 아차산향토자료실, 그 분의 20여년의 열정이 고스란히 남겨진 곳에서 인터뷰가 이뤄졌다.

 

아차산의 큰 바위와 닮았다고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는 우직하고 얼굴과 눈빛에서 아차산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엿보게 된다. 1년에 300번은 아차산을 오른다는 '아차산 산신령' 그에 걸 맞는 별명이다.

 

아차산 산신령이란 별명이 아주 특별하다는 느낌입니다.

어떻게 산신령이란 별명을 얻게 되었는지요?

   

학자들과 지표 조사를 하는 과정에 경기문화재단의 강진갑씨와 함께 학자들이 이것저것 찾아내어 알려드리니 모르는 게 없다고 애칭이 되어 산신령이라고 불렸다. 또한 무속과 민간신앙을 조사하는 과정에서도 무속인과 민속학자들이 찾았을 때 아차산의 무속신앙이 많다는 것을 어울리는 산신령이 어울린다고 했다.

 

고향이 서울 광진구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특별히 아차산과의 인연이 있어 아차산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천호동에 살다가 강 건너 아차산을 바라보다 아차산을 오르며 아차산 입구의 동네를 보고 1989년 아차산 아래로 이산 후 아차산에 산불이 나게 되었고, 민방위로 소집이 되어 산불 끄는 인력으로 동원되어 잔불을 끄는 과정에 우연히 그 시절 성동구 관할이었던 아차산 동네 사는 민방위 대원들에게 특별한 편의를 제공한다고 해서 참여했다. 불을 끄고 있는데 돌틈 사이 불은 잘 꺼지지 않아 고생을 했는데 알고 보니 그런 돌무지가 계속 이어져 있었고, 기원정사 쪽으로 이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끝까지 이어진 곳에 구덩이가 있어 알고 보니 유적지라고 짐작되어 서울시 문화재 관리국에 보고를 하였으나 믿지 않았을 정도였고 보루가 20~30개가 있다고 하자 오히려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그때만 해도 가시덤불로 덮여 쉽게 찾을 수 없기에 혼자 사진을 찍어 자료집을 자비를 들여(아차산의 재발견과 가능)을 만들어 문화재 관리국에 제출하자 문화재관리국 직원 두 사람이 한 달 동안 조사를 하였어도 도저히 성이라고 믿지 않았었다.

 

마침 구리시에서 문화원에서 조사를 서둘러 지표조사를 하게 되었는데 서울대학교가 참여하게 되었다. 그 결과 1. 2보루와 홍령봉 모든 보루가 고구려 유적지임을 확인해서 16개의 보루를 사적지로 지정되었다.

 

아차산을 오르는 사람이라면 이것만큼은 꼭 알아야 할 상식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아차산에 와서 자연과 호흡하고 피톤치드와 건강을 지키며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한강의 중요성과 아차산에 보루성을 쌓게 되었는지 역사의 호흡을 흠뻑 젖어듣어 산행하면 좋겠다. 아차산의 명물 연리근과 연리목이 지난 태풍에 모두 죽어 안타깝다.

 

고구려의 역사의 숨결이 흐르는 아차산 자락에 평강공주와 온달장군의 이야기가 있는데 자세히 들려주세요.

   

온달장군에 대한 전설이 충북 단양에도 있고 아차산에도 있다. 온달의 전사 지역이 어딘가에 말들이 많았다. 발굴 후 결과를 보니 단양의 온달산성은 신라시대 것이었다. 단양 온달산성 주위에는 고구려에 대한 고고학적인 자료들이 없었다. 하지만 아차산성에는 온달이 출정하면서 한강 이북의 땅으로 중요시했다. 보루군락에 신라의 유물이 많아서 고고학적으로 유리하다.

 

온달전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하다. 계급사회에서 공주와 결혼했다는 것은 가능성이 없는 것이었다. 결국 서민의 신분상승에 대한 욕구에서 나온 설화나 비슷하다. 결국 천민들도 부마까지 오를 수 있었기에 계급의 대물림을 위해서 미천한 사람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 결국 계급타파로 전쟁을 참여하기 위한 메시지다.

 

 

아차산의 고구려 역사를 더욱 널리 알리는 방법으로 특별히 노력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아차산성의 사적 235호 지정된 16개와 아직 미정의 4개 없어진 보루군 10개 까지 포함하면 30개였었다. 고구려의 대륙사관으로 고구려의 웅대한 기상인 광개토왕이 왔었고 장수왕이 왔던 곳으로 학생과 일반인들에게 역사를 알려주는 계기로 하고 있다. 광진구와 구리시가 서로 협조 하에 고구려가 하나가 되기 위해 광진구와 구리시가 홍보를 하고 있다.

 

아차산은 광진구와 구리시 두 곳에서 경계지역에 속해 있는데요. 서로 상호협조가 잘 이뤄지는지요

   

전에는 경쟁적으로 광진구와 구리시가 서로 다른 축제를 했었는데 소모적이었기에 아차산에서는 일반인들에게 답사코스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구리시는 둘레길을 만들어서 서로가 이어졌다. 또한 고구려만이 아닌 한강을 전체를 합쳐 연구하게 되었고 어린이대공원에도 석물들이 많다. 순종황제의 왕비 민씨 유적을 비롯해서 한강을 둘러보면 무속이 관계된 불교, 고구려 고성 등을 자연 지속적으로 학생과 일반인들에게 홍보할 계획이다. 광진구에서도 2002년 생태공원 안에 아차산 향토자료실을 개설하고 고구려를 체험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매주 토·일요일과 공휴일, 평일에도 20명 이상 신청자가 있으면 산을 오른다. 홍련봉보루부터 온달장군주먹바위 용마산보루까지 훑으며 고구려 유물과 유적에 대해 알린다.

 

아차산향토자료실에서 하는 일들에 대하여 말씀해주세요

 

아차산에 역사문화를 여러 사람에게 알려주는 홍보 목적이다. 유적지를 찾아올라가는 길이 어렵다. 학생과 연구자들에게 답사만 한 사람이 연5천여 명이다.(대학생 이상) 고증되어있는 유적지가 한 곳에 있다. 위험한길 안내 등을 하고 있다.

 

 

아차산 향조자료실 작은 곳에서 김민수 향토사학자는 아차산과 한강의 주변의 역사를 발굴하는데 여념이 없다.

 

 

 

아차산 향토자료실-아차산 고구려 역사자료집

 

 

어린학생들이 아차한 고구려 문화 역사관을 방문하고 나오자 반갑게 맞아주며 인사를 나누는 김민수 향토사학자

 

홍보관에서 아차산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 김민수 향토사학자

 

 

 

 

아차산을 닮아가고 있는 그 얼굴에 아차산의 역사도 함께 주름으로 새겨지고 있다.

 

 

아차산의 대표하는 평강공주와 온달왕자 동상 앞에서

 

아차산 입구

 

 

친필서명까지 해주시며 '아차산의 전설' 책을 선물로 주셨다.

 

아차산 홍련봉 보루의 사진

 

아차산..

 

아차산의 푸른 녹음이 우거진 그 안에 고구려가 숨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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