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명견만리 2권 ⑤ 4차 산업혁명, 도대체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230907
한국 제조업의 위기
이제 제조업은 끝난 걸까
2015년 연말, 우울한 뉴스 하나가 전해졌다. 국내 최대 중장비 업체였던 두산 인프라코어가 실적 악화로 신입사원까지 명예퇴직을 시키려다 철회한 사건이었다. 두산 인프라코어는 1990년대 초 국내업체로는 최초로 중국에 진출해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2007년에는 매출 1조 원을 달성하면서 세계 건설장비 부문 7위까지 부상했다. 그런데 2015년 매출 부진으로 적자 규모가 8,595억 원에 이를 만큼 심각한 경영난을 겪자, 충격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한 것이다. 사무직 3,000여 명 전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는데,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0대 신입사원까지 희망퇴직 대상에 포함시키면서 내외부로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135쪽)
최고의 건설 중장비 업체에서 청년 명퇴 논란까지 나올 만큼, 한국 제조업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 확실하다. 이유가 뭘까? 전문가들은 글로벌 경기침체와 유가 하락을 주원인으로 꼽는다. 또 다른 전문가들은 이제 제조업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둘 다 맞는 말이다. 한국 제조업의 위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난 40년간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조선, 중공업, 석유화학 등의 산업이 기울고 있다. 제조업 영업이익률은 2010년 이후 계속해서 하락 중이다. 2014년 산업별 매출액 증감률을 보면 유일하게 제조업만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2015년 조선해양은 7조 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했고, 수출도 전년 대비 7퍼센트 감소했다.
그런데 제조업의 시대가 끝나간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이제 앞으로 이런 제조기업들이 다 사라지는 것일까? 다른 나라의 제조업들도 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하향세를 겪고 있을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일본 코마츠라는 기업을 한번 살펴보자. 코마츠는 세계 2위의 중장비 업체다. 2015년 두산이 최악의 시기를 보낼 때 코마츠는 10퍼센트 이상의 영업이익률을 유지했다. 이 차이는 어디서 발생했을까?
비밀은 코마츠가 생산하는 건설장비 제품 내부에 있다. 코마츠는 전 세계에 판매한 중장비 40만 대를 점검, 관리하는 원격감시 시스템 ‘콤트랙스(KOMTRAX)를 운영하고 있다. 장비의 각 부품에는 센서가 연결되어 있어서, 수십 개의 센서를 통해 수집된 데이터가 휴대전화 통신망과 GPS를 통해 실시간 관제센터에 전달된다. 이전의 중장비 기계에서는 볼 수 없던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고객들의 중장비 위치, 가동 시간, 기계의 이상 등을 실시간으로 체크해 큰 고장을 사전에 예방함으로써 수리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즉 고객에게 우수한 장비 관리 솔루션을 제공하여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136쪽)
쉽게 비유하면 이런 것이다. 세탁기가 고장 나 애프터서비스를 신청하고 기다리면 수리 기사가 와서 무슨 문제가 있는지 조사한다. 세탁기의 고장원인을 찾았다면 교체할 부품을 가지러 갔다가 다시 와야 한다. 교체할 부품의 재고가 있는지도 파악해야 한다. 세탁기가 재가동 될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세탁기에 이미 장착된 센서로 어떤 부품이 문제를 일으키는지 미리 알려준다면 이 시간이 크게 단축된다. 더 나아가 문제가 생길 노후 부품의 교체 시기도 사전에 알려준다. 또한 평소에 고객이 세탁기를 사용하는 방식을 분석해 올바른 세탁기 사용법을 알려줄 수도 있다.
코마츠의 GPS 감시· 제어 시스템인 ’콤트랙스‘가 바로 이와 같은 일을 한다. 코마츠는 장비 운영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확인해 애프터서비스가 아니라 비포서비스를 제공한다. 산업현장에서 고장 나 멈춘 장비를 고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전부 손실이다. 가정에서 세탁기 하나를 구입할 때도 서비스의 효율성이 구입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데, 하물며 중장비를 구입할 때는 어느 기업을 선택할지는 자명해 보이지 않는가?
이처럼 두 기업의 실적 차이는 세계 경기 둔화보다는 다른 요인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두산인프라코어와 코마츠의 차이는 사실 두 기업 사이에서만 발견되는 특수한 모습이 아니다. 이는 4차 산업혁명의 큰 흐름과 관련된 아주 중요한 문제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이 무엇인지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보자. (138쪽)
성큼 다가온 사물인터넷 (IoT, the Internet of Thing) 시대
데이터는 4차 산업혁명의 에너지
2016년 1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의 주제는 4차 산업혁명이었다. 다보스포럼의 클라우스 슈밥 회장은 4차 산업혁명이 쓰나미처럼 우리 산업과 경제 그리고 삶의 패러다임 등 모든 시스템을 완전히 뒤바꿔 놓을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4차 산업혁명은 현재의 불평등을 더 심화시킬 것입니다. 이미 준비된 기업가, 재능 있거나 혁신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4차 산업혁명을 통해 승리하겠지만, 다른 편에 있는 사람들, 특히 뒤처진 이들은 패배할 것입니다.”
산업혁명 과정 비교 |
1차 산업혁명 | 2차 산업혁명 | 3차 산업혁명 | 4차 산업혁명 |
증기기관을 통한 기계적 혁명 | 전기동력으로 대량생산 | 컴퓨터를 통한 자동화 | 소프트파워를 통한 지능형 공정과 제품의 탄생 |
도대체 4차 산업혁명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위협적인 경고를 하는 걸까. 4차 산업혁명이 세계적인 경제포럼의 주제가 되었다는 것은 이것이 미래의 일이 아니라 이미 다가온 현재라는 뜻일 터. 과연 4차 산업혁명의 정체는 무엇인가?
인류는 증기기관으로 대량생산의 기틀을 마련하며 1차 산업혁명을 이루었다. 2차 산업혁명은 전기와 컨베이어벨트로 촉발되었다.
3차 산업혁명은 컴퓨터를 통한 자동화가 이루어진 시기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은 소프트파워를 통한 지능형 제품과 공장의 탄생으로 정의할 수 있다.
3차 산업혁명에서의 컴퓨터는 생산과 소비, 유통 시스템을 자동화하는 역할이었지 생산 방식과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물건까지 지능화한 것은 아니었다. 이에 비해 4차 산업혁명에서는 기계와 제품이 지능을 갖게 되었고, 인터넷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어 학습 능력도 뛰어나다.
기계와 제품이 지능을 갖고 스스로 학습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존 산업에서 생산되던 물건은 사라지고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로 대체된다. 생각해보라. 온갖 일을 다 하는 똑똑한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사라져 가는 물건이 얼마나 많은지를. 카메라, 전자사전, MP3 플레이어, 시계, 지도, 수첩, 손전등, 신문, 게임기, 내비게이션 등등…. 이 많은 물건과 관련 산업이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사라지거나 위협받고 있다. 그러니 사물과 제조공정 자체가 스마트폰처럼 똑똑해지면 그로 인해 사라지거나 대체될 기업, 서비스, 물건, 직업은 얼마나 많겠는가.
새롭게 다가올 세상이 얼마나 큰 충격을 불러올지 가히 상상하기가 어렵다. 4차 산업혁명이 만들어낼 세상을 조금 더 탐색해보자. (140쪽)
허리에 차고 다니면 걸음 수를 측정해주는 만보기는 걷기 열풍이 한창일 때 꽤 잘나가는 제품이었다. 그러나 이제 만보기 대신 그보다 열 배는 더 비싼 스마트밴드를 쓰는 사람이 늘고 있다. 손목에 차는 스마트밴드 ‘핏비트(Fitbit)’를 만든 핏비트는 창업 8년 만에 10억 달러의 수입을 올리며 2015년 6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상장 당시 핏비트의 시가 총액은 약 4조 8,000억 원. LG전자 시가 총액의 반에 맞먹는 액수다. 핏비트는 미국 웨어러블 시장의 85퍼센트를 점유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3,000만 대 이상 팔렸다.
핏비트가 만보기와 완전히 다른 제품은 아니다. 쉽게 말하면 똑똑한 만보기다. 시계처럼 차고 다니면 만보기 기능은 물론이고 심박수, 칼로리 소모량, 수면 패턴 등을 측정·분석해준다. 이 모든 데이터는 스마트폰에 자동으로 저장된다. (後略, 141쪽 계속)
유사한 예를 한국의 한 스타트업 회사에서도 찾을 수 있다. ‘웨이’는 피부에 대는 것만으로 수분 상태, 자외선 지수 등을 측정하여 피부 상태를 분석해주는 제품이다. 이 동그랗고 작은 제품을 만든 회사는 2015년 초 시제품과 제품 사용 영상을 만들어 발표한 뒤 50일 동안 1억 원어치가 넘는 선주문을 받았다. 사물인터넷 기기와 앱을 연동해 피부 상태를 단 2초 만에 파악할 수 있는 이 제품에 전 세계 화장품, 전자 대기업들의 투자 문의가 쇄도했고, 국내 대기업으로부터 30억 원의 투자를 받았다. 창업 1년 만의 일이었다. 콤팩트한 디자인과 기술력도 매력적인 요소였지만 제품보다 더 중요한 것은 데이터였다. 환경이 피부에 미치는 영향이나 지역별 피부 특성과 같은 데이터들이 축적되면 스킨케어 제품 개발 등에 활용할 수 있기에 회사의 미래가치를 높게 평가받은 것이다. 이처럼 큰 기업이 작은 스타트업을 찾아오는 역전 현상은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게다가 앞으로 이와 같은 사례는 급속도로 늘어날 것이다. 어느새 우리에겐 익숙한 단어가 된 ‘사물인터넷’이 대표적인 경우다. 전문기관들은 2020년에는 전 세계 500억 개의 사물에 인터넷이 연결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모든 사물에 센서와 컴퓨터가 장착되고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사물인터넷 시대가 기술 발달로 성큼 다가오면서 4차 산업혁명의 조건이 무르익고 있다.
이 사물인터넷을 통해 가치 있는 데이터들이 만들어진다. 사용자의 키, 나이, 성별 등의 생체 데이터,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데이터, 사람이 제품을 사용하며 나오는 데이터 등은 다른 산업으로 연결되고,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내기도 할 것이다. 그러면 기존의 산업들은 어떻게 될까?
비옥한 디지털 토양을 가진 한국
4차 산업혁명의 꽃을 피울 것인가
(153쪽)
이제까지 살펴본 4차 산업혁명의 주요 키워드들을 정리해보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결합, 모든 사물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며 데이터를 만드는 초연결사회, 테이터가 지배하는 산업현장, 고객의 욕구를 충족하는 똑똑한 제품과 공장 등이 그것이다. 3차 산업혁명까지는 제품 혁신, 공정 혁신이 중요했으나 4차 산업혁명에서는 IT를 결합한 비즈니스 모델 혁신이 중요하다.
이제 4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로 우리를 밀어 넣고 있다. 미국의 GE(General Electric Company), 독일의 노빌리아 등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제조와 정보통신기술의 융합으로 폭발할 4차 산업혁명은 기술 선도국에는 이미 도착해 있는 미래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떤 변화를 맞이하고 있을까. 대한민국은 국제 전기통신연합(ITU)이 인정하는 세계 최고의 인터넷 준비지수를 갖춘 나라다. 4차 산업혁명을 농사로 친다면 가장 비옥한 토양을 갖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직 이 토양 위에서 꽃이 피지 못하고 있다. 몇몇 스타트업 기업이 고군분투하고 있을 뿐이다. (154쪽)
한국형 전투기 개발과 관련해 미국 정부가 기술 이전을 거부해 논란이 된 바 있는데, 미국 정부가 이전할 수 없다고 한 핵심 기술이 바로 소프트웨어다. 1960년대에 만들어진 F4 전투기 기능의 약 8퍼센트가 소프트웨어 기반인 데 반해, 2007년산 최신예 전투기 F-35는 소프트웨어 비중이 무려 90퍼센트다. 미국이 소프트웨어 기술을 이전하지 않으면 우리 힘으로는 한국형 전투기 개발이 어렵다는 이야기다.
IT 강국이라고 하지만 우리의 소프트웨어 수준은 이 정도다. 일반 제조업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14년 OECD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독일의 제조업 혁신 수준은 83퍼센트인데, 한국은 독일의 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국내 600개 중소기업을 상대로 설문한 결과 스마트 공장 정책에 대해 62퍼센트가 모른다고 답했고, 80퍼센트가 스마트 공장 도입 의향이 없다고 했다.
또 현재 독일 기업의 83퍼센트가 사물인터넷 적용을 검토하고 47퍼센트가 공장을 네트워크했지만, 우리는 300대 제조기업 가운데 54퍼센트, IT기업의 49퍼센트가 사물인터넷을 모른다고 답했다. 아직 우리의 제조업계는 3차 산업혁명의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혁명의 그래프는 S커브를 탄다고 한다. 아무리 투자해도 처음에는 성과를 보기 어렵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게다가 자금 여력이 있는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들은 이 시기를 견뎌내기가 쉽지 않아 사실상 혁신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업,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훌륭한 디지털 토양과 제조역량이라는 우리의 강점은 충분한데, 이 둘을 연결할 시도들이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인터스트리 4.0을 위해 기업을 강력히 지원하는 독일 정부나 지능형 로봇을 앞세워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기 위해 적극적인 정책을 수립한 일본 정부의 기본 방향은 기존의 대기업 중심의 정책에서 벗어나 있다. 우리 정부도 대기업 중심의 경제 정책에서 벗어나 4차 산업혁명에 걸맞은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