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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발견
시어도어 젤딘 Theodore Zeldin. 1933~
「런던 버크백 칼리지와 옥스퍼드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에서 라틴어와 철학, 역사를 전공했다. 프랑스 역사연구로 옥스퍼드 성 안토니 칼리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동 대학에서 교수와 학장직을 역임했다. 영국 학술원과 유럽 학술원의 정회원이며 하버드대학교와 HEC 파리 경영대학을 비롯한 세계 16개국 대학에 초빙되어 강의했다. 영국 BBC, 다보스 세계경제포럼, 프랑스 정부 산하의 아탈리위원회를 비롯하여 수많은 기업과 공공 기관, 두뇌 집단들에 조언을 해왔다. 영국의 <인디펜던트>는 그를 다음 세기에도 지속될 사상을 가진 40인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했으며 프랑스의 <마가진 리테레르>는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사상가 100인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현재 낯선 사람들 간의 지적인 교류를 돕는 비영리단체 옥스퍼드 뮤즈 재단을 이끌고 있으며, 옥스퍼드 성 안토니 칼리지의 명예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화와 소통, 호기심을 장려하는 옥스퍼드 뮤즈의 프로그램은 알랭 드 보통이 설립한 ‘인생학교’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10,20세기 프랑스 남녀들의 개인사를 중심으로 근대사를 조망한 2000페이지 분량의 대작 <프랑스 정감의 역사>를 집필하여 역사 저작물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상인 울프손 상을 수상했고, 이후 프랑스 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고독, 공포, 호기심, 사랑 같은 감정의 영역들을 탐구하여 인류의 역사를 고찰한 전작<인간의 내밀한 역사>는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하며 그의 명성을 알렸다. 연대기 순의 평면적인 역사에서 벗어나 생동하는 개인들의 삶을 조명한 저작들을 통해 현대의 발자크라는 별칭을 얻었고, 프랑스인이 가장 사랑하는 영국인,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지적이고, 사랑스럽고, 신랄하고, 낙천적이고, 심각하고, 영리한 학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행복> <프랑스인> <대화> 등 그의 저서들은 24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프롤로그]
• 삶의 숨겨진 기쁨으로 향하는 첫걸음
권리를 쟁취하라! 저항하라! 주위를 둘러싼 공포를 무시하고 마음껏 즐기면서 행복하게 살아라! 돈을 벌고 열심히 일하고 권력을 쟁취하라! 주름살을 감춰라!
이 책에서는 우선 개인이 무력감이나 소외감에 빠지고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거나 문명의 제도가 몸에 맞지 않아 좌절한 순간에 그전에는 아무도 시도한 적이 없는 선택을 내리는 과정을 살펴본다. 그리고 돈과 편견, 가식과 오해로 세워진 장벽 너머 아무도 걸어가지 않은 길을 탐색할 것이다. 이어서 두 사람이 처음 만날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아보고 커플의 의미를 확장해 본다.
다음으로 국가든 종교든 큰 집단에 속한 사람들을 만나 볼 것이다. 집단이 애초의 모습과 전혀 다른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들여다볼수록 오늘날 요지부동으로 보이는 집단의 장벽이 생각만큼 속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집단이 스스로를 차별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은유와 내부의 갈등을 은폐하거나 이미 폐기된 이상으로부터 시선을 돌리기 위해 내거는 구호를 들춰보면 무수한 불확실성이 드러난다. 인간이 극단적인 충성심에 사로잡혀 폭력을 자행하고, 후회하면서도 자꾸 잊어버리는 것은 과연 불가피한 속성일까? 우리가 이런 어리석음을 조롱하면서도 그런 행동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음으로 인간이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지루하고 하찮은 남에게 굽실거리기까지 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 보내는 이유는 무엇이고, 새로운 세대를 위해 가치 있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직업이 늘어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며, 가정보다 직장에 환멸과 배신과 중상모략이 많은 이유가 무엇이냐는 까다로운 문제를 살펴볼 것이다.
끝으로 시간의 경과를 성찰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노화의 과정과 죽음의 전망을 좀 더 명확히 살펴볼 것이다. 인간의 에너지가 애초에 어떻게 성적 관계와 상업적 관계와 대화하는 관계로 각기 다르게 분화할 수 있었을까? 사람들이 직접 만나 친밀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삶에 만연한 불신과 오해가 불식될 때도 많다. 그러나 시시하거나 두서없거나 혼잣말이거나 아름다움이 빠진 새소리와 같은 중얼거림으로 똑같은 말만 끝없이 되풀이하면서 그 자리를 맴도는 대화도 많다.
이 책은 읽다가 도중에 덮지 못할 만큼 흥미진진하지는 않지만 한 장이 끝날 때마다 잠시 사색하면서 책의 내용에 관해 자기만의 대화를 시작하게 해준다.
나는 생각을 사교활동으로 여기고 싶다. 각기 다른 영역의 생각과 사람들을 통합하는 과정은 생각을 확장하고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데 중요하다. 저마다 다른 개인들 사이에서,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견해들 사이에서,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이외의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것은 삶의 숨겨진 기쁨으로 향하는 여정의 첫걸음이다. 때로는 세상을 밝고 선명한 색으로만 보지 말고 뜻밖의 공통점으로 경계가 모호한 암갈색으로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1장 우리 시대의 위대한 모험은 무엇일까
1859년 이란에 사는 스물 세 살 된 청년이 평생 한곳에 살면서 세상을 알지 못 할 것이라며 집을 나섰다.
그는 여름옷 한 벌과 빵 세 덩어리만 챙겨서 무작정 북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리고 러시아 땅에 도착했다.
그리고 18년 동안 걸어서 유럽 대부분의 국가를 둘러보고 미국과 중국 일본 인도 이집트까지 여행했다.
그는 일기에 "세상에 무지보다 더 큰 장애는 없다"라고 썼다.
하지 사이야흐는 낯선 곳의 말을 배워 통역으로 숙식을 해결하고 돈도 추천서도 후원자도 없이 떠돌며 많은 유명 인사를 만났다 러시아의 차르 로마교황 그리스와 벨기에의 왕 비스마르크 가리발디를 알현하고 율리시스 그랜트 미국 대통령을 만났다.
그는 네팔의 소매치기들과도 친구가 되어 신참 소매치기를 훈련시키는 합숙소에서 공짜로 잠자리를 얻었다 그는 아무 유감없이 이렇게 자문했다 사람의 삶이 어떻게 이리 극단적일 수 있단 말인가 어떤 사람은 저리 비열하고 또 어떤 사람은 저리 고결 할 수 있을까?
진보 길에 뒤쳐진 사람도 많고 진보 안에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도 많으며 진보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한자의 뜻 자애로움(仁)은 두 사람을 형상화한 글자이다.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사생활을 지키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특별한 존재임을 드러내어 인정받고 싶어 한다.
가난은 돈이 부족하다는 뜻일 뿐 아니라 자신의 기억만 간직한다는 의미이기도하다.
우리시대의 특징은 많은 기억을 보유하고도 거의 활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방대한 유산을 물려받았다 지금은 어느 때 보다 책 박물관 기록보관소 유품
역사는 빠져나갈 문이 없는 관이 아니다. 오히려 역사는 해방이고 애초에 있는 줄도 몰랐던 장소의 문을 여는 열쇠꾸러미다.
여행자는 자신의 재산과 종교와 목적지는 남에게 알려주면 안 된다는 속담이 있다.
2장 헛된 삶이란 무엇인가
오늘날 한 개인이 시험에 합격하고 경력을 쌓고 천생연분을 만나서 소중한 가정을 이루고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 말고 다른 무엇을 목표로 삼을 수 있을까? 삶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주고 삶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그 실망감을 보상해줄 다른 목표가 있을까?
현대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삶을 허비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을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들은 권력자가 시키는 대로 말하는 대신 마음속의 진정한 관심사를 말하는 법을 배운 사람들이다.
모기령의 묘비문은(그는 헛되이 살았도다)은 자신의 삶에 대한 솔직한 고백 이었다.
그전까지 전기는 주로 개인을 영웅이나 성인의 반열에 올려놓고 추앙하면서 인간적인 허점을 다루지 않았다 혹은 한 개인이 출세하는 과정을 지루하고 장황하게 늘어놓으면서 삶을 사건의 연속으로 기술하고 미화된 일화로 꾸몄다 그에 반해 모기령은 중국과 유럽에서 16세기와 17세기경어 거의 비슷하게 등장한 일군의 작가 중 한 사람이었다. 이들은 색다른 자서전을 썼다 자신을 신성한 모범으로 내세우지 않고 남다른 성격에서 의미를 찾고 나약한 내면을 솔직하게 성찰했다 이들은 개성의 의미와 난해함을 탐색했다 이들 덕분에 우리는 사회가 부과한 역할을 내려놓은 한 개인의 생각을 엿 볼 수 있다.
3장 어떻게 나에 관한 환상을 버릴 수 있을까
루치안 프로이트Lucian Freud1922~2011(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는 초상화를 그릴 때 마치 미지의 세계 앞에 선 탐험가처럼 모델에게서 몇 미터 떨어져 손차양을 만들어 모델의 얼굴과 몸을 바라보았다.
• 타인에게서 나를 발견하다
루치안 프로이트는 그림 한 점을 완성하는데 주로 1년 넘게 걸렸다..
• 새로운 초상화, 생각의 여권
인간은 새로운 목표를 추구할 때마다 새로운 형태의 초상화를 필요로 했다. 개인의 재능보다 가문과 재산을 중시했던 중세에는 인물을 실제와 닮게 그리기보다는 문장紋章에 관심이 많았다. 모델을 가급적 부유하고 아름답게 그리던 화풍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르고 존경받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시도였다.
거짓말하는 지도자를 불신하고 인종주의와 차별을 비난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과거보다 외양이 훨씬 덜 중요해졌다. 투명성과 정직이 최고의 가치로 존중받고 인간이란 무한히 복잡한 존재이고 겉모습과 전혀 다를 수 있다는 인식이 커지는 시대에는 초상화로 전달할 수 있는 이야기가 더 풍성해진다.
• 타인이라는 수수께끼
세상에는 정중하고 수줍고 불가해하고 난해하고 말수가 적고 피상적이고 정직하지 않은 사람들, 정직하기는 해도 해독하기 어려운 사람들, 어떤 이유에서인지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대개는 스스로도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 공감하고 경청해준다는 확신이 들면 과감히 속내를 털어놓는 사람이 많다.
충분한 자극이 없어서 머릿속에서 형태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사산된 생각들이 있다. 우리는 일상의 중압감에 눌려서 tfka의 근본적인 문제에 관한 대화를 회피할 때가 많다.
생각은 혼자 놔두면 외롭고 무력하다. 생각은 소통을 통해 수정되어야만 남들에게도 의미 있는 생각이 된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감춰둔 생각은 투표나 선거에서 피상적으로 살짝 드러날 뿐이다. 매체나 책으로 생각의 파편을 공개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 자화상을 그리는 방법
4장 세상의 반항아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인가
• 반란자의 비극
• 영원히 구경꾼으로 남다
• 반란과 좌절의 역사
• 예술이 현실에 저항하는 법
• 누구에게나 뮤즈가 필요하다
5장 빈자는 부자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하루 종일 끼니라고는 쌀 세 줌에 소금을 조금 넣어 끓인 죽이 전부인 가난한 여인이 가장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여인은 ‘구걸은 안 된다’라고 말했다. 여인은 자선을 바라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그래서 스스로 원해서 하루에 한 번만 밥을 짓는 것처럼 굴었다. “남들은 내가 영적인 삶을 위해 소박한 식단을 철저히 지키는 줄 알았다. 나는 항상 배고프지 않다고 말했다. 사실은 배가 고파서 밤새 잠도 이루지 못했다.” 하루에 한 끼도 먹지 못하는 날에는 음식쓰레기를 뒤지고 진흙 까지 먹어야 했다. 일주일 내내 음식을 입에 대지 못할 때도 있었다. 여인은 죽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평생 가난밖에 모르고 살았다.”
이것은 1866년에 뱅골에서 태어난 하이마바티 센Haimabati Sen 1866~1933 의 기록이다. 센은 아홉 살에 마흔다섯 살 먹은 남자에게 시집을 갔지만 1년 만에 남편을 여의었다. 이어서 부모도 죽었다. 혼자 남은 센은 과부를 재수 없다고 여기던 힌두교 관습에 따라 외톨이로 떠돌면서 친척 집이나 모르는 사람의 집에서 더부살이를 했다. 자라서 아름다운 여인이 되자 맹수 같은 남자들이 채가려 했지만 센은 누군가의 첩이나 매춘부가 되기를 거부하고, 범죄와 연관된 일들로부터 도망쳤다.
스물 세 살에 센은 관대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서 존경하던 남자와 재혼했고, 그제야 그녀도 사람들에게 존중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남편은 곧 dfl을 그만두고 ‘신을 칮는’데 몰두했고, 센이 밥벌이를 떠맡았다. 남편은 아내가 시중을 들어주기를 바라고 때리기도 했다. 남편이 죽자 센은 장례식 치를 돈도 없었다. 다섯 자녀도 센을 괴롭히고 압박하고 한 명을 빼고는 고마워할 줄도 몰랐다. 자식들은 어머니가 아파도 돌보지 않았고 그저 자기네일밖에 관심이 없었다. 며느리나 사위들은 더 심했다.
• 돈 없이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가
마지막 순간에 센은 “고통에서 뭘 얻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센의 삶은 비극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센은 세 가지 분야에서 돈 없이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 보여준 훌륭한 사례다.
센은 어릴 때부터 배운 여자는 시집을 못 간다는 말을 들으면서 자랐지만 남자 형제들 어깨너머로 글을 배우고 꾸준히 공부해서 결국 의과대학에 들어가서 의사가 되었다. 자식들을 키우면서 세벽 4시에 일어나 집안일을 하고 남편의 시중까지 들었다. ~~~의사라고는 해도 영국 식민지 시대라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지만 환자들을 돕는 데서 보람을 느꼈다. 돈이 없어도 초조해 하지 않았다. “사람은 돈 주고 의무적으로 받는 서비스에는 마음이 편치 않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남을 돕는 것은 모든 인간의 의무다.” 굶어 죽게 생겼는데도 남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 했던 센이지만 이제 “자선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하나의 부드러운 충동이다. 자선 만큼 우리의 영혼을 온화하게 만들어주고 희생을 가르쳐주는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센이 의학시험에서 최고 성적을 받았을 때 남학생들은 여자가 금메달을 받은 전례가 없다면서 항의했다. 센은 그에 반발하지 않고 그냥 은메달을 받기로 했다. 게다가 순종적인 아내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고 군말 없이 남편을 따랐다. 월급을 고스란히 남편에게 맡기고 뜻대로 쓰라고 말했다. 남편에게 버림받을까 봐 두려운 마음은 항상 그녀의 목을 조이는 올가미 같았다. ‘그럼 누가 나를 돌봐주지?’ 그러면서도 센은 남자 중심의 잔혹한 세상. 힘과 돈이 지배하는 세상, 아이들에게 일을 시키는 냉혹한 세상, 농부들에게 물건을 강제로 빼앗아 거간꾼에게 두 배를 받고 파는 고리대금업자들이 판치는 세상에 염증을 느꼈다. 센이 그런 세상에 저항한 방식은 잔혹한 세상 옆에 그녀만이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자만하고 옹졸한 남자들을 무시하는 것이었다.
• 번영은 빈곤을 낳는다.
하이마바티 센은 내가 태어난 1933년에 세상을 떠나면서 훌륭한 자서전 원고를 남겼다. 두 세대 동안 세상에서 잊혔던 원고는 훌륭한 감성의 역사가인 타판 레이초두리Tapan Raychaudhuri에 의해 발견되고 번역되었다.
• 돈이 정답이 아니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을 보완해서 쓴 <도덕 감성론>에서 부의 창출은 자선과 연민과 고마운 마음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미스는 인간이 타인의 인정과 연민과 애정을 필요로 하므로 이기적인 행동은 자신의 이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자신의 이익과 상관없이 다른 사람들의 재정 상태”에 관심을 갖는 것이 유익하다고 확신했다. 스미스는 상호 이해 없는 번영은 진정한 번영이 아니라고 보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서로에게 더 호의적이 되기 위한 처방은 내놓지 않았다. 그저 사람들이 자애로운 하나님을 본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랐다. 또는 자선은 “기분 좋은” 일이고 “무엇보다 훌륭한 아름다움을 선물하기” 때문에 자선을 실천해서 고상한 성품을 보여주기를 바랐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서 어느 누구보다도 더 부유했다. 맨발에 누더기를 rfjcl고 다니면서 가르침을 베풀고도 돈을 받지 않으려 했다. 석공 일을 하며 필요한 것을 다 구했고 소박한 집에 만족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소크라테스보다 재산이 100배나 많은 부자는 명성을 유지하느라 책임질 일도 많아서 새산이 세 배는 더 있어야 “신들과 아테네 시민들이 그를 인정해 줄 거라고” 믿었다.
• 무엇이 삶의 고난을 구제할 수 있을까
친밀한 유대가 없다면 노숙자에게 살 집을 마련해주고 실업자에게 직장을 구해준다고 해도 삶의 고난에 대처할 탄력성을 제대로 길러주지 못할 것이다.
6장 부자는 빈자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 백만장자의 철학
오전 7시에 어김없이 사무실에 출근한다고 자랑하는 어느 사업가에게 카네기는 이렇게 답했다. 하루 일을 다 하는데 10시간씩 걸린다면 참으로 게으른 분이군요. 저는 훌륭한 인재를 쓰고 절대로 명령하지 않습니다. 제안 정도만 해줍니다. 그리고 오전에 그 사람들에게 보고서를 받습니다. 한 시간 안에 보고서를 다 처리하고 제안을 내려다보면서 하루 업무가 끝납니다. 그때부터 퇴근해서 제 시간을 즐길 수 있지요.
• 노동조합과의 전쟁
• 다른 종류의 허기
• 백만장자와 가난한 인도 여성의 공통점
하이마바티 센과 앤드류 카네기의 이야기는 돈이 많건 적건 그들이 가장 많이 상처 입고 가장 많이 갈구한 것은 정서적 자양분이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분류법은 완전하지도 않고 충분하지도 않다.
카네기는 부자가 되어본 적 없는 사람들의 분노에 대응하는 적절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 무엇이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가
인도의 사업가 G.D.비를라, 그는 황마, 설탕, 종이, 자동차, 은행, 시멘트, 화학, 섬유로 벌어들인 막대한 수익을 기반으로 인도 최대의 민간재단을 설립했다. 경쟁자들은 그가 재산을 불리는데만 관심이 있고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종교와 교육 사업에 기부한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미를리는 <마하트마의 그늘에서>라는 자서전에서 그가 대규모 산업화를 신봉하면서도(반면에 간디는 소규모의 마을 공동체 경제를 주장했다) 간디의 독립 운동에 자금을 대주는 주요 후원자가 된 이유를 설명했다. 단지 영국인들과 그들의 오만에 수모를 당해서만은 아니었다. “나는 영국인들의 사무실로 올라갈 때 엘리베이터를 타도 안 되고 그들을 만나려고 기다릴 때 의자에 앉아서도 안 되었다. 나는 이런 모욕에 분개했다.
모든 쾌락을 멀리해야 한다. 최소한의 것만 누려라, 맛있는 음식을 탐하는 사람은 일찍 죽는다. 약을 먹듯이 음식을 먹어라.
인도의 거부와 미국의 거부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비를리는 사업에서 우정과 가족의 역할을 인정했다는 점이다. 그는 사람들을 아는 것의 중요성, 개인적인 만남의 가치를 강조했다. 카네기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이나 복종을 절박하게 갈구한 반면에 비를리는 사람들과의 정서적 유대에 관심을 가졌다.
태곳적부터 전해지는 꿀의 신비한 치유력의 비밀이 밝혀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꿀은 화학공식으로 만들거나 조작하거나 위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꿀은 동물성도 아니고 식물성도 아니고 200가지 이상의 성분으로 이루어지고 무수히 다양한 형태로 구성된다.
7장 자살하는 방법은 얼마나 많을까
• 빚이라는 환대
• 실패한 천재의 자살
• 돈의 새로운 지위
• 사회적 연결고리의 죽음
8장 믿지 않는 사람이 믿는 사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3년간 인도네시아 대통령을 역임한 압두라만 와힛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대부터 인도네시아 국민 4000만 명에게 교육과 의료 혜택을 제공해 온 세계 최대의 이슬람 저직을 물려받았다. 와힛의 외할아버지는 이슬람교 여학교의 선구자였다. 와힛은 자바에서 태어나 카라치 중등학교에서 유학하고 카이로의 알아즈하르 신학대학에서 이슬람교를 전공하고 바그다드에서 아랍 문학을 공부했다. 그래서 그는 아랍의 주요 종교 및 철학 고전뿐 아니라 현대 이슬람교인 쿠트브와 알반나를 창시한 이집트인 창시자들의 책까지 인용할 수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모로코의 한 전시회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의 아랍어 번역본을 보고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가 적으로 생각하던 서양과 얼마나 가까웠는지 까달은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젊은 시절에 아리스토텔레스와 그의 위대한 책을 접하지 않았다면 나 또한 이슬람 근본주의자가 되었을지 모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에게 “종교에 의존하지 않고 이성으로 인간 정신을 이해하기만 해도 진리에 도달할”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와힛은 힌두교 철학도 공부한 터라 세계 최대의 이슬람 국가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을 때 맨 처음 한 일이 힌두교 사원에 가서 기도를 올린 것이었다. 인도네시아의 중국계 소수민족에 대한 박해를 중단하고, 마호메트를 모독하는 책으로 간주되어 이슬람 세계에서 금서가 된 살만 루슈디으ㅢ 소설<악마의 시>를 옹호하고, 이스라엘을 여섯 차례 방문해서 “내가 이스람교도로 부족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더 읽어야 할 것이다”. 이슬람은 포섭과 관용과 공동체의 종교다. (......)코란의 ‘너에게는 너의 종교, 나에게는 나의 종교’라는 코란 구절에 이슬람의 본질이 담겨 있다‘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주주의는 이슬람에서 하람(금기)이 아니라 필수요건“이라고 했다. 재치가 넘치던 인물이던 그는 소련의 유머 서적을 인도네시아어로 번역해서 인도네시아 국민에게 해학과 풍자를 가르쳤고, 정권을 잃었을 때는 베토벤 9번 교향곡 음반 27개를 잃어버린 것보다는 훨씬 덜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 두 개의 이슬람교
와힛은 코란에서 신은 진리를 뜻한다면서 사람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진리를 깨우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슬람은 차이를 존중하고 인간은 저마다 타고난 능력과 성향에 따라 신을 이해한다고 인정한다. 신성한 하디스(마호메트가 전한 신의 말씀)에서는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나의 종이 생각하는 그대로의 나이다.’ (....)신의 뜻을 안다고 믿고 주제넘게 자기가 이해한 것을 남에게 강요하는 사람은 사실 자기를 신과 동일시하고 자기도 모르게 신성모독을 범하는 것이다.” 와힛은 또 ‘종교를 강요 하지 말라’는 코란의 유명한 구절에서 ‘세계 인권선언을 예측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에게 이슬람 율법은 신에게 가는 길을 제시해주기는 하지만 신이 내린 법이 아니라 예언자 마호메트 사후 수 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사회의 진화에 따라 끊임없이 수정되어야 마땅한 인간의 법이었다. 신성모독과 배교의 법 때문에 이슬람교도들은 종교뿐 아니라 삶의 문학, 과학, 문화 전반의 광범위한 영역에서 특을 벗어나 생각하지 못한다. 지성을 통하든 감성을 통하든 영적 수행을 통하든 자유롭게 진리를 탐구할 수 있어야 한다.“
• 요세의 문명, 항구의 문명
인도네시아는 1만 7508개의 섬과 300여 개의 민족으로 구성되고, 언어와 방언이 742가지이며, 처음에는 애니미즘을 신봉했다가 이슬람교로 개종했다가 다시 힌두교의 지배를 받았다. 네덜란드의 식민 통치와 일본의 점령을 거쳐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공산당의 지배, 민족주의의 득세, 자본주의화를 겪었다. 이렇게 다양한 이념이 각 지역에 다양한 정도로 살아 있다.
그런데 20세기 말에 갑자기 변화가 일어났다. 인도네시아에서 아랍의 이슬람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종교는 수 세기 전에 인도에서 유입되어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개종시키고 개인주의적이고 내면화되고 관용적이며 대중예배를 크게 중시하지 않는 수피교(이슬람 신비주의)의 일파인 이슬람교와는 달랐다. 새로운 이슬람교의 설교자들은 위협적이었다. ~~~~학생들은 아랍어를 쓰지 않는데도 아랍어로 코란을 암송해야 했다.
• 공생을 위한 단서들
9장 종교는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
• 마니교의 느슨한 연대
‘우리는 모두 같은 신을 섬긴다.’ 과연 그럴까? 신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어떤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고 통합하는 단일종교가 가능할까? 마니Mani213~276 라는 스물네 살의 잘생기고 카리스마 넘치는 바빌론 청년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300년 넘게 지구상에서 가장 널리 퍼졌던 종교를 창시했다. 그 종교는 프랑스와 스페인과 북아프리카(성 아우구스티누스도 기독교도가 되기 전에 9년간 마니교에 심취했다)부터 멀리 인도와 중국까지 빠르게 퍼져나갔다.
중국에서는 마니교가 1000년 가까이 흥망성쇠를 반복하며 번성했다. 중국에서 마니는 노자의 환생으로 여겨지고 실제로 마니교는 도교와 결합되었다. 종교 박해의 여파로 마니교 수도원 4600곳과 사원과 성지 4만 곳이 파괴된 것으로 전해지지만 마니교는 후에도 다시 부활해서 중국의 비밀결사로 변신했다.
그는 기독교와 불교와 그노시스교와 조로아스터교 사상을 엮어서 세상이 어떻게 지금의 혼돈에 이르렀는지에 관한 극적인 신화를 만들었다. 중동에서 마니는 예수의 사도를 자처했다. 인도에 다녀와서는 환생에 관한 교리를 채택했다. 이란에서는 이란의 신들을 편입시켰다. ~~~~마니교만큼 유연한 종교는 없다.
종교가 달라도 서로 간섭하지 않는 교외의 이웃들처럼 공존할 수 있다는 마니의 생각은 오늘날 미국의 대다수 사람들의 신념과 거의 유사하다. 1920년에는 미국 기독교인의 94퍼센트가 기독교만이 진실한 종교라고 답했지만, 현재는 25퍼센트만 그렇게 생각한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뿌리 깊은 신앙의 토대 위에 세워지지 않는 한 의미가 없다. 그것이 어떤 신앙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태도에 격분하는 사람도 많다. 내가 믿는 종교만이 신에게 이르는 유일하게 진실한 길‘ 이라고 믿는 사람은(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인의 79%, 한국 기독교의 65%, 인도 이슬람교도의 49%, 개종한 미국인 42%, 인도 힌두교도의 37%, 이스라엘 유대교도의 33%, 한국 불교도의 31%, 페루 가톨릭교도의 25%, 러시아 정교도의 24%, 미국의 주류 개신교도의 16%, 미국 가톨릭교도의 15%다. 좀 더 현실적인 차원으로 들여다보면 이슬람교도와 힌두교도와 유대교도의 3분의 2정도가 종교가 다른 사람들과의 결혼에 반대한다. 종교 간의 합의는 아직 요원해 보인다.
• 이단이 의미하던 것
바하이교는 시아파에 기원을 둔 종교이므로 이슬람교에 대한 배교였다.
• 종교 간 동거의 전통
성서는 해석해야 하고 학자마다 의견이 다를 때가 많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종교에는 불확실한 요소가 많았다.
• 종교가 변질되는 순간
대중 종교는 어느 시대든 형이상학적 차이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삶의 불안과 질병, 불행, 가난, 굶주림에 주목했다.
다른 종교로 개종한 미국인의 절반이 신앙이 바뀌어서가 아니라(이런 이유로 바뀐 사례는 18%에 불과하다) 다른 종교를 믿는 배우자와 결혼하거나(37%) 다른 도시로 이사하거나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어서(25%)였다. 교회를 상부상조의 공동체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젊은 미국인에게 종교가 어떤 의미인지 물어보면 대부분 어려운 일이 생길 때 도움을 요청하는 곳이라고 대답하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진정한 종교라고 덧붙인다. 하지만 제아무리 대중 종교라 해도 기대치가 높아지면 종파주의에 빠지고 불평등한 관행이 횡행하면서 정당성을 잃고 소박한 번영과 존중조차 실현 불가능해 보이게 된다. 불만이 폭발할 지경에 이르면 더 이상은 종교가 아니라 분노에 찬 정치운동으로 돌변한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갈등은 대개 종교가 권력과 통제의 수단으로 변질되는 시기에 발생한다. 종교에 대한 적대감은 주로 초자연적이고 신비한 문제에 관한 다툼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에게 행동 양식을 강요하는 종교인들의 오만이나 타락이나 위선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다.
• 서로의 신앙에 진 빚
북아일랜드에서 가톨릭과 개신교의 격렬한 종교전쟁 이후 처음으로 그들이 믿는 종교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알아보는 조사가 이루어졌다. 응답자의 대다수가 제1계명을 말하지 못했고(16~24세의 17%, 그 이상의 세대에서는 46%만이 알았다), 젊은층의 21%와 65세 이상 노년층의 54%만 복음서가 네 가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미국인의 절반만 네 가지 복음서 가운데 하나라도 이름을 댈 수 있었고, 미국인의 4분의 1 정도가 기독교도라고 자처하면서도 환생과 점성술을 믿었다. 반세기 동안 무신론을 교육한 중국에서는 소수의 사람들만(8%) 종교를 믿는다고 밝혔지만 대다수가 종교적 관행과 신앙을 가지고 있고 , 44%는 삶과 죽음이 하늘의 뜻이나 운명에 달려 있다고 믿고, 56%는 종교 체험이나 영적 체험이나 환각을 경험한 적이 있는데, 이것은 미국인 49%보다 높은 비율이다. 불교도라고 대답한 사람은 4%에 불과하지만, 27%가 부처에게 기도를 올리고 4분의 3이 한때는 불교도였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밝혔다.
현재 세계에는 4200가지 종파가 존재하지만 같은 종파 안에서도 다시 여러 종파로 갈라진다.
10장 편견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 불일치라는 원동력
• 동양, 가장 오래된 편견
가장 오래된 불일치 중 하나는 동양과 서양의 불일치이다.
• 인도 문화라는 분류함
• 타고르가 분열을 넘어선 방식
• 간디의 주장에 반박하다
• 타고르의 동반자
• 생각은 만남에서 탄생한다.
• 다른 문화라는 자양분
11장 예측하려 하거나 걱정하지 않고 달리 미래를 생각할 방법이 있을까
아인슈타인은 미래에는 사람들이 서로를 더 잘 이해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식 분야의 모든 영역이 전문화되면서 지식 노동자와 비전문가 사이의 간극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하는 농담조로 이렇게 덧붙였다. “수학자들이 상대성 이론에 난입한 바람에 나도 이제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자신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 아인슈타인, ‘지극히 종교적인 불신자’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이 미래를 완전히 새롭게 이해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데에는 어느 정도 아인슈타인 스스로 과거에 관심이 더 많다는 식으로 말한 탓도 있었다. “내가 정말로 관심 있는 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할 때 선택의 여지가 있었느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태초부터 이견이, 양립 불가능한 두 가지 이상의 선택이 존재했을까? 보스턴의 노코너 추기경이 상대성 이론을 무신론이라고 공격했을 때 뉴욕의 랍비 허버트 골드스타인이 아인슈타인에게 이렇게 전보를 쳤다. “신을 믿습니까? 50자로 답해 주십시오.”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답했다. “나는 만물의 조화 속에 모습을 드러내는 스피노자의 신을 믿지, 인류의 운명과 행동에 관여하는 신은 믿지 않습니다.” 랍비도 그렇고 추기경도 마찬가지로 아인슈타인이 이렇듯 17세기의 개념에 애착을 보이는 것을 알고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스피노자는 기성 종교에 회의를 품고 모든 교리와 신의 모든 개념을 자연과 전혀 다른 개념이라고 완강히 거부하면서 철저히 독립적인 입장을 고수하다가 1656년 유대교 교회에서 파문을 당했다. 스피노자는 심지어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부터 교수직을 제안 받았을 때 교수가 되어서 제약을 받느니 차라리 가난하게 사는 쪽을 택했다. ~~~아인슈타인은 스스로를 지극히 종교적인 불신자라고 부르면서 이쪽도 저쪽도 믿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행복하다. 남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서이다. 나는 칭찬을 갈구하지 않는다. 일과 바이얼린과 요트를 제외하고 내게 기쁨을 주는 것은 동료 연구자들의 인정뿐이다.
• 시간에 대한 새로운 태도
당신이나 내가 타고르와 아인슈타인과 대화를 나눈다면 시간에 대한 우리의 태도,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소유한 가장 소중한 것이 인생 그 자체에 관해 설명해야 할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당신도 당신의 존재가 담긴 시간의 틀, 곧 당신만의 역사철학을 설명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미 온갖 역사철학이 존재한다. 대부분 진보, 착취, 행복, 불멸, 개성, 성적 취향에 기반을 두고, 대체로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거친 바다에 내던져져서 긴 세월 동안 새는 구명보트를 연이어 타고 넘어가서 스스로 아무것도 통제하지 못한 채 미지의 해변으로 떠밀려가거나 때로는 평생 해변을 보지도 못한 채 바다에 빠져 죽을 운명일 뿐이라는 사실을 안다고 암시한다. 나는 이런 철학에는 관심이 없다. 주로 현재와 상당히 유사한 미래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더 발전하고 유용한 도구가 늘어나고 재앙도 많아지고 질병도 늘어나고 치료법도 늘어나는 미래 말이다.
내가 가장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은 과거나 미래에 관한 것이다. 이미 일어났거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나 일어날 수 있거나 일어나야 할 일에 관한 부분 말이다. 역사는 인간이 기억하고 생각하고 기대하는 것의 패를 섞는다. ~~~20세기의 인류는 부모의 권력에 저항하는 혁명을 치르면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미래를 암시하는 소중한 지표로 삼았다. 나의 목표는 나만의 기억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기억을 통해 미래와 어떻게 대면할지 알아보는 것이다. 더 이상 기억을 저장하거나 소중히 간직해야 할 기보로 모셔두어서는 안 된다. 최신 과학에서 기억은 무수한 날조와 착각이든 알라딘의 동굴이 되었다. ~~~우리는 과거를 끊임없이 재창조한다.
• 현재에만 사는 사람은 없다
현재에만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각자의 경험만 기억에 저장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태어나기 오래전의 시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에게 물려받은 신념과 행동까지도 저장한다. 우리는 고대나 중세나 현대로 나뉜 여러 시대에서 조각난 파편들을 빌려와서 우리의 삶을 구성한다. 역사상 어떤 시대도 후손에 의해 영구히 대체되지 않는다. 유행의 최첨단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화석화된 신념과 공룡의 꿈이 있다. 새로 습득한 취향과 계속 남아 있던 혐오감 중 어떤 것이 우리 삶을 망칠지, 아니면 독창적인 창작을 낳을지는 예측할 수 없다. 우리의 싸움은 지나간 시대의 충돌하는 기억들 사이의 싸움일 때가 많다. 우리가 두 세계에서 동시에 살기 때문에 불일치가 과거 어느 때보다 일상적으로 나타난다. 한 세계는 먹고 일하고 가족을 부양하는 눈에 보이는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갈망과 두려움, 확신과 의심, 음악과 신화, 영성과 이상주의, 초자연적인 현상과 신성한 현상,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생각의 보이지 않는 세계다. 보이지 않는 세계는 끈질기게 사라지지 않으면서 잡종견처럼 스스로를 복제하는 원시적인 미신으로 가득하다. 이 세계는 새롭고 모순된 집착에 의해 침범을 당한다. 기억을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할 때 미래에 대한 전망을 바꿀 기회가 생긴다.
• 불확실성이 주는 축복
이제 시간은 돈보다 소중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물론 모둔 사람에게 그런 것도 아니고 삶의 모든 단계에서 그런 것도 아니지만, 시간을 사고파는 전통적인 방법, 곧 오늘날 우리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하는 일이 과연 인간이 생각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지 질문을 던져볼 만큼은 소중하다. 기술은 아직 이 물음에 직면하지 않았다.
아인슈타인보다 먼저 상대성 이론을 발견할 뻔했던 프랑스의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는 혼돈은 세상의 필수요소이고 질서에는 무질서가 숨어 있다고 주장했다. 질서정연한 규칙성 가운데 어지러이 떠 있는 섬들로 인해 장기적인 예측이 불가능해진다. 초기조건에서의 미세한 차이가 나중에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푸앵카레는 직관을 중시했다. 추측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알았지만 이제껏 산발적이고 이질적으로 보이던 요소들을 통합하는 능력 말이다.
미래는 끝없는 실험의 연속이다. 불일치는 상상력에 대한 도전이다. 객관성은 충돌하는 기억이 주는 보상이다.
12장 유머가 저항의 수단이 될 수 있을까
13장 어떻게 유머 감각을 기를 수 있을까
14장 사람들이 자기 나라에서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
• 덴마크 문단의 미운 오리 새끼
젊은 시절에 배우이자 극작가이자 시인으로 인정받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안데르센은 덴마크가 너무 가난하고 작고 “음식과 꽃이 가득한”이탈리아 같은 나라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국을 탈출해서 그 시대에 제일 넓은 땅을 여행한 덴마크인이 되었다.
그의 철학은 미운 오리 새끼가 아름다운 백조가 될 수 있다는 것이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때는 “하나님께서 최선의 길로 이끌어주신다”라고 말하곤 했다.
• 낮선 땅에서 자유를 찾은 아프리카의 이방인
• 덴마크 최초의 여성해방운동가
• 덴마크의 가장 중요한 철학자
15장 한 사람이 동시에 사랑할 수 있는 국가는 몇 개인가
• 공동체의 조건
• 충성심의 발명
16장 왜 많은 사람이 온전히 살아 있지 못하고 반쯤은 죽은 상태라고 느낄까
• 자기 집에 불 지른 청렴한 관리
• 이상을 배신하다
17장 여자와 남자가 서로를 다르게 대할 방법은 무엇일까
21장 리더가 되는 것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무엇인가
22장 분주할 가치가 있는 일은 무엇인가
23 생계를 유지하는 더 즐거운 길이 있을까
이케아의 설립자 앙바르 캄프라드가 그의 아내처럼 소설을 읽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의 ‘가구회사의 원칙’은 안 그래도 이미 소설에 가깝다. 더 아름다운 세계를 그리는 강렬하고 낭만적인 이 소설에서는 작은 집단의 사람들이 “지위와 관습에서 탈피해서” 젊음과 정신과 “정복당하지 않는 열정”을 보존하기로 다짐하고 언제나 “서로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고, 항상 “친절과 관용”을 베푸는 자세로 서로 대화를 나눌 시간을 내고, 돈만을 위해 일하기를 거부하고, 축구팀을 협동정신의 모범으로 삼고, 고유성을 소중히 여기고, 창문 공장에서 탁자 재료를 구하고 셔츠 공장에서 제일 싼 쿠션 덮개를 구하는 식으로 항상 새로운 해결책을 발견하고, 실수 할까봐 겁먹지 않고, “우리에게는 똑같은 매장이 없다”는 원칙을 지키고, “회사를 몰락시키는 가장 흔한 원인”인 위원회와 관료체제와 통계수치와 “과장된 계획”에 끌려 다니지 않고, 아이디어를 훔쳐간 경쟁자를 소송으로 응징하기보다는 더 좋은 새 모델을 개발해서 갚아주고, 무엇보다도 불가능하다는 말을 거부하고 항상 새로움 모험을 기다리는 모습을 그린다.
• 고객들의 새로운 열망
집은 단순히 소유물을 보관하는 장소가 아니라 편히 쉬면서 서로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고민과 기쁨을 나누는 소중한 공간이 되었다. 집은 다른 사람을 보살피고 보살핌을 받는 곳이자 친구와 친구가 될 사람들을 대접하는 곳이자 위험을 의식하지 않고 속내를 서슴없이 드러내고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다. 또 집은 고독한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지금의 집은 모든 인간이 평생 쌓아올리고 무너뜨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위대한 예술품이다.
• 백화점은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다.
200년 전의 영국에는 지금보다 점포가 다섯 배나 많아서 인구 50명에 한 개꼴이었다. 하루에 손님을 두세 명만 받는 상점도 있었고 장사로는 부수입만 올리는 상점도 많았다. 런던의 상점주인들 절반이 하숙을 쳤다. 19세기 말 프랑스 북부 마을에서는 세 집 중 한 집이 와인이나 증류수를 팔았다. 미국에서 시골 잡화점은 지역의 농산물과 수공예품을 취급했다. 최초의 백화점은 물건만 파는 곳이 아니라 중ㅅ나층의 열망의 중개소로서 콘서트와 전시회를 열고 여자들이 혼자서도 안전하게 외출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유행을 접하고 마음껏 돈을 슬 수 있는 공공장소였다.
이곳은 상점이 아니라 공동체다. 여자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d여기가 집보다 훨씬 환해서다.
• 가구를 사고파는 것 외에 이케아 매장에서 할 수 있는 또 다른 일
• 무엇이 먹고사는 일의 가난함을 구원할 수 있을까
• 새로운 길, 새로운 일자리
24장 호텔에서 할 수 있는 더 흥미로운 일은 무엇인가
• 의심과 불신의 자식, 도스트엡스키
도스엡스키는 스물여덟 살에 사형선고를 받고 총살당하기 직전에 형 집행이 중지되어 극적으로 살아남았다(이후 그는 시베리아로 유형되었다). 이후 그는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유독 강렬하게 메달렸다. 간신히 죽음을 면하고 “삶에 대한 강렬한 애착이 샘솟고” “스스로 삶에 몰두하고”싶은 욕구가 생기고, 삶은 “아무리 힘들어도 희망을 놓지 않는다는 뜻이고 그것이 삶의 의미이고 목적”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보낸 4년은 그와 전혀 다른 사람들, 그가 지배계급의 일원이고 냉정하고 무뚝뚝하고 의문스럽다는 이유로 그를 배척하던 “거칠고 잔인하고 성마른” 죄수들과 어울릴 수 있던 시간이었다. 그가 솔직히 털어놓은 것처럼 한순간도 혼자 있지 못하는 “끔찍한 고문”에 시달리며, “산 채로 매장되고 관 속에 갇힌” 느낌에 시달린 희귀한 경험이었다. 그는 죄수들 몇몇과 조금씩 친해지면서 그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끊임없이 그를 괴롭히던 “150명의 적들”에 둘러싸인 처지를 비관하기보다는 교육받은 엘리트가 무지렁이들에게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악한들 틈에서 인간을 알아보고 그들에게서 강인하고 아름다운 본성을 알아보고 거친 땅 속에서 금을 발견하는 기쁨을 알아보는 법을 배웠다.~~~얼마나 멋진 사람들인가. 내 시간은 헛되이 버려지지 않았다.
도스토엡스키는 낭만주의자이기도 하고 사회주의자이기도 하고 보수주의자이기도 하고 민족주의자이기도 하고 신앙과 불신을 모두 인정하는 정통파 기독교도이기도 한 다채로운 삶을 살았다.
• 이방인들의 아고라
25장 젊은이들이 나이 든 사람에게 무엇을 더 요구할 수 있을까
• 카프카가 보험회사로부터 배운 것
• 재해보험과 기회보험
26장 마음이 젊으면 노화를 피할 수 있을까
브라질의 건축가 오스카 나마이어(1907~2012)는 104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매일 사무소에 나가면서 훌륭한 건축물을 꾸준히 설계했다. 그는 늙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었을까?
• 삶을 사랑한 건축가
그는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언제나 가족과 친구를 먼저 꼽았다. 가족은 “평생의 친구다. ...우리 가족은 아주 가깝고, 서로의 편이 되어준다.”
• 죽음, 떠나지 않는 걱정거리
• 노화라는 장애
• 젊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연금의 의미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연금은 19세기 말에 프로이센 지주들이 고안한 개념이다. 소작농들이 사회주의 혁명에 물들지 않도록 일종의 뇌물을 주는 의미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원래 전반적인 은퇴 개념을 거부했고, 미국의 노동조합도 반발해서 파업을 일으켰다. 노동조합에서는 어차피 빈곤층은 평생 고된 노동으로 건강이 상해서 연금을 오래 받는 사람이 드물 것이므로 가장 큰 혜택을 보는 계층은 중산층이라는 타당한 근거를 들었다. 수명이 늘어나서 연금제도가 위기에 처한 지금은 은퇴 개념이 은퇴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인간이 100년을 산다면 40년 일하고 40년 은퇴해서 살 수는 없다. 금융 전문가가 아무리 묘안을 짜내도 모두에게 돈을 대줄 방법은 없다. 다른 뭔가가 나와야 한다. 게다가 일부 국가에서는 젊은 세대의 절반이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시대에 계속 젊은이로 남는다는 것은 불길한 의미를 띤다.
• 우리 뇌는 골동품점이다
한 개인의 생각과 감성에는 한 시대가 아니라 여러 시대의 유산이 깃들어 있다.
이 책의 각 장에서 나는 세상을 나와 다르게 바라본 과거의 인물과 만나고, 이전의 나의 신념을 뛰어넘어 생각해보려 했다.
• 타인의 자극으로부터 자신의 개성을 만들다
• 젊음을 흉내 내는 것보다 흥미로운 일
언젠가 나는 파리 외곽의 벼룩시장에서 헤진 신발 한 켤레를 내다놓고 파는 초라한 차림새의 노파를 보았다. 아무도 그 노파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고, 노파의ㅐ 모습에는 빈곤과 절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하지만 내가 말을 걸자 노파는 눈빛을 반짝이며 서서히 달라졌다. 노파의 얼굴은 생기를 띠었고, 그 생기로 아름다웠다.
지금은 사람들에게 나이를 묻는 대신 얼마나 생생히 살아 있는지, 언제부터 더 이상 새로운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는지 알아내는 것이 더 유용하다. 나이는 핑계일 때가 많다.
27장 알아야 할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인가
• 새로운 무지의 시대
정보가 늘어날수록 무지도 커진다
• 정보는 무지를 몰아낼 수 없다
사실 자체는 가치가 없고 그저 해변의 모래알이나 뾰족뾰족한 해초에 불과하다. 이런 걸 주워서 먹을 만한 부분을 골라내고 조리해야 비로소 지식이 된다.
• 알아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알아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내 답변은 이렇다. 내가 얼마나 많은 지식을 습득했는지만이 아니라 지식으로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내가 습득한 지식에서 쓸모 있고 아름다운 무언가를 창조하는 과정은 미리 주문해서 받음 벽돌로 집을 쌓아올리는 것과는 다르다. 그보다는 서서히 형태를 잡아가면서 그림을 그리ㅐ는 과정에 가깝다. 내가 색상과 윤곽을 넣고 빼는 사이 전에는 상상도 못한 가능성이 열리고 그러면 나는 얼른 그 가능성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고 새로운 영역을 탐구한다. 그래서 애초에 품은 어설프거나 단순한 생각에 관한 새로운 전경과 의미가 드러나기를 바란다. 대개는 결국 처음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이런 식으로 궁금한 내용을 선별한다. 전에는 있었는지도 몰랐던 곳으로 데려다주기 때문에 결과가 더 예측되지 않는 과정이다. 서로 무관해 보이던 사람들이나 장소나 생각이 결합되어 내게 새로움 통찰을 제시하고 남들에게도 새로운 통찰을 제시할 수 있을 때 흥분이 절정에 이른다.
• 지식은 불일치가 낳은 자식이다
내가 이렇게 관련성의 중요성을 이해하게 된 것은 나의 아내 디어드리 윌슨 덕분이다. 아내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의사소통에 관한 사람들의 통념을 뒤엎는 데 일조한 관련성 이론Theory of Relevance의 rdh동 창시자다. 의사소통은 메시지를 전송하고 상대가 발신자의 의도대로 해석하고 이해하게 만드는 단순한 과정이 아니다. 사람마다 지식의 배경이 제한적이고 메시지의 함의를 파악하려는 의지나 에너지의 양이 다르기 때문에 수신자가 메시지에서 얼마나 많은 관련성을 발견하는가에 따라 메시지를 이해하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게 된다. 메시지의 함의가 많고 함의를 파악하는 데 필요한 노력이 적을수록 관련성이 커진다. 남들이 우리에게 알아내도록 의도한 함의를 이해하려면 어쩔 수 없이 추측이 개입한다. 의사소통은 불확실성과의 싸움이다. 따라서 나는 내가 다루는 지식의 상당 부분이 가변적이거나 희석되어 있다는 사실을 안다. 나는 독단을 싫어한다. 그렇다고 모든 의견이 공평하게 존중받을 가치가 있고 모든 진실이 상대적이라고 생각한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항상 수정될 여지가 있지만 이해력이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도 진실을 찾으려고 노력할 수 있다. 무지의 경계를 무한히 탐색하는 것은 낯선 음식에 대한 미각을 넓히는 것만큼 삶의 커다란 즐거움이다.
도스토엡스키만 ‘다성 소설’을 쓴 것은 아니다. 따라서 나는 모호성을 적대시하지도 않고 불일치를 박멸해야 할 해충으로 보지도 않는다. 새로운 생각은 어김없이 불일치를 유발한다. 지식은 불일치가 낳은 자식이다. 나는 사람들이 내게 동의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독자에게 설교하지도 않ㄴ느다. 나는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텔의 전기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그는 세상에서 그를 온전히 이해한 사람은 오직 한 명박에 없다고 아쉬워했다. 오해는 대개의 인간관계에서 영원한 동반자라는 사실을 망각해서 나온 그답지 않은 태도였다.
• 낯선 생각과의 대화
나는 오랫동안 내가 받은 교육을 이해하지 못했다. 교육은 내게 비판능력을 갈고닦는 법을 가르쳐주었지만 오직 상상력만이 비판을 건설적인 사고로 만들어줄 수 있는데도 상상력에는 관심이 적었다. 학계는 다양한 종의 마음들이 서로 성가시게 굴고 화를 북돋우면서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라고 말하는 동물원이다. 모양도 다르고 의견이 정반대인 머리들이 남의 새로운 생각을 흡수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하이젠베르크가 말한 대로 “과학은 대화에 뿌리박고 있다.” 대화 형식으로 된 그의 회고록<부분과 전체>에는 ‘만남’,‘ 대화’라는 소제목이 있다. 20세기의 위대한 두 가지 발견인 양자물리학과 유전학은 다양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의 기나긴 대화의 결실로 기록된다. “과학은 실험에 기초한다. 과학의 결과는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과 실험 해석에 관해 서로 자문을 구하는 사람들 사이의 대화를 통해 얻어진다.” 완벽한 함의는 새로운 발견에 제동을 건다.
닐스 보어는 제자와 동료들과 끝없이 대화를 나누고 400명 이상의 사람들을 실험실로 초대해서 한 달 넘게 머물게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킨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생각은 남들에게 전달되고 이해될 때 비로소 생명을 얻는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물리학의 과제는 자연이 어떤지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연에 관해 무엇을 말할 수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인간은 언어에 의존한다. 우리가 할 일은 실험과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우리는 언어 속에 떠 있다”라고 단언했다.
나는 사소해 보이는 것에서 불연 듯 중요한 무언가를 발견하는 과정을 즐기지만 대화나 책에서 배운 것은 아침의 숙취처럼 이해될 뿐이다. 어떤 고대인들은 문제의 해답을 꿈에서 발견한다지만 나는 아니다. 이해가 안가는 정보를 고민하면서 잠들면 머릿속에 떠돌던 생각들이 연결되고 생각지도 못한 의미를 가정하고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뜰 때 번뜩 생각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렇게 별안간 나타난 직관이 곡 모든 사실과 일치하는 답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과정을 여러 번 거쳐야 일관된 무언가가 얻어진다.
• 새로운 생각은 미지의 혈통에서 나온다
따라서 알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무엇인지 미리 알기란 불가능하다. 지식의 한 조각이 다른 한 조각을 만날 때만 서로 할 말이 있는지 알 수 있고, 이런 연결은 개인의 상상력의 예상치 못한 불꽃에 의해 발생한다. 현재로서는 인간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은 대부분 뮤즈가 되어줄 만한 대상을 만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 세계 어딘가에서 어떤 주제로든 출판되고 저자가 보편적인 관심사에 관해 할 말이 있지만 특수성이라는 범주의 새장에 갇혀서 대다수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날 수 있는 신간을 1000자로 요약한 맛보기를 훑어본다. 두툼한 책 한 구너을 쓰는 데 몇 년이 걸렸을 저자의 입장에서는 누군가 그의 책에서 관련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책의 메시지를 한두 쪽으로 정리하느라 고심했을 것이다.
알 만한 가치가 큰 것은 바로 내가 머릿속에 집어넣은 사실들에 부여하는 양상의 형태이자 아주 많은 사실을 걸러내는 체의 형태다. 이 형태는 다른 사람들의 양상과 체와 비교해야만 드러난다. 그래서 독자 여러분이 좋아하는 주제에 관해 무엇을 알아냈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않는지 내게 말해주어야 한다. 여러분도 다른 사람들의 체와 비교하기 전에는 알지 못할 것이다.
28장 살아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고대 로마시대의 한 비문에 이렇게 적혀 있다. “이방인이여, 내가 하려는 말을 짧다. 가만히 서서 읽어보시라. 여기 사랑스러운 여인의 초라한 무덤이 있다. 여인의 부모는 이 여인을 클라우디아라고 불렀다. 여인은 지극정성으로 남편을 사랑했다. 아들을 둘 낳았고, 하나는 세상에 남겨두었다. 다른 하나는 땅속에 묻었다. 여인은 온화한 자태로 재미있게 말했다. 집안일을 하고 양모를 지었다. 내 이야기는 끝났다. 이제 갈 길을 가시오.
요즘의 묘비에도 거의 비슷한 문구가 적혀 있지만 대체로 한 평생을 살았다는 것의 의미에 관한 내용은 줄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달리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로마의 비문에는 삶의 목적은 삶이고 삶의 존속과 계승이라는 고대의 상식이 담겨 있다. 자연은 삶이 중단되지 않도록 어떤 수고도 아끼지 않는다는 사실이 담겨 있다. 여자는 200만 개의 난자를 가지고 태어난다. 남자는 한 번 사정할 때마다 정자를 4000만 개씩 만든다. 적어도 남자들이 공해로 불구가 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보잘것없는 말벌은 난자 하나에서 800~3500마리의 새끼를 생산할 수 있다.
• 자연의 이단아들
하지만 인간은 또한 자연의 이단아다. 인간은 흔히 평생의 고작 4분의 1만 자식을 키우는데 전념하고 육아의 많은 부분을 가족 이외의 전문가들에게 맡긴다. 인간은 자식들에게 단순히 부모를 닮지 말라고 가르치고, 새로운 세대는 매번 조금씩 다른 인류의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은 무엇보다도 가족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고 자식은 가장 큰 기쁨을 주는 존재이며 자식을 잘 키우는 것은 무엇보다 자랑스러워할 일이라는 사실을 가끔 잊는다.
역사적으로 출산율이 갑자기 지속적으로 감소한 시기가 여러 번 나타났다. 메소포타미아의 인구는 전성기에 세 배 증가했지만 이어서 독창성과 낙관성이 소멸하자 전성기의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집트의 인구는 기원전 3000년에 100만 명 미만이었지만 예수의 시대에는 500만명으로 증가했다가 기우너후 1000년에는 다시 150만 명으로 감소했다. 멕시코의 인구는 스페인의 침략을 받고 질병뿐 아니라 절망으로 인해 과거 인구의 10분의 1f고 감소했다. 중국의 한 자녀 정책은 자연스러운 본능에 대한 억압으로 간주되었지만 사실(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같은)여러 나라에서도 자발적으로 중국보다 자녀를 훨씬 적게 출산했다. 독일에서는 여성의 30퍼센트가 자녀를 낳지 않고 대학 교육을 받은 여성의 경우에는 자녀를 낳지 않는 비율이 훨씬 더 높다. 수녀와 수도사가 된 인구도 어마어마하다.
비가 많이 오고 별안간 사막에 꽃이 피어 먹을 게 풍성해지면 메뚜기가 급격히 불어난다. 개체수가 증가하면 서로 몸이 맞닿게 되고 다리도 닿을 때가 많아지는데 그러면 더 흥분해서 마치 패션과 화장으로 치장한 것처럼 몸 색깔이 평소의 담갈색에서 노란색과 주황색과 검정색으로 변한다. 어릴 때는 무리에 끼어들고 성충이 되면 떼를 지어 다니며 수천 킬로미터 이내의 식물을 모조리 먹어치우고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아 굶어 죽는다. 인간도 인구가 불어나서 지상의 숲을 초토화시키고 바다의 생물도 멸종시켜왔지만 번영의 시기가 끝나면 메뚜기 떼처럼 소멸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삶에서 무엇을 기대 하는가
삶은 이제 태초부터 유유히 흐르던 강물을 타고 흐르는 여행이 아니다. 대신 삶은 길고 가파른 사다리의 미로이고 우리의 미래는 그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떨어지지 않는 능력에 달려 있다. 자기를 조상과 후손으로 이어진 기다란 사슬을 이루는 한낱 연결고리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꿈꾸던 것 이상의 자격을 갖추고 성취하기 위해 경쟁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선택할까? 앞으로 한 달, 1년, 10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 왜 모두 베토벤이 되면 안 되는가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한 교수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135가지 목표가 있다. 이렇게 많은 목표에 대처하는 한 가지 방법은 인간의 욕망을 단순한 피라미드 형태로 표현한 에이브러햄 매슬로( Abraham Maslow.1908~1970)의 분류법을 따르는 것이다. 피라미드의 맨 아래 칸에 음식, 성생활, 수면 같은 생리적 욕구가 있다. 다음에는 안전의 욕구가 있고, 한 단계 더 올라가면 사랑의 욕구가 있고, 그 다음에는 존중의 욕구, 마지막 단계에서는 자아실현의 욕구가 있다. 말하자면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는 내면에 감춰진 모든 자질을 발현하는 데 있지만 예비 단계의 욕구를 충족하느라 모든 자질이 드러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매슬로는 “인간에게는 무한한 잠재력이 있고 제대로 활용하기만 하면 인간이 꿈꾸는 천국에 사는 것처럼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매슬로는 유명한 영웅들의 전기를 연구해서 그들이 위대한 능력을 발휘한 과정을 알아냈다. 그는 “왜 모두 베토벤이 되면 안 되는가?”라고 물었다. 누구나 사실상 베토벤이 되거나 그에 비견할 만한 수준에 이를 수 있다는 뜻으로 들렸고, 그 덕에 매슬로의 이론은 크게 성공했다. 신경증적 기억에 대한 프로이트의 심각한 경고보다는 긍정적인 말이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들었다.
그는 교육을 거의 못 받고 미국으로 건너왔지만 일곱 자녀는 잘 살게 해주어야 한다고 다짐했던 유대계 러시아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고, 가족이 소유한 캘리포니아의 와인통 공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다. 매슬로의 업적은 자유를 어떻게 쓸지 모르던 세대에게 더 나은 삶을 향한 막연한 열망을 다섯 가지 욕구로 압축해서 정리해주었다는 것이다. 그의 분석은 오늘날 일과 비즈니스의 이념부터 교육과 페미니즘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영역에 적용된다.
아마 인구의 2퍼센트만이 자아 실현의 단계에 도달할 수 잇을 것이고, 그듦마저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안타깝게도 “불왅너하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해서” 불안과 죄책감에 시달리며, “상상을 초월할 만큼 무자비하면서도 아주 정확하고 냉철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 자아실현이라는 환상
• 살아 있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연결되어야 한다
죽음에 대한 이해가 바뀌지 않는 한 삶에 대한 이해도 달라질 수 없다. 그런데 현미경으로 죽음의 과정을 면밀히 들여다 볼 수 있게 되면서 드디어 변화가 일어났다. 죽음은 우리가 생각한 모습이 아니었다. 유익한 대화는 우리가 함께 하는 즐거움을 줄 뿐 아니라 조용하고 맨눈에는 보이지 않게 우리의 살과 피 속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육체의 생존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들의 대화에 의존한다. 세포는 주변의 다른 세포들과 연결되면서 계속 살아 있다. 내 몸에서 매일 수십억 개의 세포가 죽지만 단지 노화로 인해 죽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 세포는 자살한다. 세포는 자살하는 기능을 가지고 태어나고 주변의 다른 세포들과 신호를 주고받지 못할 때 자살 기능을 발동시킨다. 그리고 다른 세포들과 결합해서 자기보다 더 큰 무언가를 만들 때 살아남는다. 세포는 자기와는 다른 주변 세포들과 결합해서 끊임없이 변형되고, 세포 속 단백질은 무용수가 발레에 참여하듯이 주변의 다른 단백질에 적응한다. 모든 세포가 단 몇 시간 만에 스스로를 파괴할 능력을 가지고 있고 주변세포들과의 대화를 시도하다 실패하면 자살을 결정한다. 한마디로 주변 세포들과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하면 침묵에 대한 벌로 죽는 것이다. 우리 몸이 끊임없이 스스로 갱신하면서 가을에 낙엽이 지듯이 엄청난 양의 세포가 소멸한다는 뜻이다. 우리의 정신도 남에게서 빌려온 생각을 획득하기도 하고 폐기하기도 한다.
남들이 내게 두려움을 주고 내가 그들에게 말을 건넬 방법을 모르거나 그들이 내게 말을 건넬 방법을 모르거나 우리가 서로의 요구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존재의 목적을 상실한 세포와 같다.
• 모두의 경험, 모두의 시행착오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81%는 책을 쓸 만한 아이디어가 있고 책을 쓰고 싶다고 답했다. 그런 바람이 한낱 몽상으로 남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공공도서관은 대중의 독학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곳으로서 문을 닫겠다는 위협을 그만두고 책을 빌려주기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책을 쓰도록 자극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 도서관은 사람들이 삶에서 중요한 것과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을 기록해서 자화상으로 그리게 하고 보관할 수 있다. 그리고 피상적으로만 알거나 전혀 모르는 이웃들의 재능과 희망에서 유익함을 얻을 방법을 알아내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나의 기증 도서다. 독자들이 나의 대화를 듣다가 끼어들어서 반박하고 싶어지고 자기만의 관점으로 직접 책을 쓰면서 자신에게 가장 의미 있는 과거를 불러내고 현재에 더 큰 희망을 주는 미래를 상상하고 싶어지기를 바란다.
[에필로그]
• 정신의 자양분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내가 만난 모든 사람, 친절하고 호의적이고 내게 문을 열어준 사람뿐 아니라 나를 혼란스럽게 하고 회피하게 하고 겁먹게 한 모든 사람, 살아 잇는 사람의 책이든 죽은 사람의 책이든 내가 평생 읽은 모든 책, 내가 보거나 들은 모든 일이 이 책의 공저자다. 모두 내게 뮤즈였지만 다들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대나무만 먹으려고 하는 대왕판다와 달리 인간은 어디서든 정신적 자양분을 얻을 수 있다. 이 책은 나의 취향을 넓혀서 다른 사람들의 취향과 의견, 경험과 희망을 발견하려는 시도다. 나의 시도에 동참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이 있다. 옥스퍼드뮤즈재단은 이 책에서 기술한 것과 같은 종류의 일과 문화에 관한 대화와 초상화와 실험을 장려하는 비영리단체다. 홈 페이지 www.oxfordmuse.com 에 자세한 방법이 안내되어 있다.■
[Review]
흔히 바둑을 인생에 비유한다. 이유는 바둑에서 사활이 인생처럼 처절하기도 하지만 그 모양도 다양하기 때문일 것이다. 바둑은 집을 짓는 싸움이다. 살아남으려면 집은 반드시 독립된 두 개 이상의 방을 확보해야만 한다. 말하자면 단칸방 집은 죽은 집이다. 바둑에는 큰집이 있고 작은 집도 있으며, 서로가 승패를 가릴 수 없는 집도 있다. 처절한 싸움 끝에 커다란 집을 잃게 되면 다시 회생하지 못하여 패배를 선언하는가 하면 상대적으로 횡재를 하기도 한다.
인생은 다양한 모습이 있어서 단순하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목적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단언적으로 답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다만 각기 다른 모습을 살펴보고 그곳에서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해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최선의 선택이 다른 사람에게는 부족했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런 뜻에서 인생이 나눔이라는 뜻은 생각을 나누고, 삶에 필요한 것을 나누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저자는 이 책을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썼다고 했다. 여기서 소개하는 스물여덟 가지 인생의 다양한 길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으로 주어진 길은 아니다. 다만 그런 길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거나 또 그렇지 못했더라도 그들 중에는 스스로 성공했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실패했다고 자책한 사람들도 있다. 저자는 그런 이야기들에 대한 이야기를 결론에 이르지 않고 그냥 덤덤하게 서술하였다. 마치 바둑에서의 복기는 독자에게 맡기는 식으로 해서, 독자가 그 이야기들 속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교훈을 받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것을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만난 모든 사람, 친절하고 호의적이고 내게 문을 열어준 사람뿐 아니라 나를 혼란스럽게 하고 회피하게 하고 겁먹게 한 모든 사람, 살아 잇는 사람의 책이든 죽은 사람의 책이든 내가 평생 읽은 모든 책, 내가 보거나 들은 모든 일이 이 책의 공저자다. ~~~대나무만 먹으려고 하는 대왕판다와 달리 인간은 어디서든 정신적 자양분을 얻을 수 있다. 이 책은 나의 취향을 넓혀서 다른 사람들의 취향과 의견, 경험과 희망을 발견하려는 시도다.”
책의 첫머리에서 1859년 더 넓은 세상을 알기 위해 여름옷 한 벌과 빵 세 덩어리만 챙겨서 무작정 길을 떠난 28살 된 이란의 청년 ‘사이야흐’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이 책이 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청년은 많은 유명 인사를 만나고 또 비열한 사람들로부터 냉대받기도 하며 그가 얻은 교훈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에 너무나 무지하다는 것과 또 극단적으로 고결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열한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또, 인생에 수많은 업적을 남겼음에도 정작 자신의 묘비명에 남긴 글은 “헛되이 살았도다”라는 글을 남겼다는 중국, 청초의 문인화가 ‘모기령’의 이야기는 짧은 인생길에서 개인이 알고 있는 지식, 남기는 유산이 얼마나 작은 것인가를 느끼게 해 준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과 다양한 주제에서 어떤 것은 지루하고 또, 어떤 것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차근차근 읽다보면 자신의 인생길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유익함이 있다.
저자인 ‘시어도어‘는 1933년, 이스라엘 출생 유대인으로 후에 영국으로 귀화하였고, 옥스퍼드 학자이자 사상가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이 책의 원제는 “The Hidden Pleasures of Life: A New Way of Remembering the Past and Imagining the Future” 이며 그의 최근작으로 2015년에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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