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내리셨던 명령엔 금지명령이 거의 없었지요. 제자들에겐 서로 사랑하라 하셨고, 죽어서 장사된 나사로에겐 일어나 나오라 하셨고, 중풍병자에겐 죄사함을 받으라 하셨고, 걷지 못하는 병자에겐 일어나 걸으라 하셨습니다.
뭘 하지 말라는 식의 금지명령은 거북합니다. 옛날 유대인들이 복잡한 율법체계를 잔뜩 만들어서 해서는 안 될 것을 강조했었지요. 예수께서는 사람을 옥죄는 금지명령들을 재해석하셔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라고 축약하여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뭘 하면 안된다가 아니라, 이렇게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가능하면 아이들에게도 금지어는 쓰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다만 자신이나 타인에게 위험할 때에 제한해서 금지어를 쓰곤 합니다. 위험한 물건을 만질 때에,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할 때엔 아이가 다소 놀랄 만큼 금지명령을 내려야 합니다. 금지명령은 부작용이 있지만, 위험으로부터 자신과 이웃을 지키기 위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금지명령을 내리십니다. 기근이 들었지만 이집트로 가지 말라고 하십니다.(창26:1~2) 기근이 들면 이집트로 가야 살 수 있었습니다.(창12:10) 이집트엔 나일 강이 흘러, 항상 풍요롭기 때문입니다. 나일강 하류를 품고 있는 이집트 땅은 날씨에 관계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어서 이집트는 기근이 들었을 때 피난가기에 맞춤한 곳이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기근의 때에 피난 가기에 맞춤한 곳인 이집트로 가선 안 된다고, 금지명령을 내리시는 걸까요?
항상 풍요한 것은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관계없이 항상 풍요한 것은 위험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삭에게 이집트로 가지 말라고 금지명령을 내리십니다. 머물고 있는 땅에 닥친 기근보다 이집트에 상존하는 풍요가 훨씬 위험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삭이 풍요에 접근하는 것을 막으셨습니다.
그러면, 대안은 무엇입니까? 기근의 때에 나일강을 가선 안 된다면 기근을 극복할 대안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제시한 대안은, 하나님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창26:2~3) 나일강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대안입니다. 나일강의 범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이 기근을 해결할 대안입니다.
보이는 나일강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은 분명 믿음의 조상임에 틀림없지만, 기근의 때에 망설이지 않고 이집트로 갔었습니다.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창12:10) 이삭은 아버지의 전철을 밟을까요, 아버지를 극복하고 더 큰 믿음으로 순종할까요?
기근이 들었지만, 이삭은 이집트로 가지 않습니다.(창26:6) 이삭은 기근의 때에, 이집트의 나일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합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을 극복합니다. 이삭은 기근을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이겨내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도 갖지 못했던 수준 높은 믿음을 증명합니다.
보이는 나일강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선택한 이삭에겐 현실적인 대안도 함께 있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다는 우물들이 있었습니다.(창26:15) 우물이 있어, 이삭은 농사를 지어 백배 결실을 맺습니다.(창26:12) 저기 나일강에 가지 않아도, 여기 우물이 있습니다. 우물을 파고, 긷고, 져 나르는 건 고단한 농법이지만, 하나님께서 복주시니 충분한 결실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성공을 시기하는 이웃들이 우물을 막아버립니다.(창26:15) 이삭이 다른 우물을 찾으면 또 이웃들이 막고, 이삭이 다른 우물을 파면 또 이웃들이 훼방하는 게 반복됩니다.(창26:18,21) 가난한 건 위험한 것입니다. 가난의 위험은 치명적입니다. 사람들은 그래서,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가난을 면하고자 합니다. 내가 풍요하다면 다른 사람의 가난을 개의치 않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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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마다 이삭은 자리를 옮겨 또 우물을 팝니다. 이삭은 발견한 우물도 내주고, 직접 판 우물도 내주면서 밀려나고 밀려납니다. 이삭은 가난이라는 치명적인 위험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소유했기에, 이삭은 가난을 위험하다 여기지 않습니다.
밀려나고 밀려나며, 이삭은 가는 곳마다 우물을 팝니다.(창26:25) 이삭은 밀려날 뿐인데, 이삭의 세력은 점점 불어납니다. 이삭의 우물을 빼앗을 순 있지만, 이삭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빼앗을 순 없기 때문입니다.(창26:24) 어떤 군대보다 강하고 어떤 모사보다 지혜로운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삭은 가난하지 않습니다. 신비한 성공을 이어가는 이삭을 주시하던 이가 있습니다. 이삭을 쫓아냈던 블레셋 왕이 찾아와 평화협정을 맺자고 합니다.(창26:28)
자신을 쫓아낸 권력과 평화협정을 맺기 위한 테이블에서, 이삭은 여유롭습니다. 상대방은 군대장관과 모사를 거느리고 왔고, 이삭은 홀로 테이블에 앉았지만 협상을 주도하는 건 이삭입니다. 이삭이 그들을 위해 잔치를 열어줍니다.(창26:30) 잔치로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고이 보내줍니다.(창26:31)
강이 선이라면, 우물은 점입니다. 이삭은 쫓겨나면서 우물을 파고, 우물을 빼앗기면 다시 우물을 파면서, 우물들이 점과 점과 점으로 이어집니다. 점과 점으로 이어져 이삭의 우물은 강처럼 선이 됩니다. 기근을 피해 이집트 나일강으로 피하지 않았지만, 이삭이 있는 곳에서 우물들이 이어져 강처럼 우물이 흐릅니다.
평화협정 체결 직후에도 파고 있던 우물에서 물이 나왔다는 보고를 받습니다.(창26:32) 이삭은 나일강에 가지 않았지만, 이삭이 있는 곳에 우물이 터집니다. 빼앗기고 또 빼앗겨도, 하나님께서 이삭과 함께 계시니 이삭이 있는 곳마다 우물이 솟습니다.
이렇게 이삭에겐 우물이 점이 아니라 선이 됩니다. 눈에 보이는 나일강의 풍요를 위험으로 인지할 수 있는 자에겐, 우물이 선이 되어 흐릅니다. 강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