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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강의 학미인(鶴美人)
오월의 어느 날, 오후 3시쯤, 나는 붓에 먹물을 듬뿍 묻혀서 서툰 붓글씨로 화선지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와 심여공화사(心如工畵師)라는 글씨를 큼지막하게 써서 벽에다 압핀으로 붙여 놓았다. 그리고 나는 물병을 챙겨들고 외출을 서둘렀다. 사흘거리로 나가는 횡성군의 섬강(蟾江)가의 바위에 앉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싶었던 것이다.
섬강은 바닥이 환히 보일 지경으로 투명하게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물 속에 오월의 푸른 산이 흐르고 있었다. 조용히 귀기울이면 주루룩…, 주루룩… 강물이 바위를 맴돌아 흐르는 소리 외에는 오직 적막이 가득할 뿐이었다. 나는 바지를 걷어올리고 신발을 들어 물 속으로 조심조심 걸어 들어갔다. 맨발에 밟히는 강물 속의 작은 돌들은 표면이 미끈미끈 거려서 자칫 중심을 잘 잡지 못하면 물 속에 자빠지기 십상이었다. 조심하면서 걸음을 옮겨 강물이 제법 깊은 곳의 수면 위에 솟은 큰 바위에 올랐다. 큰 바위는 바닥이 세 사람정도는 누울 수 있는 편편한 바위였다. 큰 바위에서 가까운 10보 정도의 거리에는 작은 바위가 역시 수면 위에 솟아 있었다.
나는 큰 바위 위에 올라서 신발은 옆에 놓고 좌선자세로 앉아 심호흡을 하고서 흐르는 강물을 응시했다. 햇빛이 흐르는 강물에 반사되어 환상적으로 비쳐졌다. 이때 작은 바위에 눈빛 같은 학 한 마리가 날아와 날개를 접고 앉아 나에게 눈길을 보냈다. 학은 웬지 기운이 탈진해 보였다. 하늘 저 쪽에서는 독수리 한 마리가 학을 내려보면서 선회하고 있었다. 학은 탈진한 모습으로 힐끗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다시 나에게 눈길을 주었다. 대화라도 하고 싶다는 듯이. 그러나 나는 고요히 흐르는 강물을 응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학도 흐르는 강물을 응시하는 듯 했다. 섬강의 바위에서 수도승과 학이 나란이 흐르는 강물을 응시하며 삼매(三昧)에 들고 있었다.
강물을 응시하며 정업을 생각하던 나는 학 쪽을 바라보았다. 학은 이상하게도 바위 위에 꼿꼿이 서 있지 못하고 지친 듯 바위에 앉아 강물을 응시하고 있었다. 학이 주저앉은 모습을 나는 처음 보았다. 꼿꼿이 서서 흐르는 강물을 달관한 도인처럼 , 또는 화두삼매에 든 선승처럼 내려다 보는 학인데 이상했다. 늙은 학일까? 아니면 병들었을까? 오래 살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학이 한없이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그 무렵, 나는 갑자기 졸리기 시작했다. 좌선자세가 무너지며 나는 바위 위에 벌러덩 누워 버렸다. 주루룩…, 주루룩… 물소리를 자장가로 들으면서 나는 잠에 빠져들었다.
그 때, 비몽사몽간에 웬 여자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벌떡 일어나 보니 작은 바위 쪽에서 하얀 옷을 입은 선녀같이 아름다운 30대 초반의 미인이 옷을 물에 적시면서 물 속을 허둥지둥 자빠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여 걸어오면서 나를 향해 절박하게 외쳤다. “스님, 저 좀 살려주세요.” 나는 깜짝놀라 일어나 그녀 쪽을 바라보니 검은 옷을 입은 무서운 사내 하나가 양손에 날카로운 흉기를 들고서 그녀를 붙잡으려고 덤벼들고 있었다. 악귀 나찰과 같은 사내였다. 검은 옷의 사내의 양손의 날카로운 흉기가 그녀의 몸에 닿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나는 어디서 그러한 용기가 솟아오르는지 큰 소리로 검은 옷의 사내를 크게 꾸짖었다. 나의 소리는 강 양안의 산을 쩌렁쩌렁 울리는 굉음으로 메아리쳤다. 나는 소리쳐 꾸짖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검은 옷의 사내는 나의 기세에 겁을 먹었는지 대적을 못하고 줄행랑을 놓았다.
나는 그녀를 구하여 내가 앉았던 큰 바위 위로 안내하여 좌정하게 했다. 그녀의 옷은 강물에 젖어 몸에 착 달라 붙어 있었는데 요염스럽기 보다는 초라하고 측은하게 보였다.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아름다운 얼굴에 고통스러운 병색이 완연했다. 아니 죽음의 그늘이 그녀의 얼굴에 가득했다는 것이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그녀는 정색을 하고 정중하게 나에게 말했다. “저는 오래 전에 스님을 뵙고 싶었어요. 스님이 가끔씩 저의 생업이 있는 곳의 바위에 앉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는 모습을 익히 보아왔으니까요. 저는 스님께 제 생애에 마지막으로 여쭙고 싶은 것이 있어요.” “오래 전부터 나를 지켜보았다고? 허어, 나는 초면인데….” “횡성의 자동차 운전학원 뒷산의 학 마을에 살고 있어요. 성은 강(姜)가구요, 이름은 미영(美英)이라고 해요.” “여자 혼자서 무슨 생업을 하다가 봉변을 당할 뻔 하셨는가?” “저는 부모로부터 섬강의 작은 지역에 물려받은 생업이 있답니다. 생업을 돌보려다 화를 입을 뻔 했지요.” “무슨 생업인지는 모르겠으나, 보아하니 새댁 같은데, 어른이나 남편하고 함께 일을 할 것이지 여자 혼자서 일을 해서는 안되네. 요즘은 도처에 깡패들이 많으니까. 큰깡패, 작은 깡패들이 득시글 거리지.”
“저는 박복한 여자입니다. 시집을 갔지만, 지금은 혼자예요. 열아홉에 사랑하는 남편을 만났지만, 남편은 악독한 인간에게 혼인한지 보름만에 독살을 당했답니다.” “쯧쯧, 악독한 인간대문에, 청상과부가 되고 말았구먼. 기구한 운명일세. 무어라 위로할 말을 할지 모르겠네. 부디, 희망을 갖고 힘을 내시게.” “전생에 지은 죄업의 업장이 두터웠겠지요.” "아직 청춘이니 재혼을 하지 그러시나?" "우리의 가풍은 남녀 불문하고 짝을 잃으면 늙어죽을 때 까지 재혼하지 않고 혼자 살아야 한답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아직도 그런 가풍이 존재하는가?" 미영은 눈가에 촉촉히 물기를 적시며 고개를 숙였다. 나는 위로하여 말했다. “남편을 죽인 악독한 인간은 법에 처벌되었는가? “멀쩡히 살아서 저까지 노리고 있는 걸요 그러나, .인간의 법도 무섭지만, 더 무서운 것은 하늘의 법인 인과응보예요. 인과응보를 받으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자녀는 있으신가?” “자녀라도 있으면 자녀를 키우면서 보람을 갖을 터인데, 자녀마저 둘 수 없는 짧은 사랑의 인연이었어요.” " 나무관세음보살 미인박명이라는 말이 헛된 말이 아닌 것 같네. 진심으로 위로하는 바이네." "내세에 사랑하는 남편을 다시 만나 부부인연을 맺을 수 있을까요?" "서로를 간절염원하면하 끊어진 인연은 다시 맺어지기도 한다네. 하지만 지극히 어려웁다네."
나는 그녀의 말에 한없는 가여움과 슬픔을 느끼면서도 그녀가 말하는 가문의 규칙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어느 가문이 그러한 규칙을 고수한다는 말인가. 나는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새댁의 안색은 사신(死神)이 찾아온 것 같네. 어디가 아프신가?” “사실은 이틀 전에 저의 생업이 있는 섬강가에 남편을 독살한 악독한 인간들이 찾아왔어요. 조심해야 했는데, 남편처럼 저도 악독한 인간의 마수에 걸려들고 말았어요. 이제 저는 남편의 걸었던 길을 걷게 되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어요. 이것도 모두 숙명이겠지요?” “그 악독한 인간들은 어디서 사는 누구인가? 말해보게. 내가 나서서 법에 호소하여 응징하겠네. 어서 말해 보시게. 응?” 강미영은 두 손으로 배를 누르고 고통을 참으면서 애써 미소를 지었다.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은 처연한 모습으로 귀기가 어렸다. 그녀는 청상으로 자식도 없이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고통을 참으면서 다시 말했다. “스님, 고마워요. 하지만, 법에 호소해도 안된답니다. 무엇보다 저의 수명이 끝나 가고 있어요." "젊은 사람이 무슨 당치 않은 말씀을 하시는가! 무심코 던지는 말이 씨앗이 된다네. 당장 병원에 가보세." 미영은 애써 웃었다. 자세히 보니 죽음이 닥치는 처참한 얼굴이었다. "스님, 저는 제 수명이 다한 것을 안답니다. 죽기전에 저에게 자비를 베플어 주세요. 저에게 깨우침을 주세요." "나보구 법문을 해달라구?" "네." "하하하. 불가에서 승려들이 신도에게 베푸는 법문은 모두 알고 보면 십중팔구 방편이라네. 양파껍질처럼 벗기고 벗겨도 실체가 보이지 않는 끝없는 방편 말일세. 팔만대장경이 모두 방편설이니까. 나는 새댁에게 방편이 아닌 진실을 대답해 주겠네. 어서, 말씀해보시게.” “사람들은 이승에서 못다 이룬 사랑을 내세에서 다시 만나서 사랑을 이룰 수 있다고 믿고 있어요. 제가 죽는다면 내세에 이승에서 요절한 남편과 재회하여 금생에 못다 이룬 사랑을 다시 이어질 수 있을까요? 정말 내세에는 다시는 이별의 비극이 없는 행복하고 영원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말해서…, 영원한 사랑은 없다네. 우주가 성주괴공(成,住,壞,空)으로 변하고 있는데, 사랑이라고 해서 변하지 않겠는가. 영원한 사랑은, 우주에 비해 찰나와 같은 수명으로 명멸(明滅)해가는 중생의 슬픈 희망이라네. 소영의 깨달음을 돕기 위해 나의 사랑 이야기를 해보겠네. 일체가 꿈이어서 꿈속에서 꿈 이야기(夢中夢)를 하는 것이지만 말일세.” 점점 죽음의 그늘이 져 가는 미영에게 나의 이야기를 하려는데 멀리 강 오른 쪽의 바위산에 있는 해묵은 소나무 위에 줄행랑을 놓았던 검은 옷의 사내가 여전히 양손에 날카로운 흉기를 들고 서서 이쪽을 노려보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도대체 저자는 누구이며, 전생에 무슨 원한이 사무친 것일까?
“예전에 나는 분명히 전생을 의미하는 꿈을 연속적으로 세 번이나 꾸었다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너무도 선명하여 지금도 눈에 선하다네.”
나는 장백산 같은 큰산 밑에 복사꽃이 만발하는 초가집에서, 부자는 아니었지만, 예쁘고 착한 아내와 단둘이서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시대는 아득한 왕조시대 같았다. 아직 자녀를 두지 않은 나와 아내는 함께 낮에는 논밭을 갈고 씨뿌리고 추수하고, 밤에는 무성한 대나무가 우거진 가운데 자리한 서재에서 등심지를 돋우워 아내와 함께 독서를 하면서, 정답게 대화를 하고, 서로 사랑하면서, 꿈결같은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복이 다해서인가(福盡墮落)인가, 나에게 아내와 이별의 순간이 왔다. 하늘로부터 천명이 도착한 것이다. 홍진세상(紅塵世上)에 가서 부처님의 법을 펴는 공덕을 쌓고 돌아오라는 지엄한 천명이었다. 윤회의 여행을 떠나는 나를 붙잡고 아내는 울면서 애절하게 말했다. "우리가 이별을 해야 합니까? 가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아요?" 나는 슬피우는 아내를 달래며 이렇게 말했다. "사명을 마치고 곧 돌아올 것이오. 그 때 까지 기다려주시오." 나는 이별을 슬퍼하며 우는 아내를 달래며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행장을 꾸려 여행이 시작되는 지정된 부두에 나갔다. 부두에는 부지기수의 남녀들이 배에서 내리고 승선을 하는 것이었다. 모두 윤회의 길을 떠나는 영혼들이었다. 배는 4층으로 된 거대한 목선이었다. 배가 떠 있는 강은 피안의 강폭이 보이지 않을 지경으로 거대한 강이었다. 강물은 혼탁해 있었으나 파랑이 없이 수면은 잔잔했다. 배에 승선하려는데 누가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집에서 나를 기다려야 할 아내가 달려오고 있었다. 아내는 다가와 숨을 헐떡거리며 말했다. “당신 혼자 먼 길을 떠나보낼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당신이 외롭지 않게 동행하려고 달려왔어요.” “내가 가는 길은 부부의 길이 아닌 혼자서 가는 길이라오. 동행이 안 된다오, 어서 집으로 돌아가시오.” 아내는 한사코 동행을 하겠노라고 우기었다. 배는 출항하는 시간이 되었다고 신호를 울렸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북적이며 승선하는 사람들 틈에 아내에게 4층에서 만나자며 먼저 4층으로 승선하라고 일렀다. 뒤이어 승선 수속을 마치고 내가 4층으로 오르려니 1층에서 일하는 배의 승무원은 4층으로 오르는 층계의 문을 굳게 닫아걸고 사납게 말했다. "각 층 마다 목적지가 다른 것을 몰랐소? 당신은 4층에 갈 수가 없어요." "그곳에 아내가 기다리고 있어요. 함께 동행을 해야 합니다. 제발, 4층으로 갈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귀찮게 하지 마시요. 인연이 있다면 언제인가, 다시 만날 수 있을거요. 아시겠오? 당신은 2층이요, 2층으로 즉각 가시오!" 배의 승무원은 거듭, '인연이 있으면 만나게 되겠지요. 인연이 다했으면 못만나는 것이구.' 하고 사라져 버렸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배를 타는 사람들 가운데는 그동안의 인연과 헤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배는 안타까워 하는 내심정은 아랑곳 없이 탁류의 강을 따라 무심히 떠갔다.
뱃속에서 보니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가 순식간에 흐르는 것 같았다. 나는 마침내 눈발이 내리는 겨울의 고적한 어느 부둣가에서 하선했다.나와같은 2층선객들은 모두 눈발을 맞으며 하선했다. 곧이어 배는 또 항해하기 시작했다. 하선한 사람들은 떠나가는 배를 행해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었다. 나역시 떠나가는 배를 향해 아내를 부르며 흐느끼었다. 4층에 승선한 여객이 어디서 하선하는 것인가, 생각해 보았지만 짐작되는 바가 없었다. 그 무렵, 눈발사이로 산사의 범종소리가 나를 외쳐 부르듯 울려왔다. 나는 범종 소리에 홀린 듯 산사에 들어갔다. 나는 부처님께 향피워 예배하면서 헤어진 아내에 대해 하소연을 했다. 부처님은 산 사람처럼 미소속에 이렇게 대답하시는 것이었다.
“우주와 인생살이는 모두 인연 법이다. 인연은 누가 만드느냐? 너희 자신이야!"
눈발사이로 울려오는 산사의 범종소리와 부처님의 말씀을 우레 소리처럼 들으면서 나는 화들짝 꿈에서 깨어났다. 나는 이제 어렴풋이 추측을 했다. 내가 태어난 날은 눈내리는 겨울날이요, 꿈속의 나의 초가집은 전생의 나의 집이요, 아내는 전생의 아내였으며, 천명은 환생하여 불문에서 공덕을 쌓으라는 것이며, 탁류의 큰 강은 생사의 강이었고, 거대한 목선은 반야용선(般若龍船)이었다. 배의 층마다의 여객은 환생하는 땅이 다르다는 것이라고 상상했다. 그 후, 나는 헤어진 아내를 생각하며 어느 곳에 태어났을 것이라는 막연한 상상을 해보았다. 나는 꿈속에서 본 아내의 모습이 너무도 생생해서 잊을 수가 없었다. 나는 미영에게 눈을 빛내며 실토하듯 말했다. “그 사랑하는 아내와 나는 우연히 상봉하였다네.” “예? 정말, 만나셨다고요?” 고통 속에 육신이 허물어져 가는 미영은 깜짝 놀라면서 감격한 눈빛으로 반문했다. 나는 실눈을 뜨고 흐르는 강물을 응시하며 말했다. “나는 방랑을 좋아했어. 방랑 길에서 그녀를 단 한 번이라도 만나볼 수 있기를 부처님께 은근히 소원했지. 부처님의 가호인지 나는 마침내 우연히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네. 그 감격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아아, 환생하면, 다시 만날 수 있군요." "그러나, 전생의 그녀는 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였어. 감격으로 가슴 벅차 오르는 나에게 그녀는 오직 현재의 남편과 자녀에 대해서 행운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부탁만 하더군.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네. 그녀가 전생의 일은 까마득히 망각한 했다는 것을 비로서 깨달았네. 나의 이야기에서 새댁은 깨달음이 있어야 하네.” “저도 내세에 요절한 남편을 만난다 해도 남편은 저를 모르겠군요….” “암. 그렇지. 내세에 무엇이 되어 만날까, 라고 하지만, 거의 서로를 깨닫지 못한다네." "…!" "그러나 금생에 맺은 부부의 인연을 죽을 때까지 잊지 않고, 남녀가 서로 떠나간 ‘님’을 위해 간절히 그리워하고 명복을 기원하는 것은 살아남은 자의 도리가 아닐까?” 미영은 쓰러져 흐느끼면서 힘겹게 입을 떼었다. “스님, 저는 이제 눈을 감아야 할 때가 되었어요. 마지막 소청이 있어요. 저의 시신을 걷두워 제가 살고 있는 학마을 뒷산에 있는 해묵은 노송나무의 두 갈래로 가지가 뻗은 그 밑에 밑에 묻어 주세요. 은혜는 내세에 뵙고서 꼭 갚겠어요. 저는 반드시 스님을 기억할거예요. 염원하겠어요.” "고맙네, 고마워…." 미영이 한스러운 얼굴로 하늘을 우러르는 듯 하더니 마침내 고개를 힘없이 떨구었다. 나는 그녀를 흔들며 당황하여 소리쳤다. "젊은보살, 이대로 죽어서는 안되네, 정신차려!" “새댁, 이대로 죽어서는 안되네. 정신차려!”
나는 고개를 떨구고 죽은 그녀의 어깨를 흔들다가 화들짝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바위 위에 강물소리를 자장가로 들으면서 한바탕 꿈을 꿈을 꾸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해는 석양이었다. 바위의 해묵은 소나무 위에는 하늘에서 선회하던 검은 빛의 독수리가 앉아서 학 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작은 바위 쪽을 건네 보니 학이 목을 늘어뜨리고 죽어 있었다. 아아, 저 학이 인간의 모습으로 꿈속에 찾아왔을까? 아니면 마음의 조화일까? 이때, 가까이서 모습은 보이지 않고 남자들의 음성이 들려왔다. “물오리를 잡자고 물고기에 청산가리를 넣었는데, 물오리는 없고 학이 죽어 버렸어. 저 큰 바위 위에 중이 우리를 고발하지 않을까?” “저 중 때문에 물오리 잡기는 틀렸어. 경찰에 신고하면 큰일이야. 도망치자.” 다음날 오후 나는 죽은 학을 보자기에 싸서 횡성읍의 자동차 학원 뒷산에 있는 학들이 사는 학마을의 소나무 숲을 찾았다. 과연 울창한 숲에는 가지마다 수많은 학들이 각기 둥지를 틀고 짝을 이루어 앉아 있었다. 나는 노송 밑에 학을 묻어 주고 반야심경을 독송해주었다. 매장을 마치고 노송을 우러르는데 노송의 가지 위에서 외로운 학 한 마리가 두 날개를 퍼득이며 목을 느려 빼어 나에게 인사를 하는 모습이 환상처럼 보이는 것 같았다.
사흘 후, 석양 무렵, 나는 다시 그 강가의 큰 바위 위에 좌정하여 흐르는 강물을 응시하면서 불쌍한 학을 생각했다. 물오리를 죽이고, 학을 죽인 악독한 인간들을 저주했다. 불쌍한 학의 영혼은 지금쯤 어디로 가고 있을까? 악독한 인간 때문에 짝을 잃고, 슬픔속에 또 인간에게 죽임을 당한 학이 한없이 불쌍했다. 학은 인간으로서 환생할 수 있을까? 아아 학이 인간으로 환생하여 내가 죽기 전에 다시 이 섬강의 강가에서 해후할 수 있다면, 얼마나 감격적일까. 하지만, 학은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날이 어두워졌다. 강물이 검게 흐르는 지경에도 나는 오직 학을 생각하고 슬퍼하며 낙루(落淚)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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