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란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어떻게 행동으로 옮기는 이작업을 시작할수 있으며 어떤 단계로 할수있습니까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내적작업)을 시작해야하는 것입니다. 우리모두는 새로운 주일 예배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살아있는 예배를 추구하도록 내적 마음을 바꾸는 작업입니다.
목회자가 변하면 교회는 변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변하면 교회는 변화가 나타납니다. 변화속에서 내적 작업을 통해 예배를 사랑하고 그동안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예배를 통한 축복을 위해 훈련이 모든 예배속에서 진행되어야 합니다.
예배를 회복하는 것은 어떤 특별한 생활이나 방법을 요구하기 전에 예배자의 내적인 자세와 중심의 변화가 우선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배 자로서 잘못된 부분을 고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예배자는 누구인가? 어떤 사람입니까?
성경에서 예배자들에게 요구하는 변화는 무엇인가를 찾아내서, 근본적으로 주일을 사랑하고 * 예배를 사랑하고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목표에 / 제1순위에 두는 영적 신앙의 목표를 다시 찾아야 합니다.
또 하나는 외적작업 즉 보이는 예배도 변화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새롭게 드리는 예배란 열린 예배나 축제예배 혹 몇가지 순서만을 바꾸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단순히 예배 분위기를 바꾸고 살리는 것도 아닙니다.
새로운 주일 예배는 3가지의 핵심을 담고 있어야 합니다.
세가지 핵심이란
첫째. 예배를 정확히 드려야 하고 목회자와 성도가 함께 준비하는 예배이며 또하나는 매주일 드려지는 예배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표에 맞춰 드리는 창조적인 예배를 말합니다.
① 예배를 정확하게 드리는 예배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 성경에서 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공부하는 주일예배가 되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성경으로 돌아가는 예배회복이 정확하게 드리는 예배입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하나님의 예배 원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보다 더 깊숙히 하나님이 찾으시고 기대하시는 예배를 목표로 해야합니다.
② 목회자와 성도가 함께 준비하는 예배를 말합니다.
예배는 목사의 전유물이 아니며 목사에게만 맡겨진 사역이 아닙니다.
성경의 모든 예배는 목회자와 성도가 함께 예배의 책임을 맞고 함께 감격하고 함께 체험하는 공동체라고 표현 하고 있습니다.
순서를 맡은 사람이나 인도자와 예배자가 목사와 함께 더 살아있고 감격적인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③ 매주드려지는 예배는 목표에 맞춰 드리는 창조적인 예배여야 합니다.
예배는 1년 52주 계속 됩니다. 그러나 시대의 상황과 여러분들의 환경은 매주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주일예배는 5년전이나. 10년전이나 오늘이나, 동일합니다. 이제는 정확하게 이 시대가운데 오늘 말씀하시며 일하시는 하나님을 예배에서 만나고 이 예배에서 찾는 예배의 폭을 넓혀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예배를 만들고 지루하게 반복되는 예배에서 다양한 삶을 위해 다양한 힘있는 예배를 목표로 할것입니다.
행동으로 옮기는 예배속에서는 우리에게 치료가 나타나야 합니다. 교회나 가정이나 개인이나, 모든 문제는 주일예배를 통해서 치료 받는다는 뜻입니다. 예배의 중심인 기도와 찬양과 말씀과 봉헌으로부터 어떤 성도든, 이 예배 순간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고 은혜를 베푸셔서 각종 문제들로부터 치료를 받게 하실것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의 치료, 죄의 치료 , 인생의 치료 , 병의 치료 , 문제의 치료, 환경의 치료, 신앙의 치료등. 곧 치료의 역사입니다. 성도의 모든 문제들을 치유받는 유일하고 완전한 길이 예배입니다.
이제부터는 여러분들이 의례적으로 생각하던 치유의 방법을 달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교회를 허락하시고 가장 소중한 예배를 드리도록 요구하신 이유는 매주일 당하는 모든 죄와 고통과 문제로부터 자유하게 할 수 있는 길이 주일 예배에 있다는 것입니다. 주일예배에서 우리의 문제가 치료 된다는 확신을 갖도록 만드는 예배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 감동의 예배 )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각자에게 역사 하는 시간입니다.
성령의 감동과 은혜의 감동과 말씀의 감동이 찬양의 감동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만지고 느끼는 살아있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이 예배를 통해서 깊히있는 영적인 세계와 하나님의 비밀들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오묘한 법칙들을 찾으며 예배자는 삶의 의미를 예배에서 찾게 될것입니다.
감동의 예배는 오늘 이 예배의 현장에서 뿐만 아니라 한주간의 생활에서도 예배 감격을 유지하게 되는 살아있는 예배입니다.
또 하나는 (축복의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으로 부터오는 축복을 공급받는 샘입니다. 하나님은 예배자를 사랑하시며 그들의 필요를 체우시고 그들의 기대에 응답하십니다. 바른 예배는 풍성한 하늘의 축복의 문을 열게 합니다. 예배를 통한 하나님의 공급은 마르지 않습니다. 다만 예배 자체의 빈곤과 약함이 그 하나님의 공급을 가로 막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나타 내시고자 하는 모든 축복들을 위하여 우리는 최고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해야 합니다.
예배란 성경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배는 언제나 ,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권위 인정이 우선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의 응답도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소홀하게 취급된 예배자의 응답 부분을 위해서 새로운 주일 예배는 일주일을 목회자와 성도가 준비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영적인 준비를 충분히 갖춘 예배가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예배며, 하나님의 능력이 체험되는 예배이기에. 지금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 영적 준비에 헌신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본문은 예배의 모델인데 왜 하필이며, 본문이었을까
요 4: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 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요 4:21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요 4: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요 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본문에서 (예배라는)말이 무려 8번 반복되면서 최종적으로 강조하시는 말씀이 “참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하시면서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신령한 예배와 진정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꼭 필수적인 것이 무엇입니까 ? 예배하고 싶은 열망과 기대감이 없는 예배는 진정과 신령한 예배가 아닙니다. 이모델과, 또한 성경에 나타난 예배의 원리가 있습니다.
역대상 16:25- 29까지 보면 “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극진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26 만방의 모든 신은 헛것이요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다 27 존귀와 위엄이 그 앞에 있으며 능력과 즐거움이 그 처소에 있도다 28 만방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29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앞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를 드리는 목적과 하나님께 영광의 예배를 위하여 오늘 우리모두는 최상의 예배자로서 최고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성경은 받으실 많한 예배와 받지 않은 예배에 대해서 그리고 참된예배와 거짓예배에 대해서 또하나는 산예배와 죽은 예배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① (창4) 받으실 만한 예배와 받을수 없는 예배“ 가인과 아벨의 예배에서
② (왕상18) “참된예배와 거짓예배” 갈멜산에서 엘리야와.바알.신을통해
③ (요4장) ‘산 예배와 죽은 예배’에 대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예배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법칙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드리는 예배도 반드시 점검해야 될 필요성이 있고, 지금보다 훨씬 더소중하게 다루어야 될 책임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대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영에서 영으로 하나님을 향하는 열정과 성경을 기초로 한 합당한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하는 자들의 마음과 생각과 초점이 하나님께서 이끄는 예배가되기 위해서 우리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새로운 주일 예배를 드리는 동안 끊임없이 듣게 되는 (치료와 , 감동과, 축복의 , 예배란) 준비에 있고 기도에 있으며, 헌신에 있고, 함께 만드는 예배속에 역사가 있습니다. 그동안 목사 혼자만 만드는 예배에서 이제는 전체 성도가 함께 만드는 예배로 드려져야 합니다.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교회의 미래를 생각하며 또한 여러분들의 영적인 풍성한 삶을 위하여 바른 예배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보다 더깊이 있는 성경을 근거로 한 예배의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매 주일마다 예배에 대한 반복 훈련을 통해 영적인 풍성한 삶을 누리고 예배 감격의 길을 찾아야 될것이며, 그길은 성경의 역사가 예배의 역사이듯이, 기독교의 역사도 , 예배의 역사인 것처럼 예배에서 놓칠수 없는 영역을 충분히 훈련하고 그런 모습들이 오늘의 우리 예배에서 확인되어야 합니다.
예배란 통일성과 다양성을 균형 있게 다루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적인 부분들을 보면 예배는 예전적 형태의 통상의식인 매주일 변함없이 행해지는 것으로 예배부름과 예배기원 예배기도 말씀 봉헌 송영등 예배에 빠질수 없는 의식적인 것들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예배의 기본 구조인 예배의 거룩성 경건성 일관성에 해당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만일 약하거나, 없어지면 예배는 무질서 하게 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만일 오늘의 교회처럼 예전적인 것만을 강조하고, 전통과 의식적인 부분만 고집한다면. 예배는 죽은 예배로 생동감을 잃을것입니다.
예배가 딱딱하고 융통성이 없고 특성 없는 지루하고 의미가 빠져버린 예배는 반드시 고쳐저야 합니다. 물론 지나치게 예전적인 측면만을 주장하면 18세기의 카토릭 예전이나 다를바가 없습니다.
또한 여러분들이 느끼는 지루한 예배. 무의미하게 습관화가 되어진 예배,기계처럼 드리는 예배, 또 생각하기를 예배는 늘 그런 것이라는 예배 매너리즘에 빠지는 이유나 생명력을 잃은 예배는 예전적인 예배 유형을 고집할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예배에서 예전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예배로 변화는 더욱 필요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예배로 회복되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까지 9가지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배는 원형교회인 초대교회의 예배를 바르게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땅에 처음 시작했던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모이기 시작한 가장 큰 이유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구원받은 새 (생명에)에 대한 감격과 (기쁨을) 고백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예배는 바른 (대상이) 필요하고 예배자가 왜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를 구별하는 것이 초대 교회의 예배로부터 확인된 것입니다.
예배는 (구별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경배하며 그분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축제이며 서로의 감격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예배 행위는 감동적이었고 축제 즉 잔치의 분위기였습니다. (설명 : 나누는 자리란, 관계가 형성되어야 나눌수 있습니다. (설명 : 사랑의 표현은. 말로 실천으로 즉 행동으로 할수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기를 원하지만 우리가 관계가 형성되어 있 지 않으면 나누어 줄수가 없고.표현을 하지 않으면.모든 것을 보류 합니다.
주일마다 잔치분위기 속에서 나누는 관계 형성과 표현하는 죽도록 충성하는 실천속에서. 축제의 예배가 되어야 할것입니다.
현제 우리 교회를 포함하여 한국교회의 예배 흐름은 처음 드렸던 이상적인 예배모델인 초대 교회와 같은 예배인가?
아니면 우리가 만들어낸 이상한 예배 모델인가를 바르게 깨달아서.... 예배에 대한 새로운 모델과 함께 예배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이런 당면한 예배의 문제들을 풀고 예배의 방향과 바른 예배를 세우기 위해서 실천하면 하나님은 영광을 받을 것이며. 우리에게는 한없는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