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의 추억 #16, 한밤중의 찬물 세례
새벽 2시는 누구에게나 깊은 한밤중이고 더구나 피곤에 찌든 청춘들에게는 꿀맛같은 깊은 잠에 누가 엎어가도 모를 시간이다. 그러나 그 깊은 한밤중, 1시50분쯤 되면 어김없이 “기상∼!, 기상∼!”을 다급하게 외치는 목소리와 함께 덮고있는 이불을 후다닥 벗겨내는 불상사가 일어나게 된다. 새벽 2시 기도시간인 것이다. 순번에 의해 잠을 자지않고 경비를 서고 있던 누군가가 책임감 있게, 그리고 용감하게, 이때까지 잠을 못자고 경비를 서고 있었다는 불만도 다분히 섞어서 고소하다는 듯이 여기저기를 휘젓고 다니며 곤히 잠든 사람들을 깨워대는 것이다.
모두 부스스 눈을 비비며 일어나 앉아 정신을 가다듬다가 주섬주섬 옷을 껴입고 대문 옆에 있는 수돗가로 나가는 것이다. 보통때의 날씨라면 그래도 괜찮다. 바람이 차갑고 매서운 한 겨울이라도 예외는 없다. 수도가에는 얼음이 얼어 있어 이곳저곳이 미끄럽다. 선잠을 깨어 정신을 못 차리고 비틀거리다가는 넘어질 수 있기 때문에 조심 조심 해야 한다. 그리고 한 밤중에 소란스러운 소리가 나게 되면 다닥 다닥 붙어있는 주위 민가에 문제가 되기 때문에 그야말로 살얼음판을 걸어가듯이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한다.
날씨에 관계없이 위의 옷을 벗고 1층 마당에 있는 수돗가로 가서 등물을 치는 자세로 엎드리면 누군가 드럼통에 받아놓았던 수돗물 한바가지를 등어리에 확 끼얹는다. ‘번쩍’ 정신이 드는것이다. 남자들이 먼저 찬 물을 끼얹어 살얼음 같은 추위를 느끼고 몸서리를 치면서 수건으로 닦고 옷을 추슬러 입어 '초량12교회' 2층 성전으로 올라가고 나면 아래층에서 자고 있던 여자들도 어김없이 웃통을 벗고 엎드려 차디 찬 물 한바가지를 등어리에 붓고 ‘번쩍’ 정신이 들어야 하는 것이다.
한밤중에 이 괴상한 의식아닌 의식을 누가 알랴, 모두 2층 성전으로 올라가 두손을 모으고 합장하여 무릎을 꿇고 앉아 간절히 ‘할아버지(?)’께 기도를 올려야 하는 것이다. 무엇을 그토록 간절히 빌었는지, 그 북새통 속에서도 골방 구석진 곳에서 가끔 누군가는 세상 모르고 깊은 잠속에 빠져 있는 사람도 있다.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거나 모두 다 일어난 줄 알고 수돗가로 나갔는데 골방으로 숨어 들어가 버려 그냥 모르고 지나쳐 버린 것이다. 운 좋게 윗사람에게 들키지 않으면 다행이거니와 만일 들켯다 하면 그날은 곡소리가 나는 것이다.
그야말로 귀싸대기를 얻어터지고 정신상태가 희미하다느니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머리를 쥐어 박히고 수도가에 새로 나가 찬물 세례를 받아 정신을 번쩍 차리고 요주의 인물로 찍혀서 여러사람의 시선을 받으면서 기도 정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도시간에도 꾸벅 꾸벅 졸고 있는 사람도 있다. 자식 이기는 부모도 없다지만 잠에 이기는 장사도 없다던가, 20여분쯤 그러다가 다시 스멀 스멀 모두가 잠자리로 기어들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항상 있는것이 아니라 일종의 ‘불조심 강조기간’ 같은 특별행사 기간이다. 대기처 내부의 인원들이 정신상태가 희미하다고 여겨지거나 세칭 동방교내에서 무슨 특별한 일이 발생하거나 하는 경우에 정해지는 ‘특별기도’ 기간에 해당된다. 한 두 주일에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몇 주간 계속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지교회에 출석하는 세칭 동방교의 일반 신도들은 한밤중에 일어났던 찬물 세례 소동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대기처 내에서 생활하는 대기자들에게만 행해지는 특별행사이기 때문이다. 당시 '초량12교회'는 세칭 동방교의 지교회이기도 했지만 부산경남지방의 대기처 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