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로 예정되어 있는 개학. 오늘은 학교 출근 근무하는 날.
한국사 교과서에 대해 썰 좀 풀어본다.
이미 한참 지난 얘기지만, 이번 2015 교육과정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채택률도 2007, 2009 한국사에 이어서 내가 집필에 참여한 '미래엔' 한국사 교과서가 전국 채택률 1위를 달성하였다.
재직 기간 중 마지막 교과서 집필 작업인지라 나름 심혈을 기울였다. 나는 공부가 짧고, 능력이 부족하여 남들보다 죽어라고 노력하지 않으면 실로 제대로 하기 힘들다. 역사 교육에 대한 이론적 토대도 매우 부족하다. 그래서 주로 경험과 직관에 의존하여 작업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도 역시 그랬던 것 같다. 이번 교과서는 30여년 나의 경험과 노력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세간에 미래엔 교과서가 지난 교과서에 비하여 변화가 없다는 평가가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이번에는 내용 면에서 나름 많은 변화를 주려고 시도하였다. 주제열기나 특집, 코너도 소수를 제외하면 기존 교과서와 다르게 하였다. 탐구 활동도 자료를 보고 정답을 구하는 방식보다는 학생의 주관적 생각을 말하는 방향으로 바꾸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여지껏 교과서에 단골로 등장하던 것 이외의 새로운 사료를 찾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하였다. 물론 한계가 있지만, 아마 다음 교과서에는 이번 미래엔에서 찾아낸 사료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출판사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한번쯤은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썼으면한다. 지금 보면 부족한 점, 미진한 점이 보이지만, 앞의 07, 09 교과서보다 진일보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사실 집필 기간이 충분했다면 이런 점들이 많이 극복될 수 있었를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1위는 했지만 지난 두 차례의 채택율보다 10% 정도 채택률이 낮아진 점이다. 그만큼 다른 교과서들도 나름대로 장점을 개발한 까닭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겨울 방학에 나름 8종의 교과서들을 면밀하게 살펴보기로 마음먹었으나 자세히 살피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대략적으로 각 교과서들의 장단점을 살펴보기는 하였다.
일일히 다 언급할 수는 없지만, 한마디로 평한다면 "의욕은 넘치지만 그것을 담을 그릇은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매우 무성의해 보이는 교과서도 있었다(이 교과서의 채택률이 높아서 좀 놀랍다.)
몇몇 교과서들이 새로운 시도를 했지만, 그것이 적절한 것인지는 일일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어떤 하단 코너나 1면 특집, 탐구 활동 등을 넣었을 경우, 그 의도가 무엇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아까운 교과서의 지면을 단답형 괄호 넣기 같은 문제로 채우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게 학생 중심 수업을 위한 것인가? 이런 고민들을 해본다.
교과서 집필의 경우 언제나 학생을 중심에 놓고 판단해야 한다. 집필자가 이런 것 꼭 넣어야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그것을 위해 자신의 지식을 늘어 놓게되면, 스스로는 만족할지 모르지만, 학생들에게는 그저 지루하고 따분하게 느껴질 가능성이 높다.
삽화의 수준도 좀 높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중의 일반 개설서에나 들어갈 수준의 싸구려 삽화를 교과서에서 봐야되겠는가?
얘기하자면 너무 길어지고, 정리가 다 되어 있는 것도 아니라 이 정도로 멈춘다. 사실 속 깊은 얘기는 아직까지는 영업 비밀이라 밝히지 않겠다. ㅋㅋ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대체로 교과서 문장이 제대로 안 나올 경우, 기존 교과서를 보면서 은근슬쩍 문장 가져다 쓰면서 정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지 않도록 집필자들이 기본적인 문장 서술에 더 노력해주기를 당부한다.
B 출판사에는 경고해 둔다. 남의 교과서 베낀 거 있음 자수해라. 명백히 저작권 위반했다고 판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