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武玉堂塵已沒(한무옥당진이몰)
한무제의 옥당도 티끌되어 사라졌고
한무(漢武)는 한무제(漢武帝 B.C 156~B.C 87. 재위 B.C 141~ B.C 87)를 말합니다. 그는 전한(前漢)의 제7대 황제로, 대학을 일으키고 유교(儒敎)를 숭상하여 국가를 다스렸으며, 정벌사업을 단행하여 북으로 흉노(匈奴)를 크게 무찌르고, 남으로 남월(南越), 동으로 고조선(古朝鮮)을 멸망시키는 등 한의 강역을 크게 넓혔던 황제입니다. 그는 만년에 진시황(秦始皇)이 그랬던 것처럼 신선술(神仙術)을 배워 천년 만년 살고 싶어 불로장생(不老長生)의 영약인 불로초(不老草)를 구하려 했으나 끝내 71세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덧없는 욕심입니다.
옥당(玉堂)은 아름다운 전당(殿堂)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황제가 머무는 웅장하고 화려한 궁궐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최고의 권력자인 한무제가 아무리 으리으리한 궁궐에 살았더라도 한무제는 물론 그 화려한 궁궐이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 이미 티끌이 되지 않았느냐 그 말씀입니다. 벌써 티끌이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말입니다. 참으로 무상한 일입니다.
石崇金谷水空流(석숭금곡수공류)
석숭이의 금곡도 물만 쓸쓸히 흐른다네
최고 권력자인 황제와 옥당(玉堂)만 그런 것이 아니고 만고(萬古)의 갑부(甲富)라 일컫는 석숭(石崇)과 재물은 어떠한가를 또한 다루고 있습니다.
석숭(石崇 249~300)은 부(富)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인물로 중국 서진(西晉)의 부호(富豪)이며 문인(文人)입니다. 자는 계륜(季倫이며 형주자사(荊州刺使)를 지냈으며, 항해와 무역으로 거부가 되었다고 합니다.
금곡(金谷)은 낙양(洛陽) 서북쪽에 계곡이 있는데 이 계곡에 금수(金水)가 흐른다 하여 금곡(金谷)이라 했는데 석숭이 여기에 금곡원(金谷園)이라는 별장을 지어 이로 인하여 석숭의 재산을 뜻하는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석숭이 형주자사(荊州刺使)를 지낼 때 지위를 이용하여 상인이나 관하의 관리를 위협하여 금품을 갈취해서 금곡원을 지었다고 합니다.
수공류(水空流)란 물만 쓸쓸히 흐른다는 이야깁니다.
만고의 갑부 석숭이는 그 부를 온전히 지켰는가? 답은 '아니올씨다' 입니다. 석숭은 무척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1,000여 명의 미인 중
에서 수십 명을 선발하여 시중을 들게 했으며, 금곡원에서 주연을 베풀어 시를 짓지 못하면 벌주로 술 서 말을 먹였다는 고사는 유명합니다. 그는 특히 연회에서 미인으로 하여금 손님에게 술을 돌리게 하고 손님이 술을 먹지 못하면 가차없이 술을 따르던 미인을 베어 죽였을 정도로 포악성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석숭은 미인 중에 녹주(綠珠)라는 여인을 특히 사랑했는데, 그녀는 피리를 잘 불고 '명군(明君)'이라는 춤도 잘 추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녹주 때문에 속절없이 파탄에 이르고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당나라 중기 이한(李瀚)이 지은《몽구(蒙求)》에 실려 있는 『녹주추루(綠珠墜樓)』라는 글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삼국시대의 역사책인 『진서(晉書)』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석숭(石崇)은 자가 계윤(季倫)이고 발해군 남피현(南皮縣) 사람이다. 무기고를 지키거나 무기제작을 통솔하는 위위(衛尉)에 임명되었다.
기생 중에 녹주(綠珠)라고 하는 여자가 있었는데 아름답고 농염하며 피리를 잘 불었다. 궁중의 문서를 담당하는 관청의 장관인 중서령(中書令) 손수(孫秀)가 사람을 보내 그녀를 요구했다.
그 때 석숭은 금곡(金谷)의 별장에서 시원한 누각에 올라 푸른 물결을 앞에 두고 부인들을 옆에 끼고 있었다. 전령이 손수의 뜻을 전하자 석숭은 하녀와 첩 수십 명을 전부 나오게 해서 그에게 보였다. 그녀들은 전부 매우 좋은 향기를 은은히 띄우고, 얇은 비단옷을 몸에 걸치고 있었다.
석숭이 이 중에서 골라 보도록 하자, 전령은 이렇게 대답했다.
"녹주를 찾아오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누가 그녀인지 모르겠습니다."
석숭은 발끈하며 대답했다.
"녹주는 내가 어여삐 여기는 아이이다. 데려갈 수 없다."
손수는 크게 노해서 조왕윤(趙王倫)에게 석숭을 죽이도록 권했다. 이리하여 천자의 명령을 위조해서 그를 체포하려 했다. 석숭은 마침 누각에서 연회를 열고 있었다. 갑옷을 입은 무사가 문을 차고 들이닥쳤다. 석숭이 녹주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제 너를 위하다가 죄를 얻었구나."
그러자 녹주는 울면서 말했다.
"당신 앞에서 죽음을 바치겠어요."
그리고 스스로 누각 아래로 몸을 던져 죽었다. 석숭은 처벌받은 사람들이 많이 몰려 사는 동쪽 시장에 이르자 탄식하며 말했다.
"저 노비들이 나의 재산을 다 빼앗았도다."
호송꾼이 이렇게 대답했다.
"재산이 재난을 부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어째서 진작 나눠 주지 않았습니까?"
석숭은 대답할 수 없었다. 결국 처형을 당했다.」
이와 같이 만고갑부 석숭이의 호사스러운 삶도 그 많은 재산도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는 이야깁니다. 호송꾼의 이야기가 의미심장하지 않습니까? 그 호화로웠던 금곡도 이제는 물만 쓸쓸히 흐를 뿐입니다.
光陰乍曉仍還夕(광음사효잉환석)
시간은 잠깐 새벽 이내 저녁 돌아오고
권력무상(權力無常)과 재물무상(財物無常)에 이어 세월의 무상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광음(光陰)이란 짧은 시간을 뜻하지요.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새벽인가 하면 금방 저녁이 돌아오지요. 아침인가 하면 어느새 하루 해가 저뭅니다.
원효 스님의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에 이르기를,
"시시이이(時時移移)하야 속경일야(速經日夜)하고,
일일이이(日日移移)하야 속경월회(速經月晦)하며
월월이이(月月移移)하야 홀래년지(忽來年至)하고
연년이이(年年移移)하야 잠도사문(暫到死門)하나니라.
시시각각 흘러 흘러 빨리 하루 지나가고
하루 이틀 흘러 흘러 훌쩍 한 달 지나가며
한 달 두 달 흘러 흘러 홀연 한 해 다다르며
한 해 두 해 흘러 흘러 잠깐 죽음 이르도다."
하였으니 무상한 세월은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고 쏜살같이 달아납니다.
草木纔春卽到秋(초목재춘즉도추)
초목은 겨우 봄인 듯하면 문득 가을.
초목(草木)은 자연을 말합니다. 자연의 온갖 초목이 겨우 봄인가 했는데 어느새 울긋불긋 가을이 되었다는 이야깁니다.
이 구절을 보니 주희(朱熹)의 『권학문(勸學問)』이란 시 중에 미각지당춘추몽(未覺池塘春草夢)인데 계전오엽이추성(階前梧葉已秋聲)이란 구절이 떠오릅니다. 연못가의 봄풀이 미처 꿈도 깨지 않았는데 섬돌 앞의 오동나무는 가을소리를 낸다는 구절이지요. 이렇듯 세월은 무상하고 빠릅니다.
주자선생은 이렇게 세월이 빠르니 한 시라도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공부하라 했지요. 일촌광음불가경(一寸光陰不可輕)하라고...
여기 주련의 글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세월이 무상하니 부지런히 수행할 것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또한 선행공덕을 닦으라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在世若無毫末善(재세약무호말선)
세상에 있을 적에 털끝 만한 선행 없음
고금의 세상사를 자세히 살펴보니 권력도 무상하고 재물도 무상합니다. 또한 시간도 무상하고 자연도 무상하여 무상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움켜잡을 만한 것이 없는데 움켜잡으려 하니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 움켜잡으려고만 했지 베풀지 않으면 어찌 할 것인가. 베풀지 않고 인색한 것은 죄악과 다름없습니다. 털끝만 한 선행도 베풀지 않는다면 정말 문제입니다.
대개 명성과 재력이 있는 집들은 명절이 되면 각처에서 들어오는 온갖 좋은 선물들이 수없이 들어옵니다. 그런데 이 중에는 아주 좋은 먹거리들이 많습니다. 대형냉장고가 몇 개 있어도 넣을 자리가 모자를 지경입니다. 그런데 그 먹거리를 소비할 주인들은 대개 두 분입니다. 물론 내외의 발이 되는 기사와 가사도우미, 간병인이 있는 정도이니 주인을 포함해 많으면 6~7명이고 적게는 4명정도입니다. 이 식구가 모두 먹는다면 들어오는 먹거리를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질 좋은 먹거리를 객식구가 먹을 확률은 드뭅니다. 이런 집들은 외식할 기회도 많아서 좀처럼 먹거리가 줄어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걱정입니다.
'이 물건을 어떻게 저장하나 대형냉장고를 더 들여야 하나?'
냉장고를 들일 생각을 말고 권속들에게 베풀면 해답은 거기 있을 것인데 무슨 고민인지 알 수 없습니다. 수고 많은 기사, 1주일에 한 번 가는 가사도우미, 간병인들에게 과일 몇 개, 고기 등을 나누어 들려 주면 쉽게 해결할 것을... 늘 빈손으로 보내고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부자들은 인색하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썩혀서 버릴지언정 베풀지는 않는다.' ^^
死將何物答冥侯(사장하물답명후)
장차 죽어 염라왕께 무엇으로 대답하리.
세상에 살았을 때 털끝만 한 선행도 베풀지 않았다면 장차 죽어서 명부(冥府)에 가서 심판을 받는데 염라대왕이 "너는 살아 생전에 무슨 선행을 하였느냐?" 고 물으면 무엇으로 대답하겠냐는 말씀입니다. 명후(冥侯)는 명부(冥府)의 수장격인 염라대왕(閻羅大王)을 말합니다. 명후(冥侯)를 명후(冥候)로 보아 염라대왕의 물음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49일 동안 명부에 가서 시왕(十王)으로부터 생전의 일에 대한 심판을 받아 그에 따른 처분이 내려지는데 생전에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은 선도(善道)에 태어나게 되지만 선업을 닦지 못한 사람은 극심한 지옥고(地獄苦)를 치르게 됩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 재판에 서게 된다면 변호사가 있어 변호를 할 때 무슨 근거가 있어야 변호하듯이 명부에서도 선처를 하려고 해도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생전에 선업을 지은 바가 없다면 무엇으로 변명하겠습니까? 명부는 거짓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거짓말을 알아보는 장치가 수도 없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업경대(業鏡臺)지요.
세상에 좋다는 권력, 부, 명예 등은 무상한 것이요, 세월 또한 그러한 것이니 그 권력이 있다면 세력을 부리지 말고 살필 일이요, 재물이 많다면 골고루 베풀어서 선행을 지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무상한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부지런히 공부하고 수행에 힘쓰고 힘에 따라 선행공덕도 힘써 지어서 후일을 도모해야 할 것입니다.
當初將爲茅長短(당초장위모장단)
燒了元來地不平(소료원래지불평)
처음엔 띠 들쑥날쑥 자란 줄 알았더니
불태우니 원래 땅이 울퉁불퉁 하였구나.
앞서 위의 글들은 제행(諸行)은 무상(無常)하니 집착을 버리고 선업(善業)을 닦으라는 주제의 글인데, 이 글은 그 주제를 달리하여 근본을 바르게 하라는 『대혜보각선사어록(大慧普覺禪師語錄)』에 나오는 글입니다.
생각해 보면 무상한 줄도 모르고 미망(迷妄)으로 탐욕에 눈이 어두어 집착을 하는 것은 그 근본을 바르게 하지 않은 데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글을 더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
띠풀이 들쑥날쑥 자라서 풀이 그렇게 처음부터 그렇게 자란 줄 알았는데 띠풀을
태우고 보니 땅이 울퉁불퉁 평탄치 않았음을 알았습니다.
문제는 항상 겉모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근본이 바른가 아닌가에 달려 있음을 알게 합니다. 이는 공부를 함에 있어서 아무리 애를 써서 해도 근본 생각이 바르지 않으면 헛된 노력에 불과하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늘 부처님과 선지식들께서는 정견(正見)을 가지라 하시는 것입니다. 정견을 갖지 않으면 사견(邪見)에 빠지기 쉬운 것이니 이를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백우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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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3.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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