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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근(대철 베드로) - 주님께선 참된 아버지입니다. 그분께서 해 오신 모든 것을 우리는 성서 책으로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예언 또한 알 수 있었고 말입니다. 예전에 저 였더라면 이 모든 말씀을 믿지 않았겠지만 이젠 모두 믿고 있습니다. 저는 영원한 참되신 그분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김윤오(베드로) -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어떤가 하는 생각을 가져 보았습니다. 주님을 믿고 따르겠다고 해 놓고, 아직 예전에 어울리던 이들과 단절을 하지 못하고 연분의 끈을 붙들고 있습니다. 이는 다시 그이들과 어울려선 안 될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저에게 남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것이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고, 주변정리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멘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우리는 과연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있는 것일까? 내 자신의 십자가는 무엇일까? 내 십자가의 무게를 어느 정도일까? 나도 과연 예수님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내어 놓을 수 있을까? 행여, 예수님의 말씀을 부끄러워 한 적은 없었나. 나는 과연 하느님 나라를 볼 자격이 있을까? 주님, 저의 부족함을 채워 저의 십자가는 물론이고 힘들고 어려워하는 이들의 십자가도 짊어 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예수님의 말씀을 당당하게 전파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저에게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길 기도드립니다. 저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아멘
송기성(스테파노) - 금년 한해도 어느덧 막바지에 와 있다는 사실에 아쉬움과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참으로 고귀한 시간들이지만 그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한 것이 현실이 아닌가싶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저 지나가는 시간이 아닌 신앙적으로 더 성숙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 믿음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발전하기 위해서는 네 안에 말씀으로 채워지도록 말씀과 기도 생활 안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면서도 어떤 것도 바라지 않으시고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하셨듯이 우리도 그 말씀과 계명대로 사는 것이 신자의 의무가 아닐까 싶습니다.
정재덕(프란치스코) - 찬미예수님, 마음을 비우고 자신을 찾는 것이 참다운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라 생각하며 묵상과 순간순간 화살기도를 하면서 흐트러진 자신을 위로하며 살아가지만 어느새 눈앞에 보이는 철창 안 제한된 창살만이 보일 때는 긴 한숨과 일그러진 나의 자화상에 원망을 해 봅니다. 이제 주님 모시는 신자로서 주님의 계명을 따르며 살아가야하는 신앙인이 되어 오로지 한 곳만을 보고 가려합니다.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걸림돌, 또한 많을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저 자신 주님 백성으로서 지켜야할 계명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도 쉽게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부닥치는 현실과 내 마음 안에 주님 모시는 현실과 부닥치며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마다 옛 선조들 성인처럼 순교자의 삶들처럼 살지 못하여도 또 다른 자비로운 마음으로 이끌어 주소서. 전능하신 창조주 하느님께 올리는 마음이라며 쓰는 모자라고 부족한 글들 자주 쓰지는 못해도 언제나 크신 사랑으로 넓게 사랑으로 반겨주시는 아버지 하느님을 믿는 그 마음 언제나 흔들리지 않는 굳은 믿음으로 살아가렵니다. 미사책보고 묵상의 글을 적는 사람 등 각자 정성껏 마음 바친 글들 아버지 하느님께 올리지만 각자의 그릇대로 저마다 일일이 그 마음들 다 헤아려 주시고 때론 채찍과 때론 은총을 주시며 주님의 섭리 안에 살아가게 하시며, 안정과 기쁨 행복을 주시는 성부 하느님의 축복 속에서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간절히 드리는 저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아멘
마상태(안드레아) - 세상의 종말에 관한 말씀이십니다. 종말의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르고 한밤중의 도둑처럼 어느 순간에 드는 것과도 같다. 그래서 늘 깨어 있어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충직한 종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는 민감하면서도 하느님의 뜻에는 둔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느님의 말씀을 결코 사라지지 않는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임을 마음에 새기고 항상 깨어있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남종덕(토마스) - 오늘의 묵상 말씀을 적으며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루카 복음 말씀에 하늘과 땅이 사라지지만 언제 어느 때 사라질지 모른다고 하셨는데 이 말씀의 암시를 지구 멸망을 생각하게 하는 말씀인 것 같아 저 토마스는 항상 깨어있는 삶을 살아가야 되겠다는 생각하였습니다.
강을모(세례자 요한) - 우리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님의 희생을 후손 대대로 기억하면서 예수님의 기억하면서 예수님의 희생에 저는 보답을 하겠습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님의 십자가 외에는 그 어떠한 것도 자랑을 하지 않으리라.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말씀을 매일 묵상하며 기도로 생활을 하겠습니다. 저는 주님의 믿음과 사랑으로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아멘
이우람(마태오) - 그날은 언제인지 그 누구도 짐작할 수 없습니다. 천 년 후, 만 년 후, 어쩌면 오늘 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늘 깨어서 주님의 진리를 찾고 따른다면 그 날이 언제인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썩어 문드러지고, 낡아 사그라져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산과 바위도 풍화작용과 지각의 변동으로, 산이 사라져 평지나 계곡이 되고, 바위는 깎여 모래먼지가 되는 것이 순리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늘 우리의 영혼에 흔들림 없는 뿌리로 함께 하고 있으니 그 진리에 시한적인 묶임이 아닌, 영원한 자유로 따르면 그것이 진실한 답이자 전부입니다. 그 날 즉 종말의 날은 우리에게 주님이 함께 하심은 전혀 관계없을 일 뿐, 우리에게서 주님의 자리가 없는 그 순간이 그날이자 종말입니다. 믿음을 실천하고 행하며 기도하는 삶은 죽어서도 사는 것이고, 주님 없이 나로 행하는 삶은 곧 죽어서 죽어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삶 그 쉬운 진리는 그저 주님 안에서 살기만 하면 절로 이루어집니다. 문득 불로초를 찾아 미쳐 죽어간 진시황이 역사를 대표하는 바보 같네요. 이태석 신부님과 김수환 추기경님 그리고 수많은 순교자들은 역사에서 고난과 박해 등을 받았지만 늘 주님 안에 계셨기에 기쁨과 행복이셨고 죽어서도 진정 살아난 축복을 누리시고 계십니다. 천하를 다스리고 손에 쥔 황제와 그저 들풀처럼 짓밟히며 싹을 틔운 복된 사제의 삶 중에 과연 무엇이 누구의 삶이 진정 영생을 누렸는지는 미취학 어린이도 서슴없이 대답할 수 있습니다. 아멘
- 11월 한 달은 위령성월입니다. 이 위령성월은 세상을 떠난 가족, 친지는 물론 모든 이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기간이자 특히 더 연옥의 영혼을 위하여 많은 기도를 드리는 기간입니다. 제게 이 11월 위령성월은 특히 더 무겁고, 힘겹고, 아픕니다. 십 년 전 2002년 11월16일 저로 인해 한 생명이 억울하고 부당한 죽음을……. 비겁한 자기변명으로 제가 제 손으로 죽게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죽음의 원인과 결과는 제게 있으니 분명 저의 죄임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지난 십 년 단 한순간도 저의 죄의 멍에에서 벗어난 적 없이 통회와 속죄에 몸부림치며 살아왔지만 올해는 유독 아픕니다. 세례를 받아 마태오로 거듭 태어나 처음 맞는 위령의 날. 그분을 위한 정식기도 저의 십자가는 태산보다 거대해져 저의 영혼을 짓누릅니다. 그것이 두려워서 저는 처음 주님을 맞이하고서도 수년을 언저리에서만 맴돌 뿐 선뜻 주님의 품으로 뛰어들지 못했었습니다. 저로 인해 영혼이 되신 그분께서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셨기에 (알아보니 개신교였더군요) 저로 인해 생을 잃어, 혹여 연옥에 계실까 염려되어 저 혼자서 평안히 주님 품에 들어 세례받기가 너무 죄송스러웠습니다. 罪지은 저는 회계하였다며 세례를 받고, 그분께서는 연옥에 던져지셨다는 것은 도저히 저의 양심에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처음 하느님을 접한 그날이후로 단 하루도 빠짐없이 그분을 위령하는 기도는 잊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늘 언저리에서 맴돌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진정 그분을 위한 위령기도를 위해서는 저 자신이 예비자에서 벗어나 신자로써 온전함을 갖추어야 함을 수년의 헤맴 끝에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작년 12월 9일 세례를 받고 더욱 진정을 다해 그분을 위한 위령기도를 주님께 올렸습니다. 그리고 11월 16일 신자로써 처음 그분의 기일을 맞게 되었습니다. 지금 전 이미 10월 말부터 겉으로는 평상시와는 다름이 없지만 공황상태와 강박증의 압박이 심화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끊임없이 생각이 뒤엉키고, 귀에서는 이명이 멈추지 않고 조금 들뜬 듯 하며 (역표출), 불안합니다. 이는 세례를 받기 전에도 비슷한 모습이지만, 올해는 조금 더 심합니다. 그럼에도 작년과 다름은 절망적이거나 좌절의 우울함은 없고, 대신 더욱 간절한 기도와 바른 진리의 삶에 대한 갈망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아픔과 죄의식에 대한 통회와 속죄로 무거워진 십자가로 무릎은 꺾이고 등은 휘어져 두 다리를 일어서 걷는 대신 엎드려 기고는 있지만, 분명 제 십자가를 느끼고, 지금 내가 향하는 길이 주님의 길임을 확신하기에 두려움 따위는 없습니다. 대신 의지가 굳건해집니다. 비록 돌고 돌아 타인들처럼 잘 닦여진 길 위로 두 발로 씩씩하게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갈과 진창 그리고 가시덤불로 가득한 길을 통해 주님의 길을 엉금엉금 기어가지만, 그렇게라도 주님께 향할 수 있음에 저는 제 십자가와 과거의 무게를 축복이자 희망으로 감사합니다. 주님, 저 정말 힘겹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제 길이 험하고 멀며, 등에 짊어진 십자가는 더욱 무거워질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 나아가는 이길 제가 먼저 자갈과 진창 그리고 가시범불 모조리 부딪혀 제게 들러붙게 하시어 제 뒤에 이 길로 들어서 주님께 향할 형제자매들께서 조금은 수월하게 조금은 가볍게 주님께 향해 갈 수 있게 해주세요. 그래서 저로 인해 상처받은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영혼에게 주님의 빛을 담은 십자가를 건네며 진심의 미소를 나누게 허락해주세요. 용서를 갈구하는 속죄가 아니라 용서를 건네주는 속죄의 삶은 이끌어주세요. 매일 잠에서 깨어나 처음 떠오르는 의식이 주님을 향한 길을 다짐하게 하시고, 매일 잠들며 의식을 닫을 때 오늘 얼마나 주님께 다가섰는지 기뻐 찬미하게 저의 하루를 채워주세요. 진정 저의 죄로 억울하고 부당한 죽음을 맞은 그분의 영혼을 긍휼히 살펴주시어 주님의 품에서 안주하여 평온을 누리게 허락해주세요. 아멘
노형식(안토니오) -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 행복합니다. 기쁨과 즐거움의 말과 때로는 슬픔을 전달해주는 ‘말’ ‘말’ ‘말’ 말과 관련해서 우리가 자신의 가장 무서운 적일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뭔가에 실패했을 때 자주 다른 사람이나 환경 탓을 하지만 사실은 스스로에 대해 말한 그대로 이루어 졌을 뿐이다. 우리의 말은 꿈을 이루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꿈을 꾸는 것이나 믿음의 눈으로 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의 인생을 향해 믿음과 승리 건강과 성공의 말을 선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말에는 엄청난 창조의 힘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뭔가를 입으로 말하는 순간에 말의 내용이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영적 원리라고 굳게 믿고 싶습니다. 좋고 긍정적인 말을 하든 나쁘고 부정적인 말은 하든 말한 그대로 열매를 맺는다. 그러므로 믿음의 말을 하자. 하느님 사랑 안에서 믿음의 말씀을 통해서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진정한 나눔의 삶을 배우고 익혀가는 나를 다듬고 만들어 가면서 그리스도인으로써 참된 삶을 일구어 가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하느님 앞에 기도로써 제 자신을 다스려 갈 것입니다. 사랑의 손짓으로 지켜주시고 이끌어 주시리라. 그리고 당신 품속에 꼭 않아 주십시오. 하느님! 이젠 시간이 흐른 탓인지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들뜬 감정은 어느 정도 가라앉았습니다. 사랑이란! 스러지고 마는 감정이 아니기에 이제 사랑의 노력을 할 때입니다. 새로운 사랑, 확고한 사랑. 그대를 향한 나의 사랑은 고통과 더불어 자라나고 더욱 더 다져집니다. 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믿음을 통해 나타나고 나는 그로 인해서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용서와 사랑 사랑과 행복의 마음을 정직한 삶 위에 우뚝 세워갈 것입니다.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과 사랑을 통해서 말입니다.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행복합니다.
김천하(예비신자)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는 주님을 믿고부터 많이 배우고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늦은 나이지만 늘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께 기도하면서 세상을 살아 갈 것을 다짐합니다. 어디서나 어느 곳에 있어도 늘 하느님과 함께 하면서 제가 넘어지고 자빠져도 하느님은 강한 손을 펼쳐 저를 일으켜 주시고 어루 만져주십니다. 찬송가도 있습니다. 일어나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일어나 걸어라 내 너를 힘주리. 항상 주님을 믿고 착실하게 살겠습니다. 좌절 하지 않으며 낙심하지 않으면서 늘 하느님 앞에 기도하며 살겠습니다.
신동현(예비신자) - 하느님! 저는 많이 나쁜 사람인가 봅니다. 착한척하며 남에게는 상처를 주는 나쁜 사람……. 결국엔 위선자가 되고 마는 것이 저의 본모습인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나 스스로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상대방은 그렇게 느끼기에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슬픕니다.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타인은 그렇게 느낀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왜 인지하지 못했던 걸까요? 타인에게 아픈 마음이 들기 전에 내가 먼저 나의 실수나 타인이 받은 상처를 알았다면 서로에겐 상처가 되지 않았을 텐데,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한 사람의 진실함을 짓밟아버린 저는 그에게 있어서 잠시 스쳐 지나가는 얼룩에 불과합니다. 좋았던 시간들은 뒤로 한 채 이별을 내세우며 이젠 떠나가려 합니다. 떠나고 나면 적어도 나로 인해 아파할 일은 없을 테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비겁하게 뒷모습을 보이며 떠나지만 그 사람이 이것만은 알아 줬으면 합니다. 진심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받는 방법과 표현이 부족하다는 것을……. 아직까진 그 정도의 그릇이 되지 않는다는 걸……. 지금 느끼는 아픔은 당신 스스로 느낀 오해라고 비겁한 변명을 해보고 싶습니다. 한마디의 사소한 말이 비수가 되어 큰 상처를 준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지만 뒤늦게 상처를 준 뒤 깨닫는걸 보니 아직 많이 부족한 사람인가 봅니다. 상처를 주게 되어 죄송할 뿐입니다. “이번 주는 저 자신이 너무 나태하게 지냈으며, 한 사람에게 실망과 상처를 주었습니다. 하느님! 이 죄인 용서를 구하고자 하니 부디 이 죄인에 기도를 들어주소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최정배(예비신자) - 주 하느님! 저 정배는 하느님을 믿으며 하느님을 숭배하오니 하느님께서는 아직 가톨릭의 공부를 배우는 저에게 하느님께서 정배를 사랑과 행복과 늘 좋은 일만 생기게 도와주시고 담장 안에 갇혀서 자유를 누리지 못하지만 저의 죄를 달게 받고 건강한 모습으로 아버님을 만나서 효도 할 수 있게끔 하느님께서 도와주십시오. 하느님 저는 약을 출소 때까지 아버님이 부쳐주셔야만 먹을 수 있으니 저의 아버지의 건강도 주님께서 꼭 챙겨주시어 2014년 6월 11일 건강한 모습으로 출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그리고 미결 2상 24실에서 동료들과 잘 어울리며 항상 사랑을 받는 정배로 되길 도와주소서.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아멘.
김논태(예비신자) - 집회 때 마다 성모 마리아 옆에 계신 예수님이 활짝 웃고 계신 성상을 보고는 “저 예수님은 왜 저렇게 입술이 뒤집혀 있을까?”하고 의문을 항시 가지고 있었는데 얼마 전 그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사람이 진정 기쁘고 너무 좋으면 목젖이 보일만큼 웃는데 아마도 그 이상으로 기쁘시기에 웃고 계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가신 그분 다시 한 번 그분께서 희생하신 의미를 조용히 생각해 봅니다.
송병연(가를로 르왕가) - 찬미 예수님, 늘 저와 함께하시는 주님, 제가 언제나 주님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돌보아 주시고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소서. 이렇게 갇혀 있는 곳에서도 주님만을 바라보고 살아가게 하시고 늘 기도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소서. 매 순간 순간 잊고 살아가지만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제 마음에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김승주(예레미아) - 사랑의 주님, 지금도 제 곁에 주님이 함께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주님을 뵐 때 부끄럽지 않은 예레미아가 되도록 저 자신을 낮추고 기본에 충실한 삶을 살도록 하겠습니다. 때가 되어 주님께서 부르실 때에는 기꺼이 주님을 따를 수 있도록 그날이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항상 깨어 있도록 하겠습니다. 부족하고 욕심 많은 저희의 삶을 봉사와 나눔 및 헌신의 삶으로 이끌어 주소서. 주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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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성심!
마태오성당에 주님의 나라를 세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