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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라 김성동 선배.
1980년도 서슬 퍼런 신군부 정권 초반, 우리의 우상이요, 전설이었던.
소설가 김성동이 대전 산내 어디쯤에서 居한다는 소식만 듣고도 가슴이 설레어서 잠을 이룰 수 없었던 청춘의 세월이 있었다. 어느 날이었던가, 용두동 골목길에 거처한 시인 이은봉 선배가.
"오늘 김성동 선생과 전화통화 했다. 아싸 호랑나비."
그 소식통 한 방에 가슴이 철렁였던 나는 담배연기와 구겨진 원고지를 곁에 끼고 사는 타오르는 가슴의 문학청년이었다. 그들 무리가 두세 번 정도 우르르 스타를 찾아 방문했던 것 같다. 이은식, 이은봉, 임우기, 이재무, 전무용, 김영호 등이 대문짝 걷어찬 채 몰려가 그의 문장을 듣고 감동하고 과장스레 웃음 합창에 빠질 때 나는 맨 말석에 앉아 시헐시헐 술잔만 홀짝거렸다. 비 오는 자취방 안마당에서 우산대 겨누며 우중 체조에 나서며.
“김성동, 김성동, 너를 넘어뜨리리라.”
비 사이로 헛발 차기도 하면서 숙취를 깨었다. 그 후 나는 학교를 쫓겨났다가 복직도 하면서 이를 갈던 와신상담을 보내다가 더러는 일상에 취해 아주 잠깐 전설의 잔영을 놓치기도 하면서 신산의 세월을 보냈고.
공주 무령왕릉에 인접한 한옥마을 어느 객실.
열강에 취한 벗들 난타전을 벌이다가 모두 떠난 자리에.
강병철 그리고 김성동, 뒤늦게 합류한 우성면 농막에 거주하는 오마이뉴스 기자 송성영이 함께 붙었다. 마침 농막의 적막함과 일상의 폭폭함이 쏟아진 송기자 역시 만만찮게 소주, 소주 뱃속에 불을 지르며.
식민지와 해방공간이 도마에 올라 가차 없이 난도질.
깡통맥주가 떨어지면 다시 깡소주를 불안하게 연결시키며 이 나라의 역사와 민초와 위선자들, 버림받은 피붙이 정붙이들 사연까지 도마에 올리며.
개새끼 스발새끼 이를 갈면서 새벽 세 시.
고주망태로 쏟아지는 언어에 나는 더 이상 보탤 힘이 없어, 홍야홍야 더 이상 버틸 수 없다오. 미안해요. 먼저 안뇨옹.
쓰러졌으니 그게 비몽사몽이다. 다시 눈을 뜨니.
신새벽 6시40분.
그 희망찬 여명 속에 송성영 후배가 성동이형을 화장실로 부축해주는 스킌이 눈에 띄어 아름답다고 감상하며 자칫 방심한 한 마디.
"잘 주무셨슈. 성님."
그 순간 선배의 눈빛이 반짝이며 ‘술은 이렇게 마시는 거야 하는 포즈로 소주병 뚜껑을 따기에 '아차, 또 시작이구나.' 가슴이 벼랑 끝으로 떨어지며 철렁.(나는 밤새우는 술은 즐겨하되 해장술 앞에서는 쥐약이다.)
이 죽음으로 가는 열차의 바큇살에 편승해야 하는가, 오마이 갓. 아주 짧게 갈등하다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부어라. 마셔라. 해결해 보잣.’
새벽 해장→아침 술로 오픈 게임 →본격적인 오전 타임 세 시간→ 조마조마한 마무리로 저무는 오후 술청에서는 복분자 딱 한 병.
네 번째 전화를 받으며 대기한 내 아내 박명순이 마침내 공주에서 양평까지 왕복 여섯 시간 운전대를 잡았으니 기실 그미도 큰마음 먹은 거다.
중간에서 한 장 찰칵.
![](https://t1.daumcdn.net/cfile/cafe/2108C63654D0929522)
나는 어느새 선배보다 주름살이 많다.
비란사야(非寺蘭若)라는 입석을 보며 그의 철문을 열고.
우선 스티로폼 뚜껑을 열고 우편물을 챙겨들자 찬바람이 쌩- 불었다. 너와집까지 올라가는 언덕길은 눈발이 꽁꽁 얼어붙어서 허우적허우적 셋이서 손을 잡고 간신히 의지하다가 내 아내만 두 번 발라당 넘어졌다.(그런데 왜 나는 놀라지 않고 킬킬 웃음만 흘렸던가.) 그 언덕길에서 세 번째 입석으로 쉬어가며 김성동 형이 연신.
‘기가 막힌 연(緣)이다.’
거푸 감동의 한숨을 뿜을 때마다 소주, 맥주, 막걸리, 동동주 등 잡탕주의 잔당들이 혼재된 채 쏟아져 나와 겨울나무 가장이에 걸려 헐떡거렸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759BB3A54D092C624)
그래서 그의 집 방문은 네 번째가 되었다.
터미널 찻집 커피나무를 운영하는 벗 조성일과 첫 번째 방문은 여름비와 함께 밤을 새웠으니 그게 7년 전이다. 바둑 3급의 조성일은 그에게 일곱 점을 깔고 여섯 판을 내리 깨졌으니 막걸리 바둑에서도 약육강식의 본능은 그대로 나타나는 것일까. 그들은 술떡으로 반상의 시합을 벌였고 만년 7급의 나는 술떡이 되어 책을 베고 쓰러졌었다. 그가 새벽잠에 빠졌을 때 도둑고양이처럼 도망 나온 게 종시 마음에 걸렸었고.
두 번째 방문은 허정교수와 작은숲 출파사 강봉구 사장이 동행.
도대체 예나 지금이나 안주를 전혀 입에 대지 않고 알콜만 붓는 술청 스타일은 어느 누구로부터 전수받은 것인가, 그래서 ‘은교’의 작가 박범신 소설가는 불안한 포즈로 술청에 임하는 김성동 소설가를 ‘자해공갈단’이라 칭한다. 빵과 수육과 과일을 바리바리 싸온 허정교수가 연신 입에 넣어주며 체력을 보강 시키려 했으나 그 또한 언발에 오줌누기‘일 뿐. 그는 입술에 들어온 숟가락 식품만 우물거릴 뿐 일체 젓가락을 움직이지 않는다.
세 번째는 최은숙 선생과 함께 하는 독서 동아리 ‘간서치’ 팀에 꼽사리 끼어 동행.
그해 여름 그의 비란사야는 온통 시퍼런 풀밭 천지여서 댓돌 앞부터 뒤숭숭했다. 동행했던 김종학 선생 등이 삽과 낫으로 녹음방초를 후려치다가 하필 김선생의 낡은 삽날이 댕강 부러져 나가는 바람에 마루 밑에 집어넣었다. 그 짠했던 마음이 ……앗, 아내와 함께 한 네 번째 방문은 더 아리고 시린 것이다. 심야난방은 온기가 올라오려면 아직 멀었고 불을 살리기 위해 서너 번 시도하다가 포기한 벽난로에는 솔방울만 한 고구마 한 개만 달랑 말라붙어있었다. 그가 권하는 스티로폼 딸기 상자에는 딱 네 개의 열매만 남았으므로 나는 작은 놈 하나만 골라 간신히 먹는 시늉을 해야 했고 ……막걸리는 꽁꽁 얼어 아무리 따르려 해도 멀건 국물만 졸졸 새었다. 하필 유리창 바깥에서 들고양이 몇 마리가 ‘야옹야옹’ 두들기는 바람에 소심증 강병철 혼자 좌불안석이었고.
“강병철, 이번 방문길을 글로 써봐”
그 소리를 등허리로 받으며 돌아오는 밤길로 한꺼번에 땅거미가 쏟아졌다. 고드름처럼 늘어진 질곡의 사연……내 마음을 ……나는 잘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