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말 그대로 부처님이 오신 날이다. 이는 부처님이 이미 가셨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미 가셨다면 다시는 오지 않는다. 온다면, 여전히 윤회전생하고 있다는 뜻이니, 어찌 부처님이라 할 수 있겠는가? 참으로 부처님이라면 다시 오지 않는다. 그러면 누가 오는가? 어디로 오는가? 불자들이 온다. 절에! 시주돈 가득 안고서 말이다. 이런 일이 하마 천 년을 넘어서 계속되고 있다.
부처님이 오신 이유가 무엇인지 되물어야 하는 날이 오늘이다. 스스로 해탈을 하려고 왔고, 그 힘으로 중생들을 해탈로 이끌려고 왔다. 승려들이란 그런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야 하고 또 그 의미를 새롭게 구현하려 해야 한다. 그래서 출가했고 수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과연 참다운 승려인가? 그런 승려가 얼마나 있는가?
석가탄신일을 빌미로 불자들의 주머니를 털고, 그 영혼을 턴다. 주머니를 털었으니, 절간 살림은 풍족해졌다. 그러나 영혼을 털었으니, 승려들도 불자들도 무간지옥에 떨어지기 꼭 알맞다. 물론 죽은 뒤에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 죽기 전에 이미 지옥을 경험할 게다. 제 자신이나 제 자식, 제 가족 잘 되게 해달라고 빌기만 하니, 그 이기심과 잇속이 이미 지옥이다. 그런 지옥을 경험하고 있는 줄 모르니, 어리석음이다. 반야지혜와는 멀어도 한참 멀다. 아득히 멀다.
승려들도 불자들도 부처님 가르침을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실천하지 못하니, 이야말로 부처님을, 불법을, 진리를 배신하는 것이다. 이런 배신이 어쩌면 중생세간의 속성인지도 모르겠다. 곳곳에서 사람들마다 서로 믿지 못하고, 믿었다가 배신하고, 배신했다고 원망하고...
더러운 정당이라고 뛰쳐나와서는 맹렬하게 비난하더니, 어째 손해가 된다고 여겼는지 다시 그 정당으로 되돌아간 무리가 있다. 이들을 두고 뛰쳐나간 곳에서도 배신이라 하고, 받아들이는 쪽에서도 배신이라 한다. 서로 배신에 배신을 거듭하면서 제 자신들의 배신은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 자신들을 뽑아준 시민들을 이미 배신한 것은 전혀 생각조차 않고 있다. 어쩌면 시민들도 그들이 자신들을 배신한 줄 모르고 있지 않을까?
대선의 날짜가 바싹 다가오면서 후보들은 서로 욕설과 비난을 거듭하고 있다. 후보들을 지지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그렇다. 거기에는 참도 있고 거짓도 있으리라. 참이든 거짓이든 이미 배신의 칼날 위에서 번뜩이고 있는 셈이다. 공공의 이익을 가장한 사사로운 욕심을 부리고, 어리석음을 감추려고 똑똑함을 내세우며, 공존과 조화를 운운하면서 상대를 제거할 칼을 갈고 있으니. 어쩌면 석가모니가 권자를 버리고 속세를 떠난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권력이 있는 곳, 금력이 작용하는 곳, 그런 곳에 진리는커녕 진실도 발을 붙이기 어렵다는 그 엄연한 현실을 꿰뚫어보았으므로.
거창하게 종교나 정치를 떠들 것 없이, 내 뜻과 말과 행동이 과연 진실한가, 진리를 따르고 있는가를 되돌아보아야 하리라. 스스로 되돌아보아 떳떳하지 못하다면, 그게 이미 배신이다. 내가 자신을, 자신의 삶을 배신하고 있으니, 남들의 배신도 눈감아주는 것이 아닐까? 종교적 귀의도 정치적 선택도 모두 나 자신의 뜻에 따른다. 어리석으면 그릇된 쪽으로 뜻을 두게 마련이니, 두렵고도 무섭다. 더 깊이 배신의 땅으로 들어갈 터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