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년, 그리고 동행
[예술의 초대 2022년 1월호]
동길산 시인·본지 편집위원장
새해와 삼십 년. 해가 바뀌면서 삼십 년 내지 삼십 주년을 맞는 이가 꽤 되지 싶다. 삼십 회 생일이며 결혼 삼십 주년이며 많은 이가 남다른 감회로 올 한 해를 열어 가리라. 남다른 감회가 내내 이어져 이 한 해가 나무의 뿌리처럼 튼실해지고 나무의 줄기처럼 굵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감회가 남다른 이는 또 있지 싶다. 삼십 내지 삼십 주년을 맞은 이를 지극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이의 감회는 왜 남다르지 않겠는가. 가족일 수도 있고 심적으론 가족보다 가까울 수도 있는 그들. 어쩌면 그들의 지극한 마음이 있었기에 삼십 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올해 삼십 년을 맞는 일이 있다. 부산 생활을 정리하고 경남 고성 산골로 들어간 지 올해로 만 삼십 년을 맞는다. 시골에서 살아본 적이라곤 없는 내가, 장작불로 단박에 붙이지 못하는 내가 산골로 들어간 건 무작정이었고 무모했다. 돌이켜보면 산골생활 삼십 년을 어찌 살아내었는지 싶다.
물론 나 혼자 힘으로 온전히 견딘 건 아니었다. 불붙이는 건 어려워도 일단 붙으면 사나흘은 갔던 아궁이의 온기가 나를 감쌌으며 사흘은 추워도 나흘은 따뜻했던 삼한사온의 배려가 나를 다독였다. 알게 모르게 지극한 마음으로 나를 바라봤던 이들. 무엇보다 그들이 있었기에 삼십 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예술의 초대>에 추하할 일이 생겼다. 올해 창간 삼십 년을 맞는다. 말이 삼십 년이지 이게 어디 예삿일인가. 굳이 타지를 끌어들일 필요도 없이 우리 부산에 삼십 년 대역사를 이룬 월간지는 <예술의 초대>가 유일하다. <예술의 초대>가 있었기에 부산의 공연문화를 한 해 한 해 기록해 둘 수 있었고 <예술의 초대>가 있었기에 부산의 문화가 한 해 한 해 두꺼워질 수 있었다.
“공연 부문은 기록 남기기가 어렵습니다. 이번 정보지의 발간은 부산시의 문화사 자료로서도 요긴하게 활용될 것입니다.” 1992년 1월 창간호에 실린 당시 한국무용평론가협회 강이문 회장의 기고문 한 구절이다. 강 회장의 언급대로 1990년대 초반 그때만 해도 지금과는 격세지감이었다. 공연 정보가 뿔뿔이 흩어져 있어서 어디에 무슨 공연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도 일이었다. 지역에서 훌륭한 공연을 하더라도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때 SNS 시대가 아니었다.
<예술의 초대>는 창간 이전부터 기대를 모았다. 부산의 공연 문화가 부산의 공연 전문지에 한 올 한 올 기록된다는 기대는 시민과 예술인의 전폭적인 지지로 이어졌다. 부산문화를 지극한 심성으로 바라보는 시민과 부산문화를 지극한 심성으로 이끌어 가는 예술인에게 <예술의 초대>는 산 너머 무지개 같은 거였고 수평선 너머 만월 같은 거였다.
부산의 공연 전문지에 대한 기대는 제호로 모아졌다. 원래 제호 <예술에의 초대>는 시민공모의 결실이었다. 예술에 초대 받고 싶은 마음이 이 제호에 고스란히 담겼다. 기관 명칭이 제호가 되거나 ‘무슨 문화’ 일색의 제호가 주류이던 그 시절 <예술에의 초대>는 그 자체가 감동이었다. 부산 공공기관, 부산 문화계, 나아가 부산시민의 탁 트인 성장을 한껏 담은 제호였다.
“부산 예술인의 각자의 기록이자 부산 예술의 역사입니다. 부산 예술의 성장과 발전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창간호부터 이십 년 넘게 <예술의 초대>를 편집했던 백경옥 편집장이 지령 200호를 맞는 2006년 부산일보와 한 인터뷰 기사 한 구절이다. 15년 전 기사이지만 삼십 년을 맞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여전히 부산 예술인의 기록이며 부산 예술의 역사이다. 그리고, 부산 예술인과 부산 예술을 지극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부산시민의 기록이며 역사다.
동행.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다. 당신과 나의 동행, 당신과 나와 예술의 동행. 지난 연말 금정문화회관에서 창립기념음악회를 가진 문화유목집단의 명칭도 동행이었다. 문화 불모지라는 그릇된 인식이 심어진 부산을 시민과 예술인, 예술인과 예술인이 함께하는 동행을 통해 문화 노다지로 일구겠다는 다부진 각오의 표현이다.
“이제 새롭게 시작하려 합니다. 혼자가 아닌 더불어 먼 길을 동행하고자 합니다.” 문화유목민 정두환 음악평론가가 예술감독을 맡은 이 음악회의 구석진 자리에 낮아 줄곧 동행을 생각했다. 나만 생각하지 않고 당신도 생각하는 동행. 아궁이의 온기 같고 삼한사온의 배려 같은 동행. 멀지만 반드시 가야 할 그 길에 당신이 있고 내가 있다. 당신과 내가 함께 간다.
이제 해가 바뀌고 삼십 년. 산골생활 삼십 년인 나도 그렇고 창간 삼십 년인 <예술의 초대>도 그렇고 새해를 맞는 감회가 예년 같지 않다. 이 남다른 감회를 당신과 나누고 싶다. 당신 역시 새해를 맞는 감회가 남다를 것이다. 남다른 감회와 남다른 감회의 동행, 올해는 시작부터 예감이 좋다. 뭔가 남다른 일이 쩍 벌어지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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