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태괘(泰卦) | [12] 비괘(否卦) |
地天 泰 | 天地 否 |
태괘(泰卦)와 비괘(否卦)는 서로 종괘(綜卦)이면서 착괘(錯卦)이다. 서로 착종(錯綜) 관계이다. 괘상(卦象)이 서로 반대일 뿐 아니라 그 함축하는 의미도 정반대이다. 태괘(泰卦)는 상하가 교류(交流)하고 소통(疏通)하는 태평한 상황이라면 비괘(否卦)는 상하가 불통(不通)하여 전체의 상황이 꽉 막힌 상황을 나타낸다. 그런 면에서 두 괘는 아주 대조적(對照的)이다. 태괘(泰卦)가 치세(治世)의 주역 코드라면 비괘(否卦)는 잘 다스려지지 않는 불치(不治)와 난세(亂世)의 주역 코드이다.
*—— [지천태(地天泰)의 괘사(卦辭)] ——*
‘泰, 小往大來, 吉, 亨.’ |
[11泰] 태평한 상황이다. 작은 것이 가고 큰 것이 오면 길하다. 밝은 마음으로 떨쳐 일어나야 한다.
* [강 설(講說)] ————
결정권자인 윗사람[六五]이 유약(柔弱)하기 때문에 만사에 의욕이 없다. 그러면 안 된다.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아래에 건실한 사람이 가득히 있으므로 일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연약한 존재[小人, ☷]들이 나가고 건실한 존재[君子, ☰]들이 주도권을 잡게 될 것이므로 걱정할 것이 없다. 그러니 밝은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떨치고 나아가야 한다.
☞ [주역(周易)의 삶] — 태괘(泰卦)의 시대 상황과 삶의 지혜
① 소인의 시대가 가고 군자의 시대가 온다. 좋은 시절이다. ← [泰, 小往大來, 吉]
② 그러므로 (리더나 구성원 모두) 밝은 마음으로 나서야 한다. ← [亨]
*—— [지천태(地天泰)의 단전(彖傳)] ——* 단전은 괘사에 대한 공자의 해설이다.
[11泰] ‘彖曰,“泰, 小往大來, 吉, 亨.”則是天地交而萬物通也, 上下交而其志同也.
內陽而外陰, 內健而外順, 內君子而外小人, 君子道長, 小人道消也.’
단(彖)에서 말했다. “태괘(泰卦)에서 ‘작은 것이 가고 큰 것이 오면 길하다. 밝은 마음으로 떨쳐 일어나야 한다’는 것은, 천지가 교감하여 만물이 소통하며, 위와 아래가 교감하여 그 뜻이 같기 때문이다. 안은 양(陽)이고 밖은 음(陰)이며, 안은 강건하고 밖은 유순하며, 안은 군자의 모습이고 밖은 소인의 모습이다. 군자의 도는 자라나고 소인의 도는 소멸한다.”
* [강 설(講說)] ————
‘천지가 교감한다’는 말은 위[☷]와 아래[☰]가 교감(交感)한다는 말이다. 위의 곤괘(坤卦)는 유순하고 포용력이 있으며 아래로 내려오고 싶어 한다. 또 아래의 건괘(乾卦)는 강건하고 추진력이 있으면서 위로 올라가고 싶어 한다. 그래서 교감이 이루어지고 뜻이 일치하여 일이 원만하게 이루어진다. 리더와 구성원, 아내와 남편이 화합하여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군자(君子)의 도(道)는 자라나고 소인(小人)의 도(道)는 소멸한다’는 것은 상층부의 곤괘(坤卦)가 물러나고 하층부의 건괘(乾卦)가 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 [지천태(地天泰)의 상전(象傳)] ——*
[11泰] ‘象曰, 天地交, 泰, 后以 財成天地之道, 輔相天地之宜, 以左右民.’
상(象)에서 말했다. “천지(天地)가 교감(交感)하는 것이 태(泰)니, 임금이 이 괘의 이치를 터득하여 천지의 운행 원리를 마름질하여 이루고, 천지의 마땅한 운행 방식을 돕고 살펴서 백성을 돕는다.”
· ‘后以財成天地之道’에서 ‘財’(재)는 ‘재(裁)’와 통용, ‘마름질한다’, 여기서는 ‘천지자연의 운행 원리를 보고 터득하는 것’을 말한다.
· ‘輔相天地之宜’에서 ‘輔’(보)는 ‘돕는다’는 뜻이다. 여기서 천지자연의 마땅한 운행 방식을 돕는 것은 천지자연의 상황을 보아 마땅하게 대처하는 것이니 천지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것이고 그러한 의미에서 천지자연을 돕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 ‘以左右民’에서 전치사 ‘以’의 목적어는 앞에 나왔으므로 생략하였다. 원래는 ‘以財成天地之道, 輔相天地之宜 左右民’이다. ‘左右民’은 ‘백성을 좌에서 보좌(輔佐)하고 우에서 보우(保佑)하는 것’이니 백성을 정성으로 돕는다는 뜻이다. 좌(左)는 동방(東方)이니 진괘(震卦, ☳)이고 우(右)는 서방(西方)이니 태괘(兌卦, ☱)이다. 백성과 군중(群衆)의 주역 코드는 곤괘(坤卦, ☷)이다.
* [강 설(講說)] ————
군주의 입장에서 이 괘를 보면, 윗사람들이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마음을 비워 아랫사람을 지지하고 도와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임금은 아래 백성들의 성장을 위하여 천지자연의 운행원리를 탐구하여야 한다. 뿌리가 깊으면 줄기가 연약한 식물이라도 이내 갈수록 생기(生氣)를 회복하고 뻗어나간다.『역전』에 이르기를, “천지가 사귀고 음양이 화하면 만물이 무성하고 이루어지나니, 이 때문에 태가 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자연현상을 이해하는 군자(君子)는 내적으로는 건실하지만 외형적으로 유약한 사람을 도와 그에게 희망을 주면서 인도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괘의 상전(象傳)에서는 모두 괘의 형상을 보고 실천에 반영하는 사람이 군자(君子)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후(后)라고 한 것은 정치적인 역할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경복궁(景福宮)의 ‘교태전(交泰殿)’의 이름은 바로 태괘(泰卦)의 상전(象傳)에 나오는 ‘天地交 泰’에서 따온 말이다. 교태전은 중전(中殿)이 주로 거처하는 곳으로 임금과 중전이 만나 한마음의 화락(和樂)을 이루는 곳이므로 지극히 아름답고 적실한 명명이다.
*—— [지천태(地天泰)의 효사(爻辭)] ——*
‘上六, 城復于隍, 勿用師, 自邑告命, 貞吝.’ ‘六五, 帝乙歸妹, 以祉元吉.’ ‘六四, 翩翩, 不富, 以其鄰不戒以孚.’ ‘九三, 无平不陂, 无往不復, 艱貞无咎, 勿恤其孚, 于食有福’ ‘九二, 包荒, 用馮河, 不遐遺, 朋亡, 得尙于中行.’ ‘初九, 拔茅茹, 以其彙, 征吉.’ |
* [태괘(泰卦) 초구(初九)의 효사] ———
[11泰] ‘初九, 拔茅茹, 以其彙, 征吉.
象曰, 拔茅征吉, 志在外也.
초구(初九)는 띠를 뽑으면 그 뿌리가 엉켜있다. 그 무리가 하나가 되어 나아가면 길하다. 상(象)에서 말했다. “띠를 캐는 것과 같은 형국이니 나아가면 길하다는 것은 뜻이 밖에 있기 때문이다.” / * ‘拔茅茹’에서 ‘茹’(여)는 뿌리가 서로 연결되어 엉켜있는 것을 말한다.
· ‘拔茅茹’(발모여)에서 ‘拔’(발)은 ‘뽑다’, ‘茅’(모)는 ‘띠풀’이며, ‘茹’(여)는 ‘뿌리가 서로 연결되어 뒤엉켜있는 것’이다. 拔茅茹는 ‘띠를 뽑으면 그 뿌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 ‘以其彙’에서 ‘彙’(휘)는 ‘무리[群], 모으다’의 뜻. ‘其彙’는 하층부의 세 양(陽, ☰)을 가리킨다.
· ‘征吉’(정길)은 ‘굳세게 나아가면 길하다’는 뜻이다. 주역에서 ‘征’은 ‘왕(往)’이나 ‘행(行)’보다 강한 의미를 지닌다. 초구(初九)는 강양(剛陽)으로 양(陽)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굳세게 나아가라’고 한 것이다.
* [강 설(講說)] ————
초구(初九)는 새롭게 시작하는 대인(大人) 그룹의 초보자이다. 아직 어린 양(陽)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상층부는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움직이기 싫어한다. 섣불리 나섰다가는 바로 제재(制裁)를 받는다. 그러므로 구이(九二), 구삼(九三)과 함께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서 더불어 함께 행동하는 것을 가장 실감 있게 표현한 말이 ‘띠의 뿌리처럼 엉키는 것’이다. ‘연대(聯隊)’가 큰 힘을 발휘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역전』에서 말했다. “初九가 陽爻로서 아래에 거하였으니, 이는 剛明한 재질이 있으면서 아랫자리에 있는 것이다. 때가 否塞하면 군자가 물러나 궁하게 처하나 때가 이미 通泰하면 뜻이 위로 나아감에 있는 것이다. 君子가 나아갈 때에는 반드시 벗들[朋類]과 서로 끌어당기겨 마치 띠풀의 뿌리처럼 하나를 뽑으면 연결되어 일어나는 것과 같다. ‘茹’(여)는 뿌리가 서로 연결된 것이므로 象으로 삼은 것이다. ‘彙’(휘)는 同類이니, 賢者가 동류들을 데리고 나아가서 뜻을 함께하여 道를 행하니, 이 때문에 吉하다.
[傳] 初以陽爻居下하니 是는 有剛明之才而在下者也라 時之否면 則君子退而窮處로되 時旣[一作將]泰면 則志在上進也라 君子之進에 必與其朋類相牽援하여 如茅之根然하여 拔其一이면 則牽連而起矣라 茹는 根之相牽連者라 故以爲象이라 彙는 類也니 賢者以其類進하여 同志以行其道라 是以吉也라.
* [태괘(泰卦) 구이(九二)의 효사] ———
[11泰] ‘九二, 包荒, 用馮河, 不遐遺, 朋亡, 得尙于中行.
象曰,“包荒”“得尙于中行”以光大也.
구이(九二)는 거친 것을 끌어안고 맨몸으로 황하를 건너는 형국이니, 멀리 있는 사람을 빠뜨리지 않으면 벗이 도망하더라고 시중(時中)을 행하게 되어 고상함을 얻을 것이다. 상에서 말했다. “거친 것을 끌어안고 시중을 행하게 되어 고상함을 얻는다는 것은 빛나고 크기 때문이다.”
* ‘包荒’(포황)에서 ‘荒’은 ‘망해가는 상황에서 거칠어진 사람들’ 즉 상층의 음효들을 말한다.
* ‘用馮河’(용빙하)에서 ‘馮’은 ‘맨몸으로 건넌다’는 뜻. ‘馮河’는 ‘물살이 거친 황하(黃河)를 맨몸으로 건넌다’는 말이니, ‘매우 어려운 상황에 감행하는 것’을 표현한 말이다.
* ‘不遐遺’(불하유)에서 ‘遐’는 ‘멀다’인데 문맥상 ‘멀리 있는 사람’이다. 여기서는 ‘상육(上六)’과 ‘육사(六四)’를 말한다. ‘遐’와 ‘遺’는 도치되었다. 부정사[不] 뒤에 동사와 목적어가 도치되었다.
* ‘得尙于中行’에서 ‘尙’(상)은 ‘고상하다, 존중하다’, ‘中行’은 ‘시중(時中)을 행하다’
* [강 설(講說)] ————
구이(九二)는 강양(剛陽)의 재질로서 군자그룹의 중심(中心)을 이룬다. 구이(九二)는 상응하는 육오(六五)의 지지를 받아 침체된 전체를 이끌어 발전시켜야 하는 위치에 있다. 상층부의 소인[陰爻]들은 물러나는 상황에서 거칠다. 시중의 도(道)를 지닌 구이(九二)는 넓은 도량으로 이들을 포용(包容)하여 ‘맨몸으로 황하를 건넌다.’ 맨몸으로 황하를 건넌다는 말은 그 강함과 과단성이 족히 깊은 곳을 건너고 험한 곳을 뛰어넘을 수 있음을 이른다.(馮河 謂其剛果足以濟深越險也) 그리하여 멀리 있는 벗들을 버리지 않으니 ‘이웃하는 벗들’이 도망을 가더라도 중행(中行)의 도(道)를 행하여 고상(高尙)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이웃하는 벗들이란 때가 이미 편안하여 안일한 인습에 젖어있는 초구(初九)와 구삼(九三)를 가리킨다.
정이천의『역전』에서 말했다. “예로부터 편안히 다스려지는 세상은 반드시 점점 衰하고 沈滯함에 이르니, 이는 安逸에 익숙함으로 말미암아 因循하여 그러한 것이니, 스스로 剛斷이 있는 군주와 英烈한 輔弼이 아니면 뛰쳐나와 분발해서 그 病弊를 개혁하지 못한다. 그래서 ‘황하를 맨몸으로 건너는 용맹을 쓴다’고 한 것이다.”(自古로 泰治之世는 必漸至於衰替하니 蓋由狃習安逸하여 因循而然이니 自非剛斷之君, 英烈之輔면 不能挺特奮發하여 以革其弊也라 故曰用馮河라)
주자의 『본의(本義)』에서 말했다. “구이(九二)가 강(剛)으로 유위(柔位, 陰의 자리)에 거하여 하괘의 가운데[中] 있고, 위의 육오(六五)와 또한 정응(正應)하니, 태(泰)를 주관하면서 중도(中道)를 얻은 자이다. 점자(占者)가 거침과 더러움을 포용해 주면서[包荒] 과단성 있고 강하게 결단하며[用馮河], 멀리 있는 자를 버리지 않으면서도[不遐遺] 붕비(朋比)들과 사사로이 친하지 않는다면 이 괘의 중행(中行)의 도(道)에 합한 것이다.”
* [태괘(泰卦) 구삼(九三)의 효사] ———
[11泰] ‘九三, 无平不陂, 无往不復, 艱貞无咎, 勿恤其孚, 于食有福
象曰,“无往不復”天地際也.
구삼(九三)은 평평하기만 하고 비탈지지 않는 땅이 없으며 가기만 하고 들어오지 않는 것은 없으니, 어려운 상황을 알고 참고 바르게 하면 허물이 없다. 걱정하지 않더라도 믿음[한마음]을 유지하기만 하면 밥을 먹는데 복(福)이 있을 것이다. 상(象)에서 말했다. “가기만 하고 오지 않는 경우는 없다고 한 것은 하늘과 땅이 접해 있기 때문이다.”
· ‘无平不陂, 无往不復’은 인생 만사의 보편적인 원리를 말한 것이다. ‘一陰一陽謂之道’이다.
· ‘艱貞无咎’에서 ‘艱’(간)은 ‘어려운 상황’을 말하고 ‘貞’은 ‘바르고 굳세게 대처하는 것’이다.
· ‘勿恤其孚’에서 ‘恤’(휼)은 ‘동정하고 보살피는 것’이다.
* [강 설(講說)] ————
구삼(九三)은 태평한 상황에서 끝자락에 있는 자이다. 상층부가 구이(九二)에게만 관심을 주고 자신을 도외시하는 것에 불만을 품기 쉽다. 그래서 떠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짧은 생각이다. 그렇다고 만약 떠나게 되면 결국 떠도는 신세가 된다. 평평하기만 하고 비탈지지 않는 땅이 없으며 가기만 하고 들어오지 않는 것은 없다. 좋을 때가 있으면 어려울 때가 있고 어려울 때가 있으면 좋을 때가 있다. 그래서 역에서 이르기를, ‘一陰一陽謂之道(일음일양위지도)’라 했다. 이것은 천도(天道)와 인생만사의 보편적인 원리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입지가 어려울 때 떠나는 것이 상책이 아니다. 참고 바르게 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유능한 구이(九二)도 있고 초구(初九)도 있다. ‘하면 된다’는 믿음[孚]을 가지고 그들과 한마음이 되어 노력한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가 있다. 그래서 ‘걱정하지 않더라도 믿음[한마음]을 유지하기만 하면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다. 그래서 ’밥을 먹는데 복(福)이 있다’고 했다
구삼(九三)은 성장하여 거의 상층부에 가까이 있기 때문에, 상층부에서 다 성장한 것으로 판단하여 보살핌이 적을 수 있다. 따라서 상(象)에서는 상층부의 보살핌이 예전과 다른 까닭을 하늘과 땅이 닿아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라 했다.
『역전』에서 말했다. “九三은 泰卦의 가운데 거하고 여러 陽의 위에 있으니, 泰가 성한 것이다. 물건의 이치는 고리를 따라 도는 것과 같아서 아래에 있는 것은 반드시 위로 올라가고 위에 있는 것은 반드시 아래로 내려오니, 泰가 오래되면 반드시 否塞해진다. 그러므로 泰가 성하고 陽이 장차 나가려 할 적에 警戒하기를 ‘항상 편안하기만 하고 險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하였으니 항상 편안함이 없음을 말한 것이요, ‘항상 가기만 하고 돌아오지 않는 것은 없다’고 하였으니 陰이 마땅히 돌아올 것임을 말한 것이다. 평평한 것이 기울어지고 갔던 것이 돌아오면 否(비)가 되니, 마땅히 天理의 필연성을 알아서 태평한 때를 당하여 감히 安逸하지 아니하여, 항상 思慮를 어렵게 여기고 베푸는 것을 바르게 하여야 하니, 이와 같이 하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傳] 三居泰之中하고 在諸陽之上하니 泰之盛也라 物理如循環하여 在下者必升하고 居上者必降하니 泰久而必否라 故於泰之盛과 與陽之將進에 而爲之戒曰 无常安平而不險陂者라하니 謂无常泰也요 无常往而不返者라하니 謂陰當復也라 平者陂하고 往者復이면 則爲否矣니 當知天理之必然하여 方泰之時하여 不敢安逸하여 常艱危其思慮하고 正固其施爲니 如是則可以无咎라
* [태괘(泰卦) 육사(六四)의 효사] ———
[11泰] ‘六四, 翩翩, 不富, 以其鄰不戒以孚.
象曰,“翩翩不富”皆失實也,“不戒以孚”中心願也.
육사(六四)는 푸덕푸덕 열심히 날개를 쳐야 한다. 넉넉하지 않더라도 그 이웃과 함께 하여 경계하지 않고 한마음이 되어야 한다. 상에서 말했다. “푸덕푸덕 열심히 날개를 치고도 넉넉하지 않은 것은 실속을 챙기지 않기 때문이고 경계하지 않고 한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속마음으로 원해야 하는 것이다.”
* [강 설(講說)] ————
· 자연 선생은, ‘翩翩’(편편)은 ‘새가 푸덕푸덕 열심히 날개짓을 하는 모양’으로 ‘물러나는 그룹의 후미에 있는 육사(六四)가 물러나기 싫어서 애쓰는 모습’이라고 하고 ‘不富, 以其鄰’을 따로 떼어 ‘그 이웃과 함께 해도 넉넉해지지 않는다’고 하면서 ‘(새롭게 오는) 군자(君子)들을 경계하지 말고 믿음으로써 하라’(不戒以孚)고 해석했다. 여기에서 군자(君子)는 하층부의 양(陽)들을 말한다.
『주역강설』에서 말했다. “육사(六四)는 하층부를 이끌고 리더인 육오(六五)를 도와서 침체된 국면을 극복해야 하는 위치이다. 지금을 소극적인 윗사람과 적극적인 아랫사람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그러므로 이를 소통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푸덕푸덕 열심히 날개를 쳐야 한다’고 했다. 육사(六四)의 경우 방법은 오직 한 가지뿐이다. 육사(六四)는 넉넉하지 않더라도 구이(九二)를 비롯한 하층부의 힘을 믿고 지원하도록 육오(六五)와 상육(上六)을 설득하는 것이다. 육사(六四)는 하는 육오(六五)와 상육(上六)과 한마음이 되어 하층부다 하는 일에 대해 경계하지 말고 믿고 따라야 한다. 그래서 ‘경계하지 말고 한마음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만약 그들을 간섭하여 일할 맛이 나지 않도록 하면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간다.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역전(易傳)』에서 말했다. “육사(六四)는 태(泰)가 중(中)을 지난 곳에 처하였으므로, 음(陰)으로 위에 있어서 뜻이 아래로 돌아감에 있으며, 위의 두 음(陰) 또한 뜻이 아래로 나아감에 있다. ‘翩翩’(편편)은 빨리 나아가는 모양이다. 육사(六四)는 편편히 아래로 나아가면서 그 이웃과 함께 하는 것이다. 이웃은 그 동류이니, 육오(六五)와 상육(上六)을 이른다. 사람이 부유(富裕)한데 무리가 따르는 것은 이익(利益) 때문이고, 부유하지 않은 데 따르는 것은 뜻이 같기 때문이다. (원래) 세 음(陰)은 모두 아래에 있는 물건인데 위에 거함은 바로 실(實)을 잃은 것이니 그 뜻이 모두 아래로 가고자 한다. 그러므로 부유하지 않는데도 서로 따라서 굳이 경계하여 말하기를 기다리지 않고도 성의(誠意)가 서로 합하는 것이다.”
[傳] 六四는 處泰之過中하고 以陰在上하여 志在下復이요 上二陰亦志在趨下라 翩翩은 疾飛之貌니 四翩翩就下하여 與其隣同也라 隣은 其類也니 謂五與上이라 夫人富而其類從者는 爲利也요 不富而從者는 其志同也라 三陰이 皆在下之物이어늘 居上은 乃失其實이니 其志皆欲下行이라 故不富而相從하여 不待戒告而誠意相合也라.…
* [태괘(泰卦) 육오(六五)의 효사] ———
[11泰] ‘六五, 帝乙歸妹, 以祉元吉.
象曰,“以祉元吉”中以行願也.
육오(六五)는 제을(帝乙)처럼 여동생을 시집보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복(福)을 받게 되고 큰마음으로 하면 길하다. 상(象)에서 말했다. “그로써 복(福)을 받고 크게 길하다는 말은 중심(中心)의 입장에서 원하는 것을 행하기 때문이다.”
· ‘帝乙’(제을)은 은나라 천자(天子). 은(殷)나라 천자는 태어난 날의 간지(干支)를 이름으로 붙이기 때문에 제을(帝乙)이라 했다. 여기서 제을은 은나라를 세운 탕(湯)이라는 설과 은(殷)나라 주(紂)의 아버지라는 설이 있다.『자하전』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제을이 동생을 시집보낸 것은 탕왕의 동생을 시집보낸 것이다. 탕왕은 천을(天乙)이라고도 한다”
· ‘歸妹’(귀매)에서 ‘歸’는 ‘시집가다, 시집보내다’는 뜻이다. ‘妹’는 ‘여동생’, 경우에 따라서는 ‘막내딸’로도 풀이한다. 일본의 스즈끼요시지로(鈴木由次郞)는 ‘막내딸’로 풀이했다. 주역(周易)에 [54] 뇌택(雷澤) 귀매(歸妹) 괘가 있다. 구사(九四)인 오라버니가 육삼(六三)인 여동생을 시집보낸다는 내용이다. 귀매괘에서 상괘인 진괘(震卦)의 하효(下爻, 귀매괘의 九四)는 장남(長男)이고, 하괘인 태괘(兌卦)의 상효(上爻, 귀매괘의 六三)는 소녀(小女)이다.
· ‘以祉元吉’에서 ‘祉’(지)는 ‘복록(復祿)’이다.
* [강 설(講說)] ————
육오(六五)는 전체를 주도하는 중심(中心)이다. 현재 상층부가 침체하여 거의 망하게 된 것은 상층부에 양(陽)이 없기 때문이다. 육오(六五)는 이러한 상황을 파악하여, 자존심을 버리고 아주 겸허한 자세로 아래의 양(陽)들을 지지하고 그 중에서도 특히 구이(九二)에게 모든 일을 맡겨야 한다. ‘임금이 여동생을 (평민에게) 시집보낸다’는 말은 구이(九二)에게 시집보내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육오가 구이(九二)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을 인유적(引喩的)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하여 구이(九二)가 난관을 해결하게 하면 된다.
『역전(易傳)』에서 말했다. “史冊에서 湯王을 일러 天乙이라 하였고, 그 뒤에 임금 祖乙이 있었으니 또한 어진 임금이었으며, 뒤에 또 帝乙이 있었다.『書經』<多士>에 이르기를, ‘成湯으로부터 帝乙에 이르기까지 德을 밝히고 祭祀를 공경히 받들지 않은 이가 없었다’고 하였으니, 帝乙이라 칭한 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으나, 爻의 뜻으로 살펴보면, 帝乙은 王姬[公主]를 下嫁시키는 예법을 제정한 자일 것이다. 예로부터 帝王의 딸을 비록 모두 下嫁시켰으나 帝乙에 이른 뒤에야 禮法을 제정하여 그 尊貴함을 낮추어 남편에게 순종하게 하였다. 六五가 陰柔로서 君位에 거하여 아래로 九二의 剛明한 賢者에게 응하니, 六五가 현신에게 의지하고 신임하여 순종하기를 帝乙이 여동생[어린 딸]을 시집보내듯이 하여, 그 높음을 낮추어 양에게 순종하게 하면 福을 받고 또 크게 善하여 길할 것이다. ‘元吉’은 크게 길하고 지극히 선한 것이니, 泰를 다스리는 功을 이루었음을 이른다.
[傳] 史에 謂湯爲天乙하고 厥後에 有帝祖乙하니 亦賢王也요 後又有帝乙하니라 多士曰 自成湯至于帝乙히 罔不明德恤祀라하니 稱帝乙者는 未知誰是나 以爻義觀之하면 帝乙은 制王姬下嫁之禮法者也라 自古帝女雖皆下嫁나 至帝乙然後에 制爲禮法하여 使降其尊貴하여 以順從其夫也라 六五以陰柔居君位하여 下應於九二剛明之賢하니 五能倚任其賢臣而順從之를 如帝乙之歸妹然하여 降其尊而順從於陽이면 則以之受祉요 且元吉也라 元吉은 大吉而盡善者也니 謂成治泰之功也라
* [태괘(泰卦) 상육(上六)의 효사] ———
[11泰] ‘上六, 城復于隍, 勿用師, 自邑告命, 貞吝.
象曰, 城復于隍, 其命亂也.’
상육(上六)은 성(城)이 구덩이[垓字]로 들어가더라도 무력(武力)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 읍(邑)으로부터 고명할 것이니, 가만히 있으면 한스러워진다. 상(象)에서 말했다. “성(城)이 구덩이로 들어가는 듯하다는 것은 그 진행과정이 어지러움을 뜻한다.”
· ‘城復于隍’에서 ‘隍’(황)은 성을 쌓기 위해 흙을 파내고 난 뒤의 구덩이. ‘해자(垓字)’
· ‘勿用師’에서 ‘師’(사)는 ‘무리, 군대’를 뜻한다. 그러므로 ‘用師’는 ‘무력을 쓰다’는 뜻이다.
· ‘貞吝’에서 ‘貞’은 음의 자리의 특성을 드러내는 말로, 여기에서는 소극적으로 ‘가만히 있다’는 뜻이다. ‘吝’(인)은 ‘인색해진다, 막힌다,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 [강 설(講說)] ————
공들여 쌓은 성벽(城壁)이 허물어져, 성(城)을 쌓느라 파낸 구덩이 속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말은 ‘모든 일이 수포(水泡)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상육(上六)은 물러나는 소인(小人) 그룹의 극에 처해 있다. 물러나지 않고 끝까지 버티려고 한다. 나이 많은 할머니에 해당한다. 모든 것에 걱정이 많다. 노파심(老婆心)이라고 한다. 하층부는 모두 양(陽)이기 때문에, 그들의 행위가 과감하게 보이는 반면 무모하게 보이기도 한다. 할머니의 노파심으로 보면 그러한 것들이 그나마 남아있는 재산까지 거덜나게 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성(城)이 구덩이로 들어가는 듯하다’고 했다. 그러나 난관을 타개하는 것은 그들에게 맡기는 방법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을 완력(腕力)으로 저지하지 말고 따뜻한 마음으로 지켜보아야 한다. 그래서 ‘무력을 쓰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읍(邑)이란 자기의 영향력 하에 있는 지역, 또는 ‘자기 자신’, ‘자신의 측근’을 말한다. 여기서는 상육(上六)과 상응하는 구삼(九三)을 말한다. 구삼(九三)이 불만을 품고 떠나겠다고 은밀히 통보해 오면 그를 만류하여, 구이(九二)를 도와 전체를 살리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래서 ‘자기 읍에서 보고가 있을 때 가만히 있으면 한스러워진다’고 한 것이다.
『역전(易傳)』에서 말했다. “구덩이의 흙을 파서 쌓아 城을 이룸은 治道를 많이 쌓아 泰를 이룸과 같다. 泰의 끝에 미치면 장차 否로 돌아갈 것이니, 城의 흙이 무너져 다시 구덩이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上六은 泰의 끝인데 上六이 小人으로 여기에 처했으니 장차 否塞해질 것이다. ‘勿用師’는 군주가 무리[衆]를 쓸 수 있는 것은 上下의 뜻이 통하여 마음으로 따르기 때문인데, 이제 泰가 장차 마치려함에 泰의 도리를 잃어 상하의 뜻이 통하지 못하고 민심이 離散되어 윗사람을 따르지 않으니, 어찌 쓸 수 있겠는가? 쓰면 混亂해진다. 무리를 이미 쓸 수 없다면 바야흐로 親近한 곳으로부터 告命하여야 하니, 비록 告命하는 것이 올바름을 얻더라도 또한 부끄러운 일이다. 邑은 거주하는 곳으로 친근한 곳을 이르니, 대체로 告命함은 가까운 곳으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무릇 ‘貞凶’과 ‘貞吝’은 두 가지 뜻이 있으니 ① 바르고 굳세게 하면 凶하거나 부끄러운 경우가 있고 ② 비록 正道를 얻더라도 또한 흉하거나 부끄러운 경우가 있다. 여기에서 貞凶이라고 말하지 않고 貞吝이라고 말한 것은 장차 否塞해질 때에야 비로소 告命을 내림이 부끄러울 만하기 때문이니, 否塞함이 告命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傳] 掘隍土하여 積累以成城은 如治道積累以成泰라 及泰之終이면 將反於否하니 如城土頹圮하여 復反于隍也라 上은 泰之終이어늘 六以小人處之하니 行將否矣라 勿用師는 君之所以能用其衆者는 上下之情通而心從也어늘 今泰之將終에 失泰之道하여 上下之情不通矣라 民心離散하여 不從其上하니 豈可用也리오 用之則亂이라 衆旣不可用인댄 方自其親近而告命之니 雖使所告命者得其正이라도 亦可羞吝이라 邑은 所居로 謂親近이니 大率告命은 必自近始라 凡貞凶, 貞吝이 有二義하니 有貞固守此則凶吝者하고 有雖得正亦凶吝者라 此不云貞凶而云貞吝者[一无者字]는 將否而方告命이 爲可羞吝이니 否不由於告命也라.
*—— [城復于隍, 其命亂也에 대한 註釋] ——* 정자(程子)와 주자(朱子)의 해석이 다른 점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은 그의『경서변의(經書辨疑)』에서 정자(程子)의『역전(易傳)』과 주자(朱子)의『본의(本義)』가 같지 않음을 밝히고,
“『역전』은 命令을 요란스럽게 내려 말하더라도 그칠 수 없음은 亂이 많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반면,『본의』는 命令을 混亂스럽게 내리기 때문에 否로 돌아간 것으로 해석하여, 告命의 命과 같지 않다”고 하였다.
¶ [복습 정리] ☞ 주역 [11] 태괘 (地天 泰)의 효사
‘上六, 城復于隍, 勿用師, 自邑告命, 貞吝.’
‘六五, 帝乙歸妹, 以祉元吉.’
‘六四, 翩翩, 不富, 以其鄰不戒以孚.’
‘九三, 无平不陂, 无往不復, 艱貞无咎, 勿恤其孚, 于食有福’
‘九二, 包荒, 用馮河, 不遐遺, 朋亡, 得尙于中行.’
‘初九, 拔茅茹, 以其彙, 征吉.’
——————————————————————————————
*『주역(周易)』(제8강) ——* <끝>
[코드 주역] [10] 天澤 履 [11] 地天 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