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점을 발견하고, 광주의 신성(神聖)에 깊은 공명을 드러낸 사람이 다석 류영모다. 그는 1946년 봄에 광주로 가서 이현필(李賢弼, 1913~1964)을 만났다. 그가 누군가를 만나 영적인 비월(飛越)을 이룬 것은, 아마도 이현필이 처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보다 23년 연하의 이 사람을 만난 일은, 다석의 정신세계를 더욱 깊고 오롯하게 돋운 계기였을 것이다. 다석은 당시 주변사람들로부터 '예수'라는 극존칭으로 불리는 이현필을 만난 뒤, 이 도시 이름을 우리 말로 풀어 '빛고을'이라고 호칭했다. 광주가 오늘날 빛고을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계기였다. 해방 이후 피폐한 땅이던 광주에서 '영성의 빛'을 본 것이다. 빛고을은 영성의 도시라는 뜻이다. 대체 이현필이 누구이기에, 다석을 이토록 깊이 다가가게 했던가.
그러나 이현필의 삶을 들여다보기 전에, 먼저 만나야할 사람이 있다. 그의 스승 이세종(李世鐘, 1880~1942)이다. 이름 그대로 새로운 세상을 알리는 종소리[世鐘]가 된 사람이었다. 류영모는 아쉽게도 생전의 이세종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이현필을 만났을 때, 그는 4년 전에 돌아갔기에 이 걸출한 성자의 '전설'만을 전해들었다.
이세종과 이현필은 모두 전남 화순군의 도암(道岩) 마을 사람이었다. 류영모는 道岩瑞氣無等騰 賢弼李公啓明致(도암서기무등등 현필이공계명치)라는 한시를 읊은 적이 있다. 도암 마을의 상서로운 기운은 가장 높이(무등산의 이름을 중의법으로 활용) 솟아오르고 / 이현필의 지혜와 배려는 밝게 일깨움(그가 임종한 벽제 계명산 수녀원과 중의법)에 이르렀네. 놀라운 통찰이 담긴 시다. 이현필을 낳은 스승, 이세종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