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32만의 한군은 주로
보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사자를 통한 정찰로 승기를 잡을 절호의 기회라고 여긴 유방은 전군을 휘몰아쳐 공격해 왔다. 그러나 추위가 너무 심해서 병사들의 손실도 만만찮은 상황에서, 아직 한군의 전력이 모두 집결하지 못했을 무렵에 유방은 평성에 도착을 했다.
병력은 많지만 아직 전부 한 곳에 모이지 못했고, 적의 지휘부가 도출되어 있는데다 적군이 추위로 지친 상황. 묵돌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즉시 40만의 기병을 모조리 동원하여 한군을 몰아넣었고, 곧 평성 부군의 백등산에서 유방이 이끄는 군대를 포위하는데 성공했다.
한군은 이미 최악의 날씨때문에 병사들이 동상에 걸릴 정도로 상황이 좋지 못했지만, 바로 흉노의 주력을 격파할 수 있을것이라고 여겼기에 무리해서 진군을 했던 참이었다. 하지만 이제 포위가 되어버리자 그동안 참고 있었던 악조건은 곧바로 뼈가 시리게 다가왔다.
물론 포위된 한군과 포위망 밖에 있는 한군 역시 서로 협력을 해서 포위망을 돌파하려고 했겠지만, 묵돌은 한번 잡은 승기를 놓치지 않고 일주일간 물샐틈없이 유방의 주력을 포위하는데 성공했다. 외부와 연락을 전혀 할 수 없는 상태에서 포위되어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이제 식량의 공급이 문제가 되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난다면 주력군은 포위망에서 굶어 죽게 될 판이었다. 흉노군은 포위망의 서쪽에서는 백마를, 동쪽에서는 청색의 말을, 북쪽에는 흑색의 말을, 남쪽에서는 붉은 말을 타고 있어 그 위세가 당당했다.
이때 호군중위의 직책으로 유방을 수행하고 있던
진평(陳平)이 계책을 내었다. 묵돌의 아내인
연지(閼氏)에게 많은 선물을 주어서 설득을 해보자는 계책이었는데, 구차하긴 했지만 굶어 죽을 순 없었으므로 진평의 제안을 따라 많은 보물을 연지에게 보냈는데, 이에 혹한 연지는 묵돌을 설득했다.
"양국의 군주가 서로를 곤궁한 지경에 몰아넣어도 되겠습니까? 지금 한나라 땅을 얻는다 해도 선우께서는 우리는 이곳에 살 수도 없습니다. 또한 한나라의 왕에게는 하늘의 도움이 있는 것 같으니, 선우께서는 심사숙고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아무리 사랑하는 여인이라고 해도 그 말 때문에 수십만 대군을 물리지는 않았겠지만, 당시 묵돌도 고민하고 있던 점은 있었다. 당초에 협력하기로 했던 왕황과 조리는 흉노의 군사들과 다시 합류하기로 약속했었는데, 정작 이때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이들이 한나라와 다시 손을 잡고 뒤통수를 치게 되면 꽤 골치아픈 상황이 될 수도 있었으므로, 묵돌은 굳이
무리수를 놓치 않고 연지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다만 노골적으로 포위를 모조리 푼것은 아니었고, 한 곳의 포위망을 약하게 풀었다.
이때 때마침 백등산에서는 크게 안개가 끼었다. 포위망의 한 곳이 풀린것을 본 유방이었지만,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고 노심초사하여 먼저 사람을 보내 그 길을 지나게 했는데, 안개 탓인지 흉노군은 이를 깨닫지 못했다. 그때가 되서야 한군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개가 끼었다고 해도 그 대군이 모두 움직이면 들키는건 시간문제다. 이에 진평은 강노(强弩)에 두 개의 화살을 메겨 밖으로 향하게 하며 전투태세를 갖춘 상태에서 한군이 움직이게 했다. 안개 속에서 보이지 않는 흉노를 향해 강노를 들이밀고 걷는 숨막히는 시간이 지나고, 포위망에서 탈출한것을 깨달은 유방은 곧바로 빠르게 도망치려고 했지만,
하후영(夏侯嬰)은 오히려 그런 유방을 제지하고, 병사들에게는 계속 화살을 장전하게 하고 일부러 천천히 움직였다.
이렇게 하여 유방은 천신만고 끝에 흉노군을 피해 평성에 들어올 수 있었다. 한군이 탈주한데다 마침 한나라의 대군이 추가로 도착하자, 묵돌도 군사들을 거느리고 떠났다. 유방은 씁쓸한 기분으로 귀환하면서 유경을 풀어주고 진심으로 사죄했다.
첫댓글 조상과 후손이 거진 천년의 세월을 놓고 묵돌을 까네요.ㅎ
저 포위망에서 살아남았다는거부터가 유방의 능력을 보여주는.. 참으로 유방은 밀리고 밀리면서도 어떻게 하든 살아남아 반격을 시도하는게 (물론 여기서는 그 후손들이 하게 되지만) 매력인듯합니다. 항우라면 화끈하게 흉노와 한판붙고 패해서 죽던가 이겨서 박살을 내든가 했을텐데
이목이 연나라 장군이라니. 오타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