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려수(金麗洙) I 1922~1945 인상 27회(통산 39회)
인상 27회 비밀결사 사건, 가혹한 고문으로 순국
인상 27회 창씨개명, 학병반대 비밀결사 사건의 희생자 중 한 분이다. 1922년 2월 27일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528번지에서 김영순(金永順)의 4남으로 태어났다. 인상 학적부 기록이다. 온수리 성공회성당에 세워진 독립운동 순국비에 새겨진 기록은 2월 17일이다. 온수리는 광산김씨 집성촌이었다. 유년기부터 향리에 있던 성공회성당에 나간 독실한 신자였고 세례명은 ‘마태’였다.
김려수는 향리에서 길상심상소학교를 마친 뒤 1936년 4월 3일 인천상업학교에 입학, 1941년 3월 6일 졸업했다. 1944년 비밀결사 사건으로 구속되었고 1945년 2월 25일 일경의 모진 고문과 옥고의 여독으로 대전형무소에서 옥사, 순국하였다.
정부는 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고 1991년에는 훈격을 높여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편 그의 향리에 있는 온수리 성공회성당은 2002년 2월 ‘김려수마태독립운동순국비’를 세워 그의 혼을 달랬다. 그리고 그는 2003년 인천광역시가 발행한 『인물로 보는 인천사 - 기억하고 싶은 인물, 남기고 싶은 인물』중 하나로 수록되었다. (글 : 이원규)
* 이 책 ‘가재연’ 항목에서 비밀결사 조직과 체포 경위 상세히 서술.
[참고문헌]
『독립유공자공훈록』, 국가보훈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