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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어찌하여 악을 만드셨나이까? 합1:1-13
하박국서는 악한 자들이 득세하고 의인이 애매히 고난 받는 상황 속에서 왜 하나님께서 속히 공의를 시행하지 않고 침묵하시는가에 대한 선지자 하박국의 두 번에 걸친 질의 와 찬양입니다.
하박국(חבקוק)이란 포옹하다, 껴안다는 뜻입니다. (씨름하다, 안다 보기도함)
하박국은 유다의 제18대 왕 여호야김 당시 성전에서 찬양대원으로 여호와를 섬기던 레위인으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받아 선지자가 되어 본서를 기록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박국은 바벨론이 앗수르의 니느웨성을 함락하고 메소포타미아의 새로운 주인이 된 주전612-605년 사이에 기록된 책으로 합1:1-11이 타락과 선민의 방치에 대한 첫 번째 질의응답 과 두 번째 질의응답인 1:12-2:20까지 유다보다 더 악한 이방 바벨론을 통해 선민 심판에 대한 질의응답이고 3:1-19절은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섭리를 통시적으로 깨달은 자로서의 찬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 7:12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에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악에 대하여 내가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보라”는 말씀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예레미야와 동시대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십계명 전반을 거스르는 죄악을 행하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 곧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라고 말하지만, 가나안 정복시 최초로 성막이 세워져 300년간 성소역할을 감당한 실로를 훼파한 것처럼 이제 예루살렘 성전까지 파괴하겠다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하박국서는 이사야의 능력과 예레미야의 정서가 조화된 구약의 도마서라고도 하듯 악을 하나님이 만드셨는가라는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합1:3절에서 어찌하여 죄악을 보게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냐고 묻고 있으며 13절에서 어찌하여 거짓 선지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자를 삼키는 것을 방관하느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1:3에서 내가 왜 이 죄악을 보아야 합니까?라 물으니 2:4에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합니다.
1:13절에서 우리보다 더 악한 이방 바벨론이 하나님께서 택한 민족을 괴롭히도록 허락하시는 것입니까? 라 질문하자 2:20절에서 입닥치고 잠잠하라 하십니다. 하나님은 악을 허용은 하시되 결코 만들거나 조장하진 않습니다.
이 말을 들은 하박국은 3장에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택한 자를 위하여 악인을 이용하지만 악인이 회개하고 나면 도구로 쓴 악한 자를 완전히 멸하여 흔적조차 사라지게 해버리신다는 것입니다. *친 지팡이처럼... 그러므로 악한 자의 성공을 부러워하지 말아야합니다.
구약신학에서 믿음을 찾은 종교개혁자 루터는 믿음의 끈과 맥을 롬1:17, 갈3:24, 히10:38절에서 찾아내 종교개혁을 이루어 냅니다.
제2의 종교개혁을 이루어내야 할 이 시점에서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어떻게 바른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정립할 것인가?
첫째로 하나님의 공의만이 온전히 서게 될 믿어야 합니다. (1:1-4)
하나님이 악인들을 심판하시지 않아 겁탈과 강포가 횡행하게 하며 의인으로 하여금 고통을 당하게 하는 지를 하나님께 묻고 있습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요 의인과 악인을 그 행위에 따라 갚으시는 분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요 각 사람은 그 행위에 따라 보응하시는 분이시어, 악인들이 하는 일과 그들의 행위가 악한 대로 갚으시며 그들의 손이 지은대로 그들에게 갚아 마땅히 받을 것이므로 그들에게 갚으신다(시28:4). 하나님은 행위에 따라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할 것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합니다.
행위에 따라 갚으시는 것은 분명 하나님의 보응의 원리입니다.
이렇게 행한대로 갚으시는 것을 인과응보하고 합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난을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과응보는 하나님의 심판원리가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인과응보원리는 하나님께서 현 세상을 통치하는 보편적 원리가 아닌,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원리 입니다.
하나님은 최종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그 행위대로 보응하시지만 현실 가운데서는 인과응보의 원리를 그대로 적용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현실에서는 인과응보의 원리보다 오히려 은혜의 원리로 세상을 통치하십니다.
지난주 살구나무 소케드와 내 뜻을 이루여 함이라 솨케드로 강조하여 막켈(움, 눈)의 소망을 이끌어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의도에 대해 말씀드릴 때 하나님은 먼저 은혜를 주시고 그 다음 징계 하신다는 말씀 기억나시죠?
즉 하나님은 악인들도 회개하고 구원 받을 수 있는 회개의 기회를 주시기 위해 현실에서는 철저히 인과응보의 원리로 다스리지 않으시고 은혜의 원리로 다스리시는 사랑의 하나님인줄 믿으시기 원합니다.
우리는 현실속에서 인과응보의 원리가 그대로 실현되지 않는다해서 의아해하거나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죄인들까지도 회개의 기회를 주시기 위해 오래 참으시며 은혜의 원리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감사해야할 것입니다.
장차 하나님이 최후 심판을 하실 때 그야말로 뿌린대로 , 행한대로 , 심은대로 거두게 하실 줄 믿고 범사를 의롭고 선하며 아름답게 가꾸어가야 하겠습니다. 악에 대해 철저히 보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모든 행위에 대하여 넘치도록 풍성한 상을 베푸실 줄 믿습니다.
둘째로 둘째로 끝까지 하나님의 약속의 실현될줄 믿으라 합니다. (합2:3-4)
하나님의 묵시는 정한 때가 있고 그 때가 이르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 말씀하셨는데, 불의한 자들은 교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대하여 정직하지 못하여 심판에 이르지만 의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삶을 살게 되므로 궁극적으로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정한 때에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취를 보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이루어질 때까지 인내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실현이 비록 지체된다할지라도 끝까지 하나님의 약속의 실현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2:4에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롬1:17절에서“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라고 바울이 인용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이신득의 ] 교리를 강조하기 위하여 인용하였고 이를 루터가 찾아내어 종교개혁의 모토로 삼았습니다.
갈3: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였고
히10:38절에서는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한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바로 알아야 할 것은 종교개혁당시 로마교는 베드로 성당을 짓기 위해 연옥설을 도입하여 죽어서 천당과 지옥 심판을 대기하는 장소에 있을 때 후손들이 연보궤에 돈을 넣으면 뗑그렁 소리와 함께 죽은 조상들의 영혼이 천당으로 간다는 행위구원론을 강조하던 때입니다.
3절 말씀이 연계되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정한 때가 있고 그때가 이르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 말씀하셨는데, 불의한 자들은 교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도 아니하고 , 하나님께 대하여 신실하지도 정직하지도 못하지만 의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 합니다.
그렇습니다. 의인의 믿음의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이루어 질줄 믿으며 사는 것입니다.
의인의 삶의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이루어 질줄 믿으며 사는 것입니다.
의인이라 해서 그 행위가 의롭고 완전하다는 것이 아니라, 행위만으로 볼 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어서, 성경이 말하는 의인은 행위가 의롭거나 완전한 자를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인 의인은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믿는 자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믿는 믿음에 근거해 삶을 사는 자가 진정 의인인 것입니다.
대표적인 의인인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는 것도 그의 행위가 의로워서가 아니라 그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며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근거해 순종의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즉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삶을 영위하였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임으로 인정하신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가 하나님 앞에서 의인일 뿐 아니라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사는 구원에도 이르게 될줄 믿습니다.
참된 의인은 오직 믿음을 따라 사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말씀을 순종하는데에 고생과 희생과 뼈를 깍는 아픔이 있을지라도 , 목숨을 담보로 할만큼 극심한 위험과 고난이 따르더라도 그 모든 것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자가 의인의 자격이 있다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깊이 신뢰하고 하나님을 참으로 온전히 믿어 믿음에 입각해 행동을 결정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영원한 구원에 이르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셋째로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실 줄 믿고 주를 찬양하라(합3:17-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 되시어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실 줄 굳게 믿고 비록 현실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주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하박국에서 가장 강조하는 주제 “주 여호와는 나의 힘”(여호와 아도나이 헬리)이라 합니다.
투덜이 하박국이 하나님께 묻습니다.
어찌하여 내가 이 죄악된 세상을 보아야 하나요?
어찌하여 나보다 악한 자에게 하나님의 백성이 징계를 받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대답은 명료합니다. 입 닥쳐! 입 닥치고 잠잠히 있으라합니다.
하나님은 악을 사용하신 후 역사 속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하겠지만, 입닥치고 잠잠히 내 말을 듣고 순종하는 삶을 사는 자에게 하나님이 날 사랑하시기에 반드시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하심으로 질문에 답을 주시고 계십니다.
성도가 가장 먼저 구할 바는 소기 주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3:2 “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각이나 이해를 초월하여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행사는 초월적이고 경이로울 뿐 아니라 그분 자체가 완전한 분이시기에 초래되는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가장 먼저 하나님 앞에서 갖추어야할 자세가 바로 구해야 할 바 주의 일 곧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속히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는 주의 일은 타락한 선민의 나라 유다를 바벨론을 들어 먼저 심판하시고 뼈를 깍는 처절한 시련의 날을 보낸 후 , 선민을 멸망케 한 바벨론에 대해 하나님께서 심판해 달라는 간구인 것입니다.
하박국 개인이 입장으로 선민의 나라인 유다가 하나님을 모르는 악한 이방 나라에 의해 유린 당하는 것을 원치 않지만 ,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고 매 맞은 다음 용서함 받고 다시 시작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3-15절은 하나님의 강림에 대한 묘사입니다.
하나님께서 강림하시는 목적이 심판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4)
하나님께서 강력한 능력을 가지시고 심판주로 강림하시는 것입니다.
17-18절은 ~할지라도 삶을 살라 합니다. 다섯 번 부정합니다.
“못하며 없으며 없으며 없으며 없을지라도” 두 번 말미암아 즉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합니다. 이러한 고백의 실천이 과연 가능할까요?
무화과 나무, 포도나무, 감람나무 열매가 없고 밭에 식물이 없으며 외양간에 양과 소가 없다는 것은 모든 양식이 끊어졌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 참된 신앙인은 바로 자기가진 것을 잃을지라도 모든 것을 다 잃을지라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할지라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기의 모든 것을 거두어 간다할지라도
현실적으로 큰 어려움을 당한다할지라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는 믿음과 생활력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기뻐한다는 것은 믿음의 근거가 바로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박국은 바벨론을 통한 심판 후에 회복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믿음의 근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믿음의 근거가 바로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바벨론을 통한 심판후에 회복에 대한 약속을 받았습니다. 19절에서 업그레이드 하는 것입니다.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합니다. 노아가 그러했고, 아브라함이 그러했으며,요셉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으며 여호수아와 갈렙이 그러했으며 아합왕 당시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았던 7천명의 남은 자들이 신앙을 정절을 지켰으며, 사자굴에 던져질 위기에서도신앙의 정절을 지킨 다니엘과 그 세친구가 그러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약2:22 “ 내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여 졌느니라” 합니다. 믿음은 행함이라는 소와 함께 일하는 겨리소지 믿음만으로 구원받고 상급 받는 홑소가 아닙니다.
행함이 믿음을 온전케 하는 것입니다. 믿음과 행함은 항상 동반자 관계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선한 사람을 업그레이드 시키려고 악을 주셔서 단련시키시고 정금같이 나오매 귀하고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실 줄 믿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어떻게 바른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정립할 것인가?
첫째로 하나님의 공의만이 온전히 서게 될 믿어야 합니다. (1:1-4)
둘째로 끝까지 하나님의 약속의 실현될줄 믿으라 합니다.(합2:3-4)
셋째로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실 줄 믿고 주를 찬양하라(합3:17-19)
하나님은 악을 사랑하시거나 만드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성장시키고 단련시켜 정금과 같이 나오게 하시려고 허용하시기도 하지만 그 목적은 업그레이드 시키기 위한 것임을 잊지 말고 오늘의 시련이나 고난을 잘 통과하는 성도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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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명절 즐겁게 지내세요.
좋은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