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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해우(海隅)의 백합국어사랑방(신문사설&칼럼) 원문보기 글쓴이: 해우(海隅)
2010년 8월 11일 수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00811수] 일 총리 사죄·반성 담화 반길 만하다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가 한일 강제병합 100년에 앞서, 어제 발표한 담화는 식민지 지배에 대해 가장 진전된 사죄와 반성을 담은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 동안 가장 내용이 앞섰던 1995년 무라야마 담화에 발을 딛고, 형식과 표현, 문맥에서 여러 걸음 더 나아갔다.
1910년 합병조약의 불법성과 원천무효 선언이나, 군대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미해결 과거사 문제의 전면 청산 등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국가 간 법적 행위의 무효ㆍ취소가 빚을 복잡한 파장을 배제한 정치적 선언으로는 더 이상의 내용을 쉬이 떠올리기 어려울 정도다.
우선 무라야마 담화를 비롯한 그 동안 일본 정부의 과거사 사죄ㆍ반성 담화는 한국과 중국은 물론 동남아 각국까지를 포함한 '광대역 담화'였다.이에 따라 반성과 사죄도 식민지 지배와 강제동원, 침략전쟁과 그 속에서의 비인도적 행위 등에 대해 폭 넓게 이뤄져 개별 피해자의 눈에는 어정쩡하고 흐릿할 수밖에 없었다. 이와 달리 이번 담화는 한국만을 염두에 둔 최초의 일본 총리 담화라는 형식만으로도 일본 정부의 명확한 자세를 엿볼 수 있다.
법적 시인은 아니더라도 일본 총리가 정치적으로는 합병조약의 불법성을 언급한 것도 커다란 진전이다. '3ㆍ1 독립운동 등의 격렬한 저항'을 예로 든 간접적 언급이지만 "정치ㆍ군사적 배경 아래 한국인들은 그 뜻에 반해 이뤄진 식민지 지배로 국가와 문화를 빼앗겨 민족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는 표현에서는 일본 민주당 정권의 남다른 열의를 엿볼 수 있다. 합병조약 체결 당시 대한제국의 주권자는 국민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조약 자체의 법적 효력을 건드리지는 않으면서도, 현대적 주권재민의 이념으로 보아서는 주권자의 의사에 반한 것임을 실제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조선왕실 의궤 등 도서의 인도 선언도 결코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비록 '반환' 대신 '인도'라는 표현으로 다른 문화재 반환 요구에 대한 법적 파급을 차단했지만, 문화재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실질적 의미를 중시한다면 앞으로 얼마든지 다른 문화재 반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무엇보다 지난달 참의원 선거 패배로 정치적 부담이 적지 않은 간 총리 정부가 상당한 반대를 무릅썼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담화의 긍정적 의미는 더욱 커진다.
국가 관계에도 상호작용은 미친다. 진정으로 관계 개선과 문제 해결을 바란다면 상대방의 노력을 평가, 고무하는 것이 냉소와 비난에 매달리는 것보다 실용적이고도 전략적이다. 정부가 국민의 다양한 반응을 고려해 최대한 유보적 태도에 머무르면서도 '간 총리와 일본 정부의 의지'와 조선왕실 의궤 등 서적 반환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도 이런 점에서 적절해 보인다.
[한겨레신문 사설-20100811수] 일본의 식민지배 반성, 행동으로 진정성을 보여라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에 즈음해 어제 식민지배에 대해 사과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그는 “역사의 사실을 직시하는 용기와 이를 인정하는 겸허함을 갖고 스스로의 과오를 솔직하게 되돌아보고자 한다”며 “식민지 지배가 가져온 다대한 손해와 고통에 대해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한다”고 말했다.
간 총리의 담화는 1995년 무라야마 담화 이후 오히려 퇴행해온 일본의 역사인식을 무라야마 담화 수준으로 되돌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라는 무라야마 담화의 기본 수사를 답습하고 있지만, 식민지배가 한국인들의 뜻에 반해 이뤄졌음을 인정하고 조선왕실의궤 등을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한 것은 일부 진전으로 볼 수 있겠다. 일본 민주당 정부가 참의원 선거 패배로 어려운 환경에 있음에도 나름대로 노력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번 담화가 “앞으로 100년을 바라보면서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구축”해 나가기 위한 바탕으로는 부족한 게 사실이다. 우선 강제병합 조약을 무효로 선언하지 않았다. 두 나라 지식인들은 “병합조약은 조선(한국)인의 의사에 반해 강제된 것으로 원천무효”라는 내용을 포함시킬 것을 요구해왔으나, 담화는 식민지배의 강제성을 인정하는 것에 그쳤다. 식민지배의 강제성이야말로 불의부당한 합병의 증거다. 따라서 이 조약을 무효로 하지 않은 채 “과오를 솔직하게 되돌아”본다고 말할 수는 없다.
둘째로 한-일 관계의 핵심 쟁점인 독도 및 역사교과서 문제, 군대위안부·징용자 등에 대한 보상, 재일동포에 대한 지방참정권 부여, 야스쿠니 신사를 대체할 별도 추도시설 건설 등의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이들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한-일 신시대로 가긴 어렵다. 일본 쪽은 의궤 반환 결정도 어려운 일이었다고 주장하겠지만 약탈 문화재 반환은 의무이지 생색낼 일이 아니다.
셋째, 무라야마 담화와 마찬가지로 일본 정부가 아닌 총리 담화의 형식을 취했다. 무라야마 담화 이후 일본 정부의 역사인식 퇴행은 담화가 법적 기속력이 없었던 데서 비롯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또 식민지배의 또다른 피해 당사자인 북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는 점도 문제다. 북한에 대해서도 분명히 사죄하고 북-일 관계 개선의 청사진을 밝히는 게 온당했다.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행동을 통해 반성의 진정성을 보여준다면 새로운 한-일 관계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관련 기업이나 절 등에 맡겨놓고 있는 유골 반환 문제라도 정부가 직접 관여해 서두른다면 달라질 수 있다. 북한과는 국교가 없다는 이유로 시작도 않고 있지만, 바로 이런 인도적 사안부터 논의를 시작해 관계개선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일본이 식민지배의 역사를 직시하고 반성하는 일은 피해자인 한반도 주민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일본 스스로도 잘못된 과거의 족쇄를 벗어던지고 자유로워지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일본 정부와 일본 사회의 더 큰 분발을 촉구한다.
[조선일보 사설-20100811수] 北 도발보다 위태로운 우리 軍의 오락가락
합동참모본부는 10일 북한이 9일 발사한 해안포 110여발 중 10여발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남쪽 1~2㎞ 백령도 북방 해상에 떨어졌다고 밝혔다. 합참은 "북측에 즉각 도발행위를 중단하라는 경고 통신을 세 번 보냈고, 이후 추가 도발이 없어 대응사격을 하지 않았다"며 "군은 작전예규와 교전수칙에 따라 정상적으로 대응했다"고 했다.
그러나 합참은 지난 1월 북한이 NLL을 향해 400여발의 포(砲) 사격을 가하자 "NLL 이남(以南)으로 포탄이 떨어지면 즉각 대응사격을 할 것"이라고 했었다. 군 지휘부는 당시 북의 포 사격으로 우리 선박이 피해를 보거나 포탄이 육지에 떨어지면 북의 발사지점을 포격하겠다며 북의 포 사격 1발당 3발로 대응할 것이라고도 했다. 북한은 지난 1월 사격 때는 사전에 항행(航行)금지구역을 선포했지만, 9일 사격은 예고 없이 이뤄졌다. 북의 포탄이 NLL을 넘어 남쪽으로 수십~수백 미터도 아니고 1~2㎞ 이상 날아왔다는 것은 그렇게 조준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북의 이번 해안포 사격은 명백한 군사 도발 행위다.
군은 '즉각 대응사격'을 공언하더니 막상 실제 상황이 벌어지자 행동으로 옮기진 못했다. 합참은 9일 밤에는 "북의 포탄이 모두 NLL 북쪽에 떨어졌다"고 하다가, 군 안팎에서 의문이 제기되자 10일 오전 몇 시간 만에 말을 바꿨다. 군은 천안함 폭침(爆沈) 이후 서해에서 어떤 도발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결의를 다졌지만 NLL 북쪽 빈 바다를 향한 대응사격조차 하지 못했다. 서해에서 미국과 중국, 한국과 북한 간에 긴장감이 높아지는 요즘 즉각적 대응 사격이 최선인가에 대해 전략적 측면이나 외교적 차원에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즉각 대응사격'을 다짐했던 군이 포탄 낙하지점을 둘러싸고 몇 시간 만에 말을 바꾸며 오락가락하는 모습에 국민들은 더 불안할 수밖에 없다.
북한 노동신문은 10일 우리 군의 서해 기동훈련을 비난하면서 "진짜 전쟁맛을 똑똑히 보여주겠다"고 다시 위협했다. 북의 도발에 과잉대응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북으로 하여금 대한민국의 결의와 각오를 오판하게 만들면 더 큰 도발로 이어질 수 있다.
[서울신문 사설-20100811수] 달리는 폭탄 CNG버스 안전기준 만들라
그제 서울도심에서 시내 버스가 폭발해 승객과 운전기사, 행인 등 1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고가 발생한 차량은 서울시 전체 시내버스 가운데 96%(7234대)를 차지하는 압축천연가스(CNG) 버스라는 점에서 시민들이 받은 충격은 매우 크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곧 판명이 나겠지만 미흡한 안전기준이 빚어낸 예고된 인재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CNG버스가 본격 도입된 지 10년이 지나도록 연료통에 대한 안전기준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동안 폭발사고가 7차례나 있었는데도 시정되지 않았다니 더욱 한심한 일이다.
CNG버스는 폭발가능성이 높은 가스를 연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연료통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이 안전운행의 관건이다. 그러나 CNG버스의 연료통은 고압가스관리법이 적용되지 않아 교통안전공단의 간단한 가스 누출검사만 정기적으로 받는다고 한다. 그것도 육안으로만 실시하기 때문에 미세균열은 잡아낼 수조차 없다. 지식경제부가 지난달 CNG버스 연료통에 대해 3년만에 한번씩 정기검사를 받도록 고압가스관리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고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차량 운행연수에 따라 정기점검을 차등 실시하되 내압시험, 미세균열 확인을 필수적으로 실시하도록 해야 한다.
원래 CNG는 공기보다 가벼워 연료통의 균열로 새어나가도 공기중으로 빨리 확산돼 사고위험이 적다고 하지만 비용절감을 위해 대부분 차량이 사고차량처럼 하단에 연료통을 부착하고 있다. 앞으로 교체될 버스는 연료통을 차량상단에 설치하도록 의무화해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 연료통을 하단에 설치한 기존 차량의 경우 버스 안에 가스누출을 알리는 시스템을 장착하도록 해야 한다. 한해 시내버스 이용승객이 연인원으로 16억명에 달한다. 더 이상 ‘시민의 발’이 시한폭탄이 되는 일이 없도록 강화된 안전기준을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00811수] 용산 역세권 개발사업 파국은 피해야 한다
투자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서울 용산국제업무지구(용산역세권) 개발 사업에 정부가 개입 가능성을 내비쳤다.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이 지난 9일 "정부가 용산 역세권 개발사업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라고 말해 중재 가능성을 처음으로 시사한 것이다. 이 사업이 무산되면 사회 · 경제적 파장이 엄청날 수밖에 없는 만큼 정 장관의 발언은 주목을 모으기에 충분하다.
개발사업 시행사인 드림허브PFV가 금융권에서 조달한 자금의 이자 128억원을 내달 17일까지 갚지 못할 경우 부도가 나고 이 사업은 물건너간다. 파국(破局)을 피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도 건설투자자들과 땅 주인이자 시행사 대주주인 코레일 간의 입장 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양측은 토지 중도금 납입 시점 연기,수익성을 보완하기 위해 용적률(608%)을 800%로 높이거나 땅값(8조원)을 낮추는 방안,건설사들의 지급보증 등을 놓고 입씨름만 벌이면서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고 있다.
양측의 주장이 워낙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어 정부의 개입 여지가 별로 없는 것은 사실이다. 부동산 경기침체로 수익성이 떨어져 차질을 빚고 있는 대규모 개발사업이 10여곳을 넘는 상황에서 용산에만 정부가 개입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수익을 좇아 개발사업에 뛰어든 건설사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다는 비판 외에도 개별 PF사업에 정부가 나설 경우 생길 수 있는 형평성 논란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사업규모 31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사업이 무산될 경우 투자자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되고 그동안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한 주민들의 피해도 크다. 코레일의 적자탈출도 불가능해져 결국 국민 부담만 늘어나게 된다. 따라서 코레일과 코레일의 주관부서인 국토부,건설투자자,서부이촌동 아파트지구를 포함시켜 총 사업비를 늘어나게 만든 서울시 등이 모두 머리를 맞대고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는 해법을 찾는 게 바람직하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PF사업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는 방법이 돼서는 곤란하다. 정부의 현명한 중재를 기대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00811수] 기업의 '교육기부'가 지니는 의미
대한상공회의소 주도로 기업의 교육기부 활동이 확산되고 있어 기대를 모은다. 교육기부는 기업의 생산현장과 시설 등을 초ㆍ중ㆍ고 학생들에게 학습현장으로 개방해 직접 체험기회를 갖게 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교육기부는 실질적 효과가 크다는 점에서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부응하는 중요한 사회공헌 활동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대한상의는 지난 9일 한국과학창의재단 및 교육과학강국실천과 '창의인재육성을 위한 교육기부 협약식'을 갖고 교육기부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대한상의는 이달 중 교육기부추진운동본부를 구성해 기업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고 시범사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1차로 30여개 기업의 참여 목표를 잡았는데 이미 SK텔레콤ㆍ현대차ㆍ한국서부발전ㆍ종근당 등 많은 기업이 참여의사를 밝혀와 조만간 교육기부사업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과학창의재단 등은 기업의 지적 재산을 활용해 학생과 교사에게 적합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기업의 시설과 생산현장을 학교 교육과정과 연계하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기업의 교육기부는 학교와 학생, 그리고 기업 모두에 득이 되는 '윈윈'의 사회공헌활동이다. 학생들이 기업의 생산시설과 현장을 직접 체험을 하게 되면 실질적이고 생생한 학습이 가능해진다. 이론만이 아닌 폭넓은 실습을 하게 됨으로써 종래의 기업견학 프로그램과는 비교할 수 없는 교육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기업의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연구개발(R&D) 등의 활동을 듣고 보는 과정은 학생들의 지적 호기심과 창의력을 자극하는 효과도 있다. 크게 보면 기업의 교육기부는 학교와 산업현장 간 연결고리 역할을 통해 교육의 내용과 질을 높이게 되는 셈이다.
기업들로서도 학생과 교사들에게 기업활동과 경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게 하는 효과가 있다. 이는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이미지 개선으로 이어져 기업활동에 도움이 된다. 또 기업과 산업현장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도가 높을수록 기업들이 직원을 채용했을 때 교육훈련에 들이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교육기부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업들이 관심을 갖고 적극 참여해야 한다. 기업들이 갖고 있는 다양한 분야의 능력과 자원을 학생들과 공유하는 것은 현금기부 이상의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교육기부가 확산될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책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동아일보 칼럼-횡설수설/정성희(논설위원)-20100811수] 학교생활기록부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는 출결 성적 건강기록 수상실적 등 학교생활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학생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자료다. 수시전형이 늘고 입학사정관 입시가 도입되면서 대학들은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못지않게 학생부를 중시하는 경향이다. 특목고나 자율고도 내신 학생부로 학생을 선발한다. 학생부가 상급학교 합격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포트폴리오로 등장한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내년부터 효행상 봉사상 선행상 모범상 같은 대외수상 실적을 학생부에 기록하지 못하도록 했다. 한자능력 급수시험이나 한국사 시험 기재도 금지된다. 올림피아드 경시대회 전국체전 수상경력은 올해부터 학생부에 기재하지 못하게 됐다. 기재금지 항목이 갈수록 느는 추세다. 2011학년도 특목고 자율고 전형 때 제출할 중학교 학생부에는 토플 토익 텝스 등 공인 외국어시험 성적과 교외 수상실적을 적으면 불합격을 각오해야 하는 모양이다. 자기주도 학습 전형을 실시하는 자율고도 내신, 학생부, 교장 추천으로 학생을 뽑는다. 교외수상 실적을 위한 새로운 형태의 사교육 등장을 우려한 조치다. ▷스펙 쌓기 용으로 변질된 해외봉사 경력 기재를 금지하는 정도는 몰라도 어려운 환경에서 부모를 돌보거나 어려운 이웃에 봉사한 경력을 인정해 주는 상까지 막는 것은 지나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도대체 학생부엔 뭘 써야 되는 것인지 학부모들은 속이 탄다. 성적 외에 기재할 수 있는 항목은 교내상, 창의적 재량활동 정도인데 교내상은 치맛바람이 걱정된다. 학부모들의 성화로 남발될 우려도 있다.
▷정부는 2011학년도 외고 입시에서 영어듣기 평가를 없애고 영어내신 학생부 면접만 반영토록 했다. 여기에다 정원까지 크게 줄다 보니 중학생들은 영어 시험에서 한 문제만 틀려도 외고 진학을 포기해야 할 판이다. 공인 외국어시험 성적과 교외상 기재를 금지하면 수많은 영어내신 1등급 가운데 학교가 뭘 보고 학생을 뽑아야 할지 고민스럽게 됐다. 기재가 허용되는 ‘창의적 재량활동’은 내용이 애매모호해 기민한 학부모를 둔 학생만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사교육 잡는 데만 매몰돼 학생을 판단하는 자료로서의 학생부 효용성을 자꾸 축소시키는 것 같아 안타깝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김남중(논설위원)-20100811수] ‘술고래’의 아들
옛 사회에서 건강한 아들을 낳는 것은 여인에게 강요된 부덕(婦德) 중 하나였다. 아들은 조상 제사와 대(代) 잇기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 여겨진 탓이다. 아이를 낳지 못하거나 딸만 낳은 여인은 제사상의 향불을 꺼뜨린 죄인으로 남편과 시집에서 버림을 받기도 했다. 칠출(七出) 혹은 칠거지악(七去之惡)이다. 여인들이 아들 낳기를 비는 속신(俗信)과 기자(祈子)신앙에 매달린 건 그래서다.
아들을 낳기 위해서라면 못 먹을 것도, 못할 것도 없었으니 지금 눈으로 보면 가히 ‘득남 잔혹사(殘酷史)’다. 조선시대 여인들은 ‘뒷간의 똥물이라도 마실 정도의 정성이 있어야 아들을 본다’는 말을 듣고 살았다. 그러니 누런 수탉의 고환을 생으로 삼키거나, 황소의 고환을 삶아 먹는 정도는 꺼릴 수준도 못 됐다. 먹는 것만이 아니다. 아들 낳은 산모의 옷을 얻어 입거나, 아들을 많이 낳은 집에서 훔친 부엌칼로 작은 도끼를 만들어 패물처럼 허리에 차고 다니는 건 예사였다.
명산대천에 치성을 드려 아들을 얻으려는 기자 행위의 역사는 훨씬 오래다. 치성의 대상이 된 돌과 바위는 기자석, 기자암이요, 샘물은 기자샘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부여왕 해부루는 늙도록 아들이 없어 산천을 찾아다니며 치성을 드리고 나서야 아들 금와를 얻었다. 공자(孔子)의 어머니도 태산(泰山)의 지맥인 니구산(尼丘山)에서 기도한 뒤 공자를 낳았다. 그래서 공자의 이름이 구(丘), 자는 중니(仲尼)라고 전한다.
건강한 아들을 얻는 데는 아버지의 역할도 중요하게 취급됐다. 『동의보감』에선 “부부가 합방할 때 그들의 건강 상태에 따라 태아의 건강이 좌우된다”고 했다. 남자로 하여금 과식을 했거나 중병을 앓은 뒤이거나, 크게 기쁘거나 슬플 때는 잠자리를 피하도록 한 가르침이 있었던 까닭이다. 동서고금에 생식 기능이 부실한 남자는 아예 임신 과정에서 배제시킨 경우도 있다. 고대 스파르타에선 젊은 아내를 둔 늙은 남편은 아내가 건강한 아들을 낳을 수 있도록 아내에게 젊은 남자를 소개하는 걸 법률로 인정했을 정도다.
‘술고래’ 아버지는 본인은 물론 아들의 생식 기능에도 악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 동물실험에서 밝혀졌다고 한다. 고환 무게와 정자 운동성이 모두 감소해서란다. 영문도 모른 채 기자암 앞에서 눈물 흘렸을 옛 여인이 한둘이 아닐지 싶다. 미래의 아들과 며느리 마음고생 안 시키려면 술버릇부터 다스릴 일이다.
[경향신문 칼럼-여적/김태관(논설위원)-20100811수] 의궤 환수
역사는 비극이라기보다는 희극에 가깝지 않을까. 아무리 비극적인 사건이라도 결과만 놓고 보면 황당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가령 조선왕실의 역사가 그렇다. 형이 아우를 베고 삼촌이 조카를, 아비가 아들을 죽이는 따위는 그 사정이야 어쨌든 어처구니없다. 명성황후 시해사건도 마찬가지다. 한 나라의 왕비가 어떻게 자기 궁에서 남의 나라 칼잡이에 의해 살해당할 수 있단 말인가. 명성황후를 벤 칼은 아직도 남아 있는데 칼집에는 ‘늙은 여우를 한칼에 베었다’고 적혀 있다. 더 기막힌 것은 명성황후의 장례를 기록한 국장도감의궤마저 일본이 가져가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 사무처장 혜문 스님의 말이다.
“명성황후를 죽인 칼을 일본 후쿠오카의 신사에서 보았을 때 ‘아, 이것이 조선의 심장을 찌른 칼이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울컥하더군요. 일본은 남의 나라 왕비를 죽인 칼도 보관하고 있는데, 피해자인 우리는 장례 기록까지 약탈당하고도 아직 찾지 못하고 있으니 비애감마저 들었습니다.” 혜문 스님은 지난해 ‘명성황후 국장도감의궤는 왜 일본 천황궁에 있는가’라는 부제를 붙여 <조선을 죽이다>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의궤를 찾기 위한 만행의 길’이라는 프롤로그에서 스님은 고영근이라는 인물을 소개하고 있다. 고영근은 1922년 홍릉에 ‘대한고종태황제홍릉 명성태황후부좌’라는 비석을 세운 사람이다.
일본이 비문의 ‘대한황제’라는 구절이 못마땅해 4년이 되도록 비석을 허가하지 않자 능참봉인 고영근은 자의로 세워 버렸다. 이 일로 그는 파직당했지만 그 뒤로도 홍릉 근처에 초막을 구해 살 정도로 충직했다. 고영근의 이야기는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조선훈련원 대대장 우범선을 일본 히로시마까지 쫓아가 살해하기도 했다. 그런데 우범선의 아들이 저 유명한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라는 대목에 이르면 역사의 아이러니에 가슴을 치게 된다.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기막힌 막후 스토리다.
일본 총리가 조선왕실의궤를 돌려보내겠다는 뜻을 밝혔다. 혜문 스님 등이 민간차원에서 벌인 환수 노력이 열매를 거두게 됐다. 100년 동안 얽히고 설켰던 역사의 매듭 하나를 이제야 풀게 됐다니 웃어야 하는가, 울어야 하는가.
[매일경제신문 칼럼-매경춘추/변창구(서울대 인문대학장)-20100811수] 바보들의 무대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은 국토를 비롯한 왕의 모든 권한을 딸들에게 물려주면서 벌어지는 인간 비극의 이야기이다. 리어왕은 자신의 모든 것을 이양한 뒤에 삶의 부조리를 극단적으로 겪게 된다. 자신의 삶이 얼마나 공허한 것이었는지를 절감한다. 몰아치는 폭풍우 속에서 난생 처음으로 추위에 떨며 자신의 무기력함을 깨달았을 때, 자신 주위에 있던 신하들이 그동안 자신에게 거짓말을 해왔으며, 자신이 헛된 삶을 살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비가 나를 적시고 바람이 나를 떨게 할 때, 천둥이 내 명령에도 그치지 않을 때, 난 알아차렸어. 냄새를 맡았어. 그래, 저놈들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 인간들이었어. 저놈들은 세상이 항상 내 마음대로 굴러간다고 했지. 그게 아니었어. 나도 학질 앞에선 꼼짝 못하는 인간에 불과한데도 말야."(`리어왕` 4막 6장)
그동안 리어왕에게 불가능은 없었다. 그저 명령만 하면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세상은 당연히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이며, 사람의 능력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를 그는 몰랐다. 황야에 서서 폭풍우를 마주하고서야 자신의 한계를 깨닫는다. 아! 나는 얼마나 헛된 삶을 살았던가!
삶의 고통을 전혀 경험하지 못하고, 그저 주위 사람들의 아첨과 무조건적인 복종 속에서 리어왕은 모든 것이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이제 그는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본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던가. 왜, 무엇을 위해 살아왔던가. 드디어 그는 이 세상이 `바보들의 무대`이며 인간은 미망에 갇혀 있는 어리석은 존재에 불과함을 깨닫는다.
바쁜 세상이다. 오늘날 우리들은 남보다 먼저 조금 더 많이 성취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삶을 천편일률적으로 사회적 지위와 금전적 성취에 따라 재단한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앞뒤를 잴 여유가 없다. 그런데 이 세상은 어쩌면 리어왕이 간파한 것처럼 `바보들의 무대`요, 우리는 그 속에서 놀아나는 꼭두각시에 불과할지 모른다. 아무 생각 없이 살아온 이 `바보들의 무대`에서 조금 덜 바보스럽게 살려면 어찌해야 할지 잠시 생각해보자. 리어왕이 폭풍우 앞에서 불현듯 자신의 한계를 깨달은 것처럼 우리 스스로도 큰 깨침을 가질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