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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辰年 성경적 신앙 뿌리를 깊이 내리는 해(前)
† 使徒 바울 獄中/(敎理書信)✫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15:19)
고전15:35-50절) 어떤 몸으로 부활할 것인가?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신나고, 짜릿한 약속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지막 날 우리가 다시 부활(復活)한다는 약속입니다. 그때 부활(復活)은 죽었던 사람들이 그냥 옛날 상태로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결혼식에 가는 것처럼, 가장 멋지고, 우아하고, 영광스런 모습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전 인류는 역사(歷史) 마지막 순간에 있을 이 마지막 잔치를 위하여 한 평생을 사는 것과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세상에서 얼마나 화려한 좋은 옷 입고, 얼마나 좋은 집(고급주택)에 사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마지막 잔치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느냐? 하는 것입니다.
모든 역사(歷史) 마지막 순간에 있을 이 마지막 대잔치에 각각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서 영광의 잔치에 참예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이 마지막 한순간을 위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때 내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느냐? 는 것은 내가 결정할 일은 아닙니다. 이것은 나의 공력(功力)에 따라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날에 나타날 자신의 모습에 관심을 갖는 것은 현재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순간에 관심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더욱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Ⅰ.부활체에 대한 세 가지 유추(상)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運命)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고 없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은 사람이 죽으면, 시체가 썩어서 없어져버리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이 죽는다고 할 때, 가장 안타까운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셨습니까? 역시 자기가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기억속에 잊혀 진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모든 것들이 너무나 허망(虛妄)하게 끝나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장례(葬禮)할 때, 입관을 아주 가까운 가족들만 보는데서 해버립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관(棺)만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사람은 역사(歷史) 마지막 순간에 모두 화려하게 다시 살아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5:35-36절)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당시 고린도 교인들은 부활(復活)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서 두 가지 의문을 가졌습니다.
①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다시 살 수 있느냐? 는 것입니다. 즉 사람이 죽으면, 썩어서 없어지는데, 어떻게 다시 살아나느냐? 는 것입니다.
그리고
②시체가 썩은 후 어떤 몸을 가지고 살아나느냐? 는 것입니다. 아마도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것이 이집트의 미이라(mirra)일 텐데, 설사 미이라가 살아난다고 해도 그것이 흙덩이나 마찬가지지, 어떻게 영광스러운 부활(復活)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생각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어리석은 자'라고 말하면서 부활(復活)의 몸에 대한 세 가지 비유를 듭니다.
①씨의 비유입니다.
15:36절)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여기서 씨 비유의 핵심은 *씨가 죽어야 다시 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부활 (復活)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반드시 죽어야 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씨 뿌리는 것'으로 비유합니다. 씨를 땅에 뿌리면 썩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있는 *생명의 눈은 씨가 썩음으로 살아'납니다.
15:37-38절)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우리 안에 있는 씨란 성령입니다. 성령이 있는 사람은 그 안에서 앞으로 영화롭게 살 수 있는 모든 비밀이 입력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죽으면, 그냥 죽는 것이 아니라, 씨를 심는다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모두 다 죽음으로 자신의 영생(永生)을 심는 것입니다.
물론 장차 부활(復活)할 모습은 지금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일 것입니다.
②부활할 때 어떤 몸으로 부활하느냐? 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두 번째 유추(類推)를 사용합니다.
15:39절)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우리가 자연계에서 보는 것만 해도 같은 몸이 아닌 것이 수없이 많습니다.그런데 이것들마다 각기 다른 구조(救助)와 체계(體系)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생물학자들도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즉 어떤 사람은 곤충만 연구하고, 어떤 사람은 물고기만 연구하고, 어떤 사람은 새만 한평생 쫓아다닙니다.
곤충도 세 분화되어서 어떤 분은 한평생 거미만 연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분명히 몸은 몸인데, 완전히 다른 체계(體系)와 재질로 되어 있습니다. 또 물고기는 다른 생물과 전혀 다르게 생겼습니다. 즉 비늘이 있고, 지느러미가 있고, 아가미로 숨을 쉽니다. 또 곤충은 머리, 가슴, 배,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 새는 가볍고 깃털로 덮여 있습니다. 그리고 짐승의 몸이 있고, 사람의 몸이 있습니다. 짐승은 온 몸이 털로 덮여 있지만, 사람은 털이 많지 않습니다. 이런 몸의 유추(類推)를 통해 보여 주려는 것이 무엇일까? 새로운 *제 4의 몸이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 중, 사두개인들은 부활(復活)을 믿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말도 되지 않는 질문을 이렇게 던졌습니다.
*어느 곳에 일곱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어떤 여자와 결혼했으나, 아이를 낳지 못하고, 죽어 그 다음 동생이 그 여자와 결혼 한 후, 마찬가지로 아이 없이 죽고. 차례로 결혼 했다가 결국 그 여자도 죽었는데, 나중에 부활하면, 이 여자는 누구의 부인이 되겠느냐?" 는 것이었습니다(마22:23-28 참조). 즉 *일곱 형제가 서로 자기 부인이라고 싸우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이 이런 질문을 한 것은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부활(復活)을 우습게 하기 위하여 이야기를 지어내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들만 우습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부활(復活)이 지금과 똑같은 몸으로 다시 사는 것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즉 *할머니는 할머니 몸으로 다시 살아나고, 불에 타죽은 사람은 반쯤 불탄 모습으로 다시 살아나고, 목이 잘려 죽은 사람은 목이 없는 모습으로 살아날 줄로 안'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의 능력으로 완전히 새로운 몸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이 몸과 전혀 다른 것입니다. 즉 *지금의 모습보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좋고, 재질(材質) 자체도 이 세상에 없는 그런 몸으로 다시 사는 것'입니다.
그 모습은 우리가 본 적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는 완전한 다른 몸으로 다시 살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 몸이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눈은 반드시 두 개가 있어야 하고, 귀도 둘이며, 코는 하나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천국에서는 지금 우리의 몸과는 모습과 재질(材質)이 완전히 다른 것'은 분명합니다.
③부활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영광이 모두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다 똑같은 모습으로 부활(復活)하지 않습니다. 모습은 비슷하겠지만, 그 영광 즉 광채에 있어서 많은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15:40-41절)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사도 바울은 지금까지 땅에 있는 몸에 대하여 예를 들었습니다. 이것은 장차 부활(復活)할 몸이 지금의 몸과는 완전 다르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사람은 부활(復活)했는데, 해 같이 *빛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즉 *도저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復活)'합니다. 그의 온 몸에서 *태양과 같은 빛이 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보다 희미한 빛이 날 것입니다. 즉 *달과 같은 빛'입니다. 그 사람은 해 같은 사람이 있으면 보이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차별이 있다면, 천국이라고 말할 수 없지 않느냐?' 반박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한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사람이 만족해하고 감사한다면 그것은 *차별이라고 말할 순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더 큰 영광으로 나타날까? 그것은 예수님께 *가까운 순서' 일 것입니다. 즉 예수님처럼 *다른 영혼을 위하여 많은 것을 버리고, 희생한 사람이 가장 영광스럽게 나타날 것'입니다. 즉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려가면서 사랑한 사람이 태양처럼 빛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그 영광을 입은 사람들은 아무리 희미한 영광이라 할지라도 주님을 위하여 아무것도 버리지 않은 사람은 한명도 없다는 것입니다. 즉 *주님을 위하여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거기에 있을 수 없습니다. 무엇인가 버리고, 희생해야'합니다.
가장 많은 것을 버린 사람이 가장 큰 영광중에 나타날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막10:28절)...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이때
막10:29-30절)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아-멘 찬송가 606장 *해보다 더 밝은 저 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