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장소의 불문율―꽃진 자리 2022

[이영숙]

장소의 불문율

  ― 꽃진 자리 2022

이영숙

어느 날 밤은 아주 깜깜했습니다

태양이 두 번 꺼졌고

암전되었습니다

꽃은 없는데 꽃그늘도 없었는데 꽃이 졌다느니

꽃인 줄 몰랐는데 떨어진 걸 보고서야 꽃인 줄 알았다느니

지는 꽃이 더 아름답다는 말은 이제 비유로도 쓸 수 없게 되었다느니

우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은 이상한 감각인데

면을 밟으면 입체감이 느껴졌습니다

비는 경사의 속도대로 흘렀지만

추문도 미문도 비에 쓸려가지는 않았습니다

신발 잃어버리는 실수 같은 건 하지 말고 살아야지

근엄한 말씀들을 나무라며

꽃들이 속속 도착합니다

산 꽃과 진 꽃이 마주 절합니다

진 꽃은 시들지 않고 산 꽃들이 시들어가는

이 아득한 시절

  ―『다시, 이 땅의 아들 딸로 여행자로 오라』, 삼인,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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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독특한 구성으로 기획되었다. 책의 앞면 제호는 『너의 이름을 부른다』인데, 앞 페이지부터 '10．29이태원참사 <넋기림> 미술전시 자료집'이 실렸고, 뒷면 제호는 『다시, 이 땅의 아들 딸로 여행자로 오라』이고, 뒷쪽부터  1쪽으로 시작되는 '10．29이태원참사 1주기 되새김 시집'이다. 가슴 저미는 심정으로 쓰고 그린 작품들이 실렸다. 시를 제출한 후 1년 이상 이러저러한 우여곡절을 거쳐 나온 귀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