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하나 / 강기화
하얀말은 까말말이
까만말이라서 좋아
까만말은 하얀말이
하얀말이라서 좋아
둘이 꼭 안고
회색말이 될 수도 있었지만
줄무늬 멋진
얼룩말이 되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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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휠체어 / 강안나
겨우내 창가에
봄 햇살 기다리던
다리 아픈 우리 할머니
봄바람이 살랑살랑
꽃구경 가자며
휠체어를 밀어줍니다
꽃들이 반갑다고
저마다 방실방실
휠체어를 끌어당깁니다
저만치 울타리
연분홍 살구꽃잎 하나
할머니 가슴에 먼저 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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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햇살 / 공재동
그 많은
새싹들
다 키워내고
그 많은
꽃들
다 피워내고
지금은
우리 집
마당으로 와서
젖은 빨래를
말린다
오월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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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똥을 누는 소 / 곽해룡
쇠똥구리가 소똥을 구리다가
산등성이에 걸친 금빛 해를 보며 중얼거렸다
저 산 너머에는
황금 똥을 누는 소가 사는가 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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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털 / 권영상
참새 깃털 하나
길섶에 떨어졌다.
오늘 밤
요만큼 참새가
춥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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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 김곰
ㄱ이 친구를 데려왔다
ㄲ
ㄷ이 친구를 데려왔다
ㄸ
ㅂ이 친구를 데려왔다
ㅃ
ㅅ이 친구를 데려왔다
ㅆ
ㅈ이 친구를 데려왔다
ㅉ
ㅎ도 친구를 데려왔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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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 상 삐딱해짐 / 김성민
장래를 생각해
응!
상위 10퍼센트, 알지?
응.
자신 있지?
으.......응
뭐라
으 ㅇ
뭐라 뭐라
......
뭐라 뭐라 뭐라, 왜 대답이 없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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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 김철순
어떤 광부가 있었대
소리를 캐기 위해
땅 속으로 들어갔대
좋은 소리를 캐기 위해
아주 땅 속에 주저 앉았대
소리를 캐고 또 캐고
축축한 땅 속에서
컴컴한 땅 속에서
해가 바뀌는 줄도 모르고
소리를 캐고 또 캤대
모두들 그를 까마득히 잊어버렸지
그런데 어느 여름 날,
아주 좋은 소리를 캔 광부는
드디어 야호!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나왔대
"이 좋은 소리르 좀 보라고!"
"맴 , 맴, 맴, 맴."
높은 나무에 올라가 소리를 질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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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에게 물어봐 / 박방희
오늘 두 발이
어디 다녀왔는지
구두에게 물어 봐.
따라다닌 구두는
훤히 알지만
말은 안 할 거야.
코는 있어도
입은 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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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진다 / 박혜선
슈퍼에
세탁소에
미용실에
30년 넘게 떠있던
태양이
땅으로 내려온다
여덟 집이 오손도손 살던
'태양연립' 나무 간판 속 태양이
태양 슈퍼
태양 세탁소
태양 미용실이
땅으로 져서 부서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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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백민주
할머니가 이 동네에서 농사를 가장 잘 짓는다면서요?
누가 그카드노?
동네 사람들이 전부 그러시던데요.
운이 좋아 그리 됐제.
운이 좋아서요? 어떻게 운만 좋다고 그래요?
하늘님이 비 주제, 해 주제, 바람 주제.
그카고도 농사 못 짓는 사람이 누가 있겠노?
그게 운이 좋은 거에요?
글치, 그럼 머가 있으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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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호랑이가 사는 법 / 윤형주
동물원 호랑이
사람들이 오든 말든
사람들이 보든 말든
하품만 쩌어쩍 하면서
누워있다
무관심
무반응
무소유
동물원에서
사는 법을 터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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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사슴 뿔은 / 이정인
크리스마스인데 산타할아버지의
선물 마차가 보이지 않네
산타할아버지 집에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왜 선물 마차를 끌지 않나요?
루돌프가 많이 아프단다
이웃 마을 나무꾼이
루돌프의 뿔을 또 슬쩍 잘라갔구나
나뭇가지가 아니라고 그렇게 일렀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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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그만 풀꽃 / 이준관
아무리 쪼그만 풀꽃이라도
꽃향기는
멀리 가네
배가 고프면
꿀벌 찾아오라고
날개 지치면
나비 날아오라고
힘없이 고개 숙이고
걸어가는 아이
보고 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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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사전 - 고양이 가족 만들기
임수현
찻길 건너는
다리 셋인 고양이를 보았다
끼익! 빵빵~~
나는 얼른 다리 한쪽을 연필로 그려주었다
고양이는 다리가 새로 생긴 줄도 모르고
도로 위에 멍하니 서 있었다
파릇파릇한 풀밭을 그리고
그늘이 많은 나무도 한 그루 그려주었다
그 아래 아기 고양이 세 마리를 그려주었다
고양이는 풀밭을 조금씩 걷기 시작하더니
뛰고 구르고 새끼 고양이를 핥았다
풀밭 위엔 참치통조림을
그 곁에 하얀 그릇에 담긴 우유도 그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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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는 검다 / 전병호
까악
소리도 검다
까악
들도 검다
까악
저녁도 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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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 조수옥
그제는
전라도 댕겨왔당께요
어제는
경상도 댕기왔심더
오늘은
충청도구먼유
내일은
강원도래요
전국 곳곳을
싸돌아다니는
장마철
먹구름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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껌 씹는 신발 / 홍현숙
언제 붙었는지
찰싹
내 신발에 붙었다
그때부터
쩌억쩍 쩌억쩍
내 신발이
껌을 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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