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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교의 야경
우리는 민박집 사장님의 조언으로 1일권 티켓을 끊었는데, 다음날 밤까지 사용하기 위해서
밤10시30분 이후에 나와서 22번 트램을 타고 말로스트라스카 정거장으로 으로 갔다.
정거장에 내려 사장님이 알으켜 준 대로 이길 저길을 둘러보는데,
한국에서도 소문난 길치인 두 모녀가 프라하에서 밤에 어찌 길을 알 수 있으리.
그런데 저만치서 보이는 예사롭지 않은 불빛! 그 불빛만 따라 갔다.
조금씩 다가가니, 늦은 밤인데도 유독 카를교 가는 길목만은 각국에서 온 여행객들로 북적거렸다.
아시아의 작달막한 키의 촌스런 두 모녀는 그 광경에 와! 하며
그 사이에서 사람구경, 거리구경, 다리구경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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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속에서 잔잔히 흐르는 블타바강 위에서
카를교는 실시간으로 다른 빛의 옷을 입으며 신비로움을 더해 줬다.
그러나 압권은 카를교 입구에서 바라보는 프라하성의 야경이다.
카롤교의 가스등 아래서 2인조, 3인조로 구성된 거리악사들의 연주에
한동안 발걸음을 멈추고 넋나간 듯 서서 보기도 했다.
카를교는 블타바강위에 놓여져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구시가와 프라하성을 연결하고 있다.
9세기초 나무로 지어졌었는데, 홍수로 여러 차례 유실됐고.
현존하는 카를교의 모습을 지니게 된 것은 보헤미아의 왕인 ‘카를 4세 때’라고 한다.
다리의 이름도 카를 4세의 이름을 따서 카를교라고 한단다.
우리는 보헤미안 하면 집시를 떠올리는데, 보헤미안은 프랑스인이 집시를 부르던 말이다.
체코 보헤미아 지방에 집시가 많이 살아서 유래한 말이였는데,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사회의 관습에 구애되지 않는 방랑자,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는 예술가, 문학가, 배우, 지식인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집시하면
그냥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는 방랑자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듯 하다.
특히, 유럽쪽으로 여행을 가게되면 집시를 조심하라는 말을 많이 한다.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소매치기를 한다던지,
구걸을 하는 귀찮은 존재로 인식되어져 있는 것 같다.
카를교 다리 양쪽 난간에는 체코의 성인과 성서속 인물의 조각상이 30개나 세워져있다.
촌 스런 두 모녀는 카를교 위를 걸으면서 그 동상을 하나하나 세어봤다.
그 동상 하나하나에 프라하의 역사와 삶이 담겨져 있으려니 생각하며,
어떤 성인의 조각상인가 관심을 가지고 봤다.
그러다, 중간쯤에서 가장 인기가 있다는 '얀 네포묵 신부'의 동상을 발견했다.
'얀 네포묵 신부'는 왕비의 고해성사의 내용을 왕에게 말하지 않는다 하여,
왕의 분노를 사게되어 혀를 잘리고, 죽임을 당하여 강가에 버려졌다고 한다.
자신의 의무를 죽음으로써 다 하신 분. 죄인의 죄를 듣고 사하여 주시되
고해소에서 들은 죄인의 죄는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만 하는 사제의 의무를 지키신 분이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온 세계를 위해, 하는 거창한 대의가 아니라
한 죄인이 그에게 고한 죄를 발설하지 않고,
죄인의 자존심과 자신의 의무를 지키기 위한 소박함만으로도 생명을 내 놓으신 분이셨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더욱 그 분을 사랑하는지 모르겠다.
새삼, 가톨릭 사제의 사명을 생각했다.
내가 가톨릭 신자라 더 감상적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이 동상 아래에 두개의 동판이 있는데,
그 동판을 만지면서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언제부터 흘러나온 말인지 몰라도, 아마도 오래전부터 이 말이 퍼져 있었나 보다.
그 동판은 이미 닳고 닳아서 반질반질했다.
늦은 밤이건만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서 동판을 만질려고 모여들고 있다.
우리도 우야든동 한번 만져보려고 뒤에서 손을 뻗으나 닿지 못했다.
다음날을 기약하고 그냥 왔다.
근데, 갑자기 한줄기 굵은 소낙비가 예고도 없이 쏴~아 내린다.
말로만 들었던 동유럽의 변덕스러운 날씨인가 보다.
8월의 한여름임에도 밤의 날씨는 쌀쌀하여 도톰한 가디건을 걸쳐 입고 있었는데,
거기다가 준비 못한 소낙비까지,
길 위의 모든 사람들이 갑자기 당황해 이리저리 발걸음을 빨리하는데,
그 사이,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하늘이 개구쟁이처럼 장난치듯 시침을 뗀다.
물기 젖은 프라하성과 카를교,
거기다 가로등 불빛에 황금빛으로 반사되는 곳곳의 성과 조각상들은
프라하 야경의 끝을 보여주는데,
내 보잘 것 없는 디카는 이 환상적인 어둠을 도저히 담을 수 없으니, 오호.. 통제라!
어둠도 잊은채, 이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밤을 붙잡고 싶은 여행객들이,
어둠을 밝히는 노천카페의 희미한 등불 아래에 하나 둘 모여,
커피와 와인으로 여행의 맛을 음미하고 있다.
우리는 내일을 기약하며 발걸음을 재촉해 민박집으로 갔다.
가는 길에 다시 버스정거장을 찾느라고 헤매인 것은 말 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