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해석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이 문장의 뜻을 알려면 진리에서 말하는 “나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진리에서 말하는 “나”는 우리가 말하는 나가 아닙니다.
우리가 말하는 나는 육체에 대한 대명사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남에게 소개를 할 때에 나를 이렇게 사용합니다.
나의 키는 180쎈치요.
나의 몸무게는 70키로요.
나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지금은 회사에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나는 육체에 대한 대명사의 의미로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사용하는 “나의 의미는 다릅니다.
예수님이 말하는 “나는 육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육체의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비유를 보겠습니다.
여기 나무 인형이 있습니다.
나무 인형이 움직이는 것은, 뒤에서 누군가 조종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사람은 나무 인형이 움직이니, 나무 인형을 두고 나라고 말하는 것이고
진리로 거듭난 사람은, 나무 인형을 움직이게 뒤에서 조종을 하는 “영을 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육체가 움직이니, 일반사람들은 움직이는 육체를 나라고 알고 있는 것이고
진리를 아는 사람은 육체를 움직이게 하는 영원한 생명인 영을 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둘 다 같은 “나를 사용하지만, 그 뜻은 전혀 다릅니다.
진리를 모르는 사람이 말하는 나는,
숨이 넘어가서 썩어 없어질 육체를 나라고 말하는 것이요.
진리를 아는 사람은 영원히 살아있는 생명인 영을 “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마리아가 낳아준 육체에 대한 이름입니다.
불교에서도 보면, 부처님이 깨닫기 전, 육체에 붙은 이름은 싯다르타입니다.
싯다르타가 진리를 깨닫고 나서는 이렇게 부릅니다.
“여래(如來), 응공(應供), 정변지(正遍知), 명행족(明行足), 선서(善逝), 세간해(世間解), 무상사(無上士), 조어장부(調御丈夫), 천인사(天人師), 불세존(佛世尊).
10가지 이름이라고 해서 부처님의 십대명호라고 호칭을 합니다.
예수님도 진리를 깨닫기 전에는 육체에 대한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지만
진리로 거듭난 후에는 “그리스도라고 부릅니다.
단순한 이름의 변경 같지만, 그 차이는 엄청 큽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육체에 붙은 이름이라서 시간이 지나면 변하게 됩니다.
변하기 때문에 아기 예수에서, 청년 예수, 이렇게 하다가 육체는 늙어서 죽게 되고, 죽은 후에는 썩어서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의 영이 되신 “그리스도는 죽음이 없기에 영원히 살아계십니다.
영원한 생명이 아닌 육체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오늘 우리의 육체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육체는 여러 가지의 물질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여러 가지 물질로 이루어져 있기에, 육체에는 진정한 내 것이란 없습니다.
우리 육체를 이루고 있는 구성 물질 중에서 70프로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물입니다.
사람들은 내 몸속에 있는 물은 내 것이라고 하지만,
내 안에 있는 물도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으면 우리의 몸은 죽게 됩니다.
또한
밖에 있는 물이 몸 안으로 들어오지 않아도 우리는 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물을 마시고, 소변이나 땀으로 물을 밖으로 배출을 하는 것입니다.
물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땀구멍을 다 막아버리고, 소변을 보지 못하도록 막아버린다면 우리의 몸은 죽게 됩니다.
물은 내 것이 아니기에, 항상 순환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들어온 물은 몸 밖으로 다시 나가야 하고,
또 몸 안으로 물이 들어와야 우리의 몸이 존속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런 작용이 멈추면 우리의 몸은 죽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물을 내 것이라고 말을 할 수가 있는지요?
물이 정말 내 것이라면
몸 안에 있는 물이 밖으로 나가면 안됩니다.
물이 나가면 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물이 몸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우리는 죽게 됩니다.
몸의 다른 요소를 보겠습니다.
우리의 몸이 아무리 건강해도,
밖에 있는 공기가 몸 안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우리는 죽게 됩니다.
들어온 공기가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우리는 또한 죽습니다.
이 공기를 여러분은 나라고 할 수가 있는지요?
우리의 몸이 아무리 건강하다고 해도,
밖에 있는 음식물이 우리의 몸 안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우리는 죽게 됩니다.
음식물이 들어오지 않으면 우리의 몸은 말라서, 결국에는 죽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들어온 음식물이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우리는 죽게 됩니다.
여러분은 이 음식물을 나라고 말을 할 수가 있는지요?
여러분의 몸속에서 나라고 할 것이 무엇이 있는지요?
내 몸속에서 나라고 할 것이 하나도 없는데,
진리를 모르는 목사들은 이 몸이 나중에 다시 살아나는 부활이 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정말 몸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이 있다면, 물이 살아나는 것인지요?
아니면 공기가 살아나는 것인지요?
아니면 음식물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인지요?
도대체 무엇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인지요?
진리를 모르는 목사님들이여!
언제까지 신자들을 상대로 부활이 있다고 거짓말을 할 것인지요?
목사님 중에서 김학철 교수님은 올바른 말씀을 하시더군요.
몸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은 없다고 바른 말씀을 하시더군요.
몸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하고 있는 진리의 용어인 “나의 의미를 잘 알아야 합니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말하는 “나는 영원한 생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깨달은 후에 영원한 생명을 “나 아닌 다른 말로 사용을 하면 되는데, 언어에는 그런 명칭이 없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나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니,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의 눈에는 예수님이 말하는 ”나가
육체를 두고 하는 말인 줄 착각을 하여, 진리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에 대한 명칭이 열 가지가 있듯이,
진리를 깨달은 예수님도 영원한 생명인 “나를 다른 말로도 사용을 합니다.
그 명칭이 “길, 생명, 진리, 아버지, 천국, 왕국, 홀로, 독생, 신랑, 온전한 마음, 갓난 아이, 마르지 않는 샘물, 등등으로 사용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진리를 깨달은 후에 영원한 생명인 “나를 두고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나는 진리요, “나는 생명이다.
이 “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나를 다른 말로 진리, 또는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올바른 진리(나)의 길로 가지 않고는, 누구도 영원한 생명인 아버지로 갈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명칭이 나와 아버지가 다른 것 같지만 실은 같은 명칭을 다르게 사용하는 것뿐입니다.
같은 명칭을 두고 하는 말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나중에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진리를 모르는 목사들은 예수님이 살인자라고 하는 여호와를 아버지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예수님하고 여호와는 하나이다라고 해석을 합니다. 참으로 웃기는 해석입니다.
정말 예수님하고 여호와가 하나일까요?
신명기 21장에 보면, 여호와 말하기를, “남의 자식이든 너의 자식이든 반항하는 10대들을 즉석으로 끔찍하게 처 죽여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자식까지 죽이라는 여호와가 사랑이 넘치는 하나님으로 보이는지요?
또 에스겔 9장을 보면,
여호와는 무기를 갖고 나와서 남녀, 노소, 어린이, 임산부를 불쌍히 여기지 말고 다 죽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뭐라고 하셨나요?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형제를 사랑하고,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이 보기에 사람을 다 죽이라는 여호와하고, 모두를 다 사랑하라는 예수님하고 같다고 보시는지요?
진리가 뭔지 모르는 목사들은 진리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저런 이상한 해석으로
살인자인 여호와하고 예수님하고 같다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위에 혹시 여호와 살인자를 하나님이라고 하는 목사가 있다면 이런 분은 아직 진리가 뭔지 모르는 분임을 아셔야 합니다.
그런 곳에 계속 다닐 것인지 말 것은 여러분이 알아서 하시면 됩니다.
다만 여호와를 하나님이라고 하는 분은 아직 진리가 뭔지 모르는 분이 틀림없다는 것을 아시면 됩니다.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용어가 바로 “나입니다.
이 “나의 의미를 모르면, 진리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이 “가 그렇게 중하니, ”나의 뜻을 꼭 알아놓으시기 바랍니다.
이것만 알아도 성경을 해석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항상 의문이 있으면 물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