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알 뒤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함석헌
‘씨알의 소리’ 애독자 여러분!
그동안 안녕하십니까? 너무나 오래간만입니다. 어떻게 이 모진 역사의 풍랑을 이겨 오셨습니까?
여러분이 이미 아시는 대로 ‘씨알의 소리’는 1980년 7월 갑자기 들어선 군사정권의 칼에 잘린 지 8년 만에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저들은 씨알을 칼로 자르면 쉽게 죽을 줄 알았겠지만 씨알은 죽지 않습니다. 죽는 법 없습니다. 죽이면 죽은 것 같으나 다시 살고, 다 죽어 없어졌다가도 굳은 땅껍질을 들추고 일어나는 들풀 같은 씨알입니다.
나도 그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불의한 세력들은 나를 연금, 미행, 도청 등 갖은 방법을 다해 나의 입을 막고 나의 붓을 꺾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보려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전국 곳곳, 어느 산 어느 골짜기 골짜기 마다 이름 모를 수많은 씨알들의 꿈틀거림, 작은 외침, 부르짖음이 함성이 되고, 마침내 도도한 물결을 이루어 불의의 세력들을 밀어붙인 것이 작년 6윌의 싸움이 아닙니까?
이때 나는 갑작스런 병을 얻어서 병원에 누워 있었고 마침내 대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오늘까지 병원을 드나들면서 살아오고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은 이미 여러 번 기회 있을 때마다 말한 바 있지만 나의 힘이 아니라 이름 모를 수많은 씨알들의 힘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씨알 뒤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씨알 여러분의 힘에 의해 내가 있습니다. 씨알의 소리도 이제는 여러분의 소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는 12월에 복간호(통권 96호)를 낼 계획입니다. 편집위원들이 새로 구성이 되어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시간이 지나가다 보니 씨알들의 주소를 알 길이 없고 또 내집이 불이 나면서 옛 서류가 모두 불타 없어졌습니다. 강호에 계신 씨알 여러분은 먼저 본사로 주소를 알려 주시기를 바라며 구독을 미리 신청하셔서 씨알 가족이 돼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서로 서로 연락해서 힘을 하나로 모으시기 바랍니다.
씨알의 소리 1988. 12 복간호 96호
저작집; 9- 333
전집;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