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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영화】
이문열 원작과 박중원 감독의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우리시대 권력에 대한 저항-
이명진
1. 들어가며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초등학교 교실이라는 공동체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한국사회의 왜곡된 의식구조와 권력 형태를 신랄하게 비판한 중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우리들의 주변에 만연되어 있는 영웅 심리와 청소년기의 일그러진 가치관을 보여 줌으로써 역사 현실과 정치세태 등의 문제를 고발하고 있다. 누구나 감추고 있을 법한 은밀한 두려움과 비겁한 복종을 심리적 기법으로 풀어가면서 어린시절 불합리와 불의에 휩쓸렸던 체험을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상기 시켜 준다. 우리는 누구나 한두 명의 힘센 석대, 두어 명의 의협심 강한 병태, 대다수의 무력한 의지박약아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오늘의 현실 상황은 불의의 힘과 억압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져 있을까. 개개인의 양심과 도덕성은 얼마나 지켜지고 있을까. 자유당 정권 말기 무렵의 5학년2반 교실은 아직도 사회 곳곳에서 ‘엄석대 왕국’을 만들어 가고 있을 일이다. 박종원 감독이 영화화한「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원작의 감각을 충분히 살려냈다고 생각한다. 1992년도 몬트리올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원작의 주제 의식을 충분히 살려 내고 있다는 점에서 잘 만들어진 영화라 할 수 있겠다. 급장역의 홍경인과 화자 역을 맡은 고정일의 뛰어난 표정 연기와 분위기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격조 높은 예술 작품으로 만드는데 손색이 없었다고 본다. 특히 홍경인의 음침한 독재자 연기는 오래도록 내 기억 속에서 회자 될 일이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1987년 6월 [세계의 문학] 44호에 발표되어 제11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1980년대 후반 한국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불합리한 조건 속에 놓여 있는 인간들의 삶을 비판적인 각도에서 성찰하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은 한국 정치사의 판도를 교실 공간을 통해 우의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이해에 어려움이 없고, 얼마간 도식적인 느낌을 준다. 시대적 배경은 자유당 정권의 독재가 기승을 부리던 말기에서부터 4.19를 거치는 시기가 주를 이루며, 세월을 건너 1980년대 중반의 새로운 독재 시대를 아우르고 있다. 이 작품에서도 무서운 독재와 그 독재의 아성이 무너지는 시점, 그리고 성인이 되어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시대의 세 배경이 상호 교섭되면서 한국 현대 정치사를 관통하는 시점을 보이고 있다. 아이들의 집단생활이 성인 사회를 비판하고 있으며 또 충분한 리얼리티를 가미하여 문학으로서의 기능을 가능하게 하였다. 권력의 실상만을 전한다기보다는 그 형성과 몰락 사이에서 점차로 변해 가는 인간심리 또한 잘 꼬집어 낸 듯 했다. 다시 말해 한 사회를 비판하는 소설과는 달리 고도의 심리분석 기법을 통해 권력에 대한 우리들의 저항과 비겁한 순응, 그리고 우리 사회의 뒤틀린 영웅관과 지식인들의 굴절된 가치관을 내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소설이 영화화되면서 어떠한 각색을 거쳤고 또 감독의 창작의도가 어떻게 가미되었는지 비교해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하겠다.
2. 원작 소설과 영화와의 차이점
처음 영화를 보면서 원작에 너무 충실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큰 차이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 전반에 중요하다 싶은 장면 장면마다 깔리는 1인칭 독백은 이문열 원작, 그 자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또 그대로 써도 될 만큼 탄탄했다. 현실감 있게 상황을 전달하는 그의 문장이 별다른 각색 없이 영화 흐름에 적절히 사용되었다. 기껏해야 물을 떠오지 않겠다고 버티는 ‘한병태’에게 윽박지르는 것이 ‘엄석대’ 자신이냐, 아니면 그의 심복(?)들이냐 하는 차이 정도였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원작과 다른 몇 가지 설정이 가미 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소설이 사설 학원 강사가 된 병태의 회상으로 이루어지는 데 반해, 영화는 5학년 담임선생님의 장례식장에 옛 급우들이 모이는 상황을 새롭게 설정하고 있다. 소설의 화자였던 병태(어른인 병태)는 영화에서는 내레이터 역할을 한다. 은사의 장례식장에서 병태는 농사꾼이 된 영팔, 택시를 운전하는 체육부장, 땅값이 크게 올라 졸부가 된 꼬마 한만수, 국회의원이 된 6학년 때의 담임선생님, 암흑가의 거물이 된 것으로 보이는 석대 등과 재회한다. 영화의 기능은 이들의 변화를 한국 사회의 부조리한 세태 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역할로 연출해 내고 있었다. 영화에서 김영팔이라는 인물의 활약상은 원작에는 없는 것이다. 영팔이란 인상적인 캐릭터는 진실이 무엇인가를 아는 순수한 소년이다. 영팔은 5학년 2반의 어떠한 아이들보다도 또한 타성에 젖은 대다수의 어른들보다도 훨씬 현명하다. 영팔의 가치는 김 선생님의 혁명으로 석대의 잘못이 낱낱이 까발려지는 장면에서 결정적으로 발휘된다. “니네들도 나쁘다.”며 울음을 터뜨리는 어리숙하지만 진실 된 외침은 모두가 외면하고 있던 진실 된 양심은 새로운 권력에 재빠르게 편승한 ‘엄석대 왕궁’의 식민들에 모순을 우리 모두 직시하게 만들었다.
또한 과거 ‘엄석대 왕국’에 식민이었던 5학년 2반 아이들이 선생님의 죽음을 계기로 어른이 된 지금, 그들 일부는 요즘 같은 세태에 ‘엄석대’같은 위인이 다시 한번 나타나길 바라기도한다. 그들에게는 억압과 굴종을 받친 대신 얻을 수 있었던 안정과 질서가 존재한 5학년 2반의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식민지적 가치관도 보인다. 또 ‘임만수’와 같이 억압과 굴종의 끄트머리에서 허우적 되던 아이들은, 힘 있고 덩치 있는 아이들이 어깨 펴고 살던 시대에서 재력 있는 놈이 최고가 되는 사회로 변모되어 가는 현재를 주지시킨다.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 모두 ‘엄석대’가 이 장례식에 나타나 그의 종적에 대해 알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엄석대’는 선생님의 장례식장에 나타나지 않았고 덩그러니 큰 화환만을 보내는 데, 원작에서 그가 형사에게 끌려가는 것을 우연히 ‘한병태’가 보는 것으로 처리한 것과는 사뭇 달랐다. 여전히 ‘엄석대’는 알 수 없는 분위기에 휩싸인 신비의 인물이고 일그러는 졌지만 변함없는 그들의 영웅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또한 ‘엄석대’ 일당이 행하는 불의, 특히 책에서 ‘한병태’가 겪었던 수많은 불의는 구체적으로 언급된바가 없었기에 영화 속에서 새로이 각색된 것이 많았다. 그러므로 불의를 자행하는 그들의 모습이 더 비열하고 폭력적으로 보였다는 점이다. 전학 첫날 급장과의 첫 대면은 스스로 걸어서 급장에게 가는 소설과는 달리, 미화부장과 청소부장의 우악스런 멱살에 끌려 마룻바닥에 내치는 식으로 거칠고 폭력적이게 그려졌다. 또 청소하는 ‘병태’위로 쏟아져 내린 책걸상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였고, ‘엄석대’ 일당이 행하는 담력테스트-기차가 달려오는 레일 위에서 누가 더 오래 누워 있나를 시험하는 놀이-도 위험천만이었다. 무엇보다 ‘병태’가 자유와 희망의 논리를 스스로 포기하고 ‘석대의 왕국’으로 편입되어 달고 단 굴종의 열매를 맛보던 시기에 학기말 고사가 끝난 뒤 다함께 모여 노는 모습은, 책의 내용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책에서는 ‘석대’가 아이들을 3부류로 나눠서 첫 부류는 과자와 사이다를 사오게 하고 두 번째 부류는 집에 가서 고구마와 밤 따위를 가져오게 했으며 나머지 부류는 불을 피울 수 있도록 나무 가지 등을 구해 온 뒤 모닥불을 피우고 가져온 고구마 밤을 익히는 동안 과자와 사이다를 먹으며 그들이 즐길 수 있는 갖가지의 놀이를 함께 즐기는 것이었다. 그 놀이도 어디까지 초등학생이 할 수 있는 범위 그 이상의 것이 아니었다. 반면 영화 속 아이들은 무슨 깡패 집단처럼 음산하기 그지없었고 ‘석대’는 그들 앞에서 무슨 집단의식을 행하듯이 토끼의 배를 칼로 가르고 피워둔 불 위에서 돌려가며 익히는데 바비큐를 굽듯 토끼를 끼운 쇠꼬챙이를 빙글빙글 돌리는 담당도 따로 있었다. 더 놀라운 건 어디선가 여자를 불러다가 ‘병태’ 옆자리에 그가 마음에 들어 하는 아이를 앉혀주는 일이다. 더구나 여자가 들어올 때 ‘석대일당’이 모닥불 가에 둥글게 서서 치던 박수는 아이들로써는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낯설음이 서려 있었다. 또 새로 부임 한 선생님에 의해 그의 왕국이 그토록 쉽게 무너진 것을 본 뒤 교실을 뛰쳐나간 ‘엄석대’가 저지른 행동도 가히 저돌적이고 충돌적으로 묘사된다. 책에서는 집요하고 긴 복수를 오래도록 꾸준히 지속시켜나가는 그에게 절대 지지 말라고 윽박지르는 김 선생님의 폭력이 묘사되나, 영화에서는 엄석대가 그의 왕국에 불을 지르고 도망쳐 그 후론 읍내에서도 다신 볼 수 없었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새로 부임한 '김 선생님'의 정계 진출 여부이다. 자유와 희망을 2년간이나 빼앗겼던 5학년 2반에 아이들에게「너희들은 당연한 너희 몫을 빼앗기고도 분한 줄 몰랐고, 불의한 힘 앞에 굴복하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와 같은 말로 잊혀졌던 그들 내부에 잠재하던 정의로운 의식을 불러 일으켰다. 이어서「그런 너희들이 어른이 되어 만든 세상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며 깊은 반성을 요구한다. 이러한 일련의 모습들은 그를 진정한 교육자적 모델로 생각하게 되고 나 또한 5학년 때 담임과는 전혀 다른 긍정적 교육자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참내기였던 ‘김선생님’이 교육자로써의 길을 가면서 그 생각이 변하여선지는 몰라도 영화 속에서 그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이익집단에 종사하는 사람다운 면모를 갖추었다. 즉, 정치계로 입문하여 국회위원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분명 독재자의 종말을 가능하게 하였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도 폭력과 독선을 행세했다. 아이들은 얼른 새 담임교사의 폭력 앞에 복종함으로써 ‘엄석대’의 독재에서 탈출하는 것이 아닌 또 다른 형태의 독재 속으로 편입되는 것이었다. 급장 ‘엄석대’가 자유당정권의 막바지 정치세력을 좌지우지했던 권력자들을 연상시켜준다면, 후에 부임한 새 담임은 개혁․변화를 부르짖으며 등장했지만 결국 또 다른 권력자로 전락해 가는 독재자의 재현일 뿐이었다.
영화의 전반부에서 주인공이 내뱉은 독백처럼 그 해 봄부터 가을까지 ‘한병태’에게 일어난 외롭고도 힘들었던 싸움을 돌이켜보면 언제나 그때처럼 막막하고 암담해 질 것이고 또 그런 싸움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흔히 빠지게 되는 상태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사실은 아직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스스로 어쩌지 못하는 거대한 권력의 힘은 한 인간을 끝없이 굴욕적이고 허망하게 만들고, 그것은 자라서 사회인이 되어서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일그러져 가는 우리 사회와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사회는 여전히 그때의 5학년 2반 같고, ‘엄석대’ 또한 어딘가에서 또 다른 급장의 모습으로 그만의 왕국을 다스릴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 시대의 영웅은 과연 누구인가? 반장과 ‘한병태’와 새 담임교사는 각기 다른 의미에서 영웅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은 모두「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일뿐이라는 것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병태도, 석대도 아닌 학교와 선생님에 대한 지식인들의 역할이었다. 무엇보다 작품의 중반까지 읽어 내려가며 학급이 저렇게 운영되어가고 있을 동안 담임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했다. 교사로서의 사명감을 망각한 선생님의 학생들에 대한 방치와 암묵적으로 석대에 대한 방조가 이러한 학급을 생성하게 된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되었다. 이 후 부임하게 된 6학년 선생님에 대한 느낌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학생들의 자발성을 생성시키기 위한 토론, 토의 위주의 학급운영 방식은 신선한 혁명이었다. 시대적으로 군사정권과 초기 민주주의에 대한 혼란으로 자율과 억압에 혼란을 가하던 시기에 앞으로 사회에서의 학생들의 온전한 역할 수행을 기대하는 선생님의 시야는 급진적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폭력에 굴하는 학생들을 바로 잡고 앞으로의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 참된 교육을 수행하는 교사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줄 알았던 그 역시 국회의원이란 허울에 심취하는 것을 보며 이 시대의 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얼마나 나약한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3. 끝맺으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개성적인 미학과 함께 소설과 영화 모두 성공한 작품이라 하겠다. 사람들은 같은 내용을 다른 방식으로 향유하는데 매력을 느낀다. 그래서 좋은 소설은 영화로 각색되고, 좋은 영화는 다시 소설로 쓰여 지는 것 아닐까 싶다. 소설과 영화 사이에서 독자이자 관객인 우리는 해석의 풍부함과 시각의 다양성 및 감각의 차이들을 경험 한다.소설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이문열 특유의 수사들과 만나면서 지적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또한 박종원 감독의 영화에서는 50년대 후반 초등학교 교실의 풍경과 소품들의 분위기에서 실제와 다름없는 영상미를 맛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사회 속에서 점점 불의와 야합되어가는 우리를 돌아보게 함으로써 어릴 적 꾸었던 꿈과 희망을 되살려 준다. 또한 까맣게 잊어버렸던 유년의 상기 시키며 사회에 통합되어 살아가는 우리에게 현재 자신의 위치와 상태를 자문하게 하는 기회를 주고 있다. 병태가 석대에게 결국에는 자신의 능력 중 일부를 헌납하고 그에게 복종하게 된 것과 더불어 사회에서의 병태와 그의 동창들은 석대를 그리워하지만 그를 한없이 깎아내리는 대화를 하곤 한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식에서 행해지는 이러한 행동은 우리사회에 팽배해 있지 않은가.
자장면과 설탕과자와 서커스와 극장구경, 양은 도시락 등의 소도구들은 언제든 다시 볼 수 있는 영상 속에 살아 있다. 어린 시절, 자신과 타인 모두에 대해 저지른 위선마저 추억이 되는 기억들. 그것은 우리들 각자의 일그러진 양심과 무기력 앞에 아름다운 그리움으로 변해 버렸다. 그래서 권력에 대한 끊임없는 저항은 새로운 권력으로 각자의 몫으로 남는 것 아닐까 싶다. 그러므로 시대의 변화에 따라 권력을 가진 자는 새롭게 등장하고, 권력의 구조적인 틀은 변하지 않는 것이리라. 작가 이문열과 영화 감독 박종원이 보여 주고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