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사무 7,4-17; 마르 4,1-20
+ 오소서, 성령님
추운 날씨에 미사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늘은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입니다. 1567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성인은, 변호사가 되어 시의원직을 이어받기를 바랐던 아버지의 염원에 따라 법학을 공부했지만, 반대하는 아버지를 설득하고 결국 사제가 되었습니다.
당시 칼뱅파의 중심지였던 스위스 제네바 교구에서 활동했던 살레시오 성인은, 많은 칼뱅파 신자들을 가톨릭으로 회심시켰고, 35세의 나이에 교구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거룩함의 길은 수도자와 성직자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던 당대의 세태에 맞서, 평신도들이 성인으로 부르심 받았다는 것을 계속해서 주장하였습니다.
성인은 자신의 저서 『신심 생활 입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심이 군인이나 상인, 왕자 또는 결혼한 부인들의 생활에는 잘 맞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오류 혹은 이단에 가까운 것이다.” 1622년, 55세의 나이로 선종하신 성인은 1664년 시성되셨고, 1877년에는 교회학자로 선포되셨습니다.
성인께서 남기신 말씀 중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인내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해 인내해야 합니다.”
오늘 1독서에서는 구약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 중 하나가 봉독되었는데요, 바로 메시아에 대한 하느님의 약속입니다. 하느님의 궤를 모셔 온 다윗은, 주님의 궤를 천막에 모시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려 하느님께 성전을 지어 바치려고 마음 먹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네가 나의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의 집 곧 너의 집안을 굳건하게 하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너의 날수가 다 차서 조상들과 함께 잠들게 될 때,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나는 그 나라의 왕좌를 영원히 튼튼하게 할 것이다.”
우리는 이 예언이 누구에게서 이루어지는지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다윗의 후손’이라 부르는 이유가 바로 이 말씀 때문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어떤 사람이 씨를 뿌렸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지고, 어떤 것은 돌밭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집니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싹이 나고 자라서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똑같은 하느님 말씀이 사람들 마음에 뿌려지지만, 그 마음 밭이 어떠한 상태인가에 따라 각각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 밭은 어떤 밭일까요? 우리 마음은 한결같이 돌밭이거나 가시덤불이거나 좋은 밭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때때로 변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말씀이 길에 뿌려지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들이 말씀을 들으면 곧바로 사탄이 와서 그들 안에 뿌려진 말씀을 앗아 가 버린다.” 예수님께서 당신 수난을 처음 예고하셨을 때 베드로가 나서서 반박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마르 8,33)라고 호통치십니다. 이때 베드로의 마음은 길바닥이 되었었던 것입니다.
“말씀이 돌밭에 뿌려지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 … 그들에게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예수님께서 붙잡히셨을 때, 제자들은 뿔뿔이 도망갑니다.(마르 14,27.50) 그들의 마음 밭이 돌밭이 되었던 것입니다.
“말씀이 가시덤불 속에 뿌려지는 것은 또 다른 사람들이다.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욕심이 들어가,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영원한 생명을 얻고 싶거든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을 듣고 울상이 되어 떠나간 부자(마르 10,17-22)가 이에 해당합니다.
“말씀이 좋은 땅에 뿌려진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어떤 이는 서른 배, 어떤 이는 예순 배, 어떤 이는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 말씀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곰곰이 생각하고, 간직하여 열매를 맺는 것, 말씀이 내 삶을 변화시키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가장 좋은 예를 우리는 성모님에게서 봅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은 어떤 밭입니까? 너무나 겸손하셔서 좋은 밭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만, 좋은 밭입니다. 그러기에 이 추운 날씨에도 나와서 미사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성당에 나와 미사를 드릴 수 있는 것 자체가 은총이고 ‘나’에게서 주님께서 맺으신 열매입니다.
스스로 돌밭이나 가시덤불처럼 느껴지신다면, 그리고 삼십 배, 육십 배가 아니라 별 소득 없는 열매를 맺는다고 생각되신다면, 살레시오 성인의 말씀을 기억해 봅시다.
“모든 것을 인내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해 인내해야 합니다.”
‘나’라는 밭에서 하느님께서 열매를 맺어주시는 것이지, 내가 스스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열매 맺으시도록 우리를 내어드려야겠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
보잘것없는 저도 오늘만큼은 주님의 좋은 밭입니다^^
이렇게 놓친 본당신부님 강론을 챙겨 듣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