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글】
한금산 시인의 부음을 듣고
- 「그냥 두렴」과 「할머니의 눈」 두 편의 동시를 떠올리다 -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한금산 시인(1943.04.15.~ 2021.10.19. 교육자, 아동문학가)의
갑작스러운 부음을 듣고
두 편의 동시를 떠올렸다.
「그냥 두렴」과 「할머니의 눈」
작가는 가도 작품은 독자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는다.
이 두 편의 동시에는 공교롭게도
할머니가 등장한다.
그냥 두렴 / 한금산
겨우내 찬바람 이겨낸 시금치 까치가 와서 고갱이만 남기고 뜯어 먹었다
아빠는 말뚝을 박고 그물을 쳤다
“까치에겐 보릿고개인데 그냥 두렴”
옥수수가 수염 색깔이 변하기 시작할 때 까치가 파고 뜯어 먹었다 아빠는 또 그물을 쳤다
“나눠 먹고 살게 그냥 두렴”
동생이 책상에 매달려 아빠가 쓰던 원고를 망쳐 놓았다
“저도 쓰고 싶은 게지, 그냥 두렴”
할머니 말씀은 하나뿐이다
“그냥 두렴.”
할머니의 눈 / 한금산
“아이구, 내 강아지!” 할머니가 나를 안아 줄 때 하시는 말이다
할머니 눈을 쳐다봤다 조금도 이상한 눈이 아니다 그런데, 왜 구별을 못할까? 강아지와 나를
내가 살랑살랑 흔들어대는 꼬리가 없는데도 꼬리가 보이는 걸까?
없는 것도 보이는 할머니의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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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할머니는 인자하신 어르신의 상징이다.
부처님 얼굴처럼 선량하신 분이다.
학교 선생님만큼 지식과 지혜가 풍부하신 분이다.
어느 추운 겨울날,
원로 문학평론가 송백헌 박사님이 불러내어
대전문인총연합회 소모임에 참석했다.
회의를 마치고 식당을 나섰는데
영하의 날씨에 바람은 세차게 불었고,
승용차가 없는 이는 송백헌 박사님과 나뿐이었다.
고령의 송 박사님은 어느 시인이
택시를 잡아 모시고 갔고,
나는 혼자 추운 골목길을 터덜터덜 걷고 있는데,
한금산 시인이 급한 발걸음으로 따라오면서
“윤 선생님은 방향이 어디냐?”고 물었다.
도마동 방향이라고 했더니,
“제 차를 타시지요.”라고 했다.
한금산 시인이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춥지 않게 편안히 귀가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한금산 시인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온화한 미소가 마치 그분의 작품 속
할머니와 닮았다.
그분의 잔잔한 미소는 타고날 때부터였을까?
아니면 동시를 쓰면서 자연히 만들어졌을까?
그런 우문(愚問)은 따뜻한 할머니의 인품이
어떻게 만들어졌느냐는 물음과 같다.
동시 작품 이미지와 평소 삶의 모습이 다르지 않았던
한금산 시인.
멀리 떠나가신다는 부음을 나는 믿지 않는다.
작품 속에 용해된 시인의 넉넉한 인품과
따뜻한 미소는 영원히 독자의 뇌리에
각인돼 있는 까닭이다.
2021. 10. 21.
삼가 한금산 시인의 명복을 빕니다.
- 윤승원 記
첫댓글 ※ 페이스북 댓글
◆ MyoungSun Kim(시인, 대전문인총연합회장) 2021.10.21.21:00
한금산 시인의
주된 언어는
미소와 눈웃음이었지요.
▲ 답글 / 윤승원 2021.10.22.01:00
정답을 콕 짚어 주셨습니다. 역시!
※ 페이스북 추모글
◆ 박진용(동화작가, 전 대전문학관장) 2021.10.22.23:20
한금산 선생님의 시심을 바라보는 윤승원 선생님의 시선이 참으로 따뜻합니다.
▲ 답글 / 윤승원 2021.10.23.05:20
고인의 작품이 좋습니다.
인연이 오래되지는 않았고, 만남도 그리 많지 않았지만,
깊은 인상을 주신 따뜻한 분이었습니다.
언제나 정이 넘치시는 박 관장님 감사합니다.
◾‘올바른역사를사랑하는모임[올사모]’ 댓글
◆ 정구복(역사학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021.10.23.08:00
한금산 시인의 명복을 충심으로 빕니다.
장천 윤승원 선생이 소개한 그의 동요 시를 통해
그의 소박한 마음씨를 읽을 수 있습니다.
▲ 답글 / 윤승원 2021.10.23.09:00
정 박사님께서도 고인의 명복을 함께 빌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저 높은 세상에서도 따뜻한 미소로 답을 주시는 것만 같습니다.
한금산 시인이 생시에 빚어놓은 ‘할머니 말씀’은 영원히 살아 있는
순수한 동심입니다.
평소 고인의 글을 많이 읽어보진 못했지만 이 두 편의 동시를 통하여 그의 작품 세계가 훤히 그려집니다. 시인의 따뜻한 시선이 읽는 이의 마음 마저 훈훈하게 하는군요. 좋은 글 올려주신 윤 선생님께 감사하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문단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한금산 시인(1943)은 강원도 인제 출신으로 그 유명한 소설가 한수산 선생(1946)과 형제간이라 들었습니다. 문필가이자 교육자로서 성공한 집안의 형제입니다.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강 선생님의 명복기원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