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찬의 소개 말씀입니다. 저는 교수님이 법문하실 때 부엌에서 밥하는 사람입니다. 제 불명은 문수안으로 실상사 도법스님께 받았고, 화곡동 성심사 이명우스님 스님 제자로 불법을 공부하고 있으며, 1989년부터 지금까지 무루회를 이끌고 있는 사람입니다.
부처님 법은 무루회 시작 후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1989년, 저는 종가의 종부로 시어머니 모시고 살림하며 아이 키우는 주부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빨래 풀을 해서 다듬고 있는데 친구가 스님 법문 들으러 가자고 왔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절에 가본 적도 없는 살림만 아는 주부였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제 친정 증조할머니께서는 ‘내가 어쩌면 극락 갈꼬?’하며 열심히 기도하시고 절에 다니셨습니다. 아마도 모태신앙처럼 그런 마음이 스며들어 ‘만약 종교를 가지면 불교를’하는 마음이 숨어 있었던 듯합니다.
친구의 권유에 다듬이 하다말고 두 말 않고 따라 나섰습니다. 가 보니 강원도 토굴에서 수행하시는 비구 노스님이셨습니다. 물론 비구, 비구니 어떤 뜻인지도 그때는 몰랐지요. 반야심경을 설하시는데 기이해 하며 경청을 했습니다.
스님께서 제게 “너는 절에 다니는가?”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습니다.” “왜 왔는고?” “종교를 가지면 부처님을 믿을까하고 왔습니다.” “왜 그러한고?”
“다들 50, 60, 80언제 죽을지 모르나, 사랑하는 남편도 자식도 같이 가지는 못합니다. 저 혼자 종교생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참 훌륭한 대답이다.” 훌륭하다고 안하셨으면 부처님 안 믿었을지도 모르는데 스님께서 훌륭하다 하시니까 우쭐해서 진짜 부처님 열심히 믿으면 잘 되겠다 싶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 같습니다.
그 후 동네 아줌마 일곱이 모여 ‘좋은 일 한 번 해 보자’하고 모여 총무를 맡았습니다. 집집마다 돌며 스님을 모셔 법회를 열고 점심 공양을 하며 많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30여명이 모이더군요.
1년 반을 그렇게 돌며 법회를 하다 저희 집에 정착해서 지금까지 89년부터 2005년 이니 16년 정열이 지금도 여전합니다. 지금은 정회원이 130명이 넘습니다. 어느 스님이 오신다고 대문에 크게 서 붙여, 누구나 부처님 법을 알도록 열린 장을 만들어 왔습니다. 매달 정산을 하고 11월이면 어려운 곳을 선정하여 연말에 어려운 이웃을 찾아다녔습니다. 서울 부근의 양로원 고아원을 다녔지요. 저는 9월부터 개인적 탁발을 다닙니다. 미역도 얻고 플라스틱 바가지도 얻고---. 탁발의 인욕이란.
여기는 대개 모티브가 비슷한 분들이시지요? 저는 무작정 덤벼들어 매년 연년이 해결해 나갔습니다. 병원, 국회의원, 동네 아줌마들, 좋은 일하자고. 불자들에게는 불자들이 해야 할 일이라며 탁발을 한지 10여년 지났습니다. 5만원, 10만원, 남편 환갑이라고 100만원--. 그런데, 이런 일이 상을 심어주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자가 좋은 일하고 상이 붙으면 안 되겠구나.
그러던 중 2002년 선우 전주지회 천천클럽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찾던 것이었습니다. 천원이 천명이면 100만원인데 천원이라는 적은 돈에 상이 붙겠는가? 싶었습니다.
송광사에서 2002년 5월 발대식을 갖고 총무도 일이 될까 의아해 했는데, 저는 회원 한 가정에 4명씩 100집이면 거기다 덤 해서 500구좌, 거기다 밖에서 팔면 필경 1,000명은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동네 아줌마들은 돈 벌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큰일에서 찾지 말고 작은 일부터 하자. 은행구좌 7개를 이체하는 비용 안 들게 열었습니다. 첫 달에는 기대에 차지 않았습니다. 무루회는 단독 주택입니다. 지하차고에서 폐식용유로 비누를 만들어 팔아 100만원을 채웠습니다.
사실 힘듭니다. 100여 명의 회원이 둘째 목요일에 모이는데 가정의 사소한 얘기까지 모두 카운슬링을 해야 합니다. 저는 카운슬링을 위해 전화 2대를 쓰는데 집안일을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스님께 여쭙기에는 어렵고 빈손으로 갈 수 없다는 거지요. 그러나 동네 아줌마는 편안하고 스스럼없이 모든 얘기를 털어 놓을 수 있나 봅니다. 모든 지원을 하며 89년부터 현재까지 끌어 오는데 제가 올해 58살입니다. 너무 힘들어서 60까지만 하겠다고 공언을 했는데 아직 아무도 안 나서고, 선뜻 맡아하기에는 너무 크지요.
이제 개인적인 얘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훌륭한 공부도 못했고 조계사도 일 년에 한 번도 제대로 못 가고 공부도 별로 못 한, 큰 지도에나 작은 점으로 나타나는 경상남도 욕지도 옆 작은 섬 출신입니다. 6,70호 사는 섬으로, 시내에 가려면 30분 배 타고 또 1시간 가야 하는 외진 데지요.
그런데 저는 ‘서울을 가고 싶다’ 하고는, 말도 초등학교 때부터 표준어를 썼습니다. 동무들이 모래로 까치집을 지을 때, 장난으로 “할매 밥 묵으라.”하고 놀면 저는 “할머니 진지 잡수세요.”했습니다.
서울을 그토록 갈망했더니 그 섬에서 유일하게 서울로 시집온 사람이 저입니다. 아마도 이게 발원이었구나 싶습니다. 부처님 법을 배운 후 생각해 보니 불법은 발원하고, 서원하면, 마음먹으면 틀림없이 된다는 겁니다.
무루회 시작 후 친구 따라 첫 번 발 디딘 성심사에서 법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홀시어머니의 종부로 10여 년 시집살이에 우울증에 신경쇠약 증세 까지 생겨 절에 가서 정신적 수양을 하면 좀 낫지 않을까 싶어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법문 내용이 ‘혀로 음식을 입속에 넣고 씹으면, 혀는 제가 안 씹히려고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러나 50살이 되어 50년을 요령이 생겨도 내 혀를 내가 씹는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무릎을 치며 감탄했습니다.
‘그래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40살이나 많은 시어머니는 강산이 4번이나 바뀌고 사신 분이다. 내가 힘든 건 결국 나 같으면 저렇게 안 할 텐데 하는 생각에 내 주장을 종용해서 생긴 것이다. 지역도 풍습도 이목구비도 틀린 분에게 나하고 같으라고 종용하면 병이 되지’ 이렇게 알게 되는 게 부처님 법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진짜 가져야할 중요한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법회 보는 날만 부처님 법 만나 언제 다 이 가르침을 알게 될까 싶었습니다. 선우도 한 달에 한 번 만나 이렇게 법회 보는 것으로는 언제 다 깨닫겠습니까? 해 볼만한 작업은 365일 해야지요.
제 노하우를 공개하겠습니다. 저는 설날 새벽에도 절에 갑니다. 부처님을 너무 좋아해서 내가 쓰는 처음 돈, 내가 걷는 첫걸음, 내가 내는 첫 음성을 부처님께 공양 올리러 3시에 차례준비 다 해 놓고, 4시에 예불 드리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 와 설 차례를 올립니다.
6년을 열심히 절에 다니면서 저는 ‘부처님은 의왕’이심을 굳게 믿습니다. 부처님 잘 믿으면 병이 낫습니다. 저는 거의 자살 지경까지 간 상태였습니다. 내가 죽게 생겼으니 기도할 때 ‘부처님, 모든 사람이 사람마다 원하는 것, 다 들어 주신다면서요. 저만 편하게 해 주시면 부처님 시봉 잘하고 살겠습니다.’ 하고 매달렸지요. 적합한 거래라야 부처님도 들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성심사에 다니면서 폭폭한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안팎으로 못난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우리 거사가 어느 날 “어머니 얼굴이 바뀌셨네?‘하는 겁니다. 그래서 보니 진짜 시어머님 얼굴이 바뀌신 겁니다. 기도를 하면 바뀝니다. 부처님 법은 이런 겁니다.
6년 동안 기도하면서 마치 전문가 같이 독각같이 꾸준히 하면서 생각은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내가 시어머님을 바로 잡으려 할 것이 아니라 내 남편 내 자식이 내가 힘들어하는 시어머님의 모습을 가지고 있으면 어떻게 할 뻔 했는가?’ ‘오히려 감사할 일이구나. 시어머님 덕분에 부처님께 귀의하게 되었으니 시어머님은 관음의 화신이시구나.’
관세음보살 보문품에 보면 관세음보살은 중생이 바라는 대로 나투신다지요? 시어머님은 관세음보살의 응신으로 나를 만나신 것입니다. 저는 시어머님께 감사하지요. ‘어머님 덕분에 이 좋은 부처님 법을 만났구나.’ 요즘에는 자비의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와 측은하고 안 되어 보입니다. 모든 탐진치와 착각을 모두 놓고 편안하게 바뀌어 가시도록 기도합니다.
부처님 법은 마음이 편안한 것입니다. 병도 나았고 다른 삶을 자비로 보게 되고 시어머님도 바뀌셨으니 약속대로 부처님 시봉하고 살아야지요. . 경전에 보면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 같이 구정물에 물들지 않는 연꽃같이 라는 구절이 있지요. 사자는 동물의 왕입니다. 절대로 놀라지 않고 당당하지요. 바람은 자유롭게 그물에매이지 않고 벗어나지요. 연꽃은 구정물 속에서 꽃을 피웁니다. 어디엔들 부처님 믿는 마음이 숨어 있지 않겠습니까? 오늘 성교수님 박교수님 앞에서 얘기하자니 영 이상합니다만, 인욕은 육바라밀 중 특히 자비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무루회를 이끄는 것을 저는 사람법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부 잘하는 사람은 그 사람대로, 툭툭한 사람은 그대로 더 공부를 해나가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학교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보살피실 때 잘하는 놈은 잘하는 대로 좀 떨어지는 학생은 떨어지는 대로 보완해 주시며 채근하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정진하는 보살이어야 합니다. 정월 기도를 시작으로 앉은 데가 법당이요 모든 것이 불상이라는데 어느 곳 하나 부처님 아닌 것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하루에 4분 정근을 합니다. 새벽에 집에서, 사시에 절에서, 2시 30분에 집에서, 저녁에 또 집에서 그렇게 일 년을 하다 보면 새해 정월이 되면 복숭아 뼈에 주먹만한 물주머니가 매달립니다.
책임지는 보살들은 기도를 더욱 열심히 해야 합니다. 선우를 이끌어 가는 분들이 기도 없이 이끌어 간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기도해야 가능합니다.
그래서 저는 무루회에 대해 무엇인가 부족하다 싶으면 스스로 가행정진 합니다. 북한산 문수사에 수시로 다니며 생각하고 마음을 다스립니다. 무루회 법회가 끝나고 150여명이 물 빠지 듯 가고 마지막으로 총무까지 가고 나면 일시에 허탈감이 엄습합니다.
우두머리는 외롭고 불행한 겁니다. 이런 마음이 드러나지 않도록 문수사에 오르내리며 스스로 달래는 겁니다. 기도 없는 행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도와주어야 끌어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루회 모든 사람들의 가정과 개개인이 잘 되도록 늘 기도 합니다. 그 기도를 해야 제가 우두머리 노릇을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16년 탁발을 다니다 보니 저는 베테랑이 되었습니다. ‘내가 당신의 가정을 위해 기도했으니 내 놓아라’하고 당당하게 기도의 힘으로 요구합니다. 그래야 재가자들이 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 힘이 없었다면 무루회가 지금까지 화곡동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기도해 보니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6시쯤 TV를 보는데 제철 음식 옥수수가 나와서 ‘옥수수가 먹고 싶구나.’ 하면 누군가 옥수수를 사오던지 옥수수를 누구네 집에 가서 먹게 되던지 합니다.
힘 있는 발원은 이루어집니다. 1년이면 10번 15년 법회동안 적어도 150분의 법사님들이 무루회에 오셨습니다. 내가 말하면 안 모이는데 스님이 오시면 모여듭니다. 저는 달라이 라마 존자님을 존경합니다. 다람살라에도 3번 다녀왔습니다. 나를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살라는 말씀을 좇아 늘 남을 위한 기도를 하며 삽니다.
처음 절에 다니며 부처님 법을 빨리 알고 싶은 마음에, 고은씨의 화엄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반복, 반복 6개월을 읽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절에서 화엄경 약찬게 설법을 듣는데 제가 읽은 화엄경 책이 눈앞에 떠오르며 53선지식을 찾아다니는 장면이 수루룩 넘어 가는 겁니다. 그 순간 저도 부처님 문중에 들어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가려합니다. 무루회에서 어디를 가나 발원한 것 얻어서 여럿이 좋은 일하며 슬기롭게 살아나가려 합니다. 이번에 도법스님께서 탁발하시는데 길에 가다 물 사 잡수시라고 200만원 불사했습니다. 1,000원씩 2,000명이 불사한 것입니다.
사람은 끼리끼리 모입니다. 일할 수 있는 보살이 많아야 합니다. 어려운 일을 믿고 좋은 돈을 내 주는데 바르게 부처님을 믿을 데 청렴하고 정직하게 써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중생을 위할 수 있는가를 화두 삼아 집을 나서면 당당합니다. 나보다 못한 사람 나보다 힘든 사람을 위해 써야 됩니다. 말기암 환자가 저와 2-3시간 전화로 얘기하고 나서 기운이 나 먹을 것을 사러 나갔다는 말을 듣습니다. 힘든 사람을 위한 마음 씀은 이렇게 나타납니다.
작은 서원 세우지 마시고 큰 서원을 세우십시오.
세존이시여 이 인연 공덕으로 행복한 마음으로 발보리심 하여 ‘항상 부처님 법 안에서 어긋나지 않는 불자 되겠습니다.’ 하는 큰 서원 세우시고 불자님들은 항상 향상되어야 합니다. 구멍가게는 이익이 적습니다. 큰 마트는 이익이 큽니다. 자기 집 잘 되라고 비는 것은 작은 구멍가게입니다. 더 크게 놀아야지요.
저는 정월에 만불명호경을 읽으며 만 배를 합니다. 나를 혹사하여 절하면 엄청난 하심(下心)을 갖게 됩니다. “지심귀명례 보광여래불….” 여래는 갖춘 존재라지요? ‘갖춘 사람을 받드는 내가 되고 싶다’하며 머리를 발에 대고 명호를 눈물나게 부르며 만 배를 하고 나면 얼마나 기쁘고 춤추고 싶은지요.
환희심 속에 모든 것이 비워지고 텅 빈 그 자리에 자비, 이타가 생기고 들어 찰 것이고 그런 마음을 나누고 살 수 있게 되는 겁니다. 탐진치 삼독심이 가득찬 곳에 어떻게 좋은 것이 들어가겠습니까? 텅 비워 내야지요. 만불명호경은 조계사 앞에 가면 살 수 있습니다. 절이 힘드시면 읽는 기도를 하셔도 좋습니다. 기도하십시오.
이제는 저희 무루회에서 삼독심을 없애고 좋은 마음을 들이기 위해 읽는 글을 소개하며 오늘 말씀을 끝마치려 합니다.
슬기롭게 사는 길
오늘 내가 빈천하거든 베풀지 않았음을 알며, 자식이 나를 돌보지 않거든 내 부모를 내가 편히 모시지 않았음을 알라. 남의 고통 외면하고 악착스레 재물을 모아 자식 주려 하였거든, 일시에 재가 되어 허망할 때 있을 것을 각오하라. 상대는 내 거울이니 그를 통해 나를 봐라. 빈천자 보이거든 나 또한 그와 같이 될 것을 알고 보시하며, 부자를 만났거든 베풀어야 그같이 될 것을 알아라.
가진 자 보고 질투하지 말라. 베풀어서 그렇고 없는 자 비웃지 말라. 베풀지 않으면 너 또한 그러리라. 현세의 고통은 내가 지어 내가 받는 것, 뿌리지 않고 어찌 거두랴. 뿌리는 부모, 줄기는 남편, 열매는 자식, 부모에게 거름하면 남편 자식 절로 되고 뿌리가 썩어지면 남편 자식 함께 없다.
단촐하다 좋다마라, 다음 생애 어디가나, 첩첩산골 외딴곳에 외로워서 어찌 살며 오순도순 화목한 집 서로 도와 만났느니라. 오래 살며 고통 보면 부모지천 원인이고 불구자식 안았거든 부모불효 과보니라. 내 몸이다 내 입이다 마음대로 하였느냐. 네 몸이 도끼 되고 네 말이 비수되어 한 맺고 원수 맺어 죽어 다시 만난 곳이 이 세상 너의 부부 너의 자식 알겠느냐
누굴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느냐, 지은 자도 너였었고 받는 자도 너이니라. 오는 고통 달게 받고 좋은 종자 다시 심어 이 몸 받았을 때 즐겁게 가꾸어라. 짜증내고 원망하면 그게 바로 지옥이고 감사하게 받아내면 서방정토 예있으니 마음 두고 어디 가서 무얼 찾아 헤매는가.
열심히 정진하여 우리 모두 성불합시다.
* 배득연 선우님은 ‘무루회’ 회장으로 16년간 가정법회를 이끌며 좋은 일을 많이 하시는 보살님입니다.
첫댓글 참 대단한 보살님 이십니다..전화를 해보니 본인은 아줌마일 뿐이라고 합니다..제가 구상하는 것이 이 가정법회입니다..이 가정법회가 불교대학으로 이어질 것을 서원합니다..
이 불자모임 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쳤으면 합니다..각 카페에 복사던 스크랩이던 해주세요..사진은 본인의 의사를 들어 보지 못해 게시하지 못합니다
무루회는 한달에 한번 스님을 초청하여 법회를 보며 보시와 봉사활동도 활발합니다
탁발은 아상을 잠재우는데 최상의 수행 입니다. 그분들께 두손모아 합장하며 예경 드립니다. 나무석가모니불...()()()...
정말 대단한 원력을 가진 분 입니다...글 가지고 갑니다....나무관세음보살..._()_
불교계에 이런 분이 있다는게너무 감사합니다. 당신이 부처님 입니다.
불교계에 이런 분이 있다는게너무 감사합니다. 당신이 부처님 입니다.
찾고자 하는보살님을 오늘 여기서 뵙다니요 많이 배우고 스크랩 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