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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믿음
제목 : 흔들리지 않는 신실함으로
성경 : 계3:7~13
찬송 : 80장
저자 : 이삼규목사
출처 : 20230115 낙양교회 주일 낮 예배
계 3: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계 3: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계 3: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계 3: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계 3: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계 3: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계 3: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2019년 6월 프랑스 오픈 테니스 대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우승을 차지한 스페인의 ‘라파엘 나달’ 선수 못지않게 관중의 관심을 받은 선수가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니콜라 마위’ 선수입니다. 그는 단 한 번도 3라운드 이상 진출해 보지 못한 37세의 노장 선수였습니다. 대회에서 16강 진출을 기대했으나 아르헨티나의 ‘레오나르도 마예르’ 선수에게 패배해 결국 탈락했습니다. 탈락한 마위 선수는 코트에서 눈물을 흘렸고, 눈물을 참으려고 애썼지만 아쉬움에 눈물은 쉽게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어린 꼬마 하나가 뛰어와 마위를 꼭 껴안아 주는 것이었습니다. 마위의 일곱 살 된 아들이었습니다. 마음 아파하는 아빠를 작은 손으로 안아 주며 위로해 준 것입니다. 이를 지켜보던 모든 관중이 눈물을 흘렸고, 마위와 그의 아들이 손을 흔들어 인사하면서 코트를 떠날 때 관중은 기립박수를 쳐 주었습니다. 한 칼럼리스트는 이 장면을 보고 ‘마위가 테니스 선수로는 우승하지 못했지만 아버지로서는 이겼다.’라고 썼습니다. 아들의 위로와 격려는 경기에서 진 마위에게 그 어떤 위로보다 큰 위로였습니다.
여러분!
세상에서는 마치 패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믿음을 지킨 사람에게는 그 어떤 위로보다 큰 하나님의 칭찬과 위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믿습니까?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에 오직 두 교회만 주님께 책망을 받지 않았습니다.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역사적으로 빌라델비아 지역은 지진이 많은 곳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연약한 믿음을 환경 탓으로 돌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빌라델비아 교회를 통해 우리가 환경만 탓할 수 없음을 보여 주십니다. 흔들리지 않는 신실함으로 믿음을 지켜낸 빌라델비아 교회를 우리가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작지만 큰 교회
√계 3: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계 3: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빌라델비아 교회에 말씀하시는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 주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거룩은 헬라어 ‘하기오스’로 하나님의 속성을 가장 잘 표현한 말입니다. 예수님께 이 단어를 사용하신 것은 그분이 하나님과 동등이심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요 6: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고전 1: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둘째, 주님은 진실하신 분입니다.
‘진실하다’라는 말은 ‘거짓되다’라는 말의 반대말이 아닌 ‘완전하다’란 의미로 사용되어, 완전하신 주님이 교회와 함께 하심을 확신하게 합니다.
√셋째, 주님은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다윗의 열쇠’라는 표현은 강력한 왕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이사야서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사 22:22 내가 또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하나님은 엘리야김에게 유다를 맡아 통치하도록 ‘다윗의 집 열쇠’를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다윗의 열쇠’를 가졌다는 것은 그분이 신적 권세를 자기고 하나님 나라를 통치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넷째, 주님이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습니다.
무엇을 열고 무엇을 닫는지 명확한 언급은 없지만 새 예루살렘 성전 입성을 이야기하는 요한계시록 후반부 내용으로 볼 때(21:25; 22:14), 천국의 절대 권세가 예수 그리스도께 있음을 강조한다고 봅니다. 이러한 예수님이 빌라델비아 교회를 칭찬하시며 끝까지 믿음을 지켜 세상과 맞서 싸우라고 권면하십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어떤 칭찬을 받았습니까?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사데 교회와 더불어 칭찬만 받은 교회입니다. 서머나 교회가 궁핍하고 환난에 처한 교회였다면(2:9), 빌라델비아 교회는 능력이 작은 교회였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도 서머나 교회처럼 가난했거나 규모가 작은 교회였을 것입니다. 능력을 얼마나 갖추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능력을 누구를 위해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 앞에는 누구도 닫을 수 없는 열린 문이 있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문은 종종 복음을 전할 기회를 상징합니다.
고전 16:9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
골 4:3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그러나 인접 문맥에 충실하게 번역하면, 필시 이 문은 다윗의 열쇠를 가지고 계신 예수님이 여닫으시는 하늘나라의 문을 가리킬 것입니다. 작은 능력으로도 예수님을 신실하게 따른 빌라델비아 성도들은 하늘나라, 곧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것입니다.
예수님은 빌라델비아 교회의 행위를 알아주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며 그 이름을 배반하지 않으려면 입술로 끝나서는 안 되고 행위의 열매로 이어져야 합니다.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경우에, ‘예수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다.’는 것은 순교를 포함한 환난을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빌라델비아 교회는 세상의 관점에서 볼 때 많은 것을 가지지도 못했고, 사회적 지위나 힘도 없는 작은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큰 믿음으로 승리해 주님을 기쁘시게 했던 것입니다. 이는 모든 교회가 외적으로 보이는 크기와 부와 능력이 아니라 어떤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영적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약속하신 상급
주님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킨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상급을 내리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첫째, 주님은 작은 빌라델비아 교회에 영적 권위와 능력을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계 3: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서머나 교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빌라델비아 교회는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실상은 사탄의 회당인 자들로부터 공격을 받았습니다. 마귀가 거짓 아비이듯(요 8:44) 사탄의 회당인 자칭 유대인들의 특징은 거짓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거짓말하는 자들은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못하고, 불못에 들어갑니다. 반면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은 그 입에 거짓이 없는 자들입니다(14:5). 요한 계시록은 거짓말을 피하고 진리를 증언할 것을 성도들에게 요구하는 책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환난이 와도 진리만을 선포해야 합니다.
사탄의 회당 곧 거짓 유대인 중 몇 사람을 교회에 보내셔서 교회의 권위에 무릎 꿇게 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은 교회가 영혼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의 발 앞에 절하는 비전을 예언했습니다.
사 49:23 왕들은 네 양부가 되며 왕비들은 네 유모가 될 것이며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요한은 거짓 유대인들이 교회 앞에 절하는 비전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던 영혼이 교회를 통해 하나님 앞에 굴복하는 것은 말할 수 없는 교회의 영광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신 목적이기도 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이러한 목적에 부합하는 힘 있는 교회로 더욱 굳게 세워질 것입니다.
√둘째, 시험의 때에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계 3: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빌라델비아 교회는 인내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인내는 고난을 전제합니다. 인내는 요한 계시록에서 성도에게 요구하는 중요한 덕목입니다(2:2,19 ;13:10; 14:12). 로마서에 따르면,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룹니다(롬 5:3~4). 이와 마찬가지로, 요한 계시록은 박해에 직면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인내를 요구하며 소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인내하지 못하는 자들은 세상과 타협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을 시험의 때로부터 지켜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온 세상에 임할 종말론적 시험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종들과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인내하라는 당신의 말씀을 지킨 자들이 시험의 때를 무사히 통과해 이기도록 지켜 주십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한 명령과 약속
√계 3: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계 3: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계 3: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님은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하여 자신이 속이 올 것과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믿음과 진리를 굳게 잡아 아무도 그들의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이제까지 한것처럼 끝까지 믿음을 지켜 반드시 구원에 동참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속히 오실 것이라는 말씀은 종말론적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종말론적 신앙을 가진 이들은 지금까지 지켜온 믿음을 굳게 잡고 버리지 않습니다. 이들은 면류관을 바라보며 환난을 이겨냅니다.
기독교를 박해하는 로마와 교회를 공격하는 자칭 유대인 및 미혹하는 거짓 선지자들은 면류관을 뺏으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악의 세력입니다. ‘면류관’(스테파노스)은 운동 경기에서 이긴 자가 받는 ‘화관’ 또는 ‘월계관’을 의미합니다.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도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기는 자가 받을 약속은 무엇입니까?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이기는 자가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될 것이라는 약속은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 즉 새 예루살렘의 구성원이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건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둥입니다. 이기는 자들은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된다고 약속하십니다. 기둥은 자기 자리를 굳게 지켜야 합니다. 아무리 힘든 무게도 다 감당해야 합니다. 만일 기둥이 짐이 무겁다고 왔다 갔다 하면 절대로 기둥이 되지 못합니다. 기둥은 정위치를 꼭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 위에 뭘 새겨 주신다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 및 예수 그리스도의 새 이름이 새겨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기록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짐승을 따르는 자들이 짐승의 표, 곧 짐승의 이름을 받듯이(13:16~17),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받을 것입니다.
계 14: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계 22: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또한 새 예루살렘의 이름이 새겨진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새 예루살렘에 입성할 수 있다는 자격을 갖추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늘나라 시민권과 같은 것입니다.
이기는 자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새 이름도 새겨집니다.
이것은 이기는 자만이 알고 누리게 될 예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의미합니다.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고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이고, 주께서 우리를 아신 것 같이 우리가 온전히 알 것입니다(고전 13:1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빌라델비아 교회는 외적으로 크거나 능력이 있는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향한 흔들리지 않는 신실함으로 우뚝 서 있었고, 주님은 이를 알아주시고 칭찬하십니다. 주님은 그 사람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가?’를 보시지 않으시고 ‘주어진 능력으로 얼마나 충성되고 신실하게 행하는가?’를 보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 끝까지 주님께 신실한 사람에게 주님은 그분의 신실하심을 베푸십니다. 온 땅에 닥칠 시험의 때에 그를 지켜 주시고 성전의 기둥 같은 존재로 높여 주실 것입니다. 말씀에 굳게 서서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는 성도들에게는 영광의 면류관이 주어질 것입니다. 이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바라보며 흔들리지 않는 신실함으로 믿음 생활을 하시는 우리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