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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보다는 방향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 스티븐 코비는 성공의 비결로 시간 선용(善用)을 강조합니다. 예를 들면 성공을 원한다면 절대 혼자서 점심을 먹지 말고, 성공에 도움 될 만한 사람과 함께 먹으라는 겁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렇게 성공한 사람 중 하나가 코비를 찾아와 고민을 토로합니다. 20여년간 코비의 조언에 따라 열심히 시간을 관리하며 큰 성공을 이뤘는데 문제는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열심히 일한 목적은 가족과 행복하기 위함이었는데 아내는 이혼하자고 하고 아이들은 마약과 도박에 빠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코비는 큰 충격을 받았고,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며 ‘소중한 것을 먼저하라’는 책을 쓰고, 서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위만 바라보고 있는 힘을 다해 사다리를 올라갔는데, 막상 다 올라가니 애초 올라가려던 지붕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사다리가 엉뚱한 벽에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코비는 성공하려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사다리를 빨리 오르게 하는 ‘시계’가 아니라 오르는 곳의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임을 강조합니다. 빨리 가기보다 올바로 가는 2023년이길 기도합니다.
김종구 목사(세신교회)
나를 던지시오
쥐들의 나라에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 날마다 쥐를 잡아먹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끝에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기로 했습니다. 기막힌 묘책입니다. 그런데 누가 방울을 달아야 할까요.
요나의 배가 바다에서 거센 풍랑을 만났습니다. 돛을 내리고 무거운 짐을 다 버려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무엇 때문에 태풍이 덮쳐온 것일까요. 사람들이 제비를 뽑자 요나에게 떨어졌습니다. 그때 요나가 일어나 말했습니다. “나를 들어서 바다에 던지시오. 그러면 당신들 앞의 저 바다가 잔잔해질 것이오.”(욘 1:12, 새번역) 요나는 비록 하나님의 낯을 피해 도망치고 있었지만 위기에 자신을 던지라며 나섰습니다.
사람들은 요즘 너나없이 위기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누구 하나 나를 던지라고 나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작 책임자로 제비 뽑힌 사람들도 모르쇠 남 탓만 합니다. 그리스도는 어떤 분입니까. 자기 몸을 던져서 우리를 구원하신 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요. 자신을 던져서 남을 구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서재경 목사(수원 한민교회)
신의 한 수
일본에 프로바둑기사 다케미야 마사키 9단이 있습니다. 한번은 그가 라이벌과 대결을 벌이던 중 결정적인 승부처에서 장고(長考)에 들어갔습니다. 깊은 생각에 고심하다 무려 5시간7분 만에 한 수를 놓습니다. 총 제한시간 8시간 중 상당량의 시간을 단 한 수를 위해 몰입한 그는 결국 그 대국에서 짜릿한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승패의 분수령이 되었던 그 수는 ‘신의 한 수’와 같았다는 유명한 일화를 남겼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결정적인 신의 한 수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현명하고 대단한 결정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이 그런 타이밍임을 깨닫기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올 한 해 우리 일상 속에서 신의 한 수가 필요할 때가 얼마나 많이 있을까요. 어쩌면 매 순간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한 신적인 타이밍 속에 살아가는 우리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엡 5:15~16) 매 순간 바른 선택을 하고 옳은 길을 걸으십시오. 세월을 아끼고 신의 한 수와 같은 최고의 결정을 날마다 이뤄 가시길 축복합니다.
안광복 목사(청주 상당교회)
시편을 통한 기도
시편은 ‘기도의 스승’(master)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수많은 교회 역사 속 믿음의 선배들은 시편을 통해 기도했고 기도를 배웠습니다. 어떤 이들은 성경에 시편이 있는 이유를 의아해하기도 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하신 말씀인데, 시편은 인간의 기도를 모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편은 단순한 인간의 기도가 아닙니다. 시편은 이미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응답하는 기도’이며 ‘반응하는 기도’입니다. 총 다섯 권으로 구성된 시편은 모세오경으로 비유되는 구약성경의 응답이기도 합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는 “기도의 핵심은 우리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응답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새해에 시편을 묵상하면서 기도해보십시오. 다채로우신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나 자신의 경험뿐 아니라 수많은 시편 기자들이 만났던 성경의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시편을 통해 기도해보십시오. 시편은 우리를 기도의 바다로 인도하는 안내자이며, 하나님께 응답하는 기도를 배우게 하는 기도 교과서입니다.
고상섭 목사(그사랑교회)
노(老)교수의 후회
한 노(老)교수님이 계셨습니다. 명문대 출신에 많은 책을 번역하셨고, 1만권의 책을 읽으셨다고 합니다. 성도를 섬기는 사역 대신 교육자가 된 교수님이 마지막 강의 때 나눈 고백은 지금도 제 가슴에 남습니다.
“책 1만권이 아니라 성경책을 1만번 봤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 겁니다.”
성경을 보면서 은혜가 너무 커 나름 결단을 해 봅니다. 성경을 만 번 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자고 말입니다. 지금도 다윗처럼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며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말씀이 육신이 돼 오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 예수님은 “말씀 안에 생명이 있고 빛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만물이 말씀으로 지은 바 됐고, 이 말씀을 영접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다윗처럼 말씀을 묵상하고, 모세처럼 말씀으로 기도하며, 바울처럼 말씀 되시는 예수님의 증인이 됩시다.
오늘도 말씀으로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때,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지성호 목사(서울이태원교회)
기다림
경쟁이 심한 사회에 사는 우리에게는 ‘기다림’이란 지루한 것이고 못난 사람이나 취하는 방법으로 여겨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기다림은 우리 삶의 한 양식이기도 합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얻기 위해 25년을 기다렸습니다. 다윗 또한 소년 시절에 왕의 기름 부음을 받은 뒤 30세가 돼서야 왕이 됐고 7년 6개월이 지난 뒤에야 유다 지파를 넘어 이스라엘의 왕이 됐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안나라는 여인에 대한 기록만 봐도 그렇습니다.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눅 2:37, 38) 그녀가 예수님을 맞이한 방법은 기다림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기다림은 신앙의 양식입니다. 기다림은 지치고 지루하고, 힘없는 사람의 선택지가 아니라 기쁨과 성취의 길입니다. 이를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바로 그입니다. 그걸 믿는 사람에게만 기쁨과 성취의 길이 되는 겁니다.
조주희 목사(성암교회)
계묘년에 생각하는 또 다른 토끼
2023년 검은 토끼의 해인, 계묘년이 시작됐습니다. 새해를 맞아 기억해야 할 토끼가 있습니다. 소설 ‘25시’의 작가 콘스탄틴 게오르규가 말한 ‘잠수함의 토끼’입니다.
방한 당시 한 문학가 모임에서 강연한 그는 2차 대전 때 독일군 해군으로 참전한 경험과 잠수함의 토끼를 말합니다. 당시 잠수함의 산소 공급 장치는 성능이 좋지 않았습니다. 산소 결핍에 대처하려고 토끼를 사용했습니다. 토끼는 산소가 부족하면 사람보다 6시간 빨리 반응합니다. 잠수함은 토끼가 이상 반응을 보이면 물 위로 올라가 환기하고 다시 잠수했습니다. 어느 날 그 토끼가 죽자 게오르규는 토끼를 대신해 산소 부족을 알리는 장치가 됩니다. 게오르규는 잠수함의 토끼처럼 문학가들이 시대의 아픔과 위기를 감지하고, 살길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토끼는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리게 합니다. 세상과 인류가 멸망을 향해 갈 때 세상에 오신 예수님, 십자가 고난을 통해 구원의 길을 알려주신 예수님이야말로 인류라는 잠수함의 위대한 토끼였기 때문입니다.
김종구 목사(세신교회)
속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옛날에 어떤 왕이 있었습니다.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었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았지요. 현자는 왕에게 행복한 사람의 고쟁이를 입으라고 간했습니다. 왕은 나라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을 찾아가 그의 고쟁이를 팔라고 했지요. 강가에 앉아 피리를 불던 그 사람이 왕에게 고했습니다. “임금님, 제게는 고쟁이가 없습니다.” 사람은 천하를 다 가지고도 불행할 수 있고 속옷 하나 없이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빈 들에서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옛것을 버려야 새날을 맞을 수 있고, 새사람이 되어야 새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회개란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요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속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눅 3:11, 새번역) 무슨 말입니까. 행복은 탐욕을 채우는 데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1000채 넘는 빌라를 가진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게 아닙니다. 진정한 행복은 고쟁이 하나를 나누는 따뜻한 마음, 그 가난한 마음에 있습니다.
서재경 목사(수원 한민교회)
은혜의 파도
세계 제일의 부호였던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의 사무실에는 그림이 하나 걸려 있었습니다. 유명한 화가의 작품이 아니라 그저 커다란 나룻배에 노 하나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평범한 그림이었습니다. 가난하고 춥고 배고프던 청년 시절, 카네기는 이 그림을 만났고 특별히 그림 속 화가가 적어 놓은 이 글귀를 보며 희망을 품었다고 합니다.
“반드시 밀물이 밀려오리라. 그날 나는 바다로 나아가리라.”
새해가 밝았습니다. 3년의 팬데믹 터널을 통과해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2023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사 43:19)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언제나 새로운 일을 만드십니다. 우리를 통해 크고 비밀스러운 일을 계획하고 이뤄가십니다.
우리는 파도를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그저 때를 보며 준비하고 기도하며 기다리는 겁니다. 은혜의 파도는 반드시 밀려올 겁니다. 소망의 배를 띄우시고, 주님의 뜻을 이루는 최고의 한 해를 보내시길 축복합니다.
안광복 목사(청주 상당교회)
명의
세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세조는 조선의 7대 국왕입니다. 단종을 폐위시키고 즉위했습니다. 그는 평생 질환에 시달렸습니다. 세조는 많은 의원을 만나면서 좋은 의원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첫째는 ‘심의’입니다. 환자의 마음을 편하게 하고 불안하지 않게 해 안정된 상태에서 치료합니다. 둘째는 ‘식의’입니다. 음식을 잘 조절해서 치료합니다. 셋째는 ‘약의’입니다. 약을 잘 조절해서 치료합니다.
신앙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제국에 의해, 남유다는 바벨론제국에 의해 망합니다. 그들이 망한 이유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우상에게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생명의 근원입니다. 이제 2022년을 마감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시기입니다. 2023년은 우리가 정복해야 할 가나안 땅이 아닐까요. 하나님은 가나안을 정복하는 여호수아에게 “담대하라,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했습니다. 또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나아가면 네 길이 평탄하고, 네 길이 평안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의 길에서 최고의 명의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지성호 목사(서울이태원교회)
모든 즐거움과 행복은 ‘인생의 계단’을 올라갈 때에 있습니다.
샬롬! 밤새 안녕하신가요? 12월 23일 금요일 아침입니다. 성탄절을 이틀 앞둔, 오늘 하루도 내내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은 ‘치매예방에 도움이 되는 식품’을 소개할까 합니다. 그것은 바로, 천마입니다. 동의보감에, 천마는 ‘모든 허(虛)와 어지러운 증세를 치료하는데, 천마만큼 좋은 게 없다’고 기록되어있다고 하네요. ‘천마’는 ‘하늘에서 떨어져 마비를 치료했다’는 뜻으로, 뇌질환 계통에 도움을 주는 약재이기에 ‘치매와 건망증을 일으키는 염증 물질을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인생의 층층대를 걸어 올라가는 사람은, 그 층계 하나하나에 인생의 뜻을 두면서 오릅니다. 그때그때의 의미와 감사를 모른다면, 결국은 마지막 층계에 오른 즐거움 밖에는 남는 게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여기 더 중요한 문제가 남습니다. 등산을 끝낸 사람은 정상에서 내려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등산객은 더 올라갈 곳이 없기에, 내려오는 일이 괴롭거나 불행을 동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과정은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즐거움과 행복은 올라갈 때에 있습니다. 내려오는 인생은 언제나 슬픔과 불행을 동반합니다.
‘쓴 것이 끝나면 단 것이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을 거꾸로 놓으면, ‘단 것이 다한 뒤에는 쓴 것이 온다.’는 뜻입니다. 더 올라갈 ‘인생의 과정’이 없는 사람은 불행을 겪어야 합니다. 인생의 비극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농사꾼의 자녀는 아버지의 혜택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올라갈 것이 남아 있어도, 부자의 자녀들은 부모의 은혜를 얻어 높이 올라가 있기 때문에 내려오는 과정만이 있을 뿐’이라는 이치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부유한 사회의 청소년들보다는, 가난한 국가의 젊은이들이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은 올라가는 과정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누릴 수 있으나, 퇴락하는 과정에서는 고통과 불행을 겪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복을 목적’으로 삼고, 인생이 그 ‘행복을 향하여 날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성장과 노력의 과정’ 속에서 행복을 찾아 누려야 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며, 옳은 일을 위하여 애쓰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예수께서 가르치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언제나 같은 여건에서도 감사와 자족을 누릴 수 있으며, 의를 위하여 수고하는 사람은 그 수고가 성장과 발전의 과정이기 때문에 ‘남이 모르는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출처; 100세 철학자의 행복론, 김형석/연대명예교수)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그런즉, ‘서 있다’고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더 이상 노력하거나 수고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의 위험성을 경고한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된 것은 정말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아차 하는 순간 ‘후진국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대표적인 나라가 ‘그리스’와 ‘아르헨티나’입니다. 장충체육관을 세워준 필리핀도 우리보다 잘 살던 나라입니다. 선진국이었다가 후진국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은, 그 후손들로 하여금 ‘그 선배들이 노력해서 이뤄놓은 열매만을 편히 먹고 지내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증후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하지 않고 놀면서 편히 지내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물맷돌)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 우리는 “일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먹을 자격’도 없다”라고 가르쳤습니다.(살후3:10,쉬운성경)]
장혀~!
샬롬! 지난밤 편히 쉬셨는지요? 12월 22일 목요일 아침입니다. 오늘도 내내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뇌과학자들이 먹지 않는 음식으로서, 그 세 번째는 ‘패스트푸드’입니다. 고혈압과 당뇨와 비만을 유발하는 ‘피자’와 ‘햄버거’등의 패스트푸드는, 뇌의 정상적인 활동을 방해하고, 알츠하이머를 일으키는 주범이랍니다. 실제로, 패스트푸드는 ‘뇌의 기억 활동을 관장하는 아크 단백질을 감소시켜서 치매 위협까지 높인다.’는 연구결과도 있답니다.
50이 된 지금도, 할머니께서 저에게 “장혀~(장하다)”라고 말씀하시던 생각을 하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할머니의 ‘장하다’는 말씀은, ‘어른이 되어가는 사춘기청소년의 부대낌이나, 입시 같은 특정한 일들을 극복하고 살아가는 고달픔’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었으리라 여겨집니다. 할머니께서 특별히 눈이 밝아 저의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낱낱이 목격했던 것은 아닐 겁니다.
그저, 기나긴 인생을 먼저 살아가신 현명한 어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통째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니, 당신 눈앞의 저 또한 힘든 순간이 있었을 것’을 미루어 아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각 사람마다 그 인생길에 놓인 장애물을 건너뛰기 위하여 발버둥친, 너의 보이지 않는 노력들이 장하다’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할머니의 삶은 을사조약이 체결되던 1905년에 태어나 고아로 자라셨습니다. 그리고 결혼했으나 일찍 남편을 잃고, 가난 속에서 홀로 사남매를 키우면서 일제강점기와 해방과 6?25와 이후의 모든 혼란과 격변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겪으셔야 했습니다. 그분이 겪어냈던 인생과 비교하자면, 그분의 자녀와 손자녀들의 삶은 훨씬 더 윤택하고 안정된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너희들은 편한 줄 알아라!’는 식으로 말씀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어느 친구의 집에 놀러갔다가, 그 댁 할머니께서 “그깟 핵교 댕기는 게 뭔 고생이여, 호강에 겨워서”라고 하는 걸 듣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모든 할머니들이 다 똑같지 않다’는 것을, 그때 저는 알았습니다. 저의 할머니는 노년의 안온함을 감사하게 즐기셨습니다. 하지만, 겉보기에는 평화로운 자손들의 일상 속에도 ‘숨겨진 고달픔’이 있음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할머니께서 말씀하신 ‘장하다’의 의미였고, 저는 그 말씀을 소중히 받아서 꿀짱아(글쓴이의 딸 별칭)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출처;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심윤경 / 소설가)
제가 보내드린 ‘아침편지’의 제목 중에서 오늘의 제목이 가장 짧지 않겠나 싶습니다. 아시다시피, ‘장혀~!’는 ‘장하다’의 충청도 사투리입니다. ‘하는 일이 매우 훌륭하다’거나, ‘하는 행동이 갸륵할 경우’에 감탄과 함께 칭찬하는 뜻으로 ‘장하다’고 말합니다. 아시다시피, 대부분의 사람들이 꽤 힘들고 고달픈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서로서로 칭찬하고 격려해주어야 합니다. 혹 실수하거나 잘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야단치거나 책망하기보다는, 조금이라도 잘하는 일이 있을 때, 아니 잘하는 일이 그닥 없더라도, 우리는 자녀나 주변 사람들에게 ‘장하다’고 자주 격려해줘야 합니다. ‘험하고 고달픈 인생을 산다.’는 그 자체가 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물맷돌)
[인생이 땅 위에서 산다는 것이 고된 종살이와 다른 것이 무엇이냐? 그의 평생이 품꾼의 나날과 같지 않으냐?(욥7:1,표준) 이 땅에서 이 몸을 입고 살아가면서 힘들어 신음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기를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새로운 몸 입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그리하여 이 죽을 몸이 영원한 생명을 덧입기를 바라는 것입니다.(고후5:4,현대어)]
‘내가 왜 사과해야 하나요? 내가 왜 무시당해야 하죠?’
샬롬! 밤새 편안히 잘 쉬셨는지요? 12월 21일 수요일 아침입니다. 오늘하루도 내내 아무 탈 없이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뇌과학자들이 먹지 않는 음식으로서, 그 두 번째는 ‘버터와 마가린’입니다. 버터와 마가린은 포화지방산이 다량으로 함유돼있어서 뇌 건강을 위협하는 식품이랍니다. 버터와 마가린을 습관적으로 먹을 경우, 전신 염증을 유발하고, 특히 뇌로 향하는 ‘산소의 흐름’을 감소시켜 치매를 유발한다고 합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지난날, 저는 큰 수술을 받고 치료해야 하는 아내의 병원비 마련을 위하여 직장생활과 대리운전을 함께 했습니다. 체력은 고갈되고 수면시간은 부족했지만, 정말로 저를 힘들게 한 것은 ‘수많은 손님을 상대하면서 생기는 크고 작은 일들’이었습니다.
술에 취한 사람들은 약속장소에 조금만 늦어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따졌습니다. 반말은 기본이고, 욕설을 하거나 시비를 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운전이 별로라면서 돈을 못 주겠다고 버티거나, 지폐를 바닥에 뿌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잠든 손님을 깨웠다가 따귀를 맞은 적도 있었습니다. 너무 지친 날에는 저도 모르게 욱하는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내가 왜 사과해야 하나? 내가 왜 무시당해야 해?’ 이런 생각에 잠 못 이루는 날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아내를 떠올리면서 애써 분을 삭였습니다. 제대로 가누기조차 힘든 몸으로 병마와 싸우면서도 늘 힘을 내는 아내를 생각하면서 감정을 다스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느 날, 한 손님의 차를 몰 때였습니다. 그는 지인으로 보이는 여성을 옆에 태우고 그녀에게 추근거렸습니다. “상대방이 싫어하는데 그만하시죠!” 제가 만류하자, 손님이 소리쳤습니다. “돈 2만 원을 벌겠다고 새벽까지 일하는 주제에 간섭하지 마!” ‘자꾸 그러면 경찰서로 가겠다.’고 하자, 그는 제 뒤통수를 때렸습니다. 안되겠다 싶어, 차를 세우고 여성을 내려주었습니다. 그러자, 손님은 벌컥 화를 내면서 저보고 ‘내리라’고 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운전비도 받지 못하고 그냥 내려야만 했습니다.
참담한 기분이었습니다. 도무지 계속 일할 마음이 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터벅터벅 집을 향하여 걷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걸었을까, 짙은 안개를 헤치고 서서히 아침이 밝아왔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 다섯 시였습니다. 제 마음은 소금에 푹 절여진 생선처럼 쭈글쭈글해져 있었습니다.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자, 자고 있었을 줄 알았던 아내가 보였습니다.
아내는 거실 식탁에 앉아 스웨터를 뜨고 있었습니다. “자지 않고 뭐하느냐?”고 하자, 아내는 “당신이 잠도 못 자고 힘들게 일하는데, 제가 어떻게 먼저 잘 수 있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분한 마음이 순식간에 가라앉았습니다. 제 마음은 아내의 손에서 완성되어 가는 스웨터처럼 따뜻해졌습니다. 다음날 저녁, 저는 아내가 짠 남색 스웨터를 입고 대리운전을 나갔습니다.(출처; 좋은생각, 김선규 / 서울 마포구)
공교롭게도 대리기사 일을 하시는 분의 글을, 어제 이어 오늘, 거듭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추운 겨울 날 밤, 술 취한 분들을 상대해야 하는 대리기사 일이 세상의 그 어떤 일보다 힘들고 어렵지 않겠나 싶습니다. 혹시 지금 자신의 형편이 무척 어려운 경우라면, ‘세상에는 이렇게 사는 분들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힘내셨으면 합니다. 오늘도 파이팅 하십시오.(물맷돌)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의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다 풀어주시며, 슬피 우는 모든 사람을 위로해주시는 시대가 되었다’고 널리 알리도록, 주께서 나를 보내셨다.(사61:2,현대어)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분의 은혜로 ‘선한 소망과 영원한 위로’를 이미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위로의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하는 말과 모든 선한 일에 더욱 힘이 되어 주시길 기도합니다.(살전2:16-17,쉬운성경)]
대부분의 모든 사람들이 하루하루 ‘버텨가고’ 있습니다!
샬롬! 지난밤 편히 잘 쉬셨는지요? 12월 20일 화요일 아침입니다.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되시길 빕니다. 뇌과학자들이 먹지 않는 음식으로서, 그 첫 번째는 ‘빵과 쿠키’입니다. ‘빵과 쿠키는 혈당을 높이고, 필요 이상의 당을 공급하여 뇌신경에 염증을 일으키고, 인지능력에 심각한 손상을 입힌다.’고 합니다. 탄수화물과 지방이 혼합된 ‘빵과 쿠키’는 포화지방, 트랜스지방, 정제밀가루, 설탕으로 만들어진, 혈당을 높이는 대표 음식이랍니다. 저도 가끔 빵을 먹습니다만, 적당히 먹는 것은 괜찮지 않을까요?
저는 ‘생활비라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서 대리운전을 시작했습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술에 취한 고객이 횡설수설 혀 꼬인 소리로 장소를 말했습니다. 몇 번을 다시 물었지만,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죄송하지만, 한 번 더 말씀해주세요. 계신 곳이 어디인가요?” “에이 **, 끊어 이 새끼야!”
경적소리,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 세상은 바삐 돌아가는데, 순간 저의 시간은 멈추었습니다. 잠시 감정을 추스르고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불쾌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서툴렀습니다. 다음번에 다시 이용 부탁드립니다. 좋은 시간 보내세요.” 그런데, 잠시 후, 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조금 더 정돈 된 목소리였습니다. “미안하지만 다시 와줄 수 있어요?” “그럼요. 알겠습니다.”
장소를 재차 확인하고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와 있던 다른 대리기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제 문자를 받기 전에 다른 기사를 불렀었나 봅니다. 그는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자신이 왜 다시 나를 불렀는지?’ 그 이유를 말해주었습니다. “난 얼마 전까지 서울에서 일하다가 너무 각박하고 힘겨워서 고향에 내려왔습니다. 학생 문자를 받고, 갑자기 ‘내가 처음 서울에 올라갔을 때’가 생각났어요. ‘내가 이렇지 않았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거칠어졌을까?’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미안하고 고마웠어요.”
그는 명함을 주었습니다. ‘꼭 연락하라!’는 말과 함께. 이렇게 맺은 인연, 안부인사라도 할 핑계로 연락할 수 있었을 텐데, 부끄러움이 많은 저는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명함은 오래도록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명함은,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참고 견딜 수 있도록 해주는, ‘버팀목’과 같은 역할을 했던 겁니다. 대리운전을 하는 동안, ‘낯선 사람들의 민낯을 그렇게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드문 경험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허물없이 말해주었습니다. 단 한 사람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두 이루었노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웃으면서 말하다가도, 어느새 한숨을 길게 내쉬었습니다. 하루를 술로 버티든, 아이들의 웃음으로 버티든, 모두가 ‘버텨가고 있다.’고 했습니다.(출처; 월간 에세이, 이재국 / 서평가)
사실, 그렇습니다. ‘나는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일평생 아무 탈 없이 평탄한 인생을 사는 사람’을 찾아보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겁니다. 그야말로, 인생은 ‘고난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위의 글을 쓰신 분이 참 지혜로운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분하고 속상한 마음을 잘 참고 극복하면서 위기를 지혜롭게 잘 헤쳐 나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 모두, 천국에 들어가는 그날까지, 잘 참고 잘 버텨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물맷돌)
[나(바울)는 ‘현재 우리가 겪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롬8:18,쉬운성경)]
산 자와 죽은 자, 그 삶과 죽음은 영원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샬롬! 어저께 주일은 은혜로이 잘 보내셨는지요? 12월의 세 번째 월요일 아침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내내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빕니다. 치매는 현대의학으로 여전히 치료할 방법이 없는 무서운 질병이랍니다. 발전하는 의료기술 만큼 치매는 먼 나라의 이야기 같지만, 한국의 치매환자는 급속도로 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이 뇌를 병들게 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뇌과학자들이 먹지 않는 음식이 있는데, 내일부터 그 음식과 그 이유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죽음으로 이별할 때, 그 아픔은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어쩌면 그 이별이 영원한 이별이 아니고 언젠가 좀 더 좋은 세상에서 다시 만나게 되리라는 기대와 소망입니다.
아버지(고故 장왕록 교수)가 계시는 천안공원묘지 입구에는 아주 커다란 바윗돌에 ‘나 그대 믿고 떠나리.’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누가 한 말인지, 어디서 나온 인용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냥 밑도 끝도 없이, 커다란 검정색 붓글씨체로 그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좀 촌스럽고 투박한 말 같았는데, 어느 날 문득 그 말의 의미가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 삶을 마무리하고 떠날 때, 그들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못다 한 사랑을 해주리라는 믿음, 진실하고 용기있는 삶을 살아 주리라는 믿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 주리라는 믿음, 우리도 그 뒤를 따를 때까지 이곳에서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리라는 믿음 ? 그리고 그 믿음에 걸맞게 살아가는 것은, 아직 이곳에 남아있는 우리들 몫입니다.
아버지, 이곳에 오시고 나서 얼마 후에 ‘거버’ 박사께 전화했습니다. 1950년대에 ‘아이오와주립대학교’에서 아버지를 가르치셨고, 퇴임 후 1980년대에는 ‘뉴욕주립대학교’에서 명예교수로 계실 때 저를 가르치신 선생님 말입니다. 올해 91세이신데도 아직 정정하시지만, 가끔 건망증이 심하십니다. 이번에 전화를 드리니까, 아주 반색하시면서 “아, 왕록아! 오랜만이로구나! 그런데, 영희는 죽었지?”하셨습니다. 제가 “선생님, 이름을 바꿔 기억하시네요!”하고 말씀드리니까, 거버 박사가 “참, 그렇지? 미안하다. 너희 둘은 모습도 말하는 것도 너무 닮아서 말이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습과 말하는 것은 닮은꼴이지만, 아버지의 재능과 부지런함, 그리고 명민함을 제대로 물려받지 못한 저는, 아버지께서 하신 일과 하시고 싶었던 일까지 모두 닮고 싶어서, 아버지께서 보셨던 것과 똑같은 강, 똑같은 하늘, 똑같은 길을 보면서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영국작가 ‘새무얼 버틀러’는 ‘잊히지 않은 자는 죽은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지요. 떠난 사람의 믿음 속에서, 남은 사람의 기억 속에서, 삶과 죽음은 영원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뵐 때까지, 아버지의 믿음을 기억하면서, 성실하고 부지런히, 그리고 용기 있게 살아가겠습니다. 내일 뵈어요, 아버지!(출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장영희 / 서강대교수로 계시다가 2009년 5월 소천)
아버지를 존경하면서 그 삶을 닮고자 했던 장영희 교수님, 비록 57세라는 젊은 나이에 소천하셨지만, 그녀가 남겨놓은 수많은 글들은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아주 크게 울리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리 머지않아 곧’ 두 분 장 교수님들처럼, 육신은 땅 속에 묻히고, 그 영혼은 하늘나라로 향하겠지요! 그 나라에 가기 전까지, 우리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하여, 우리 모두 부단히 노력하고 힘써야겠습니다.(물맷돌)
[모세는 백이십 세에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어두워지지 않았고, 그때까지도 그 기력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신34:7,쉬운성경) 주께서는 언제나 모든 악에서 나를 건져주시고 하늘나라로 인도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 영원토록 영광이 함께 하소서. 아멘.(딤후4:18,현대어)]
아직도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으므로, 나는 일합니다.
샬롬! 지난밤 편히 쉬셨는지요? 12월의 세 번째 주말 아침입니다. 오늘도 내내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낮잠을 잘 활용하면 남들보다 더 명석한 뇌를 가질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습니다. 특히 노인의 경우, 낮잠을 자는 것이 뇌의 인지 능력 향상에 탁월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낮잠을 길게 자면 야간수면에 지장을 줄 수 있으므로, 수면 시간은 20분 이내로 짧게, 적어도 오후 3시 이전에 깨어나는 게 좋다고 합니다.
‘해머링맨(HammeringMan)’은 서울 광화문 근처에 있는 22m 높이의 움직이는 조각품입니다. 해머링맨(망치질하는 사람)은 구두수선공부터 과학자, 광부, 회사원, 예술가까지 ‘일하는 사람’의 상징입니다.
현역 최고령 배우 이순재는 ‘살아있는 해머링맨’입니다. 1956년부터 ‘연기(演技)’라는 망치질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연극 ‘갈매기’ 연출에 도전하면서 배우로도 출연합니다. 진력나지 않을까요? 그래서 ‘왜 아직도 연기를 하는지?’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것밖에 할 게 없으니까, 나는 하는 거예요. 그리고 ‘아직도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으니까’, 나는 합니다.” 단순하고 명쾌한 그 대답이 가슴을 쿵 쳤습니다. 이순재는 성공한 캐릭터인 ‘대발이 아버지’를 5~6년 더 우려먹을 수 있었지만, 끝나자마자 버렸습니다. 백지(白紙)에서 다시 시작했습니다.
망치질에 마일리지가 있다면, 백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는 VVIP입니다. 1920년생인데, 여전히 강연을 하고 책을 출간하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여든 살이 될 때 좀 쉬어봤는데, 노는 게 더 힘들더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게는 일이 인생입니다. 남들은 ‘늙어서도 그렇게 바쁜데 행복하냐?’고 묻습니다. 그들이 생각 못하는 행복이 뭔고 하니, 내 일 덕분에 무엇인가 받아들인 타인이 행복해하는 걸 보게 됩니다. 그게 내 행복입니다.”
오래 일하면서 터득한 ‘행복의 비결’이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생활이 되고, 남에게 도움이 된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습니다. 사람은 크게 세 부류라고, 이순재 씨는 말했습니다. 꼭 있어야 할 사람, 있으나마나 한 사람,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 ‘한국사회에 꼭 있어야 할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습니다. 할 수 있는 게 연기뿐인데, 아직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기에, 오늘도 연습실로 가고 있습니다.
일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내 쓸모만이 아니고, 타인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일한다.’고 관점을 바꾸면, 출근길이 즐거울 수 있습니다. 구순이 코앞인 현역 배우와 백세 철학자가 말하는 ‘망치질의 철학’은,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환승(갈아타기)이 각광받는 시대’라서 더 웅숭깊습니다. 필요한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면서 이 사회를 지탱하는 해머링맨(망치질하는 사람)들을 향한 응원가로 들렸습니다.(출처; C닷컴, 박돈규 / 기자)(웅숭깊다: 생각이나 뜻이 넓고 크다.)
아직 은퇴할 나이가 아닌데도, 할 일이 없어서 또는 써주는 곳이 없어서 놀고 있다면, 그처럼 안타까운 일도 없을 겁니다. 사실, 할 일이 없어서 노는 것처럼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러니, ‘아직도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으니까’, 나는 일합니다.”라고 말하는 이순재 씨 말씀은 명답입니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 덕분에 타인이 행복해하는 걸 보는 것, 그게 내 행복입니다.”라고 말씀하는 김 교수님이 진정 존경스럽습니다.(물맷돌)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은 남을 다스리는 자리에 올라서지만, 빈둥빈둥 게으른 사람은 다른 사람의 종이 될 수밖에 없다.(잠12:24,현대어)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 우리는 “일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먹을 자격도 없다”라고 가르쳤습니다.(살후3:10,쉬운성경)]
저는 가난하지 않습니다. 단순하게 살 뿐입니다.
샬롬! 밤새 편안히 잘 지내셨는지요? 12월 16일 금요일 아침입니다. 오늘도 내내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오늘은 ‘제임스 맥도널드’의 명언을 전해드림으로써 ‘아침편지’를 시작합니다. “능숙한 선장은 폭풍우를 만났을 때, 폭풍에 반항하지도 않고 절망도 하지 않는다. 늘 확고한 승산을 갖고 최선을 다해서 활로를 열어간다. 이것이 인생의 고난을 돌파하는 비결이다.”
저는 가난하지 않습니다. 단순하게 살 뿐입니다. 사람이 사는 데는 그다지 많은 것이 필요치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왜 그토록 호들갑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작은 집에 살고, 보잘것없는 살림살이에, 낡은 자동차를 몰아선가요? 이게 어찌 뉴스거리가 되는가요? 그렇다면, 세상이 이상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을 놀라워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저는 가난한 대통령입니다. 하지만, 제 마음은 절대 가난하지 않습니다. 삶에는 가격이 없습니다. 저는 저만의 생활방식이 있습니다. 대통령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를 바꾸진 않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부족할지 몰라도, 저는 필요이상으로 많이 벌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것을 희생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의무입니다.
저는 ‘가난’의 옹호자로 비춰지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다만, 낭비와 불필요한 지출과, 에너지 고갈과, 그리고 뭐든지 탕진하며 사는 것을 견딜 수 없을 따름입니다. 제가 무언가를 살 때, 그것은 돈으로 구입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돈을 벌기 위해서 쓴 시간으로 구입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 대하여 인색해져야 합니다. 시간을 아껴서, 정말 좋아하는 일에, 우리에게 힘이 되는 일에 써야 합니다.
당신이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유지하기 위하여 노예처럼 일하지 않아도 되고, 따라서 당신 자신을 위한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위하여 시간을 쓸 수 있을 때, 저는 그것을 ‘자유’라고 부릅니다.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소비에 냉정해져야 합니다. 그 반대의 길은, 과시적 소비를 위하여 ‘일의 노예’가 되는 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당신 자신의 삶을 위하여 살아갈 시간’을 빼앗고 말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작게 소비하는 것’입니다. 천 번을 넘어질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용기를 내어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딱 한 종류의 실패자들이 있는데, 이는 ‘싸우기’와 ‘꿈꾸기’와 ‘사랑하기’를 포기한 사람들입니다. 인간의 삶이 특별한 것은, ‘그 내용을 우리가 채워나갈 수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출처; 그린에세이, 임순형 / 수필가)
위의 글은 우루과이 40대 대통령 ‘무히카’의 어록입니다. 무히카는 대통령 재직시절, 월급의 90%를 기부하고, 노숙자에게 대통령궁을 내주는 등, 전 세계 그 어느 지도자들보다 검소한 대통령으로 알려졌습니다. 지금도 그는, 허름한 농가에서 농사지으면서,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답니다. 무히카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그야말로 명언(名言)입니다. 그리고 위의 글을 볼 때, 무히카의 삶은 명품(名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진정 두고두고 마음에 새겨야 할 명언이고, 또한 본받고 따라가야 할 명품인생이라 여겨집니다.(물맷돌)
[그는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옳은 일을 하였으며, 그의 조상 다윗을 본받아 오직 한결같은 마음으로 여호와를 섬겼다.(왕하22:2,현대인) 내(바울)게서 배운 것과 내가 행하는 것을 본받아 실천에 옮기십시오. 그렇게 하면,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빌4:9,현대어)]
“에미가 별나서!”
샬롬! 지난밤도 편안히 잘 쉬셨는지요? 12월 15일 목요일 아침입니다. 오늘 하루도 내내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주변에서, 공감과 이해와 보살핌과 같은, 정서적 지지를 충분히 받지 못하는 노인들은 치매에 걸릴 위험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가사나 거동을 도와주는 것보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치매 발병을 줄이는 데, 보다 효과적이라는 점’을 밝힌 최초의 연구라고 합니다.
저는 계속해서 ‘괜찮은 성공’들을 거두었습니다.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에 성공하고, 좋은 대학에 가는 것에 성공하고, 이름난 문학상을 받는 것에 성공하고, 좋은 작품들을 쓰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그런데도, 어느 날 제 발밑의 땅이 무너져내렸습니다. ‘제가 무슨 일을 해도 이 동굴에서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다’라고, 절망하면서 어둠 속에 파묻혔습니다. 성공은 상처들을 아물게 하지 못했습니다. 엄마는 ‘달리는 말에게 채찍질을 가하는 것이 엄마의 할 일’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성실하고 꾸준하게 그 일을 수행했습니다. 그것이 엄마의 교육방법이고 사랑하는 법이었습니다. 저는 그 교육과 사랑을 먹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엄마의 신식교육방식’에 동의하지 않으셨습니다. 저의 울음이 너무 길다싶은 날은, 제가 혼나고 있는 방문을 홱 열어젖혔습니다. 그리고 두 주먹을 꼭 쥐어 허리 근처에 대고 여장부처럼 호통을 치셨습니다. “그만해라! 아이가 다 그렇지. 에미가 별나서!” 하지만, 겨우 그게 다였습니다. 할머니는 말수가 적은 분이셨고, 아이를 키우는 것은 엄마의 신성한 영역이라고 여겨서 되도록이면 관여하지 않으셨습니다. 저에게 엄마를 욕하거나 흉을 보는 일도 없으셨습니다. 제가 안돼 보이는 날에는, 시선을 TV화면에 고정한 채로 혼잣말처럼 한숨 섞어 중얼거리는 게 전부였습니다.
“에미가 별나서!”
할머니는 ‘옳다, 그르다’라는 가치판단을 함부로 내리지 않는 분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나쁘다거나 못됐다’는 표현을 쓰지 않고, ‘별나다’고 하셨습니다. 엄마뿐 아니라, 제가 못마땅할 때도 똑같이 ‘별나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마다 제각각 별난 개성들이 있는데, 함께 살다보면 그것이 때로는 견디기 힘들 지경이 되곤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할머니는 그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살면서 부딪히게 되는 많은 갈등들이 ‘옳고 그름’의 차원이 아니라 ‘부대낌의 문제’인 것을, 할머니는 알고 계셨습니다.(출처;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심윤경 / 소설가)
제 생각에는, ‘글쓴이의 할머니와 어머니, 그 두 분의 교육방식을 절충하면 어떨까?’싶네요. 사람의 성격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말로만 해도 충분히 통제가 가능하지만, 어떤 사람은 말만으로는 도무지 통제가 불가능할 경우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강제적인 방법은 그 한계가 분명 있어야 할 겁니다. 아무튼, ‘할머니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경우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능하다면, 오늘의 아침편지는 두 번 이상 반복해서 읽어보실 것을 권합니다.(물맷돌)
[여러분은, 내(모세)가 오늘 전하는 이 모든 명령을 철저히 지켜서 그대로 행하고,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며, 주께서 가르쳐 준 길로만 걸어가고, 주님만 꼭 붙들고 살아가십시오.(신11:22,현대어)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마28:20,표준)]
요즘, 저는 정말 살맛이 납니다!
샬롬! 지난밤 편히 쉬셨는지요? 12월 14일 수요일 아침입니다. 오늘도 내내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많이 먹었을 때의 부작용 줄이는 법’ 그 다섯 번째는 ‘식사 계획’입니다. 방금 먹은 음식을 없던 일로 할 수는 없기에, 앞으로의 식사를 가볍게 하려고 노력해야 한답니다. 이때, 일주일 단위로 식사계획을 세우는 게 좋답니다. 저칼로리 식단을 유지하는 식으로 계획해야 하고, 요즘엔 관련 앱을 사용하면 더 편하다고 합니다.
저는 무언가를 강조할 때 ‘죽겠다!’라는 말을 덧붙이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습관적으로 ‘힘들어 죽겠다!’고 말하는 저와 달리, 여든이 넘은 외할머니는 마른걸레로 방바닥을 훔치면서 “살겠네, 살겠어!”하고 읊조리곤 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아, 배불러 죽겠다!”라고 하면, 외할머니는 저의 등을 가볍게 치면서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니야. 무슨 일이 있어도 ‘살겠다!’고 해야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코로나가 심해졌을 때, 저는 7년간 다닌 회사에서 나와야 했습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여러 회사에 지원해서 한 곳에 들어갔지만, 거기에서도 금방 나와야 했습니다. 한 회사에 들어가면 길게 다닐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마음이 맞는 곳을 찾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일 년 동안 세 번이나 옮겨 다녀야 했습니다. 잦은 이직으로, 이력서에 많은 이직 내용이 남을까 봐 불안했습니다.
세 번째 회사에 사표를 던진 후의 어느 여름날, 청계천에 앉아 저도 모르게 ‘진짜 죽겠다!’라고 중얼거렸습니다. 한순간 튀어나온 저의 목소리에 스스로 놀라고 서러워서 눈물이 핑 도는 그때, 외할머니께서 흥얼거리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살겠네. 살겠어!” 어색했지만 몇 번 반복하니, 이상하게 힘이 솟았습니다. 저는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외할머니를 찾아갔습니다.
외할머니는 평소처럼 저를 반겼습니다. “우리 강아지, 바쁜데 뭐 하러 와! 미리 말했으면 고기라도 사 놨지. 할머니가 금방 밥 차려 줄게.” 그렇게 오랜만에 할머니의 따뜻한 집밥을 먹었습니다. 할머니께서 내온 참외와 포도를 먹으면서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곧 일을 시작할 수 있었고, 제가 나아갈 방향에 도움이 되는 일을 찾아 다시 이력서를 준비했습니다.
새로운 곳에서 일 년 넘게 일한 요즘, 저는 정말 살맛이 납니다.(출처; 좋은생각, 김성혜 / 서울 영등포구)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죽겠어!’라는 말을 덧붙이는 경우가 꽤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무의식중에 ‘죽겠다’는 말을 한 적이 더러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가 어떤 생각(마음)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말을 하게 되지만, 그 반대로 우리가 어떤 말을 자주 하느냐에 따라서 그 행동이 영향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요컨대, 부정적인 언어를 자주 사용하면, 그 삶도 어두워질 가능성이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긍정적인 언어를 자주 사용할 경우, 그 삶도 자연히 밝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되도록 ‘밝고 긍정적인 언어’로 구성된 좋은 말을 많이 하도록 힘써야 합니다.(물맷돌)
[“이제 이 아이가 당신에게 살맛나게 해주겠군요. 늘그막에 당신을 잘 모시겠지요. 이 아이는 일곱 아들보다도 더 당신을 극진히 모시던 당신 며느리가 낳은 아들이니까요!”(룻4:15,현대어) 나 비록 지금까지 배운 일 없는 다른 나라의 언어로 말하고, 또 하늘과 땅의 모든 언어를 다 말할 수 있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다면 소리 나는 시끄러운 꽹과리, 울리는 징일 뿐(고전13:1,현대어)]
암(癌)은 ‘자기를 돌아보는 반성의 기회’를 갖게 합니다.
샬롬! 밤새 평안하셨는지요? 12월 13일 화요일 아침입니다. 오늘 하루도 내내 건강하고 행복한 날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많이 먹었을 때의 부작용 줄이는 법’ 그 네 번째는 ‘낮잠 피하기’입니다. 많이 먹은 후, 사람은 축 늘어지게 마련입니다. 이때 바로 낮잠을 자버리면, 살이 찌는 것은 물론, 위산 역류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합니다. 식후에 눕는 것은 최대한 뒤로 미루고, 되도록 몸을 많이 움직이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하네요.
암(癌)은 ‘그간 자신이 살아온 삶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어떤 생활태도로, 그리고 어떤 마음과 몸을 가지고 살아왔는지, ‘그 기록이 나무의 나이테처럼 여실히 새겨져 보여준다.’는 겁니다. 그러한 생활태도가 하나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암(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암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5~10년 동안 오랜 시일에 걸쳐 몸이 서서히 망가져서 암이 자리 잡도록 환경이 만들어졌을 때 생긴답니다. 말하자면, 평소 지나치게 고민하거나, 수면장애, 분노, 잘못된 식습관, 운동부족이 그 원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고기와 생선과 조미료를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고, 그 반면에 비타민과 미네랄 등이 부족할 경우, 암의 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암은, 어느 날 뜬금없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사는 동안 잘못된 생활습관이 누적되어 일어나는 ‘생활습관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암에 걸리면 누구나 다 당황합니다. ‘내가 왜?’하고 부정합니다. 그러다가 차츰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때는 이미 이성을 잃어버린 상태가 됩니다. 병원에서 암으로 판정을 받으면, 8~90% 이상은 양방을 찾아가 메뉴얼에 따라 수술, 항암, 방사선치료를 받게 됩니다. 거기다가, 골수암의 경우는 골수이식을 받습니다. 그 외에는 한방이나 대체의학을 택하는데, 많은 숫자는 아닙니다. 암 치료가 끝나면, 환자의 정신 상태는 확연히 달라집니다. 자기를 돌아보면서 그간 잘못 살아온 삶에 대하여 후회를 한다고 합니다.
그 중의 하나는, 자신이 취하고 있던 마음의 태도가 잘못 되었음을 깨닫고 후회를 합니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고,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면서 살아온, 지난날의 삶을 뉘우친다는 겁니다. 그리고 또한, ‘자신을 고립시키면서 남과 소통하지 않고 살아온 것에 대하여 후회를 한다.’고 합니다. ‘왜 내가 다른 사람과 화해하지 못하고, 분노를 품은 채 갈등 속에서 살아왔는가?’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고 합니다. 나아가서, ‘무절제하게 살아온 것과 함께, 지나친 경쟁심으로 탐욕을 부리고 살아온 것에 대하여, 후회하면서 반성하게 된다.’고 합니다.(출처; 그린에세이, 임병식 / 수필가)
글쓴이는 글머리에서 ‘암(癌)은 그간 자신이 살아온 삶을 보여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암에 걸리게 될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동안 살아온 자신의 잘못된 생활태도를 반성하면서 후회하게 된다는 겁니다. 물론, ‘잘못된 생활태도로 인하여 암에 걸린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으리라 여겨집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평소 지나친 고민을 하거나, 수면장애, 분노, 잘못된 식습관, 운동부족이 그 원인이라고, 글쓴이는 전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이 글을 대하면서, 지금 자신의 삶이 어떠한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취하고 있는 식습관이나 생활태도 중에서 고쳐야 할 부분이 없는지, 냉철하게 자기 자신을 살펴봐야 할 겁니다.(물맷돌)
[한번 잘못된 일은 마치 흘러가 버린 강물처럼 되돌릴 수가 없다. ‘과거에 잘했더라면 좋았을 것을!’하고 후회해 봐도 소용이 없다.(전1:15,현대어) 나중에 가서 ‘에서’는 후회의 눈물을 흘리면서 그 권리를 되찾으려고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일을 기억하고 언제나 조심하십시오.(히12:17,현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