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채상병 순직사건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보지 못하는가
매일 아침, 집 근처 숲을 산책할 때마다 만나는 친구가 있다. 우리는 각자 산책을 하다가 일정한 시간이 되면, 인사를 할 겸 해서 특정 장소에서 서로를 기다린다.
어느 비오는 날 아침, 나는 평소보다 늦게 숲에 올랐다. 이미 숲속 트레킹길을 다 걸었는지, 친구는 우산을 쓰고 아래쪽 오솔길을 왔다갔다 산책하고 있었다. 조금 있다가 아침인사를 하면 되겠다 싶어서 나는 친구에게 기척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트레킹을 마친 후 그 장소에 가보니 친구는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친구가 말하길, 비가 오니 내가 산책하러 나오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고 집으로 가버렸단다. 주위를 살펴보기만 했어도 나를 발견할 수 있었을 텐데도 자신의 섣부른 생각과 판단 때문에 나를 보지 못한 것이었다.
친구는 나를 찾지 않고 집으로 가버리는 행동을 하였다. 이러한 행동 이전에 ‘비가 오니 산책하러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있다. 이 생각 이전에 ‘비가 오고 후덥지근하니 불쾌하네(빨리 집에 가야겠다)’라는 느낌과 감정, 생각이 있을 수 있다.
이렇듯 생각, 감정, 판단 등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의식의 흐름이 우리의 행동에 선행된다. 이런 의식의 흐름은 지향성을 가지기도 한다. 의식의 지향성은, 의식이 특정한 상황에서 욕망이나 의도, 목표에 따라 일정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말한다. 일정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결과 그 방향에 부합하지 않는 것들은 주의를 끌지 못하고 무시된다.
작년 7월, 채상병 순직사건이 일어났다. 국민들은 사고의 정확한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원했다. 언론사들은 취재경쟁에 뛰어들어 각종 보도를 쏟아내는 와중에 일부 언론인들은 단순한 의혹제기를 넘어 허위 주장을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터무니없는 주장에 대해 당시 임성근 사단장은 일일이 반박하지 않았던 것 같다(아마도 ‘군인’이라는 신분상 제약 때문이었지 싶다). 당시 언론의 보도는 편향적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사단장에 대한 악의적 기사와 이를 반박하는 주장의 부재 덕분에, 임 사단장은 금세 전 국민적으로 ‘나쁜 놈’, ‘부하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몹쓸 놈’이라는 이미지로 낙인이 찍히고, 온갖 욕설과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사람들 마음 속에 임 사단장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선입견이 굳건히 자리잡자 이후에 나온 사단장의 주장은 타당한지 여부에 대해 제대로 된 검토 한번 받지 못한 채 배척되었다. 예컨대, 사단장이 탄원서에 쓴 “군인은 국가가 필요할 때 군말 없이 죽어주도록 훈련되는 존재들입니다”라는 표현은 군인의 특수성을 설명하는 긴 문단의 한 문장임에도 ‘장병은 군말없이 죽어야 하는 존재이다’는 뜻을 표현한 것인 양 그 표현과 관련하여 ‘그럼 장병이 군말없이 죽어야 하냐’며 ‘쓰레기 같은 소리’라니, ‘미친 거 아니냐’느니 ‘공감 능력이 없다’느니 하는 비난의 세례를 받았다.
또 ‘민간인 이종호 씨를 모른다’는 임 사단장의 청문회 증언과 관련하여 어느 방송사의 앵커는 박균택 의원에게 ‘그럼, (임성근 사단장의 위 증언은 임성근 사단장이) 군인인 이종호 씨를 안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되냐’는 질문을 하였다. 앵커는, 임 사단장이 군인 출신인 블랙펄인베스트먼트 사장 이종호 씨를 알면서도 ‘나는 민간인 이종호 씨를 모른다’고 교묘히 대답하였을 것이라고 의심한 나머지 이런 질문을 한 것으로 보인다. 과도한 의심이다(참고로, 임 사단장은 전 해군참모총장 이종호 씨는 당연히 알고 있었기에 박균택 의원에게 ‘민간인 이종호 씨는 모른다’라고 말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처럼 일부 언론에 의해 일단 ‘임성근 사단장은 신뢰할 수 없는 자’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지고 나니 일부 칼럼니스트는 이러한 이미지에 터잡아 수중수색을 지시하지 않았다는 임성근 사단장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임 사단장의 수중수색 지시로 인해 사고가 났다’라고 단정하고는, 이에 기초하여 임성근 사단장을 거짓말장이로 몰거나 되지 않은 훈계를 하기 시작했다.
대중매체가 이런 내용으로 채워지고, 이에 노출된 사람들이 부지불식간에 대중매체가 제시한 방향으로 자신들의 인식을 맞추어 가면서 대다수의 국민들의 인식 속에서 임 사단장은 수중수색을 지시한 자 내지 부하에게 자신의 책임을 떠넘긴 자가 되었다. 그 결과 사안의 진상 내지 책임의 소재에 관한 임 사단장의 정확한 진술이 자신의 책임을 부하에게 떠넘기는 언행으로 자연스럽게 오해되었다.
일단 국민들의 인식이 이렇게 굳어지자 이러한 인식 형성을 선도하던 기자들조차 이러한 인식과 배치되는 보도를 하는 데 심적으로 큰 부담을 느끼는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임 사단장님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글을 쓸 수 없음을 양해 부탁드린다.”는 어느 기자의 고백은 이런 심적 고충을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자기가 판 무덤에 갇힌 꼴이다.
여론에 굴종하여 사실을 사실대로 보도하지 않는 언론은 독자로서 보기 민망하다. 기자 본인들은 더할 것이다. 그래서 기자들은 거창하게 기자정신에 의탁하지 않더라도 보도 가치 있는 사실은 비록 그 사실을 보도하는 것이 기자 본인에게 어느 정도 나쁜 결과를 초래하더라도 보도하는 길을 선택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럼에도 채상병 사건을 취재한 기자들 대부분은 그러한 길을 가지 않았다.
예컨대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에 대한 불법성 논란이나 해병대에 대한 나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임성근 사단장을 처벌할 필요가 있다는 논의가 사고 직후 해병대 사령관과 방첩부대장, 박정훈 대령 3자 사이에 오갔다는 사실은 보도 가치가 분명하므로 통상의 경우라면 누군가는 보도할 것으로 기대되는 사실이다. 그런데 기자들은 이들 사실에 대해서 약속이나 한 듯 보도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러한 보도가 그간 사회적으로 의인을 넘어 위인의 반열에 들어선 어퓨굿맨 박정훈 대령의 이미지에 스크래치를 내는 것이고, 이는 국민들에게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보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단장이 책임이 있다, 사단장은 부하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후안무치한 인간이다, 사단장을 처벌해야 한다.’라는 식의 생각이 어떤 사람의 의식에 확고하게 자리잡게 되면, 보통 사람들은 다양한 정보를 접하더라도 기존 생각을 강화하는 것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편향성이 더 심한 사람들은 기존 생각에 합치되는 것만을 보고 듣게 되는 것이다. 즉, 자신의 기존 생각과 다른 것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비로 인해 내가 산책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예상한 친구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나를 보지 못한 것처럼, 많은 국민들이 임성근 사단장은 나쁜 사람이라는 인식을 이미 가진 탓에 임성근 사단장이 아무리 채상병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대해 말해도 그것을 전혀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심리적 맹인, 농인(聾人)을 만드는 의식의 방향성의 원천은 다양할 듯하다. 어떤 이는 ‘선악의 대립구도에서 악인은 제거되어야 한다’라는 도덕적 가치관이, 다른 이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응징해야 한다’는 윤리적 가치관 또는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정치적 의도가 그런 원천일 수 있겠다. 원천이 무엇이건 방향성이 가지고 오는 부정적 결과는 동일하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백번공감합니다. 왜곡된 사실에 기반한 선악의 구조 속에서 언론, 정치집단에 의해 작위적으로 만들어진 의인과 악인은 무매한 대중들에게 열광받고 그들이 의인으로 규정한 이에게는 어떠한 비판도 허용되지 않고 심지어는 사실 조차도 외면하려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악인로 낙인찍은 대상에게는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비정상입니다.
그들이 바라는 권선징악 또는 잉과응보의 결말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단장을 계속해서 비난하고 헐뜯고 중상모략을 자행할 것입니다. 작금에 우리 사회의 정의가 살아 있기는 한지 개탄스럽습니다.
저는 현실의 모든 사안에서 사필귀정을 보는 것은 불가능 하지만 이 사안에서는 100% 볼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판단을 뒷받침하는 실제 근거는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만들어 낸 이 카페입니다.
이 카페는 보시다시피 채상병순직사건에 관한 한 놀라울 정도로 강력한 진실발견 및 전파 체계로 성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