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0일 물날 춘분 날씨 : 아침부터 비올 듯 흐리더니 아침나절에 때때로 빗방울이 떨어진다. 낮에는 개는가 싶더니 바람이 엄청 차다. 걸어가는 날인데 어린이들 감기 걸릴까봐 낮은샘은 유찬, 성범, 원서, 동엽, 규태가 걸어가고 높은샘은 다 걸어간다.
제목 : 문패만들기
지난 겨울 방학 1월 13~14일, 안양 벼리학교에서 초등대안학교 교사 연수가 있었다. 벼리학교는 5층 건물을 2층부터 쓰고 있었는데 방마다 꽤나 널직한 것이 좀 부러웠다. 비슷한 기질의 사람들끼리 모여서 서로 이야기나누며 도움말을 받아 학교에서든 다른 곳에서든 힘들었던 마음을 치유받는 뭐 그런 것이 중심이었는데, 한 교실에 갔더니 못으로 글자를 만들어서 문패처럼 쓰는 것이다. 이미 새 학년 모둠이 정해진 때라 알찬샘이 될 녀석들이랑 이걸 해보면 좋겠다 싶어 눈여겨 봐 두었다.
3월 첫 주, 알찬샘 어린이들과 밑그림 이야기를 나눌 때 톱과 망치로 우리 방 문패를 만든다고 했더니 어린이들이 엄청 좋아한다. ‘녀석들 꽤 힘들 텐데. 멋도 모르고 좋아라 하는군.’했다.
아침 산책을 하고 돌아와 한줄글쓰기, 피리도 불고, 노래도 하고, 시도 외며 하루를 여는데, 하루 흐름 이야기를 해주었다. ‘문패만들기’가 나오니 어린이들이 “와~” 크게 소리친다. 그리하여 한 10분 쉬고 차례차례 이야기를 풀어본다.
“얘들아, 우리 모둠이 일곱 명이잖아. 그런데 알찬샘만 쓰면 세 글자야. 그래서 선생님 생각에는 앞에 네 글자가 더 들어가서 우리가 하나씩 해서 어린이들 모두가 만든 알찬샘 문패가 되면 좋겠어.” “좋아요. 좋아요. 근데 선생님은요?” 종민이가 나도 알찬샘에 끼워주니 고맙다. “난 너희들 도와야 할 거 같아. 연장을 쓰니 좀 위험할 수도 있고, 처음 하는 것이니 잘 안 될 수도 있잖아.” 어린이들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자 그럼 앞에 네 글자 뭐라고 하면 좋을까?” “자유시간, 자유시간 많이 달라고 자유시간으로 해요.”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자기 뜻대로 잘 노는 태인이가 외치듯 말한다. “좋아요.” 요즘 자유시간 더 필요한 유찬이가 거든다. “그래 그것도 좋겠는데 우리 모둠이 앞으로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좀 멋진 뜻을 가진 말이면 좋겠어. 가령 성범이가 다닌 어린이집 이름 함께크는 같은 거 말이야.”했더니 잠시 조용하다. 무슨 말이 나올까 기대가 된다.
“도란도란” 수줍은 듯 민주가 말한다. “우리 모둠 일기 이름 도란도란으로 해요.” 태인이가 받는다. 다른 어린이들도 도란도란이 좋겠다고 한다. “그래 너희들 뜻이 모아졌고,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모둠이라는 뜻도 좋으니 도란도란으로 하자.” 아이들이 결정하는 것 같지만 선생 입김이 너무 센 거 같다.
“그럼 필요한 걸 좀 생각해 볼까?” “톱이요” “망치요” “못이요” “더 필요한 건 없을까?” 다시 조용 “연장을 쓰니까 손이 위험하잖아.” “장갑이요” “그럼 다 됐나?” 다시 조용 “나무를 얼마나 두껍게 자를지를 봐야 할 거 같아. 못이 더 길면 뾰족한 게 나오잖아.” “자?”유찬이가 조심스레 말한다. “그래, 자가 필요할 거 같아. 필요한 것도 다 이야기 됐고. 그럼 어린이들이 하고 싶은 글자를 이야기해보자.” 다들 일 욕심이 많은 어린이들이라 서로 어려운 글자를 해보겠다고 한다. 첫 번째 원하는 것이 겹칠 때는 가위바위보로 정하기로 하고 정하니 처음 도-동엽, 란-민주, 도-성벙, 란-태인, 알-원서, 찬-종민, 샘-유찬으로 결정하고, 나는 필요한 거 챙기고 어린이들은 밑그림을 그리는데 못을 어디에 박을지 얼마나 촘촘하게 박을지까지 그려보라고 하니 몇 녀석은 100개가 넘게 박겠다고 한다. 마당으로 나간다. 바람이 차고 빗방울도 조금 떨어져 얘들아 나중에 할래? 하니 “비 가리개 치고 하면 돼요. 지금 해요.” 아우성이다.
그래서 평상에 비가리개를 치고 시작한다. 큰 톱을 써본 일이 없는 녀석들이 톱을 보고 몹시 놀란다. 톱질하는 자세를 이야기하고 힘주는 법 따위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하는 것을 보여준다. 보는 대로 다 되는 것은 아니나 다들 열심히 한다. 진짜 열심히 한다. 자기 밑그림을 옆에 놓고 하나하나 못을 박는 모습이 정말 진지하다. 도와주겠다고 하면 정말 싫어하는 표정과 말투로 “싫어요. 제가 할래요.”한다. 큰 도움없이 ‘작품’을 만들어낸다. 아침나절만으로는 시간이 모자라 낮공부로도 이어갔다. 유찬 태인 민주는 셋이 모여 정말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망치를 돌려쓴다. 정말 즐겁게 일한다. 일이 놀이가 된 듯하여 나도 기쁘다.
글자 하나 하나 다 만들어간다. 어린이들이 스스로 ‘멋진(?)’ 작품을 만들어 내니 괜히 으쓱해하는 모습이다. 마침회에 때 크게 칭찬을 해준다. 선생님들에게 ‘작품(?)’을 보여주니 정말로 크게 칭찬해주신다. 내일 아침에 어린이들에게 이야기를 전해야겠다.
첫댓글 선생님과 아이들이 손수 만든 "도란도란 알찬샘" 문패라... 작품이겠네요. ^^
한번 보고 싶네요
사진에 올려뒀고요. 알찬샘 방 앞에 예쁘게 걸어두었습니다. 학교에 오시면 언제나 보실 수 있습니다.^^
도란도란 알찬샘 화이팅^^ 세영이도 맑은샘에서 알찬샘으로 시작했는데 세월 참 빨리 가네요.^^ 일을 놀이처럼 하고 그 아이들을 기쁘게 품어주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그림처럼 예쁘게 그려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