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뉴스는 지난 20년 가까이 통일운동 현장의 일선에서 뛰어온 민경우 통일연대 사무처장이 직접 쓴 '민경우의 통일운동사'를 연재한다. 이 연재물은 간첩죄명으로 서울구치소에 수감중인 민경우 처장이 옥중에서 작성한 원고를 '옥중기고' 하는 방식으로 게재된다.
민경우 씨는 "2000년부터 2002년까지 범민련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면서 범민련 공동사무국 박용 부총장에게 8.15 통일대축전 행사와 통일연대 결성 등의 '국가기밀'을 수집 전달했다"는 이유 등으로 지난 2003년 12월 1일 전격 연행된 후 올해 5월 24일 1심에서 징역 4년, 자격정지 3년 실형을 선고 받고 이어 10월 28일자로 3년 6월형이 확정되어 현재 서울구치소(186번)에 수감 중이다.
'민경우의 통일운동사'는 매주 월요일에 연재된다. - 편집자 주
6.15 공동선언 2항에는 일반인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합의가 들어있다.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했다”는 구절이 그것이다. 본 글에서는 6.15 선언 2항의 합의를 여러 각도에서 서술해 보겠다.
① 남측의 연합제안
남측의 연합제안은 4가지 정도를 생각할 수 있다. 1982년 전두환 정부의 “민족화합 민주통일방안(이하 ㉠)”, 89년 노태우 정부의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 94년 YS 정부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과 DJ 대통령의 “공화국연합제안(㉣)”이다. 위 4가지 통일방안은 대체로 유사하다.
따라서 남측의 연합제안이라고 했을 때 위 4가지 중 어느 것을 취해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본 글의 과제는 연합제안이 갖고 있는 본질인 만큼 미세한 수준에서 논의를 진행시켜 보겠다.
㉠,㉡은 통일 과정을 두 단계로 분리한다. ㉠에서는 <“남북한 기본관계에 대한 잠정협정”→통일>이고 ㉡에서는 <남북연합→통일>이다. 연합제란 ㉠,㉡의 두 단계 중 첫 번째 단계를 의미하는 데 남북이 별개의 국가인 상태에서 주로 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 교류 협력하는 단계를 의미한다. ㉠과 ㉡에서는 첫 번째 단계에서 북이 자본주의를 수용하면 자본주의 체제로 단일화된 조건에서 통일할 수 있다고 본다.
㉠과 ㉡은 통일 방안으로써는 완결성이 떨어지는 다소 조악한 문서이다.
첫째는 주한미군에 대한 입장이 들어 있지 않다. ㉠,㉡ 모두 주한미군에 대한 일언반구의 언급 자체가 아예 없다. 통일 방안, 통일 과정에서 주한미군 문제를 아예 거론조차 하지 않은 것은 위 두 문서가 미국의 지위를 신성시하는 남의 극우보수주의에 깊이 포박되어 있음을 뜻한다.
필자가 보기에 ㉠,㉡을 입안했던 사람들이 그런 수준의 극우 노선에 물들어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남의 보수 세력은 70년대 초반부터 두 가지로 분화되었는데 ㉠,㉡의 발상은 위 두 가지 흐름 중 맹목적인 친미반북노선과는 궤를 달리하는 유화적 흐름이다. 문제는 보수세력의 유화적 흐름에서조차 주한미군에 대한 입장을 담을 수 없었던 뿌리 깊은 친미 성향이다.
둘째는 통일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필요한 법적 정비 과정을 도외시하고 있는 점이다. 헌법 3조에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부속도서로 한다”고 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북은 정부를 참칭하는 불법단체로 와해.척결.분쇄의 대상이다. 70년대 초반부터 북의 정치적 실체를 인정하면서 남북이 두 개의 국가간 관계임을 확인하려 했다. 북이 남과 별개의 국가라면 북이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일 수는 없다. 한편 90년대 초반 합의서와 남북교류협력법에는 남북 관계를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로 규정했다.
그렇다면 동일한 대상인 북이 어느 때는 반국가단체이고 또 어느 때는 별개의 주권국가인가? 민족 내부의 특수 관계는 또 어느 때 적용되는가? 이를 가르는 기준은 정부와 법원 마음이다.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한 각급 남북대화를 고도의 통치 행위라며 국가보안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고 법원은 동일한 남북 교류를 편의에 따라 무혐의 처리하기도 하고 국가보안법으로 단죄하기도 했다. 이른바 힘있는 자들의 기회주의적인 처신은 정치군사적인 영역에서는 애써 남북관계가 두개의 국가임을 강조하면서 경제교류에 대해서는 민족 내부의 특수 관계임을 주장하는 데서도 뚜렷이 드러난다.(대한민국이 법치국가가 맞는가?)
남측의 통일방안에서 법적 정비 과정이 누락되어 있는 것은 문서 입안자들의 무능력 때문이라기보다는 국가보안법이 갖는 특수성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은 법적 정비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체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 DJ 대통령의 통일방안은 ㉠,㉡이 갖고 있는 비상식적인 허점을 상식적인 선에서 교정한 것이다. ㉣에서는 통일 과정이 진행됨에 따라 어느 시점에서는 주한미군도 철수할 수 있고 국가보안법도 개폐되어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상식적인 견해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신봉자 DJ 대통령이 “빨갱이”로 낙인찍힌 이유이다.
㉣ DJ 대통령의 통일방안의 특이한 점은 통일지향적인 요소이다. ㉣에서는 통일과정을 3단계로 구분한다. 1단계는 연합제 단계로 남북은 각기 체제를 유지하면서 남북연합을 구성한다. 2단계는 북이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면 연방제를 실시하는데 이 때 연방제는 북이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된 조건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상이한 제도가 공존하는 북의 연방제와는 다른 것이다.
따라서 <연합제→통일>로 가는 과정을 <연합제→연방제(이 때의 연방제는 북이 시장경제와 다당제를 받아들인 가운데 이루어지므로 남 주도의 중앙 정부가 서게 된다.)→통일>로 세분화했다고 해서 ㉠,㉡과 큰 치이는 없다.
주목할만한 점은 DJ 대통령의 1단계에서 구성되는 연합기구가 UN에 하나의 의석으로 가입할 수 있고 연방제 단계에서 북의 연방제 방식을 고려할 수도 있다고 본 점이다. 이러한 발상에서는 ㉠,㉡ 연합제의 독소적 요소가 크게 희석되어 있다. ㉠,㉡의 연합제는 <국가연합(또는 남북한 기본관계에 대한 잠정협정)→통일>로 되어 있는 데 국가연합은 두 개의 국가이고 통일은 하나의 국가이다.
㉠,㉡에서 1단계의 법적 지위를 두 개의 국가로 고집하는 이유는 하나의 국가를 상징하는 조치가 자칫하면 통제 불가능한 역동적인 국면으로 발전하면서 주한미군의 입지를 좁힐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의 1단계의 핵심 내용이 정전협정의 고수인 점도 동일한 이유이다.
반면 DJ 대통령은 1단계 연합제에서 구성되는 연합기구가 UN에 하나의 의석으로 가입할 수 있다고 본다. 연합제 상태에서의 법적 지위는 두 개의 국가이므로 연합기구는 국가 기구일 수 없지만 연합제가 통일로 가는 과정상의 한 단계임을 명확히 하기 위해 연합기구의 단일의석 UN가입을 고려한 것이다.
동일한 관점에서 2단계 연방제에서 북의 사회주의 체제가 유지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물론 DJ 대통령의 기본 취지는 궁극적인 통일국가의 체제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되어야 한다는 큰 기조 위에서 일시적으로 북의 사회주의 체제가 존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개의 국가→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남의 변화(국가보안법)를 상정하지 않고 북의 일방적인 변화(사회주의 포기)만을 고려하고 있는 점과는 크게 다른 점이다.
이상을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과 ㉣의 차이>
㉠,㉡
○ → ○ 연합제 통일
두 개의 국가 하나의 국가 주한미군 언급 불가 (정전협정 고수) 국가보안법 유지 북의 변화가 없으면 다음 단계 진입 불가
㉣
○ → ○ → ○ 연합제 연방제 통일
두 개의 국가 / 하나의 국가 / 하나의 국가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 4대 강국 평화보장 북의 (노동당규약, 형법과 연계) 남의 (헌법 3조와 국가보안법 개폐) 연합기구 / UN단일의석 가입 / 북의 사회주의 유지 가능
<㉣의 연방제와 북의 연방제의 차이>
㉣
중앙정부
남의 북의 지역정부 지역정부
↓
시장경제.다당제 북이 원할 경우 일시적으로 사회주의 유지
(북)
중앙정부
남의 북의 지역정부 지역정부
↓
북의 사회주의 유지
한편 ㉢ YS 정부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통일 과정을 3단계로 구분한다. <화해협력 단계→연합→통일>이다. DJ 대통령이 연합→통일 과정에 연방제를 삽입하여 통일과정을 보다 구체화했다면 YS 정부는 연합 → 통일 이전에 또 하나의 단계를 설정하여 연합으로 진입하는 과정에 복잡성을 조성했다.
양자의 차이를 굳이 구분한다면 ㉣의 경우 적당한 남북 대화.교류 후에 남북의 정치적 결단이 있으면 연합 단계로 진입할 수 있다. 반면 ㉢은 화해협력을 통해 북측이 사회주의를 포기한다는 징후가 보여야만 남북연합으로 발전할 수 있다. 화해협력 과정을 통일 과정의 한 단계로까지 격상시킨 이면에는 연합단계 이전의 대화.교류마저도 치밀한 정치적 계산 하에 진행시키겠다는 우파적 발상이 숨어 있었다.
70년대 초반 이후 남측의 통일방안은 대체로 ㉠,㉡ 수준에서 움직였다. ㉠,㉡은 국가보안법 체제나 UN이 승인한 한반도의 유일합법정부라는 전통적인 발상에서 벗어나 북의 실체를 인정하고 대화.교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상식적인 견해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은 이러한 상식적인 흐름을 형식적으로는 부정하지 못하면서도 내용적으로는 거부하고 싶었던 보수세력 내부의 우파적 성향을 극단화한 통일방안이다.
②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
먼저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란 일반적인 차원에서 보면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남북정상회담과정에서 어떻게든 통일방안에 합의하고 싶었던 북이 인위적으로 고안해낸 개념이다. 따라서 “낮은 단계”는 필요에 따라 미시적, 점진적, 일차적, 초보적 등 연방제안을 순화하는 어떠한 형용사를 붙여도 상관없다.
남북정상회담 과정을 보면 남북의 정상은 통일 방안에 대해 토론하면서 주로 중앙정부와 남북 지역정부의 권한 배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가령 북의 고려 연방제는 처음부터 연방정부에 군사-외교권을 주는 방식이라면 DJ 정부는 처음에는 남북 정부가 군사-외교권을 갖고 제한적인 권한을 갖는 연합기구를 둔다는 것이다. 이 차이는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2000년 시점에서는 해결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북은 어떻게든 정상회담에서 통일방안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려 했고 그 결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즉 연방제를 낮은 단계와 높은 단계로 구분하고 낮은 단계에서는 남북이 각각 군사-외교권을 갖는 연합제의 국가 주권 권한 배분의 “형식적”인 측면을 수용한 것이다.
연합제와 연방제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연합제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라는 남의 철학에 기초하여 남 주도의 흡수 통일을 체계화한 통일방안이다. 이 과정에서 주한미군이나 국가보안법 문제는 논외의 영역이거나(㉠,㉡) 부차적인 문제이다.(㉢) 반면 연방제는 상이한 제도가 공존하는 “특별한” 형태의 연방제를 하더라도 주한미군의 지위를 흔들겠다는 발상을 밑에 깔고 있다. 따라서 양자의 통일방안에서 접점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6.15 공동선언 2항의 합의는 어떻게든 통일 방안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북의 집념을 느낄 수 있다. 반면 DJ 대통령의 입장에서도 문제될 것은 없었다. 당초 DJ 대통령의 정상회담 기조는 평화였는데 북이 통일 방안에서 DJ 대통령의 입장에 상당히 접근한 만큼 합의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DJ 대통령이 통일 방안의 합의를 과외의 소득이라고 한 대목은 이러한 맥락이다.
그렇다면 북의 통일방안 중 전통적인 연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일단 단어상으로만 본다면 연방제라는 하나의 단계 안에 낮은 단계와 높은 단계가 있는 만큼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점차 높은 단계로 이행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남북의 지역 정부에 있던 군사. 외교권 등을 중앙정부로 이동시켜야 한다.
이것은 점진적인 과정을 통해서는 불가능한, 질적 도약이 필요한 대목이다. 내용상으로 본다면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연방제라는 하나의 단계 안에 존재하는 초기국면이라기보다는 높은 단계의 연방제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새로운 단계, 국면이다.
필자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전통적인 연방제의 질적 차이를 가름하는 지표는 북미 공방의 향방과 남의 경제에 달려 있다고 본다.
연방정부에 군사권을 집중시키려면 한미간에 형성된 군사적 의존관계가 끊겨야 한다. 북미 공방에서 북은 북미 관계 정상화와 함께 주한미군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현재 북미 공방이 복잡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북의 요구 사항이 너무 높은 것이다. 미국이 불만스럽기는 해도 양보할 수 있는 최대치는 ‘북미 관계 정상화 -두 개의 Korea - 주한미군 주둔’일 것이다.
그러나 2004년 현 시점에서 진행되고 있는 북미 공방은 대북 적대정책의 청산이라는 구체적인 요구 밑에 한반도 평화의 궁극적인 보장-주한미군의 철수까지를 목표로 하고 있는 듯 하다.
미국의 한반도에 대한 군사적 영향력을 제거하는 문제와 연방정부 아래 남북의 군대를 통합한 민족연합군을 창설하는 문제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고려연방제 시정방침에는 군대 통합의 문제가 있는 데 이것이 가능할 지는 미지수이다.
필자는 남이 군사작전통제권을 미국으로부터 회수하고 남북간 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군사적으로 협력하되 남북의 실제 군대는 각기 보유하는 수준이 최선이 아닐까 한다.
고려연방제는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이하 PDR)”과 밀착되어 제기된 통일방안이다. PDR은 세계 경제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양분되어 있는 조건에서 외자 및 독점 자본을 몰수하고 남의 민중역량을 중심으로 경제를 재구축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PDR의 배경에는 외자 및 독점 자본을 몰수했을 때 발생하는 경제적 파국을 사회주의 진영의 경제 원조나 북 경제와의 합작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발상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경제권은 사라졌고 북의 경제력은 지극히 취약하다.
북의 연방제는 이러한 상황 변화를 나름대로 반영하고 있다. 정치.군사적 자주권에 관한 한 기존 입장을 고수하되 경제적인 영역에서는 점차 유연한 입장으로 선회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통일과정에서 외자와 독점자본에 대한 태도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시론적인 차원에서 검토해 본다면 가령 외자의 경우 외자 중 투기자본은 억제하되 여타의 직접투자는 허용하는 양상이 될 것이다.
북의 경우에도 신의주 특구, 개성공단, 금강산 개발, 북일수교, 철도.도로 연결 등에서 외자 또는 남북.국제협력을 통해 경제 재건을 꾀하고 있다.
이는 외자 도입을 경제적 종속-정치적 자주성의 훼손으로 보았던 전통적인 인식과는 다른 것이다. 통일과정에서는 더 큰 규모의 개발 사업이 가능한 바 남북이 협력하여 국제 사회의 과잉 자본을 효과적으로 동원할 필요가 있다.
위와 같은 시나리오는 통일 과정에서 남의 권력 구조와 연동되어 있다. PDR의 발상은 ‘외자.독점 자본의 몰수-국유화와 중.소 자본의 온존’인 만큼 남의 권력은 민중진영으로 급격히 이동한다. 고려연방제가 PDR과 밀착되어 있다는 뜻은 이러한 급격한 권력 구조의 개편 과정에서 높은 단계의 연방제를 한꺼번에 실현할 수 있다는 혁명적인 구상을 깔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통일 과정에서 외자와 국내 독점자본의 역할을 인정한다면 남의 권력 구조는 완만한 변화 과정을 보일 것이다. 이런 양상이라면 연방제의 높은 단계를 추진할 권력 구조의 변동은 어려워 보인다.
결국 통일과정은 민족적인 입장에서 대단히 점진적 과정을 띨 것이다. 즉 낮은 단계→높은 단계로의 변화는 대단히 먼 과정이다. 한편 남 내부에서 외자.독점자본과 민중진영간의 갈등은 신자유주의를 둘러싸고 통일 과정과는 상대적으로 별도의 공간에서 진행될 것이다.
이 경우라도 민중 진영은 통일과정에 적극 개입하여 민중운동을 옥죄고 있는 두 갈래의 모순 중 민족 모순을 해결하기 싸워야 한다.
이상을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1980년 고려 연방제 낮은 단계의 연방제 국제 환경 자본주의,사회주의 양극질서 자본주의 경제권
권력구조 외자.독점자본의 몰수와 민중진영으로의 권력 이동 외자. 독점 자본의 활용 연방제 형식 높은 단계의 연방제 낮은 단계의 연방제 통일과 변혁 통일과 변혁의 일체화 통일과 변혁의 분리
이상 북미 관계와 남의 경제 문제를 중심으로 한 위의 논의를 종합하면, 북미 대결의 결과에 따라 주한미군이 철수할 가능성은 높다. 단 높은 단계의 연방제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민족연합군 조직과 같은 생각은 과도하다고 본다.
경제적인 견지에서 외자.독점 자본의 몰수보다는 활용으로 방향을 잡는다면 높은 단계의 연방제를 한꺼번에 추진할 정치 세력이 출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과적으로 ‘낮은→높은’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하기보다는 ‘낮은 단계’가 비교적 길게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80년 고려연방제와 2000년 6.15선언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일정하게 다른 발상과 배경 하에서 제출되었다.
그러나 남는 문제는 있다. 필자는 위와 같은 변화가 그래도 건설적인 과정으로 본다. 문제는 남의 경제가 급격히 동요하는 경우이다.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심각해지면서 중.남미에는 연쇄적으로 온건 좌파 정권이 들어서고 있다. 중남미의 좌파 정권은 민중의 생활고가 악화되면서 우파 성향의 정치 세력이 몰락하는 대신 급진 좌파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 과도적인 상황을 보여 주고 있다. 이 과도적 국면에서 집권한 온건 좌파 정부는 집권 후에는 우파적 정책을 펴고 있다.
반면 남의 경우 민중 생활고가 악화된 시점에서 99~2000년에는 민간부문의 부채와 재정적자를 통해, 2002년 이후에는 IT 대기업.공기업.전통 중공업을 중심으로 한 수출로 상황을 모면해 왔다. 중남미가 폭동→온건 좌파로 이어졌다면 남은 위기의 봉합→중도우파(노무현 정부)로 귀결된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경제위기가 계속된다면 한국 경제가 남미화할 가능성도 커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지면에서 언급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