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놓는 작품마다 '대박'
"마음을 움직인 대본이 흥행에 성공하더군요… 처음 도전하는 영화나 자신이 제일 겁나요"
"상업적인 부담요? 안 망해봐서 잘 몰라요. 고스톱 패를 처음 잡아본 것 같은 마음입니다. 잃으면 얼마나 잃을지 상상도 안 돼요."
작가 겸 연출가 장유정(34)은 자신감이 넘쳤다. 그의 프로필은 성공 릴레이다. 2006년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로 한국뮤지컬대상 작품상, 2007년 뮤지컬 '김종욱 찾기'로 더뮤지컬어워즈 극본상, 2009년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로 다시 더뮤지컬어워즈 극본상, 2010년 '김종욱 찾기'는 1600회 공연에 관객 30만명 돌파…. 그리고 이번 12월엔 공유·임수정 주연의 영화 '김종욱 찾기'를 직접 개봉한다. 창작 공연이 영화화되는 경우도 드물지만 공연 연출가가 직접 메가폰을 잡는 건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사건'이다.
- ▲ 뮤지컬‘김종욱 찾기’를 장기 공연하고 있는 대학로에서 만난 장유정. 영화‘김종욱 찾기’까지 직접 연출한 그는“요즘이 내 인생에서 또 하나의 전환점”이라며“마음 가다듬을 시간이 필요해 내년 상반기는 비워놓았다”고 했다.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장유정은 조선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연출을 전공했다. 대학로 진출 3년 만에 '장유정표 뮤지컬'은 블루칩이 됐다. 대학로 예술마당(4개 관)에서는 1000회를 넘긴 그의 뮤지컬 두 편이 장기 공연되고 있다. 뮤지컬 연습을 마치고 두 시간 뒤 산부인과에서 출산했다는 이 악착같은 연출가는 "1년에 많으면 15건의 작품 제안을 받는다"고 했다.
장유정은 일상에서 소재를 찾는다.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봉사활동하다가 '오! 당신이 잠든 사이'를 착안했고, 첫사랑을 앓고 '김종욱 찾기'를, 안동 종갓집으로 시집간 뒤 '형제는 용감했다'를 썼다. 사랑에 다친 사람을 다독이는 이야기라는 게 공통점이다. 그는 "쓴 지 1~2년쯤 지나 다시 꺼냈을 때 마음을 움직인 대본이 흥행에도 성공했다"면서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엄마, '김종욱 찾기'는 첫사랑, '형제는 용감했다'는 시댁(남편) 같다"고 했다.
그는 대학 시절 슬로바키아 공연 후 귀국 비행기를 타는 대신 육로로 폴란드~에스토니아~몽골~중국을 거쳐 돌아올 정도로 여행광이기도 하다. 인도에 다녀온 뒤엔 한동안 맨발로 집과 학교를 오갔다는 장유정은 "내 청춘은 달콤하지도, 쓰지도 않았고 좀 엽기적이었다"고 했다.
'장 작가' '장 연출'이었다가 이제 '장 감독'으로 불리는 그는 "다른 모험과 도전이 필요한 시점에서 영화 제안이 왔고 반신반의로 시작한 작업"이라고 했다. "제일 겁나는 건 나 자신이죠. 영화는 전혀 다른 장르잖아요. 잘할 수 있을지, 바른길로 가는지 검증이 안 됐고 자꾸 의심해야 하는 것이 두려웠어요."
'김종욱 찾기'는 소심한 A형 남자와 변덕스러운 B형 여자의 사랑 이야기다. 여주인공이 첫사랑 김종욱을 찾으러 '첫사랑 찾기 사무소'에 의뢰하고, 함께 추적하는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줄거리는 영화에서도 그대로다. 무대에서 연극성을 높이고 비용을 줄이려고 3명으로 압축했던 출연진이 스크린에선 대폭 늘어나는 게 가장 큰 변화다. 장유정은 "영화는 훨씬 긴 시간을 지급해야 하는 '오래 달리기' 같았다"고 했다.
영화 제안을 받았을 때 그는 대뜸 "인도(촬영) 갈 겁니까?"라고 물었다. 실제로 12년 전 인도로 가는 비행기에서 첫사랑 김종욱을 만났기 때문이다. "여주인공이 인연과 운명에 집착하는 사람이에요. 인도만한 데가 없어요. 아침에는 안개에 적셔져 예쁜데 안개가 걷히면 현실이 드러나요. 첫사랑도 그렇지 않나요?"
장유정은 최근 혼자 네팔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에 다녀왔다. '김종욱 찾기'의 시작이 1998년 1월의 안나푸르나다. 그는 "안나푸르나 중턱에서 몸이 아파 더 올라가지 못하고 며칠을 지냈다. 호수를 바라보며 차를 마시는데 누군가 플루트를 불었고 모든 게 천국처럼 완벽했다"고 했다. 그는 "영화를 끝냈으니 내가 사랑에 빠졌던 그 공간에서 마음을 갈무리하고 싶었다"고 했다.